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는 동이족(우리나라) 문자다?


오래 전 중국 역사에 흠뻑 빠져 있었다. 중국의 역사는 한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한자는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면서 도량형과 문자를 통일함으로 만들어진 개량된 한자다. 서예를 배우는 분들은 금문이나 갑골문을 배운다. 이 글자들은 현재의 한자와 상당히 다르다. 진시황은 이러한 난해한 문자들을 통폐합 시킴으로 모든 중국이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로 했다. 마치 우리나라가 치를 센티미터로 개량한 것과 같다. 요즘은 평수까지 쓰지 못하게 하지 않는가. 하여튼 그런 역사가 있다. 그런데 이번에 출간된 김진명의 <글자전쟁>은 한자가 중국이 아닌 동이족, 즉 우리조상들이 만들었다고 말한다. 과연 그것이 옳은지 모르겠지만 일리는 있어 보인다.
















한자 문화권은 중국을 비롯해, 한국, 일본, 몽골이 있다. 남쪽으로는 베트남이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베트남을 벗어나면 태국 등에서는 한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이것또한 묘한 일이다.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한자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지만,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배워야할 문자다. 


갑골문자는 보면 지금의 한자와 완전히 다르다. 적지 않은 학자들이 갑골문자에서 한자가 생긴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도 일리가 있는 것이다. 한자는 글 하나에 뜻이 있기에 셀수 없이 많다. 바로 이런 점에서 한자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김진명의 소설을 소설로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갑골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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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1 0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랫만에 다락방님의 서재를 들렀다. 프로필 사진이 바뀌어 있다. 가을이라 새단장한 걸까? 알라디너들의 글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와 다른 삶의 범위와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는 색다른 삶의 풍경을 보여준다. 


그런데... 프로필 사진 바로 아래 친구신청과 친구최소가 있다. 실수로 이것을 누르면 어떻게 하나 싶은 조바심이 늘 든다. 나만의 걱정인지 모르지만 하여튼 다른 곳으로 옮겨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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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09-15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북플 시작하고 여기저기 막 눌러보다 실수로 정말 친구취소를 몇 분 눌렀었어요ㅜ

낭만인생 2015-09-15 20:39   좋아요 1 | URL
정말 그런 분이 있군요. 저도 그럴뻔한 적이 여러번 있어서 조심하고 있습니다.

다락방 2015-09-15 1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뭔가 친구취소하라고 유도하는 것 같죠? ㅎㅎ

낭만인생 2015-09-15 20:39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너무 쉽게 최소되면 안돼죠...

순오기 2015-09-15 2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친구취소 누른 적 있어요~ㅠ

낭만인생 2015-09-18 11:49   좋아요 0 | URL
아하... 정말 그런 분이 있군요...

[그장소] 2015-09-16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것이 취소가 된건지 친구가 아닌건지 늘 햇갈려요..그래서 볼때마다 덜컥해요..ㅠㅠ;;

낭만인생 2015-09-18 11:49   좋아요 1 | URL
그쵸.. 저도 늘 걱정입니다.

yamoo 2015-09-16 1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 그런 우려를 해 본 적이 있습니다..ㅎㅎ

낭만인생 2015-09-18 11:50   좋아요 1 | URL
ㅋㅋ.. 다들 고민이군요.
 
폰투스의 에바그리오스 실천학 그리스도교문헌총서 3
폰투스의 에바그리오스 지음, 남성현 옮김, 가브리엘 붕게 / 새물결플러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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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투스의 에바그리오스 실천학

 

저자인 '에바그리오스'는 금시초문이다.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정체불명의 저자가 운구일까였다.  저자를 알기 위해 책을 조밀하게 읽어 나갔다. 역자인 남성현의 역자서문을 통해 에바그리오스가 누구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는 사막의 성자로 알려진 안토니오스의 사막 영성과 바실리오스의 수도원 영성을 조화시키고 집대성한 인물이다. 그는 삼위일체 교리를 체계화 시킨 갑바도기아 교부들의 제자이자 이집트 사막으로 들어가 안토니오스적 영성을 체험한 사막의 교부이다.(10) 역자의 주장의 의한다면 에바그리오스는 영성신학을 집대성한 인물이 분명하다.

 

요컨대 카파도키아 교부들의 삼위일체 부정신학이 뿌리라면, 안토니오스적인 마귀와의 투쟁과 신플라톤주의적이며 스토아적인 체계는 줄기에 해당되며, 에바그리오스의 영성신학은 열매라고 할 수 있다.”(11)

 

에바그리오스의 행보를 보면 극단에서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던 초대교회 말기의 신학을 집대성한 어거스틴을 닮아 있다. 에바그리오스의 헬라어 원문을 싣고, ‘스위스에서 30여년 이상을 은거한 수도자이자 에바그리오스와 사막영성 연구에 일평생은 헌신한가브리엘 붕게가 주해를 달았다. 부제를 영적인 삶에 대한 백계(白誡)’로 정한 것은 아마도 일백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나톨리오스에게 헌정된 이 책은 수도사들, 그중에서도 특히 사막에 홀로 사는 수덕가들인 은수자들을 위한 책’(32)이다. 중세에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 받아>가 있다면 초대교회에는 에바그리오수의 <실천학>이 있다. 두 책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을까?

 

에바그리오스는 인간의 심연(深淵)에 숨겨진 타락의 근원을 찾아 나선다. 그는 인간의 심연에 에크하르트가 영혼의 불꽃이라고 불렀던 초인격적인 부분을 에바그리오스는 지성’(nous)이라고 지칭하며, 지성을 통해 영혼이 움직인다. 에바그리오스가 난해한 것인지 해제가 난해한 것인지 알 길은 없지만, 영혼에 대한 이해는 꼭 필요한 것 같다. 해제에 의하면 에바그리오스는 이성적 영혼을 삼분(三分)하여 이해력’ ‘화처’ ‘욕처로 구분한다. 이해력은 이성적인 부분에 속하고 비이성적인 부분은 다시 화처욕처로 세분화 시킨다. 화처(火處)와 욕처(欲處)로 구분한다. ‘화처는 육체적인 본성에 속하며 욕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이다.’(36)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갈망 또는 욕망에 해당하는 단어일 것이다.

 

화처의 본래적인 기능은 마귀들과 싸우고 영적 기쁨을 얻도록 애쓰는 것이다. 천사들은 우리에게 영적 기쁨과 뒤따르는 지복을 보여주면서 우리로 하여금 화처의 방향을 돌려 마귀들을 이끌어 겨냥하도록 이끈다.”(24143)

 

필자가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니라면 화처는 중립적이며 인간의 본성에 속한 것이다. 붕게는 이 부분을 이렇게 주해한다.

 

화처의 고유한 기능은 덕을 위해 싸우는 것이며, 에바그리오스가 말하듯이 영적인 기쁨과 뒤따르는 지복을위해 싸우는 것이다.”(144)

 

()냄이 모두 나쁜 것이 아니다. 바른 화를 낼 필요가 있다. 예수도 화를 냈다. 그러나 화는 본질적으로 파괴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바른 화냄은 악을 향해야 한다. 에바그리오스는 시험을 받을 때에, 그대를 조여 오는 자에게 화를 내’(42, 193)라고 조언한다. 마귀에게 화를 냄으로 적(마귀)심으려고 하는 심상을 교란 시’(193)킬 수 있다. 불은 태우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이롭게 될 수도 있고 해롭게 되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것은 옳은 일일까? 예수는 자신의 길을 막는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아 물러가라고 화를 내셨다. 죄는 미워하고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에바그리오스는 인간의 내면에 일어나는 미세한 파동들을 감지하며 관찰한다. 10장에서 슬픔이 욕망이 좌절 된 후 찾아온다고 말하며 앞선 생각을 뒤따라 어떤 생각이 일어나고 ... 영혼이 이런 기억을 물리치지 않고 오히려 따르기 시작하여 내적으로 그것을 기뻐하면, 생각은 영혼을 사로잡아 슬픔 속에 빠뜨린다.’(94)고 알려준다. 마음이 행동을 지배한다. 잠언 기자도 마음을 다스리는 자가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하지 않았던가.(16:32) 성도가 마음의 미세한 움직임을 잘 감지하고 파악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마음이 언어가 되고, 언어가 곧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을 지키는 것은 시작이다.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실천의 끝은 사랑이다. 앎의 끝은 신학이다. 실천의 시작은 신앙이요 앎의 시작은 본성적인 관상이다.”(84, 307)

 

 

그렇다. 마지막은 사랑이다. 사랑은 시작이고 이유이고 과정이고 결론이다. 이 책은 한 편의 추리소설이다. 에바그리오스라는 낯선 인물을 대면하여 찾아 나가는 여정이 결코 녹록치 않았지만 그를 통해 새로운 영성의 세계를 접할 수 있는 축복을 얻었다. 아쉬운 점은 낯선 단어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부족했고, 문장이 직역을 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길고 난해하다. 이 부분만 해결이 된다면 깊은 영성신학으로 이끄는 수단이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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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자 그들이 궁금해!


주식에 빠지면 주식 소식을 알아내느라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예전에는 증권회사에 출근해 새로운 소식이 없는가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있었다고 한다. 직원들이 커피도 주고 점심이 되면 몇이 모여 증권회사 인근 식당으로 회식도 한다. 벌써 오래전 일이다. 주식에 빠져 살던 어떤 지인의 이야기다. 주식에 빠지고 나니 직장도 포기하고, 가정도 황폐해져 가는 것을 느끼고 나서는 '이래서 안 되겠다' 싶어 주식을 몽땅 팔아 버리고 일반 직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주식도 핸드폰이나 인터넷 중독과 많이 닮아 있다. 그곳에 온통 정신을 놓고 만다. 어디 주식과 핸드폰 뿐이겠는가 모든 중독이 다 그런 것이다.


최근에 들어와 바쁜 일과에 매여 알라딘에 글을 잘 올리지 않고 있다. 시간의 여유가 없어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읽어내는 책도 많지만 서평까지 이어지는 것은 드물다. 적당한 수준에서 서평을 하려고 하지만 제대로 쓰지 않으면 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완벽성을 추구하다보니 피일차일 미루다 안 쓰고 마는 책이 한 둘이 아니다. 이번 달만 거의 20권을 읽었다. 하루에 한 권을 읽은 셈인데도 서평은 서너 권 뿐이다. 


어제 갑자기 방문자가 급증했다. 오늘 방문자 통계를 여러보니 무려 2060명이다. 지난 주는 대체로 하루에 1000명을 수월하게 넘어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갑자기 방문자가 늘어 당황했다. 알라딘은 방문자 집계만 있을 뿐이지 유입경로를 알려주지 않아 어디서 들어오는지 통 알 수 없다. 오늘도 벌써 400명을 넘었다. 이른 새벽인데 말이다. 새벽부터 서재에 들러와 글을 올리는 나도 한심하지만, 이렇게 일찍 나의 서재를 방문하는 이들은 도대체 누굴까?


이런 집착도 분명 '중독'이 분명하다. 누군가가 나의 글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 분명하다. 정직한 마음을 보여주고 싶고, 개성이 충분히 드러난 글도 올리고 싶다. 읽을 거리, 흥미가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나의 글은 대체로 재미없고 지식 나열식이고 긴장감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찾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궁금한 것이다. 



<시골집 고쳐살기>의 저자 전희식님과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다. 이틀 전에 신청했는데 어제 저녁에 친구로 받아 주었다. 나도 그렇지만 친구를 삼는데 조건이 까다로운 분들이다. 아무에게나 자신을 열어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고, 아무나 친구로 삼고 싶지 않은 분들이 대체로 그렇다. 아니면 5000명이 꽉 차서 누군가를 절친하고 나를 대신 받아 주었는지 모른다. 이래저래 저자들과 연결이 된다. 


전희식님과 돌아가신 그의 어머님. 그의 귀향은 어머님을 모시려는 효심이다. 페이스북에서 사진을 가져옴. 전희식님의 페이스북



얼마 전, 어떤 저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컴퓨터를 켜면 자신의 이름이나 자신이 쓴 책을 검색한다고 한다. 누가 어떤 반응을 했는지, 어떤 평을 했는지, 얼마나 관심을 갖는지, 얼마나 팔렸는지 등등 여러 이유를 가지고 검색하고 또 검색한다. 그러다 안 좋은 평이 있으면 기분이 나쁘고, 좋은 평을 발견하면 하루종일 기분이 좋다고 한다. 이것 또한 중독이 아닌가. 자신에게 누군가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저자들은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싶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으면 대부분 서평을 하는 편이고, 가능한 좋은 평을 하려고 한다. 물론 가~끔은 악평을 하기도 하지만. 나 또한 저자가 될 것이고 근거없는 악평을 해대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 때 상처 받지 않기를...


중독은 결국 자신에 중독된 것이다. 나를 벗으면 중독도 해결 될 것이다. 그러나 중독이 나쁜 것일까? 그것은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는 본성은 아닐까? 



읽은 책, 읽을 책, 관심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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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5-08-23 15: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전문가한테서 얼핏 들었는데요. 인터넷 블로그/홈피 등의 방문자 수는 설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수가 실제 유효 방문자 수보다 3배 이상 혹은 그보다 더 높게 부풀려질 수 있다고 합니다. 즉 실제로 어느 블로그/홈피에 방문해 그곳에 있는 정보를 탐색하고 글을 읽는 유효 방문자 수는 통계에 나온 수보다 훨씬 작다는 것입니다. 상당수가 허수라는 것이죠. 어떤 때는 이 허수가 유효수보다 더 클 수도 있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제가 추정하건대, 알라딘은 설정을 방문자 수를 크게 부풀리는 쪽으로 설정해놓은 것 같습니다. 알라딘뿐만 아니라 예스24, 다음카카오, 네이버, 등등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일종의 뻥튀기 마케팅 수법이라고 봅니다.

해서 방문자 수에 크게 의미를 두다간 나중에 실상을 알고 허탈해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가끔 알라딘 동네에 방문자 수가 대폭 급증하거나 급락(?)했다는 글이 ‘화제의 서재글’ 꼭지에 뜨곤 하는데요. 그건 통계 오류 혹은 통계 조작 따위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 그런 글들은 허수나 부풀린 뻥튀기 수일 것이라고 의심하기보다는 방문자 수의 놀라운 증가를 곧이곧대로 믿고 기뻐하는 측면이 더 많더군요. 그러나 인터넷 통계라는 것은 신뢰도가 그다지 높지 않다고 봅니다. 각종 악성 바이러스와 악성 코드가 득시글거리고 악의적 해킹 공격이 난무하고 조작/왜곡/조종/통제가 들끓는 데가 바로 인터넷 바다이기 때문입니다. 해서 인터넷 통계를 맹신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쓰다 보니까 제가 너무 부정적인 쪽으로 부풀려서 쓴 느낌도 있네요. 하지만 방문자 수 부풀리기 설정 부분에 관한 얘기는 어느 정도 제 말이 맞으리라 봅니다. 낭만인생 님의 윗글을 읽고 이런 부분에 대해선 이런 얘기도 있더라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도 실상을 더 자세하게 알고 싶고요.

(작성 : 2015-08-23 13:15 / 수정 : 2015-08-23 15:34)

낭만인생 2015-08-23 13:23   좋아요 0 | URL
저도 혹시나 그러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통 알 수가 없어서. 좋은 정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yamoo 2015-08-23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퀄리아님께서 좋은 정보를 주셨네요! 간혹 저도 방문자 폭주 때가 간간히 보여서 의구심을 갖곤 합니다..ㅎㅎ

해피북 2015-08-24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인가 페이스북에서 낭만인생님의 글을 출판사에서 좋은 글이라면서 올려져 있는걸 본적이 있어요 ㅎㅎ 아마도 깊이 있는 글을 쓰시는 낭만인생님이시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알아보고 좋은 글을 올려주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1. 축구공으로 불을 밝혀라

에너지가 시작되는 곳. 태양.

지구의 에너지는 태양에서 온다. 만약 태양이 한 시간이라도 비추지 않는다면 지구는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고보면 태양이 얼마나 귀중하고 절대적인 존재인지 모른다. 우리가 종종 잊고 사는 공기도 그렇고, 태양도 그렇다. 

아이들을 위한 책이기는 하지만 자연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도전에 이 책에 눈길이 간다. 







2. 한글 6천년

세종대왕이 집현전 또는 혼자서 한글을 창제 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설이다. 그러나 이 책은 아니라고 말한다. 부정이 아닌 보완이다. 즉 세종대왕은 모든 것을 혼자 창제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나라 역사에 새겨진 한글을 정리하고 체계화 시켜 정식적인 글로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한글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말이다. 참으로 기이한 주장이지만 그 주장이 틀리지 않는다고 믿는다. 도대체 어떤 근거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 사뭇 궁금해지는 책이다. 








3. 분단시대의 통일교육

근래에 들어와 유난히 보수적이 된 한국 정치에 신물이 날 지경이다. 다행히 이승만에 대한 다큐 동영상이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만들어져 그나마 해소가 되었다. 작년, 재작년 나는 미친듯이 한국 근대사를 파고 들었다. 불혹을 한참 넘긴 나이에 처음으로 들여다보는 한국사였다. '레드 컴플렉스'라는 단어도 읽었고, 빨갱이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도 알게 되었고, 이승만이 왜 건국의 아버지로 불려지게 되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김구 선생이 왜 죽어야 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참으로 불행한 대한민국이다. 작년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왜곡된 한국근대사를 촘촘히 들여다보면서 울고 싶었다. 보수가 말하는 통일론은 이승만의 통일론을 그대로 닮아있고, 국민학교 시절 학교에서 배웠던 통일론도 역시 이승만이 만들어 놓은 통일론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치를 떨었다. 어쨋든 통일은 반드시 이룩해야 한다. 지금의 북하도 문제고 남한도 문제다. 과연이 통일 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성래운의 책을 추천한다.






4. 불량 크리스천

한국교회가 위기다. 아니다.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통증은 몸이 이상하다는 증거가 아니다. 정상이라는 증거다. 몸이 좋지 않으니 조심해서 다루어 달라는 육체의 신호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인들이 교회를 빠져나가는 것은 위기가 아니다. 건강하다는 증거다. 


불량 크리스천이 늘고 있다. 다른말로 종교는 있으나 교회는 나가지 않는 그리스찬을 가나안 성도, 또는 불량 크리스천이라 부른다. 이책은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현상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정신 차리고 읽을 책이다.







5. 꽃보다 아름다운 당신을 봅니다.

고정욱 선생님의 책이다. 말이 필요 없다. 여름숲에서 출간했다. 빗스한 이름이 여럿이다. 요즘은 '꽃보다 아름다운'이란 수식어가 유행인 것 같다. 















6. 식물 이야기 사전

식물에 얽힌 이야기다. 신화까지 찾아가며 식물에 관한 이야기를 모았다고 한다. 대단한 작가이다. 나에게 그런 열정이 있다면 좋겠다. 민들레도 함께 담았다. 시골로 갈 시간이 가까워서 그런지 식물들이 눈에 자주 들어온다.







7. 작은 책장, 우리 책 쫌 팝니다.


숲속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저자는 위기의 오프라인 서점을 찾아 여행하며 담은 이야기를 담았다. 거리를 가다보면 서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해가 다르게 서점이 줄어가고 있다. 그런데 정말 서점이 어려운 것일까? 그들의 폐점은 온라인 서점 때문일까? 물론 그 영향은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동네 서점을 찾는다. 그들에게는 온라인 서점이 주지 못하는 공동체십과 이웃이라는 강력한 끈이 있다. 그런데도 그들이 망하는 이유는 단지 책만 파는, 이기적인 업주처럼 보여서 그런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직도 건재한, 책 쫌!!! 파는 서점 이야기를 추천한다.



함께 읽으면 좋을 서점과 책 읽기에 관한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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