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영어로 된 텍스트를 자유자재로 읽게 되면 반드시 스페인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처음엔 바스콘셀로스와, 그 다음으론 마르케스와 보르헤스, 또 세풀베다와 아직 접하진 못한 아옌데같은 사람들과 영혼을 공유하고 싶어서이다.

 세풀베다는 60년대 '붐'작가들과는 달리 '마술적 사실주의'로 일관된 남미 문학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온 작가다. 49년생이니 우리 아버지와, 또 하루키와 동갑이라 신예라거나 신선하다는 말이 어울리진 않지만 그의 문학이 정당하게 평가받기 시작한지는 정말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은 세풀베다의 대표작으로, 아마존의 밀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밀림 속에서 살아가는 인디오들과 가난한 주민들, '개발'을 빌미로 밀림을 치고 들어오는 '양키' 세력의 암살쾡이 사냥이야기이다. 광의적으로 해석하자면 원시 그대로의 자연과 그 자연을 망가뜨리고 있는 인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남미 작가들을 사랑하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들은 '자연'을 경외할 줄 알기 때문인 것 같다. '젖줄'이라는 표현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아마존과, 죽은지 몇 시간만에 구더기가 들끓는 혹독한 기후 속에서 그들은 인간과 삶에 대해 또 그 매력에 대해 어떤 문명세계(?)의 작가들보다 뛰어난 통찰을 보여준다.

같은 이유로 나는 캐나다나 북부유럽의 작가들도 사랑한다. 인간의 의식 깊은 곳이나 감춰진 심리에 대해 잘 쓴 글도 마음을 움직이지만 인간만을 세계의 전부로 간주하지 않고, 자연 속의 한 피조물로서의 인간을 객관적으로 관조할 수 있는 힘은 도시에서 나고 자란 작가들에게선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노란 표지에 열대 야생 동식물이 그려진 표지와 시적인 제목, 번역까지 모두가 맘에 드는 소설 한 권. 이 여름이 가기 전에 에어컨 아래서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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