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전쟁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10
로버트 코마이어 지음, 안인희 옮김 / 비룡소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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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국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랄까. 아니다 이게 먼저 나왔으니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한국판 '초콜릿 전쟁'인게 맞겠다.

제리,라는 작고 약한 신입생이 부패한 학교와 또, 그 학교의 묵시적인 승인 하에 아이들을 위협하는 지하조직(야경대)에 대항해 학교 기금 마련을 위한 초콜릿 판매를 거부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 결국 제리는 교감선생의 묵인 하에 지하조직 아이들에게 죽도록 두들겨 맞고 자신이 속한 현실에 굴복한다는, 다소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결말을 담고 있는 청소년 소설이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미국의 베트남 참전 문제와 히피들의 평화운동 등이 사회적으로 대두되고있던 시기를 트리니티 고등학교라는 작은 세계로 축소해 빗대고 있다. 작가의 중심생각은, 인간 개개인은 선한 의지를 가진 개체지만, 그 개체들이 악에 대해 입다물고 자신의 안위만 돌볼 때엔 결국 그 악에 힘을 실어주는 셈이라는 것. 고로, 진실이 아닌 것에 대해선 진실이 아니라고 앞장서 말하진 못할 망정 진실이 아닌 일에 침묵함으로써 동의해버리는 익명의 군중이 되지는 말자는 거다.

이 책이 3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고있는 것은 아마도,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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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알랭 드 보통 지음, 이강룡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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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최근 2년간 발견한 작가 중 가장 흥미롭고 신선한 알랭 드 보통의 두 번째 국내 출간 소설. (씌어진 건 이미 10년 전.)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만큼 신선하고 톡 쏘는 맛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꽤 독창적이고 재미있다. 사람이 사람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인지, 이사벨이란 이름의 여자친구 전기를 써나가고 있는 작가의 손을 빌려 읽는 즐거움 만빵. 아니나다를까, 우리나이 스물일곱에 이 책을 썼다. 대단한 녀석. -_-;

이 재미난 책에 불만이 세 가지 쯤 있다면
첫째, 판형이 영 맘에 안든다.
개나 소나 다들 양장본을 찍어대는 판국이니 그건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이건 당췌 정사각형 모양으로 생겨서 손에 딱 잡히지도 않고 책장 이음새도 성글기 짝이 없다. 몇년 있으면 책장들이 낱장으로 하늘하늘 떨어져내리게 생겼다.

둘째, 우리말 제목이 생뚱맞다.
원제인 'Kiss&Tell'이란 '유명한 이들과 맺었던 밀월 관계 등에 대한 폭로'란 뜻인데 말 그대로 이사벨이란 여자와 맺었던 프라이버시를 전기 형식으로 폭로하고 있는 소설에다 릴附愎?제목을 붙여놨다. '그래서 키스 하기 전에 뭐라고 말했단 말인가?' 따위를 궁금해하면서 봤다간 낭패보기 일쑤다. 표지디자인 구린 거는 탓하지 않을테니 제발 제목이나 좀 신경써라.

셋째, 오역이 있다.
이게 제일 심각하고 짜증난다. 작가가 무식한 것도 죄악이지만 (지식의 파급력을 놓고 볼 때 개인이 무식한 것과 미디어를 이용하는 작가가 무식한 것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번역가가 무식한 것은 더 죄악이다. 19쪽 중간 부분에 '예비 라파엘주의자'라고 번역된 것이 있는데 이것은 명백히 'The Pre-Raphaelites'의 오역이다. 'The Pre-Raphaelites'는 19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미술사조로 라파엘 이후 미술계의 '겉멋'에서 벗어나자는 운동이며(그러니까 '反라파엘'이란 표현이 더 정확할터이다.) 일반적으로 '라파엘 전파'로 번역된다. 번역가에게 사전 지식도 없었고 공부도 안했으며, 'The Pre-Raphaelites'가 무엇인지 네이버 지식검색 한 번 안해봤다는 무성의의 증거다.

아무튼 이 세 가지 문제점을 빼면 이후 개정판에선 더 좋은 책이 나오리라 생각한다. 큼큼.
이렇게 따져서 주절대고 보니 내가 꼭 소설 속의 이사벨이 된 것만 같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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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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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어로 된 텍스트를 자유자재로 읽게 되면 반드시 스페인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처음엔 바스콘셀로스와, 그 다음으론 마르케스와 보르헤스, 또 세풀베다와 아직 접하진 못한 아옌데같은 사람들과 영혼을 공유하고 싶어서이다.

 세풀베다는 60년대 '붐'작가들과는 달리 '마술적 사실주의'로 일관된 남미 문학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온 작가다. 49년생이니 우리 아버지와, 또 하루키와 동갑이라 신예라거나 신선하다는 말이 어울리진 않지만 그의 문학이 정당하게 평가받기 시작한지는 정말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은 세풀베다의 대표작으로, 아마존의 밀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밀림 속에서 살아가는 인디오들과 가난한 주민들, '개발'을 빌미로 밀림을 치고 들어오는 '양키' 세력의 암살쾡이 사냥이야기이다. 광의적으로 해석하자면 원시 그대로의 자연과 그 자연을 망가뜨리고 있는 인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남미 작가들을 사랑하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들은 '자연'을 경외할 줄 알기 때문인 것 같다. '젖줄'이라는 표현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아마존과, 죽은지 몇 시간만에 구더기가 들끓는 혹독한 기후 속에서 그들은 인간과 삶에 대해 또 그 매력에 대해 어떤 문명세계(?)의 작가들보다 뛰어난 통찰을 보여준다.

같은 이유로 나는 캐나다나 북부유럽의 작가들도 사랑한다. 인간의 의식 깊은 곳이나 감춰진 심리에 대해 잘 쓴 글도 마음을 움직이지만 인간만을 세계의 전부로 간주하지 않고, 자연 속의 한 피조물로서의 인간을 객관적으로 관조할 수 있는 힘은 도시에서 나고 자란 작가들에게선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노란 표지에 열대 야생 동식물이 그려진 표지와 시적인 제목, 번역까지 모두가 맘에 드는 소설 한 권. 이 여름이 가기 전에 에어컨 아래서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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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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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이야기라면 한쪽 바짓가랑이에 두 다리를 집어넣을 정도로 환장한 사람이지만, 일본 문학 만큼은 어쩐지 손이 가지 않았다. 하루키나 미시마 유키오, 사토 사토루, 하이타니 겐지로, 유미리 등등 훌륭한 일본 작가들의 좋은 작품을 적지 않게 접해왔지만 누군가 손에 쥐어주면 몰라도 굳이 찾아읽고 싶어지지는 않는 것이 일본 문학인 것 같다. 찐득찐득 질척질척하니 들러붙어 쉰내가 날 것 같은 남미문학과 비교하자면 너무도 하얗고 맑고 깨끗하여 (그러므로 너무도 차가워서!)감히 접근하기 어렵다는 느낌 때문일까. 아무튼 <설국>은 내가 접한, 그러나 이해하고 공감하기 어려운 일본 문학의 정수였던 것 같다.

대체로 좋은 상 받은 작품들이 재미없다는 건 영화 뿐만 아니라 문학계에서도 널리 통용되는 말인 듯 한데, 이 작품에도 '재미'의 요소는 따로 없다. 작품의 전반을 흐르고 있는 것은 오로지 '정서'이기 때문인 듯. 그러나 눈 덮인 지방의 묘사나 그곳 사람들의 삶, 노을, 게이샤의 얼굴 등에 대한 묘사는 비록 어색한 번역이나마 매우 아름답게 느껴진다. 특히 차가운 방에서 끓는 쇠주전자에 대한 묘사나, 추운 곳에서 떨고 돌아온 연인의 얼굴 감촉, 사람을 꿰뚫는 듯한 눈빛을 가진 여자의 맑고도 애처로운 목소리에 대한 묘사는 훔치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내가 환장하는 '이야기'가 가득한 작품은 아니지만 하얗고, 투명하고, 깨끗하고, 그래서 오히려 달긋한 향내가 날 듯한 겨울 산촌의 서정이 짙게 배인 이야기. 가와바타 야스타리는 1968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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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감옥 올 에이지 클래식
미하엘 엔데 지음, 이병서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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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기드라마에 소재로 쓰인 <모모>와 <끝없는 이야기>로 유명한 미하엘 엔데의 판타지 소설 모음. 흔히 미하엘 엔데를 '동화라는 수단을 통해 돈과 시간의 노예가 된 현대인을 비판한 철학가'라 평가하는데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그 말에 깊이 수긍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엔데의 어떤 그림동화를 보고 철학이 깊은 사람이긴 하지만 기독교와 서양의 근대가 지닌 이분법의 세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보르헤스에게 받은 영향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이 책에서 그런 우려는 불식된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깨달은 사람들의 생각은 결국 같더라.

 코엘료의 <연금술사>만큼이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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