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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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색다르고 흥미진진하지만 천천히 숨이 차오르는 소설이다.

로빈슨의 변화와 방드르디의 인간적 매력이 마치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노예 방드르디, 총독 로빈슨, 그들의 역할 놀이가 폭발로 끝나고 진짜 자유인으로 서로를 만나되, 그 만남의 의미는 무엇었던가. 나와 너, 나와 그것의 관계가 모두 한명의 타자에 집중되었을 때 오는 혼동과 부담들.

 로빈슨은 외로웠다. 혼자라서.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스페란차를 지배했다. 그러나 그 지배는 계속되는 좌절과 허무로 이어졌다. 외로움은 주어지는 거다. 부여되는 거다. 수동적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외로움에 적응되었을 때 로빈슨은 고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영원한 고독은 형벌이다. 관계가 고독보다 훨 낫다. 그렇게 로빈슨은 방드르디와 관계 맺게 된다. 주인과 노예가 아닌, 인간대 인간의 관계 만이 서로를 행복하게 한다.

 고독의 문제를 한 인간이 타인과 맺는 관계의 문제를 무인도에 정착한 로빈슨의 입으로 풀어나가는 데, 문학과 철학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서술하고 있다. 스페란차의 환상적인 모습을 상상하랴, 나와 타자사이에 대한 철학적 서술을 곰곰 따라가랴 읽다보면 저절로 숨이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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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완역 난중일기 - 개정판
이순신 지음, 노승석 옮김 / 도서출판 여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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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를 읽었다.

이순신의 뇌구조를 그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걱정되는 어머니, 웃기는 원균, 술, 활, 그리고 처형.

한결같은 꾸준함으로 전쟁상황에서도 일기를 빼먹지 않고, 활도 꾸준히 쏘고, 술도 꾸준히 마셨다.

일상적인 행위들이 그를 구성한다.

나 역시 나의 일상적인 행위들이 나를 구성한다.

내가 매일 하고 있는 일들은 무엇인가.... 매일 꾸준히 반복하면서 조금씩 나아지려고 애쓰는 일들은 무엇인가.....살아온 시간들 가운데 가장 많은 시간 줄곧 애쓰면서 해온 일들이 무엇인가.....

그것이 나를 구성한다.

그래서 이순신처럼, 좀 더 일상적인 일들에 힘을 써 볼 작정이다. 무엇보다 읽고, 쓰기에.

숙취에 고통스러워하고, 머리를 빗고, 계집종과 시간을 보내고, 원균을 흉보고 하는 이순신의 모습이 인간적이라 안타까우며 사랑스러우며,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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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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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믿는 사람은 믿어지니까 믿는 거고, 믿지 못하는 사람은 믿어지지 않으니 믿지 않는거다.

믿어지는 이유는, 알 수 없다. 믿어지지 않는 이유는 수없이 많다.

나는 믿어지지는 않으나 있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은 한다.

그런데 이렇게 고군분투 하는 신이라면 정말이지 믿고 싶어진다.

전지전능, 무소불위의 신이 아니라 외로움도 많이 타고, 도박도 좋아하고, 걱정도 많고, 좌절도 쉽게 하지만, 사랑도 많은 그런 신이다. 신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사랑때문이다. 내가 보아온 인간들은 사랑없이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사랑없이 살 수 없는 존재인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랑의 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신이 없다면 인간은 인간에게 당한 배신과 상처를 극복하기 힘들 것이다. 신은 그래서 있어야만 한다. 인간을 위해....

 한 사람이 한 사람으로 온전히 자라기 위해 부모가 필요하듯 인간이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신의 사랑이 필요하다. 신의 사랑을 받은 인간은 다른 인간을 사랑할 수 있다. 부모의 사랑을 잘 받은 사람이 누군가를 진짜 사랑할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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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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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의 스케일과 몰입력이 대단하다. 상당한 분량인데도 한번 손에 잡으면 놓을 수가 없다. 새로운 사건들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그것도 뭔가 몽환적이면서도 환상적이면서도 뻥이라고 소리치고 싶다가도 침을 꼴깍이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눈을 반짝이게 된다. 소설이라는 이름에 딱 어울릴 것 같은 소설이다. 약간 백년동안의 고독과 비슷한 느낌도 난다.

 금복은 어렸을 때 들었던 옆동네 언니 이야기와 비슷하다. 일면식은 없지만 하루에 버스 한번 들어오는 그런 동네에 누군가 학교 안 보내 준다고 떼쓰던 열댓살 언니가 한밤에 보따리를 싸서 없어졌다는 이야기. 그런데 알고보니 언젠가 읍내에 어떤 사내랑 같이 다니더라는 그런 이야기. 그 사내는 시골을 돌며 장사를 하는 남자라는. 현실의 이야기는 대부분 거기서 끝나지만 금복은 사내를 따라 나선 길에서 고래를 보았다. 그리고 크고 생경하지만 매혹적인 고래와 같은 삶이 시작되었다. 금복이 만나는 대상, 금복이 끌리는 대상은 대략 그러하다. 크고, 생경하고, 매혹적인.... 걱정도 그랬고, 코끼리를 키우던 쌍둥이 자매도 그렇고, 수현은 크진 않았지만 매혹적이었다.

 춘희는 아니었다. 금복은 춘희를 좋아하지 않았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본능이라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충족되지 않은 사람은 자식도 제대로 사랑하기 힘들다. 사람은 무엇보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자신이 않은 아이를 사랑하고.... 거기까지는 다들 자연스럽게 되는 듯 하다. 그런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식도 기꺼이 아끼고 사랑하지 못한다. 금복에게 사랑은 동물적이면서도 이기적이었다. 

 사랑은 물과 같다. 비어있고 모자란 부분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 평평하게 채우는 물과 같다. 물과 같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비어있고 모자란 부분에 엿처럼, 혹은 찰흙처럼 붙어 옴짝달싹 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욕심이고 욕망일뿐. 욕심에서 벗어나 사랑이 가능하다. 진짜 사랑이. 진짜 사랑을 해야 외롭지 않다.

 금복은 가짜 사랑과 진짜 사랑의 그 중간에서 욕심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삶을 산 것 같다. 질펀하게 살다가 한순간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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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사용하는 법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17
와시다 기요카즈 지음, 김진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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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아주 자주, 종종, 가끔 초대장을 내민다. 그렇다. 생각해 보면, 뭔가 문제에 맞부딪쳤을 때 그 문제에 대해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근원적인 무언가와 마주친다. 그것이 철학이다. 그런 마주침이 이끄는 대로 철학의 문제를 따라가보면 그것은 마치 커다란 암반과 같다. 예전에 아는 사람이 집을 지을 때 그랬다. 땅을 사고, 기분 좋게 땅을 파들어갈 때 커다란 암반에 부딪쳤다. 그것이 거기에 있는지 결코 몰랐다. 하지만 피해갈 수는 없었다.

 철학이 그렇다. 그래서 그냥 돌아 나오고 싶지만, 마치 그 철학이 나를 밀어내는 것 같지만 실제로 돌아설 수는 없다. 왜냐하면 계속 부딪칠 수 밖에 없으니까.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렸으니까.

 철학은 삶의 현장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다. 지금 여기에서 나에게 던져지는 질문에 스스로 답하려고 하는 것, 그것이 철학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철학 카페와 관련된 내용이다. 나도 그런 철학 카페를 만들고 그런 철학 카페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다. 그래, 하면 되지 뭐. 굳이 많이 알 필요도 없대잖아.

 철학 카페의 세가지 규칙. 이름도 성도 묻지 않는다. 남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인용하지 않는다.

 이 세가지 규칙이 지켜지면서 하나의 주제에 대해 나이 불문, 경력 불문,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 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귀 기울여주는 것.... 그것이 함께하는 철학의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운 철학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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