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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알랭 드 보통 지음, 이강룡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2년간 발견한 작가 중 가장 흥미롭고 신선한 알랭 드 보통의 두 번째 국내 출간 소설. (씌어진 건 이미 10년 전.)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만큼 신선하고 톡 쏘는 맛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꽤 독창적이고 재미있다. 사람이 사람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인지, 이사벨이란 이름의 여자친구 전기를 써나가고 있는 작가의 손을 빌려 읽는 즐거움 만빵. 아니나다를까, 우리나이 스물일곱에 이 책을 썼다. 대단한 녀석. -_-;
이 재미난 책에 불만이 세 가지 쯤 있다면
첫째, 판형이 영 맘에 안든다.
개나 소나 다들 양장본을 찍어대는 판국이니 그건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이건 당췌 정사각형 모양으로 생겨서 손에 딱 잡히지도 않고 책장 이음새도 성글기 짝이 없다. 몇년 있으면 책장들이 낱장으로 하늘하늘 떨어져내리게 생겼다.
둘째, 우리말 제목이 생뚱맞다.
원제인 'Kiss&Tell'이란 '유명한 이들과 맺었던 밀월 관계 등에 대한 폭로'란 뜻인데 말 그대로 이사벨이란 여자와 맺었던 프라이버시를 전기 형식으로 폭로하고 있는 소설에다 릴附愎?제목을 붙여놨다. '그래서 키스 하기 전에 뭐라고 말했단 말인가?' 따위를 궁금해하면서 봤다간 낭패보기 일쑤다. 표지디자인 구린 거는 탓하지 않을테니 제발 제목이나 좀 신경써라.
셋째, 오역이 있다.
이게 제일 심각하고 짜증난다. 작가가 무식한 것도 죄악이지만 (지식의 파급력을 놓고 볼 때 개인이 무식한 것과 미디어를 이용하는 작가가 무식한 것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번역가가 무식한 것은 더 죄악이다. 19쪽 중간 부분에 '예비 라파엘주의자'라고 번역된 것이 있는데 이것은 명백히 'The Pre-Raphaelites'의 오역이다. 'The Pre-Raphaelites'는 19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미술사조로 라파엘 이후 미술계의 '겉멋'에서 벗어나자는 운동이며(그러니까 '反라파엘'이란 표현이 더 정확할터이다.) 일반적으로 '라파엘 전파'로 번역된다. 번역가에게 사전 지식도 없었고 공부도 안했으며, 'The Pre-Raphaelites'가 무엇인지 네이버 지식검색 한 번 안해봤다는 무성의의 증거다.
아무튼 이 세 가지 문제점을 빼면 이후 개정판에선 더 좋은 책이 나오리라 생각한다. 큼큼.
이렇게 따져서 주절대고 보니 내가 꼭 소설 속의 이사벨이 된 것만 같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