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요술 호리병박의 비밀 ㅣ 작은거인 11
장톈이 지음, 김택규 옮김, 왕지성 그림 / 국민서관 / 2007년 2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로부터 호리병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온 왕바오. 친구와 장기를 두다 심술이 나 혼자 낚시를 간 왕바오에게 물고기 대신 요술 호리병박이 나타난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루어 준다는 호리병박의 말에 주인이 되기로 약속한 왕바오는 그 날 이후 멋진 날들은 보낸다. 하지만 행복한 날들도 잠시, 생각만 하면 이루어지는 소원과 그로 인해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진 왕바오의 마음은 점점 불편해져 가는데...

 내가 원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진다,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나는 비싼 브랜드 옷을 마음대로 가질 수 있다. 나는 한 순간에 부자가 될 만큼 많은 돈을 가질 수 있다. 나는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된다. 나는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 흠, 보기만 해도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다. 대가를 치루지 않아도 된다니. 횡재한 것이 아닐까?

 물론, 처음에 나도 그것은 대단한 기적이며 대단한 대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폐이지가 많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들을 다 알아낸 듯 여유롭게 굴었다. 당연히 그 폐이지의 내용들은 왕바오가 많은 것을 갖게 된 멋진 청년이 되에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자신도 행복하게 산다는 HAPPY ENDING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틀렸다.

 누구든지 아는 상식 명언 하나.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그 누가 이 위대한 명언을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명언이 꼴찌를 1등으로 만들고, 백수를 대기업의 사장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어떻게 보면 쉽지만, 어떻게 보면 어렵다. 그리고 이 책은 이 명언과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쓰여졌다.

 처음에 왕바오는 행복했다.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가질 수 있었으니까. 그가 과연 이 행복을 가질 자격이 있을까, 그가 과연 이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을까. 대답은? 당연히 NO. 행복은 자신의 노력에 달려있다. 하지만 왕바오는 그 행복을 손쉽게 얻기만 했다. 그 행복을 부정하게, 손쉽게 넣는 사람은 언제나 불안할 것이다. 자신의 노력에 대한 대가가 아니었으니까. 떳떳하게 누릴 수 있는 대가가 아니었으니까. 

  이 책을 보고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지난날들의 부족했던 노력을. 그리고 나는 보았다. 지난날들의 대가인 행복을. 그리고 나는 보았다. 미래의 노력과 행복을.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오늘따라 가슴에 찡한 감동을 남기는 이유는 무얼까.

아이가 읽고 또 읽는 책

벌렁코 하영이 ㅣ 사계절 저학년문고 16
조성자 글, 신가영 그림 / 사계절 / 2000년 2월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작은 아이가 열번도 넘게 읽은 책.

  어제도 이 책을 읽더니 이것저것 묻는다.  '뺑소니차' 가 뭐냐고.

 사람을 치고 병원에 실어주지 않고 도망가는 사람이 탄 차라고 설명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이 책의 주인공 하영이의 아빠는 뺑소니차에 치여 병원에서 투병을 하게 된다.

  병원비를 마련하느라 반지하 방으로 이사를 가는 하영이네 집. 그리고 거기서 만나는 이상한 할머니.

  할머니의 아픔을 알게 되는 하영이의 이야기가 오버랩되면서, 흥미롭게 그리고 짠하게 읽히는 책이다.

  슬픈 이야기 구조임에도, 밝고 희망적인 분위기가 참 독특하게 느껴진다.

  아이의 말, "이런 책 또 없어요? 사주세요!"  

  이상하게도 비슷한 분량의 다른 책은 잘 안본다.

  이런 책을 또 찾아야 되는데, 누가 추천 좀 해주면 좋으련만. 

이젠 '달치익쏴아' 먹을거야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 ㅣ 국민서관 그림동화 13
로렌 차일드 글 그림, 조은수 옮김 / 국민서관 / 2001년 10월

  나도 너처럼 당근을 싫어해.

  그런데 이 책을 보니까 내가 싫어하던 것들을 다 좋아하게 되었어.

  나도 오렌지뽕가지뽕을 먹고 싶다.

  그리고 생선 튀김도 먹고 싶어.

  이제는 엄마가 해주는 것은 다 먹어볼거야.

  재미있는 이름 붙여서 먹으면 다 맛있겠지?

 책을 읽고 나서 아이가 쓴 글이다. 이 책은 어른이 보아도 참 재미나고 기발하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들의 편식을 교정해주고 음식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주는 고마운 책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도 이 책을 읽고 나서 먹지 않던 당근을 먹겠다고 하니 실로 놀라운 발전이 아닌가!

 오빠인 찰리가 동생 롤라에게 골고루 음식을 먹이기 위해 기발한 음식 이름들을 고안해내는데, 그 이름들이 너무나도 재미있다. 당근은 목성에서 나는 ‘오렌지뽕가지뽕’, 완두콩은 ‘초록방울’, 으깬 감자는 ‘구름 보푸라기’, 생선 튀김은 ‘바다얌냠이’, 토마토는 ‘달 치익 쏴아’~ 그 기발함에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지 않을 수 없고, 어느새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거기다가, 아이만의 새로운 이름 짓기가 더해지면 그 이상 좋은 창의력 교재가 없을 것이다.

 아이는 이 책을 보고 왜 토마토를 싫어하냐며 의아해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토마토를 롤라가 절대 먹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이상한 모양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에는 차이가 있는 법, 이제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지 않는 친구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거꾸로 친구가 좋아하는 음식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겠지. 친구나 자기 자신에게 한마디 할 수 있기를. ‘초록방울’, 이거 한번 먹어볼만 한데!

이렇게 크는 걸까

고양이 소녀 ㅣ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13
부희령 지음 / 생각과느낌 / 2006년 6월

  주인의 발가락을 게걸스럽게 핥아대는 털북숭이 멍멍이들,

  덥석 손을 내밀어 남의 털을 헝클어 뜨리는 막돼먹은 사람들 사이에

  홀로 고양이 사람이 지나간다!

 

  책을 읽기 전, 책의 띠지에 적혀있는 글이 인상적이었다. 처음 보는 '고양이 사람'이라는 단어에 호기심이 일었다. 제목을 보고 고양이를 좋아하는 소녀의 이야기이거나 고양이와 소녀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이려니 추측했다. 틀린 추측은 아니었지만, 관성을 벗어나는 이야기였다.

 

  책 속 화자인 고양이가 만난 고양이 사람은 민영이. 민영이는 떠돌아다니는 고양이를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 3만원에 팔아 넘기는 아이다. 자기처럼 처량하게 살지 말고 좋은 환경에서 살라고 고양이를 보낸다는 말에 잠시 멋지게 생각하기도 했으나, 사실은 돈이 필요했었다는 아이의 말에 오히려 가식이 없다고 느껴진다.

 

 보통 사람들은 서로 할퀴고 물어뜯으면서도 떨어질 줄 모르지만, 고양이 사람은 고양이처럼 필요한 거리를 지키며 혼자 살아가는 당당함을 즐기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민영이는 과연 고양이 사람인가? 할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항상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는 민영이. 주위 사람들과 거리를 지키면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이 아이야말로 주위 사람들과 할퀴고 물어뜯으며 뒹굴기를 원하는 것은 아닐까?

 

  기억에 남는, 어쩐지 사실 같이 느껴지는 고양이의 말들 몇가지. 도둑고양이라 부르지 마라. 훔치거나 해하는게 아니라 그저 주워먹을 뿐.  고양이는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먹을 뿐. 고양이는 인간의 말을 알아듣는 유일한 동물. 누구나 자기 자리가 있는 법.  

 

  책은 단숨에 읽히고, 여운이 많이 남는다. 소설을 그리 즐겨 읽는 편이 아닌데도 이 책은 느낌이 좋았다. 특히 작가가 밝히고 있는 후기에서, 왜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난 더 이상 아기가 아니야

이불공주 바니 빈
앰버 스튜어트 지음, 레인 말로우 그림 / 예림당 / 2006년 10월

  귀여운 토끼 바니 빈은 더 이상 아기가 아니다. 쉬지도 않고 깡충깡충 뛰어다닐 수 있고, 맛있는 민들레 잎을 직접 고를 수도 있고, 그네를 가장 높이 뛸 수도 있다.
  정말 다 컸구나! 그럼 이제 아기처럼 이불을 들고 다니지 않기만 하면 되는데...      

  이불 없이는 결코 잠들 수 없는 이불공주 바니 빈. 이 책을 보면서 지난 명절에 본 조카의 해맑은 얼굴이 떠올랐다. 두 돌이 지난 조카는 애지중지하는 곰돌이 베개가 없으면 절대 자려고 하지 않는다. 집에서는 물론 할아버지 댁을 가는 날에도 항상 필수품이다. 그걸 깜빡 두고 간 후 수화기 넘어로 들리는 동서의 걱정스러운 목소리란... 누구나 이런 경험과 추억은 있는 법. 초등학생이 된 작은 아이도 이 책을 보더니 자신이 유난히 집착했던 물건들을 하나둘씩 떠올리고 있었다.    

  하늘색 바탕의 표지만 보아도 빙그레 웃음이 번지는 예쁜 그림책이다. 표지를 넘기고 본문이 시작되기 전, 간지를 꽉 채우는 민들레꽃, 방울꽃, 연꽃, 백합, 클로버를 구경하면서도 기분이 한껏 좋아진다. 숲 속에서 벌어지는 이 아기자기한 이야기는 부드럽고 예쁜 그림과 어우러져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거기다 누구나 좋아하는 토끼의 이야기! 토끼띠라는 이유로 유난히 토끼가 나오는 책에 열광하는 우리 아이는 말로는 내용이 유치하다면서도(!) 이 책을 자주 들여다본다. 

  이불에 대한 집착이 어떻게 사라지게 되는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아이들에게는 어렸을 적 누구나 한번쯤 겪었음직한 기억을 되살려보게 하고, 이제 좀더 '어린이' 다운 의젓한 행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림책을 같이 보는 엄마 또한 그 옛날의, 매우 곤란했던 추억이 떠오를 수 있고, 혹시 이런 습관을 가진 아기가 있다면 어떻게 다루는 것이 좋은지 유용한 정보를 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주인공이 꼭 '공주'일 필요는 없기에, 차라리 제목을 [난 더 이상 아기가 아니야] 정도로 지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