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로베르토!

로베르토 ㅣ 풀빛 청소년 문학 5
도나 조 나폴리 지음, 김민석 옮김 / 풀빛 / 2007년 9월

  표지 속 소년의 모습이 주인공 로베르토일 것은 짐작하였지만, 아이와 겹쳐 보이는 철조망이 소년이 만드는데 강제로 동원되었을 것이라는 점은 상상하지 못했다. 이 소설의 배경이  2차 세계대전 당시이며, 놀라운 상황에서 전쟁의 한가운데 놓이게 된 것이라는 점도. 

  이 소설은 어느 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다가 전쟁터에 끌려간 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영화관에서 소년들이 대거 납치되었다는 설정도 놀라웠지만, 독일과 함께 전쟁의 동맹국이던 이탈리아의 소년들을 끌고 갔다는 점도 놀라웠다. 그것도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후방에서의 공사장에 소년들을 노예처럼 부린다. 저항하는 소년이 총살당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목소리를 잃게 되고, 얼어 죽은 동료의 시체에서 옷과 신발을 걷어간다. 살아야 하므로.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 그 속에서도 가장 처절한 상황 속에서 평범한 열세 살 소년은 너무나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된다.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도망치지만, 그 과정 또한 순탄하지만은 않다. 인간성이 말살되는 극심한 상황 속에서, 그러나 소년은 여러 사람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는다. 죽은 후에도 늘 힘이 되어 준 유대인 친구, 말 한마디 통하지 않지만 기지를 발휘하여 소년을 도와준 아이, 파르티잔의 꿈을 보여준 이탈리아 탈영병...    

  게다가 철조망 바깥 폴란드계 유대인 자매와 소년이 쌓은 우정은 감동적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모자라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먹을 것이 턱없이 부족한 소년들이, 먹을 것이 없는 철조망 속 아이들에게 자신이 먹을 것을 내어줄 수 있다니.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살아가는 데 힘이 될 수 있다니. 그리고 소년이 선물로 받게 된 돌멩이 하나. 그것은 이탈리아로 향하는 소년의 험난한 여정을 두렵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수호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잘 몰랐던 상황들을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보았던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작품들은 유대인 또는 피해자의 시각에서 그려진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가해자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전쟁 피해자의 시각이라는 점이 매우 새롭게 다가왔다. 또한 이탈리아 군대는 독일 군대와 똑같은 위상이 아니었으며, 민간인과 싸우지 않는다는 전쟁의 기본 원칙이 실제로는 얼마나 무의미한 것이었는지 보여준다. ‘인간’임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전쟁의 얼굴도 똑똑히 보았다.

  이 책은 소년이 이탈리아로 되돌아가는 것에 드디어 성공하였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소년에게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으로 끝난다. 열세 살 소년 로베르토, 반세기도 더 지났고 비록 가공의 인물이지만 그가 마치 내 앞에 있는 듯하다.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것을 앗아가고 또 가져오기도 했던 전쟁도. 그저 이 말 밖에는, 아, 로베르토!

잃어버린 엄마를 찾는 ‘새로운’ 그림책

엄마를 잃어버린 날 ㅣ 미래그림책 54
다이앤 구드 글 그림, 김은아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5월

  책 제목과 앞표지 그림만 보고도 그림책의 내용을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기차역에서 두 아이가 엄마를 잃어버렸구나! 뒷표지 그림에서는 마침내 엄마를 찾은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도 볼 수 있고. 엄마를 잃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찾게 되는, 어쩌면 아주 뻔한 이야기이겠다 싶은데 책을 읽어보니 뭔가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뭐랄까, 굉장히 새롭고 신선한 느낌!

  먼저 줄거리. 아기를 안은 엄마는 바람에 날아 간 모자를 찾으러 잠시 두 아이 곁을 떠난다. “여기 꼼짝 말고 있어야 해”라는 말을 남기고. 그러나 엄마를 잃은 두 아이들은 경찰 아저씨에게 엄마의 인상착의를 한가지씩 설명하고, 그 특징에 맞는 사람을 찾아 다니게 된다. 그런데 그 특징이 얼마나 ‘엄마’ 답던지! 

  혹시 엄마가 아닐까 지목된 사람들의 면면을 만나보는 것도 재미있고, 다음 장면에서는 또 어떤 곳에서 엄마를 찾게 될지 기대하는 것도 재미있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를 찾게 되는 방법은 아이들이 생각해낸다! 바로 엄마가 처음 했던 말, “여기 꼼짝 말고 있어야 해”를 떠올렸던 것. 이 대목에서는 혼잡한 곳에서 엄마를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지 알려주는 역할까지 한다.   

  이 책은 줄거리와 각 장면의 설정과 전환이 매우 재미있고, 또한 그림도 참 독특하다. 사람들의 특징을 잘 살린 그림은 어쩐지 실제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몽환적인 분위기랄까. 전체적인 느낌은, 아이의 말을 빌리면 ‘특이한’ 그림책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난 아이의 한마디. “아이들을 두고 갈만큼 모자가 그렇게 중요한가?” 그래서 엄마가 잃어버린 모자를 다시 한번 열심히 찾아보았으니, 여러 모로 신선한 느낌을 준 그림책이다.

로마 숫자의 비밀!

로마숫자의 비밀 찾기 - 1에서 2천까지 로마숫자 읽기 ㅣ 미래그림책 56
아서 가이서트 지음.그림, 이선오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7월

  [1에서 2천까지 로마숫자 읽기]라는 부제를 본 순간, 내가 알고 있는 로마 숫자를 떠올려보았다. 1부터 10까지는 정확히 알고, 그 다음의 10자리 정도는 떠오르는데 2천이라고? 거기다 로마 숫자라고는 전혀 모르는 아이에게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아이와 함께 책을 넘겨보았다.

  책을 모두 넘겨본 후 소감은 한마디로 ‘와!’. 어렵기도 하지만 대단하기도 하다. 일단 입이 딱 벌어질 수 밖에 없는 그림책. 정말로 1에서 2천까지 로마 숫자를 읽는 법, 쓰는 법이 나와 있고, 로마 숫자의 유래는 덤으로 익힐 수 있다. 마지막에는 찾기 놀이까지! 숫자에 관심이 많은 아이나 호기심과 도전의식이 높은 아이에게는 딱. 로마 숫자를 설명한 어린이 눈높이의 책을 본 기억이 없기에 매우 독특한 책으로 생각된다.   
 

  무엇보다 숫자를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돼지의 규모에 깜짝 놀랐다. 어디선가 보았던 그림이다 싶었는데, 저자 소개를 보니 [꼬마 돼지의 불끄기 작전]을 그린 작가다. 글자 없는 그림책인 그 책에도 돼지가 중요한 등장‘동물’이었는데 이 작가는 돼지에 일가견이 있는 모양이다. 지금은 글의 챕터 표시 정도에만 로마 숫자를 쓰고 있는데, 이 책을 통해 복잡한 로마 숫자 체계를 알게 된 것은 엄마로서는 엄청나게 놀랍고 새로운 지식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새롭게 알게 된 로마 숫자 강의. 로마 숫자는 모두 일곱 개의 문자로 만들어지는데, 순서대로 쓰면 I, V, X, L, C, D, M 이다. 덧셈과 뺄셈을 이용하면 어떤 수든 만들 수 있는데, 가장 큰 숫자를 앞에 놓고 이어서 같은 숫자나 작은 숫자를 쓴다. 그런 다음 이 숫자들을 모두 더해 주면 된다. 그러나 4와 9처럼 작은 숫자가 큰 숫자 앞에 놓이면 큰 수에서 작은 숫자를 빼 주어야 한다고. 어려운 문제 한번 내볼까? 네 자리 수 MCMXC를 맞춰보시라!

도깨비기와가 들려주는 기와장이 이야기

동에 번쩍 - 기와장이 ㅣ 삶을 가꾸는 사람들 꾼.장이 3
유다정 지음, 권문희 그림 / 사파리 / 2007년 9월

  참으로 마음에 드는 책! 기와를 만드는 장인인 기와장이를 소개하기 위하여 용마루 끝에 있는 도깨비기와(망와)를 등장시키다니, 참 좋은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병든 기와장이를 보게 된 도깨비기와 ‘동에번쩍’은 그 옛날 열성을 다해 자신을 만들어주었던 은혜를 갚기 위해 나서게 되고, 그 값을 계산하면서 은근슬쩍 기와 만드는 과정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전통문화를 소개하는 그림책으로는 탁월한 방법이 아닐까?

  흔히 전통문화를 소재로 하는 그림책이라고 하면서, 그야말로 단순히 ‘소개’에 그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설명 위주의 글과 그에 맞는 그림을 함께 보여주면서,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조금 쉽게 풀어쓴 정도. 만약 이 책에서 기와장이가 기와를 만드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면 얼마나 단조롭고 재미없는 책이 되었겠는가. 이 책은 마치 옛날 이야기 한자락 듣듯 재미있으면서도 적절히 정보를 소개하고 깊은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하였다.

  그러고 보니 이 시리즈가 대부분 이런 방식이었던 것 같다. [삶을 가꾸는 사람들 꾼장이 시리즈]의 한 권으로 심마니와 놀이꾼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나게 된 인물이 기와장이다. 앞의 두 책도 인상적이었지만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옛 기와집을 아이와 함께 보게 되면 꼭 확인해보게 되겠지? 용마루와 그 끝에 달려있는 도깨비기와 말이다. 기와에 혼신을 불어넣는 옛 장인들의 노력 또한 함께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의 비밀이 담긴 찬장

비밀이 담긴 찬장 ㅣ 좋은책어린이문고 7
캐시 케이서 지음, 김난령 옮김, 원유미 그림 / 좋은책어린이 / 2007년 8월

  할머니의 찬장에 숨겨진 슬픈 비밀을 숨죽여 들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음의 공포에 떨었던 어린 시절의 불행한 기억. 그것도 나치가 지배한 독일이 아니라 독일의 영향권 속에 들어가게 된 체코슬로바키아의 어느 한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책은 전쟁이 한 가족에게 몰고 온 비극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이 박해를 받았던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정도일 줄이야. 유대인 수용소에 끌려가 불행한 죽음을 맞게 된 것은 그 비극의 끝이었고, 그 전까지 유대인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수많은 일들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잘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유대인만 모여있는 학교에 다녀야 하고, 그나마 그 학교도 어느 날 갑자기 폐쇄된다. 유대인이라는 표식으로 노란별을 달고 외출해야 하고, 그나마 밤에는 외출하지 못하는 상황. 이렇게 이성적이지 못한 상황을 만든 것은 대체 누구였을까?    

  그러나 오랜 친구를 잃는 것만큼 어린 아이에게 불행한 일이 또 있을까. 유대인과 사귀면 안 된다는 이유로 하루 아침에 베스트 프렌드와 관계를 끊어야 하다니. 그러나 위기가 닥쳐왔을 때 그 친구가 도와주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 어른들이 잘못한 일에 아이들이 상처를 받아야 한다는 것, 그러한 역사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슬픈 찬장의 비밀을 갖게 하는 일 또한 해서는 안될 것이다. 주인공에게 힘이 되어 준 아빠의 자장가도 인상적이었다. 단, 직접적인 설명이 많고 분량이 다소 길게 느껴지는 것은 약간 아쉬운 대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