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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smith: A Romance of the 1950's, a Memoir: (Paperback)
Marijane Meaker / Cleis Pr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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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지 꽤 된 책입니다만 간만의 북플 업데이트를 위해 엄지를 두드려보겠습니다.

짐시 시간 여행을 떠나볼까요. 배경은 1950년대 후반의 미국, 뉴욕입니다. 그때도 뉴욕은 다양한 문화와 정체성이 혼재되어 흘러넘치는 거대한 도시였습니다만, 지금과 꼭 같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미국은 냉전을 경험하고 있었고 사회적.문화적으로 좀 더 보수적이었죠.

이야기는 이 텁텁한 시기, 뉴욕의 어느 레즈비언 바에서 시작됩니다. 펄프픽션 작가인 매리제인 미커는 어느 저녁, 자신이 평소 흠모해오던 소설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를 우연찮게 맞닥뜨리고는 2년간의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지요. <Highsmith : A romance of the 1950`s>는 1959~61년 사이,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와 나누었던 사랑에 대한 미커의 회고록입니다.

알다시피 방랑벽과 알코홀릭에 시달리던 하이스미스는 사랑에 빠지기에 이상적인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었습니다. 비슷하게 미커 본인도 썩 훌륭한 연인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의심과 질투도 심했던데다가, 하이스미스의 바람대로 함께 유럽을 여행하는 대신, 팬실베니아 교외에 집을 구입해 머물자고 고집스럽게 그를 설득하죠. 유럽을 사랑했던 하이스미스가 보수적인 분위기의 팬실베니아 교외에서 병든 식물처럼 생기를 잃고 술을 퍼마시게 되었던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요.

현실에서는 기피했을 것 같은 성격의 두 사람이지만-_-; , 책으로 읽기에는 이 둘의 전쟁같은 연애사가 더없이 즐거웠습니다. 당시의 시시콜콜한 일화들을 마치 수다떨듯 전달하는 미커의 서술 방식도 흡입력 있었구요. 미커와 하이스미스 둘 다 전업 작가였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글쓰기에 자극을 주고 영향을 받은 과정에 대해서 책의 상당부분이 할애되어 있는데, 저 자신이 하이스미스의 팬이라 그런지 참 재밌게 읽었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미국의 동성애자 문화에 대한 묘사가 흥미로웠어요. 서로 네트워킹을 할 만큼 하위문화가 발달되어 있기는 하지만, 수면 위로 크게 떠오르지는 않았다는 점이 지금의 서울과 비슷하지 않나란 생각이 들더군요. 전반적으로 ˝Don`t ask, don` tell˝의 분위기였던 것 같습니다.195~60년대 뉴욕의 보수적인 분위기와 2010년대 중반의 서울의 분위기가 맞닿아 있다니 어쩐지 맥이 빠지죠.

말년의 하이스미스는 정말 불쾌한 종류의 인간이 되어버렸더군요. 미커와 처음 만나기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캐쥬얼하던 흑인과 유태인에 대한 그의 혐오가 후에 망상 수준으로 강해진 걸 보고있자니 측은한 감정까지 들 정도였어요. 괴기스럽기까지 한 노년의 하이스미스 사진을 보고 있자면 젊었을 때 그가 이토록 매력적으로 생긴 여인이었다는 사실이 잘 믿겨지지 않을 정도죠.

하이스미스 소설의 팬이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저는 Scribd라는 어플을 다운받아 무료로 읽었어요.

책을 읽고 제가 얻은 교훈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겠네요 : ˝예술가와 섹스를 하면 저주를 면치 못한다(이자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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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5-21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속 여자가 하이스미스 맞습니까? 외모가 1950년대를 대표했던 미녀 배우 같습니다.

csp 2015-05-21 19:30   좋아요 0 | URL
네, 하이스미스 맞습니다. 하이스미스 노년의 괴팍한 모습만 알고 있다가 젊었을 적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실제 책의 내용에 따르면 하이스미스는 신사같은 매너와-_-; 훤칠한 키 등으로 당시 레즈비언 커뮤니티 안에서 인기인이었다고 하더군요...

수이 2015-05-21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쟁같은 연애사_는 다시는 겪고싶지 않아요;;; 근데 이 언니 꽤 매력적인걸요_ :)

csp 2015-05-21 23:15   좋아요 0 | URL
확실히 흥미로운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백석의 맛 - 시에 담긴 음식, 음식에 담긴 마음
소래섭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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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시를 좋아하거나 음식을 좋아하는-혹은 그 둘 모두에 해당하는 저같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먹는 거, 다들 좋아하십니까. 저야 무척 사랑합니다. 눈 나리는 겨울밤 뜨근한 무국, 언제 먹어도 감칠맛 나는 고사리 나물, 짭조름하면서도 달착지큰한 깊은 맛에 자꾸만 손이 가는 간장게장, 야식으로는 더 바랄게 없는 치킨...좋아하는 음식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지경이죠. 하지만 그러면서도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와 개념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저자 소래섭씨는 <백석의 맛>에서 백석 시에 담긴 음식의 풍경 뿐만 아니라, `음식`과 `먹는다`는 것에 대한 동서양의 사유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그리고 근대를 거치며 한국의 식문화가 어떻게 굴절되었는지 참으로 맛깔스럽게 펼쳐보입니다. 덕분에 독서를 일단락한 지금, 저는 이제 음식을 단순히 식욕의 대상이나 건강을 위해 섭취해야 할 것으로 여기기보다는, 그 음식에 담긴 마음에 대해 한번 더 곱씹어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석이 노래했듯 `밝고, 가룩하고, 그윽하고, 깊고, 맑고, 무겁고, 높은` 맛-마음을 느끼려면 더욱 많은 수행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음식을 먹는 행위, 즉`밖`에 있는 음식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나와 세상 사이의 경계를 교란시키며 세상과 맞닿습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음식을 통해 `나`라는 주체를 이루는 모든 것과 외부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이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주체인 `나`는 자신과 세계의 의미를 인식하게 된다.˝

라 적고 있습니다. 백석만큼 이를 이해하는 시인은 드문 것 같습니다. 그는 다르지만 맞닿아 있는 것들의 화합을 노래하거나 (<모닥불>) 시간과 공간, 그리고 민족이라는 경계를 초월한 `마음`에 대해서 노래합니다(<두보나 이백같이>). 저자는 백석의 이러한 넉넉한 사유의 중심에 음식이 놓여있다고 말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자연히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주장입니다.

다만, 7장에서 저자가 음식의 향유가 나타내는 계급의 차를 설명하며 `된장녀`의 예시를 든 것은 상당히 아쉽고 유감스러웠습니다. `된장녀`와 유사하게 여성에게 붙는 `~녀`라는 여러 별칭들을, 저는 1차적으로 남성의 시선으로 여성을 검열하고 꼬리표를 붙이고자 하는 가부장적 기제의 일부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책에서 음식과 관련된 여러 사회적,문화적 맥락을 꼼꼼히 살피고 섬세하게 관찰한 저자이지만 , 젠더에 대한 감수성은 그만 못한 것 같아 못내 아쉽더군요.

어쨌거나 전체적으로 아주 만족할만한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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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하룻밤의 지식여행 10
지아우딘 사르다르 지음, 박지숙 옮김, 자파르 아바스 말리크 그림 / 김영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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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우딘 사르다르가 쓰고 자파르 아바스 말리크가 그린 이슬람 개념서 <이슬람> 는 채 200여쪽이 되지 않는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의 긴 역사와 다채로운 문화를 효율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나처럼 이슬람과 그 문화에 무지한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이슬람이 무엇인지, 무슬림이 어떤 이들인지 간략하게나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은
-예언자 마호메트의 간략한 일대기와, 코란과 하디스의 창작 과정,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라짐 등, 기본적인 이슬람의 역사와 개념들

-철학,수학,과학,기술,의학,예술,건축,서지학 등 거의 문명의 전방면에 걸쳐 이슬람 문명이 일궈낸 발견들과, 무슬림들의 지적인 전통

-외부의 침략과 내부의 권위주의로 인한 이슬람의 쇠퇴,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과 더불어 이뤄진`이슬람 악마화`

-이슬람의 미래를 모색하는 현대화 작업과, 원리주의.테러리즘.여성 차별과 같은 이슬람의 어두운 그림자

를 요약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얼마전 일본인 인질을 참수한 ISIS나 프랑스에서 있었던 샤를리 에브도 폭탄 테러 등에 대한 반동으로, 이슬림과 무슬림에대한 혐오와 오해가 팽배한 요즈음이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대다수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양심에 따라 정의와 진실, 그리고 인간의 공통된 가치를 지지한다. 테러리스트라는 잣대로 모든 무슬림들을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무슬림들의 인간성을 손상시키고 있으며, 인류의 1/5에 해당하는 10억 이상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사회와 역사를 서구의 어두운 한 단면쯤으로 희화해 모욕하고 있다.˝

고 항의한다.

덧붙이는 코란의 개경장. 완벽한 조화가 주는 아름다움이 예술품으로 느껴질 만큼 압도적이었다. 아랍어로 느끼는 코란은 과연 어떠할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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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버트란드 러셀 지음 / 사회평론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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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동의하고 반쯤 반대하기도 하면서 탐독. 어떤 부분은 어색한 문장과 오타 때문에 가독성이 떨어져 읽기에 힘이 들기도 했음.

개인적으로
1. 예수라는 인물의 도덕성 문제 (역사성이 아니라)
2.시공을 초월하는 실재, 기독교적 신은 그 정의상 경험 될 수 없다는 것(우리의 경험은 시공의 한계 안에 있으므로)
이 두 주제가 깊이 성찰 해볼만하다 생각. 개신교 가정에서 나고 자란지라, 종교에 대한 적의가 최고조로 불타올랐던 시기에도 예수라는 사내에 대해서 그다지 부정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기에 1의 관점이 흥미로움. 2에 대해서는 이미 수십년전 틸리히가 `하느님은 the ground of all being` 이라 정의했던 것이 힌트가 되어줄듯. 어찌되었든 종교적 체험과 연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주제임.

그러나 러셀이 기독교-나아가 종교의 해악을 논박하는 과정에서 그것들의 악행과 악습만 선별적으로 나열해 놓은 것 같아 불만족스러웠음. 러셀은 책에서 때로 종교 그 자체가 원인이 아닌 인류사의 불행-예를 들어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 같은-마저 최소한 종교(이 경우 기독교)가 그 잔인성에 한 몫 했다고 열정적으로 말하는데, 나는 그러한 사건들 속에서 종교(종교 권력과는 분리된 의미임)가 그 자체로 결정적 역할을 하지 못했고 오히려 인간들의 욕망을 승인해주는 도구적 역할만 수행했다고 생각함. 예를 들어 종교가 없었다고 해도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간적으로 대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뜻-_-; . 독실한 크리스챤이라면 거꾸로 참된 기독교 정신의 부재가 이런 악행을 불러왔다고 항변할지도? 사실 나는 종교가 사라지면 인류사의 모든 불행과 악습과 불평등이 사라지거나 개선될거라 생각하는 이들은 인간성을 지나치게 낙관하는 자들이라 생각함.

아무튼 무신론자보다 오히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이들, 혹은 기독교적 지향성을 가진 불가지론자들(나같은)에게 일독을 권해보고 싶음. 현대적 무신론의 전형을 보여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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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드 퀸 - Winter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외 지음, 헤럴드 블룸 엮음, 정정호 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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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도서관에서 빌려 읽음. 나에게 고골의 코와 로세티의 도깨비 시장을 알게 해 준 고마운 책. 그 해 겨울, 노트에 도깨비 시장을 옮겨 적으려다 팔이 부러지는 줄 알았음-_-; 중간쯤 가서 포기했지만 그래도 그 노트는 아직도 소장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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