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야..
무릇 '투덜이'라는 애칭으로 널리 회자되던 원조 투덜이를 따라가지는 못할 망정 투덜거리기에는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 나는 오늘도 친구들과 만든 친목까페에 들어가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비가 온다는 것, 늘 정확한 일기예보를 하는 터에 기상청보다 낫다는 칭송을 듣는 나의 수술자국이 심히 가렵더라는 것,이러다가는 기상청에서 나를 납치해다가 일기예보를 하게 하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찍게 될지 모르니 조심해야겠다는 것, 도청이 판치는 험한 세상에서 나의 초능력을 외부에 발설치 말라는 것, 며칠 전 읽기를 마친 10권짜리 고우영의 삼국지 독후감 등.
어릴 때 읽었던 고우영 삼국지에서 생각나는 장면이라고는 하후돈이 자기 눈알 먹어치우는 장면 뿐이었는데 다시 보니 그리 끔찍한 장면도 아니었건만 그 때는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진저리를 쳤다.
무삭제 완전판이라는 고우영 삼국지를 다 읽고 난 나의 소감은, 역시 나라는 캐릭터는 '자기가 조조인 줄 아는 장비'라는 것.여기까지 일단 투덜거렸는데, 투덜거리고나서 보니 뒤틀림이 절묘했다.이게 바로 나다. 자기가 조조인 줄 아는 장비.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어지간히 요란한 캐릭터. 대차게 잔정 끊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도 나중에 보면 술 푸고 징징거리면서 주사 부리는 유형.
즉시 놀이에 돌입했다. 그 결과 여러가지 유형의 캐릭터가 조합되었는데, 마치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의 등장인물 칼 스트라이베르트가 강의할 때 쓰는 그리스 비극 가계도를 변주하는 기분이었다. 제일 정이 가는 유형, 제일 밥맛 없는 유형 등 순위까지 매기고 주위 사람을 총동원하여 누구는 이런 유형 누구는 저런 유형 해가며 혼자서 낄낄거리다가, 자기가 조조인 줄 아는 장비가 다시 한번 그다운 짓을하고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숨이 넘어가게 웃고 말았다.
내가 이제까지 한 것 중 최고의 커밍아웃,
나는 자기가 조조라는 착각에 빠진 장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