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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럴서가 > 칠조어론, 니미...


소문이 전설을 만들고, 그 전설은 사실을 압도한다. 예를 들어, <프린키피아 마테카티카>의 경우, 그 책을 다 읽은 건 세 명뿐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저자인 러셀과 화이트헤드, 그리고 괴델. 마찬가지로, 출판계에서 <칠조어론>을 다 읽은 건 둘 뿐이다, 라는 말이 있었다. 박상륭 본인과, 교정 본 문지사 직원 아가씨. 물론 농이지만, 고개 주억이게 만들 법한 농이다.

나는 네 권의 <칠조어론>을, 말그대로 '읽어내는 데' 6개월을 들였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른다. 그래도 읽는다. 또 읽는다. 한 10년 이렇게 계속 읽다가, 그때도 지금과 같다면, 그냥 불태워버릴 작정이다.

 <칠조어론>을 읽는 나는, 사이더스 건물 앞에서 막연하게 지오디를 기다리는 여중생의 심정과 다를 바 없다. 멍청한 내 대뇌 피질을 스치는 모종의 무언가가,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다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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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wnidefix 2005-04-03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더스 건물 앞에서 막연하게 지오디를 기다리는 여중생의 심정.
아냐구..이거 죽이는 거라구..이게 인생이라구 ..내 말은 그 말이거덩..
 

내가 다닌 중학교는 남녀공학으로
2학년까지는 남녀 합반, 3학년은 입시를 이유로 분반했다.

난생 처음 여자끼리 모여서 정말 신나게 놀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쉬는 시간에 모여 앉아
선각자들의 걸쭉한 입담에 홀려 성교육을 받았던 일이다.
대개 야한 농담이었던 성교육 말미에 책상 밑으로 쓰러져서 웃다가 끝났는데,

어느 날 남녀가 어떻게 해서 아이를 낳게 되는 지 '깨닫고' 난 후
(이런 걸  바보 도 텄다고 하지 아마..)
충격에 휩싸여,
수업시작종이 울릴 때 선각자에게 험악하게 선언했다.

' 너 거짓말이면 이따가 죽을 줄 알어 '



 그 선각자가 지금은 애가 둘이다.
 결혼도 대학 다닐 때 해서 현재 학부형의 반열에 올라 이제 갓 젖먹이나 옹알이를 키우는 나 같은 후학들을,육아에서부터 시댁과의 트러블 조율까지 광범위하게 지도편달하고 있다. 동창 모임에서 그 친구가 심드렁하게  '난 이제 38살 이하랑은 말이 안 통해' 라고 하며 강의를 시작하면 우리 후학들은 그저 기 죽어 경청하는 수 밖에.

실은 오늘이 반년마다 이 친구들과 만나는 날인데 사정이 있어 나만 참석하지 못했다.
비비 꼬이는 심사로 이런 저런 부질없는 공상이나 하고 있으려니
문득 떠오르는 얼굴 하나.



 중 3,즐거운 1학기가 끝나고 2학기 개학을 했는데 가보니 전학생이 있었다.
당시로는 파격적인 핀컬 파마에 내노라 하는 날라리들도 하기 힘든
염색까지 한 제대로 된 날라리였다. 이전 학교에서 방출되는 바람에 우리 학교로 전학 왔다는 소식이 이미 전교에 퍼져 있었다.

  그 날 담임 선생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2학기 내내 그 애와 짝을 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짝을 하며 이야기도 많이 하고 친하게 지내서  '교화'하라는 당부 말씀과 함께 --- 교도관으로 임명된 것.

 하여간 그 때부터 나는 선각자의 성교육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폭풍의 언덕에 서서, 진정한 날라리의 세계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한 학기를 보냈다. 언더그라운드 세계의 비의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나 할까.


 '품행제로'풍의 나이트퀸이었던 그녀는 나이가 나보다 (알려진 바로는) 2살이 많았고, 이전 학교에서 방출된 이유는 몇 달에 걸친 몇 번의 가출 때문이었다.그녀는 가출 이후 있었던 일들을  수업시간엔 연습장에 써서, 쉬는 시간엔 껌을 질겅거리거나 담배 냄새 푹푹 나는 침을 튀겨가며 얘기해줬다.( 그 때 처음으로 화장품 냄새와 담배냄새가 섞일 때 나는 그 요상한 냄새를  알게 되었는데 이제껏 그 냄새를 절대 좋아할 수가 없다.) 이따금 껌 종이를 펴서 쓴 편지를 줬는데 읽어 보면 대개 부모님이나 선생님 험담 또는 속담이나 격언이 깨알같이 쓰여 있었다.

 우리는 비교적 잘 지냈다. 둘 사이에 이견이 있었던 문제는 단 하나, 여학생반보다 한 층 위에 있었던 남학생 층으로 통하는 계단 아래서--난간에 붙어 서서 밑을 바라보고 있는 까까머리들을 향해 셀프-아이스께끼를 하는 것 뿐이었으니까.


 한편, 나는 한 학기 내내 엄청난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녀는 그야말로   경험주의적 우월감으로 가득 차 있는, 살아있는 신화적 존재였다. 게다가 못하는 것이 없었다. 기실, 내가 못하는 것은 다 잘했다. 체육시간엔 뜀틀을 잘 해서 늘 시범을 보였고 남자애들과 어울려 농구를 해도 뒤지지 않는 엄청난 체력을 자랑했다. 껌을 한번 씹기 시작하면 볼륨 조절을 자유자재로 하면서 기차소리에 노래 장단까지 신기에 가까운 솜씨를 발휘했다.

 뿐만 아니라 하이틴 로맨스를 우리 반에서 그녀만큼 두루 섭렵한 이도 없었으며--선생님의 사주를 받아 내가 제공한 소위 '명작 도서'들도  열렬히 탐독했다.
 (그녀는 '적과 흑'의 줄리앙 소렐을 남몰래 사모하고 있는 내게 '소렐은 내꺼'라고 선언함으로써 나를 한숨 짓게 했다.실제로 소렐이  우리 앞에 나타나면 나 같은 애는 그녀와 '쨉도 안된다')


 그녀에게 내가 느낀 열등감 중에서  컴플렉스로 강화되어 내게 남아 있는 것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손뜨개질'이다. 나는 워낙 손재주가 없는 편이라 중1 때 담임선생님이 내 바느질 과제를 대신 해주셨을 정도. 그런데 어김없이 중3 때도 손뜨개 실습이 돌아왔다.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일 간단한 일자로 쭉 뜨는 목도리도 코마다 크기가 들쭉날쭉 달라 헤매고 있는 내 옆자리에서 그녀는 목도리,장갑,심지어 남자친구에게 줄 스웨터에 가디건까지 척척 떠내는 것이었다.

 오늘날까지 내가 손으로 짠 스웨터든 기계로 짠 스웨터이든 스웨터만 눈에 보이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우디 앨런의 영화 '당신이 섹스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든 것'에서 양과 사랑에 빠진 의사가 순모 스웨터를 부여잡고 흐느끼는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신같은 손놀림으로 스웨터를 뜨던 그녀이다.

 그리고 누가 컴플렉스에 대해 말하면  자동으로 그녀가 떠오른다. 비록 내가 추구하는 날라리의 이상은 그녀와 다를지언정 --그 때나 지금이나 날라리가 되고 싶어 미치겠으나,, 마음만 굴뚝인 나는 내가 겪은 최초의 날라리인 그녀의 아우라를 잊지 못한다.  언젠가 남편에게 그녀 얘기를 털어 놓았더니 ,늘 내 급소를 얄밉게 꼬집듯이 집어내는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그 선생님이 **씨(나)를 잘 알아봐서 교화담당을 시켰구만--날라리 물이 들어 봤자,튀어 봤자 벼룩이라는 걸.
내가 오갈데 없는 샌님이라는 걸 알아보셨다는 뜻. 나는 정통으로 급소를 맞았던 것이다.


 
 어느 사회-시대-세대-계층-연령층에든 날라리들은 늘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늘 그들에게 심한 열등감을 느꼈다. 나는 지금도 자문한다.
허클베리 핀--진정한 날라리계의 지존이 어느 날 내게로 와서

 ' 야,갑갑한데 사고 함 칠까 ? 도~ 망 가 자 ! '

하면 과연 따라나설 수 있을 것인가.


 만일 환생하면 나는 이 지겨운 샌님 인생은 깨끗이 잊고
날라리로서 기질과 능력이 충만한 자로 거듭 나 풍요롭고 화려한 나이트라이프로 투신하리라.

온 세상의 댄디여 나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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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la 2004-03-03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 중3까지 음양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셨단 말입니까?^^

저야말로 세상 태어나 지금까지 가장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 대상들이 바로 날라리들입니다^^

hanicare 2005-03-14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쿡쿡 웃으며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제 방에 모시고 갑니다.

ownidefix 2005-04-03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도망가고 싶은 요즘 이 글을 다시 보니..진짜..음....
한 다리는 딸래미가, 한 다리는 남편이 붙들고 놔주질 않으니..음..
남편은 후루룩 떨군다고 해도..에궁..저 땡글땡글이는 우짜노..
 

간만에 한잔 했다.

원래 술이 받지 않는 체질인데다가(하긴 뭐는 받겠어..ㅋ) 술이라고는 입에도 대지 않는 신랑과 연애하고(술 좋아하는 친구들은 남편이 운전하고 너는 취할 수 있으니 부럽다고들 하지만)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이다 보니 자연히 알콜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 밖에. 게다가 커피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할 만큼 커피를 좋아하니 알콜에 쓸 돈이 있으면 커피를 마시고 만다.

그래도 술 생각이 날 때가 있다.주로 옛 친구들이 그리워질 때인데 아무래도 만나서 술을 마시던 친구들 생각을 하면 자연스레 술도 그리워진다. 술을 마시면, 몇 잔 들어가면, 같이 술 마시는 사람이 견딜 수 없이 좋아진다.내 술버릇은 술 마시면 그 자리를 도무지 파하고 싶지 않아서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떻게든 밤새 술을 마시고 싶어하는 것. 성공율이 그다지 높진 않았지만 어쨌든 술 마시다 우르르 몰려 밤새는 일은 너무나 행복하다.그런 안도감을 뭐라 말해야 할까.새벽쯤 되면 머리 속이 자욱해지면서 느껴지는 그 안도감. 술 마시고 헤롱거리며 아주 외설스럽게 속을 까뒤집어 보이겠다는 듯 (김현 식으로 말하자면,아쒸,내 간까지 꺼내가!) 정이 헤픈 수다를 떨면서 와락 사람이 좋아서 미치겠는 그 심정.

다시 느껴 볼 수나 있을 것인가.과연!과연!   

아...두꺼운 유리 속으로 밀려들어가는 듯한 이 버거움.                                          돌아보지 말지어다..다신 오지 않으리니..

이렇게 혼자 앉아, 간만에 한번 '끅!'한다.                                                                아..더러워..사람은 왜 늙는거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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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wnidefix 2003-12-10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저히 수정이 되지 않는 이유가 대체 뭘까요~~
알라딘 페이퍼 담당자님 대답 좀 해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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