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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맛 - 시에 담긴 음식, 음식에 담긴 마음
소래섭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백석의 시를 좋아하거나 음식을 좋아하는-혹은 그 둘 모두에 해당하는 저같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먹는 거, 다들 좋아하십니까. 저야 무척 사랑합니다. 눈 나리는 겨울밤 뜨근한 무국, 언제 먹어도 감칠맛 나는 고사리 나물, 짭조름하면서도 달착지큰한 깊은 맛에 자꾸만 손이 가는 간장게장, 야식으로는 더 바랄게 없는 치킨...좋아하는 음식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지경이죠. 하지만 그러면서도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와 개념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저자 소래섭씨는 <백석의 맛>에서 백석 시에 담긴 음식의 풍경 뿐만 아니라, `음식`과 `먹는다`는 것에 대한 동서양의 사유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그리고 근대를 거치며 한국의 식문화가 어떻게 굴절되었는지 참으로 맛깔스럽게 펼쳐보입니다. 덕분에 독서를 일단락한 지금, 저는 이제 음식을 단순히 식욕의 대상이나 건강을 위해 섭취해야 할 것으로 여기기보다는, 그 음식에 담긴 마음에 대해 한번 더 곱씹어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석이 노래했듯 `밝고, 가룩하고, 그윽하고, 깊고, 맑고, 무겁고, 높은` 맛-마음을 느끼려면 더욱 많은 수행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음식을 먹는 행위, 즉`밖`에 있는 음식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나와 세상 사이의 경계를 교란시키며 세상과 맞닿습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음식을 통해 `나`라는 주체를 이루는 모든 것과 외부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이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주체인 `나`는 자신과 세계의 의미를 인식하게 된다.˝
라 적고 있습니다. 백석만큼 이를 이해하는 시인은 드문 것 같습니다. 그는 다르지만 맞닿아 있는 것들의 화합을 노래하거나 (<모닥불>) 시간과 공간, 그리고 민족이라는 경계를 초월한 `마음`에 대해서 노래합니다(<두보나 이백같이>). 저자는 백석의 이러한 넉넉한 사유의 중심에 음식이 놓여있다고 말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자연히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주장입니다.
다만, 7장에서 저자가 음식의 향유가 나타내는 계급의 차를 설명하며 `된장녀`의 예시를 든 것은 상당히 아쉽고 유감스러웠습니다. `된장녀`와 유사하게 여성에게 붙는 `~녀`라는 여러 별칭들을, 저는 1차적으로 남성의 시선으로 여성을 검열하고 꼬리표를 붙이고자 하는 가부장적 기제의 일부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책에서 음식과 관련된 여러 사회적,문화적 맥락을 꼼꼼히 살피고 섬세하게 관찰한 저자이지만 , 젠더에 대한 감수성은 그만 못한 것 같아 못내 아쉽더군요.
어쨌거나 전체적으로 아주 만족할만한 독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