너를 만나 행복해! 살림어린이 그림책 16
나라 요시토모 글.그림, 배주영 옮김 / 살림어린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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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거대해 누구도 그 존재를 알 수 없었던 외로운 강아지가 있었다. 우연히 근처를 지나가던 한 어린 소녀가 그 존재를 눈치 채고 이내 둘도 없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된다는 것이 이 그림책의 내용이다. ‘혼자라서 외롭더라도 누군가가 당신의 친구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라’, ‘중요한 것은 친구를 찾겠다는 마음이다’, 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저자는 이 책을 끝맺는다.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놀랐던 것은 강아지와 소녀가 처음으로 눈을 마주치면서 놀라는 순간은 잠깐, 이내 미소를 짓고 노래를 불러주며 금세 친한 친구가 되는 과정이 매우 단순화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어린 아이들이 주 독자층이 될 그림책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만, 나는 이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인생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간단명료하면서도 단순하게 만날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닌가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보기가 너무 어려워진, 아무런 계산 없이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모습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우정과 사랑, 배려, 나눔의 소중함을 이 책은 내게 일깨워주고 있었다.

우리는 언제쯤 이 정글 같고 전쟁터 같은 지구라는 삶의 터전을 성경에 묘사된 천국의 모습처럼 사자의 입이나 뱀굴에 손을 넣어도 안심할 수 있는 그런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런 날이 과연 올 수 있기나 한 걸까. 인류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능력을 돌아봤을 때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혁명을 막고 있는 것의 실체는 대체 무엇일까?

짧은 이야기를 가지고 너무 심각한 생각에 빠진 것 같다... 아무튼! 나라 요시토모의 팬이라면 그의 그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너를 만나 행복해’는 남녀노소 누구나, 특히 아빠와 아이, 엄마가 나란히 모여앉아 즐겁게 볼 수 있는 예쁜 선물 같은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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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에 읽는 생명의 역사 - 137억 년간의 생성과 소멸 그 순환의 기록
하랄트 레슈.하랄트 차운 지음, 김하락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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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역사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데에는 상상력의 탄생이 가장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고고학이나 인류학적으로 인류의 발달 단계를 연구하는 분야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만큼 확실한 연결고리가 모두 밝혀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어느 정도 확실히 밝혀져 있는 역사의 영역에서 인류의 발전사를 되돌아 봤을 때 인류에게 가장 극적인 순간은 외부세계와의 대결 혹은 적응 과정에서 상상력이 탄생한 것이다. 자신의 존재 의의와 의미, 배경, 초월적 절대적 존재에 대한 발상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우주와 생명, 인간의 의식의 기나긴 여정에 대해 ‘하루만에’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가능하게 된 것이 아닐까. 
 
   인간의 직관 능력을 초기 우주의 빅뱅과 연관시켜 설명하는 인상적인 시작으로 이 책은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시공간과 물질의 개념, 은하, 행성, 지구의 탄생과 최초의 원시생물의 등장에 대해 설명한다. 이어 오랜 세월 지구의 지배자로 군림했던 파충류의 시대를 지나 당시로서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생존능력을 발휘했던 포유류의 등장까지 저자는 각 장에서 우주의 기원과 해당 시대를 넘나들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러나 사람들이 더욱 관심과 흥미를 갖고 읽어볼 수 있는 부분은 인류의 탄생 이후부터가 아닌가 싶다. 정말 우리가 원숭이의 후손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있던 사람이라는 개체가 점점 종 안에서 꾸준히 진화를 거듭해온 것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인류 쪽에서 보면 가히 제2의 빅뱅이라 할 수 있는 창조적, 문화적 의식의 탄생 혹은 자각은 인류사 최대의 미스터리라 할 수 있다. 확실히 알 수 있는 지적 혁명의 기원은 그리스의 역사와 유적을 통해 알 수 있지만 그 이전의 시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항상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상상과 전망, 연구를 통해 현재까지 발전해왔다. 비록 근본적인 물음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빚어낸 무수히 많은 문명의 성과들은 아주 놀라운 것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최대의 과거인 빅뱅보다 더 이전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고, 미래에 대해서는 다른 은하계나 외계생명체를 넘어 우주 너머의 우주, 신들의 세계 같은 불가해한 영역까지 상상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우주와 생명, 의식과 같이 역사라는 대서사시의 핵심 요소들에 대해 짧은 분량이지만 효과적으로 안내하고 있는 ‘하루만에 읽는 생명의 역사’는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하는 단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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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전쟁 - 국가 간 생존을 위한 사투
시바타 아키오 지음, 정정일 옮김 / 이레미디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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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석유를 비롯한 한정적인 지구의 자원 상황에서 수요는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공급이 그에 따라가지 못하는 시대가 지속되면서 앞으로 다가올 이른바 고가자원 시대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지구의 자원을 얼마나 흥청망청 써왔는지, 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수요가 있게 될지를 다양한 단위의 수치와 그래프를 통해 알려주고 있지만, 한마디로 미래의 자원과 에너지, 환경 문제는 중국이 어떻게 하느냐 또는 세계가 중국에게 어떻게 해주어야 하느냐로 요약되는 것 같다. 기존의 한정적인 지하계 자원이 주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선진국과 선진국으로 곧 진입하는 단계에 있는 국가들, 그리고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개발도상국과 자원은 풍부하나 정치적 상황이 불안한 아프리카 국가들 등 다양한 나라와 글로벌 에너지 관련 기업들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전 세계의 경제상황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이런 이권 다툼의 너머에는 보다 큰 문제가 있으니 바로 지구온난화로 인한 전지구적 위기의 가능성이다. 
 

   저자는 자원문제를 자원부족(고갈), 환경파괴 및 식량문제, 공급불안, 지구온난화의 문제로 나누어서 논의하고 있다. 특히 앞에서 말했듯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차세대 경제대국인 중국이나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 이른바 BRICs라 불리는 나라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중국의 폭발적인 경제발전에 따르는 자원 수요와 공급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가와 이미 쓸 만큼 써댄 미국의 태도 변화가 관건이다. 현 상황을 볼 때 한쪽이 양보하거나 양쪽이 만족할만한 타협안이 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계속해서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 될 경우 모두가 다 파국으로 치달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다른 방안이 필요한데 바로 대체에너지의 개발이다. 원자력을 비롯해 친환경적인 풍력, 지열 에너지의 개발과 무한의 태양계 자원인 태양열 에너지의 상용화를 위한 각국의 노력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일찍부터 시민의식이 선진화된 유럽이 많이 앞서가고 있다. 다른 대안으로는 옥수수나 사탕수수 등을 이용한 바이오에너지가 개발되어 상용 단계에 있긴 하지만 식량과 환경파괴에 대한 해결 과제를 안고 있다.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하는 것 말고도 기존의 전자제품이나 폐기물에서 자원을 추출하는 재활용 기술과 절약 기술도 소개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는 일본이 단연 앞서가고 있다고 한다. 자원 문제는 석유나 석탄, 희귀금속 뿐만 아니라 물 문제도 포함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나라가 미래의 수자원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번 석유 가격의 폭등을 겪으면서 전 세계의 석유 및 각종 자원의 사용량이 일시적으로 줄어들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안정화되면서 또 다시 전 세계의 석유 사용량이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석유 자원의 고갈을 예측하는 갖가지 지표가 나오고 있는 것 또한 불안한 미래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렇듯 고가자원 시대를 앞두고 현상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전망 및 대안을 내놓고 있는 ‘자원 전쟁’을 읽으면서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해서 쓰고 있는 우리나라의 실정이 결코 만만한 상황이 아님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닌데, 예전에 한 학자가 무선 기술을 이용해 무한의 에너지를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고안한 적이 있었는데 기업가들이 요금 부과를 하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상용화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어떤 댓글을 통해 본 기억이 난다. 지금 당장 그 수준까지는 갈 수 없을지라도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경제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경제시스템의 발명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수단이 무엇이 되었든 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유형, 무형의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소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경제학자의 바람과 같이 경제 혹은 경제체제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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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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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고 거둔 가장 큰 수확은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이다. 일본계 영국 작가로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미 세계적으로는 상당히 인정을 받고 있는 작가라고 한다. ‘남아 있는 나날’의 가장 큰 장점은 시대 배경이 20세기 초중반의 영국이고, 등장인물들을 살펴보면 우리에게는 낯선 전통이 있는 영국의 ‘집사’라는 직업과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의 사이의 있었음직한 일들을 다루고 있어 굉장히 딱딱할 것 같지만 의외로 술술 읽힌다는 것이다. 그것도 재미있게 말이다. 그러면서도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담고 있어 작가의 다른 소설은 어떨지 궁금하게 한다. 

   소설은 주인공 스티븐스가 전 인생을 다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달링턴 경을 섬기던 시절에 있었던 일을 1956년 현재의 시점에서 여행을 하면서 회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평생을 섬긴 주인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충성심을 바탕으로 누구보다 집사로서의 자부심을 높게 가지고 있던 스티븐스는 현재 섬기고 있는 미국인 페러데이라는 사람의 배려와 그 자신의 업무에 대한 실수를 만회하면서 동시에 예전에 미묘한 감정을 가졌던 켄턴 양과의 재회를 위해 여행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지금껏 마음속에 묻어 두고만 있었던 지난 날들에 있던 다양한 사건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되면서 프로페셔널한 집사로서의 삶에 있어서는 만족을 하지만 주체적인 한 개인으로서는 상실과 허무함의 쓰디쓴 감정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인생이란 것이 당사자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던가. 뜻하지 않게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돌아볼 기회를 가졌던 스티븐스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희망과 의미를 되새기면서 소설은 마무리 된다. 
 
   소설 속에 묘사된 결국 이루어질 수 없었던 스티븐스와 켄턴 양과의 고집스런 대화 공방전을 보고 있자니 오늘날의 어떤 남녀 간의 심리를 다룬 연애 소설보다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또한 당시의 높은 신분의 정치인이나 사업가들을 대접하는 장면들이 많다 보니 역사의 이면, 즉 1, 2차 세계대전 사이의 불안했던 시기,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탐욕이 순수성을 본격적으로 넘어서는 시대의 전환기를 소설 속에서 집사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의 시선으로 간접적이긴 하지만 매우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은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이며, 결국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커다란 어떤 체계 안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임을 보여주고 있어 씁쓸한 면도 있지만 늦게나마 주인공이 조금은 자기 삶의 주체로서의 자아를 되찾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희망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이 소설은 의미를 생각하고 해석하는 즐거움도 분명 클 테지만, 무엇보다 하나의 이야기로서 무척 재미있으니 꼭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책 말미에 수록된 이 작품과 한나 아렌트가 만나는 지점을 다룬 번역가 김남주 님의 작품 해설도 소설의 이해를 돕고 있어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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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마지막 장미
온다 리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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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모두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이 세계는 각 사람들의 불확실한 꿈과 꿈이 연결되어 있는 토대 위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 더 이상 꿈을 꾸기를 거부하거나 작은 실수로 조금만 그 균형이 흐트러져도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무서운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름의 마지막 장미꽃 한 잎은 너무나 강렬했다. ‘도미노’, ‘로미오와 로미오는 영원히’와 같은 종류의 소설을 읽으면서 비교적 나와는 취향이 맞지 않아 한동안 멀리 떨어져 있던 온다 리쿠의 세계로 다시 돌아오는데 눈 깜짝할 시간조차 길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온다 리쿠의 소설을 다시 펼치면 될 일이었지만 그 즈음하여 다른 흥미로운 작가들의 대거 등장으로 인해 소원한 상태로 있었던 것이다. 
 
“거짓을 사실처럼 잘 꾸며 내려면 사실을 어느 정도 적절하게 섞는 것이 핵심이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보다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색깔을 입히는 쪽이 얘기하기가 쉽다. (중략) 그녀들은 과연 무엇을 은폐하려는 것일까. 나는 그 점에 흥미를 느낀다. 우리도 오래전부터 거짓말을 해 왔다” (p.48)
“진실은 그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허구가 섞이면 더욱 진한 향을 풍긴다” (p.244)

   사와타리 가문이 세운 깊은 산 속의 궁전 같은 호텔 속에서 펼쳐지는 실제와 환상이 뒤섞인 미스터리한 이야기.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 동안 모두가 서로 다른 꿈을 꾼 것처럼, 공간은 하나이지만 각 등장인물들의 불확실한 기억이라는 창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불의의 사고로 부모를 잃은 남매 사쿠라코와 도키미쓰 간의 안타까운 관계와 그 둘을 애틋하면서도 복잡한 감정으로 바라보는 사쿠라코의 남편 류스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혼란에 빠졌던 사쿠라코의 또 다른 연인이자 사와타리 가문과 비즈니스 관계를 맺고 있는 다쓰요시, 작품 속을 관통하는 큰 갈등의 뿌리를 뽑고자 하는, 역시 이 가문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아마치 교수, 그리고 배우이자 류스케와 친척 간인 미즈호와 그녀의 매니저 사키 등 각 등장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어느 것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어느 것이 뒤틀린 기억과 망상에 의한 부산물일 뿐인지 독자에게 궁금증을 유발한다.

“있었다고 믿으면, 공언해 버리면, 사실로 인정된다. 그런 일이 세상에는 왕왕 있다” (p.75)
“허상을 구축하는 사람들. 그 세 자매뿐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하루하루 자신의 허상을 만들어 간다.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상, 남들이 이걸 자신이라고 여겨 줬으면 하는 상을” (p.123)

   이 모든 인물들의 중심에 매년 호텔에서 열리는 파티의 주인공이자 사와타리 가문의 어른들인 세 자매 이치코, 니카코, 미즈코가 있다. 류스케에게는 이모들이며, 니카코는 미즈호의 어머니다. 진실인지 거짓말인지 알 수 없는 세 자매의 대화를 청중들이 보는 형태로 이 수수께끼의 파티는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세 자매의 대화는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내용의 전개로 사람들을 두렵게도 하고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신원을 알 수 없는 한 여인의 죽음과 함께 그해의 파티는 의문을 남긴 채 끝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각 등장인물들은 자기 안에 있는 분노와 슬픔, 격렬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문제는 훗날 이들이 떠올리게 되는 그날의 사건들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 누구의 기억이 진실이며, 누구의 기억이 환상인가!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지난해 이곳에서 사건 따위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어요. 있는 것은 지난해를 사건화하려는 당신들의 의지뿐이죠. 없었던 밀회를 있었던 것으로 하고 낯선 남자와 여행길에 오르려는 주인공이 있어요. 하나, 그런 여행이 성공할 리 없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느긋하게 쉰 후에는 자신이 아는 세계로 돌아와야 할 겁니다” (p.371)

   작중 아다치 교수가 보는 환영처럼 이 소설은 모래에 묻혀 모래시계의 사구 아래로 가라앉듯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무엇을 위해 그토록 냉철해야 했으며, 강인한 척 해야 했는지를 묻게 한다. 비극적인 현실을 뒤로 한 채, 믿고 싶은 것만을 현실로 받아들이려 하는 등장인물들의 환상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면서 가끔씩 이 삶이 제발 꿈이기를, 현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나의 모습을 비춰보기도 했다.
   온다 리쿠의 소설 세계는 이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잔혹한 설정과 이미지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빠지는 것은 조심해야겠다. 그녀의 소설 세계를 여행하는 것은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쉬고 위로를 얻는 선물 같은 것이니까. 다시 삶으로, 내가 아는 세계로 돌아오기 위해 힘겹게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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