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것은 역시 당대의 작품은 당대에 보는 것이다.
그 시절 관객이나 독자의 입맛과 눈높이에 맞는 작품이 그 시절에 나왔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후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어떡하나? 차선책으로 연대순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이 있겠다. 물론 쉽지도 않고, 그럴 필요성까지 있나 하는 질문을 하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분명 '사전 지식' 혹은 '선행 커리큘럼'은 어느정도 존재한다. 특히 장르영화나 장르소설처럼 특화된 분야에선 더더욱 그렇다.
<언터처블>을 먼저 보고 <전함 포템킨>을 나중에 본다면, <십각관의 살인>을 먼저 읽고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나중에 읽는다면, 감독이나 작가가 의도했던 고전에 대한 오마주와 그로 인한 재미를 온전히 느낄수 없는것이 당연하다.
다행히 나는 어릴적 셜록 홈즈로 미스터리 독자로서의 첫발을 떼었고, 애거서 크리스티, 앨러리 퀸, 딕슨 카 등의 순서를 차례로 밟아 나간 운 좋은 독자이다. 불과 5년전까지만 해도 나의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관심은 온전히 '고전'에만 편중되어 있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읽고 싶어도 읽을 만한 '고전 미스터리'는 많지 않았다. 뒤늦게 나마 동서미스터리 북스가 재발간되면서 고수들의 리뷰나 입소문으로만 들었던 고전들을 속속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그 시절 내겐 '고전'의 빛이 어느정도 퇴색해가고 있었다. 초보 독자 시절에 읽었던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나 <그리스 관의 비밀>등의 충격과 흥분이 강렬했던 반면, 동서의 재출간 시절에 읽었던 <세개의 관>이나 <꼬리 아홉 고양이>는 본격 미스터리 소설의 걸작들임에도 불구하고 앞의 두 작품만큼 큰 감흥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만약 이 소설들을 읽었던 시기가 정반대였다면 이들 작품들에 대한 나의 선호도나 만족도도 크게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문신 살인사건>과 <옥문도>등 1940년대에 발표된 일본의 본격 미스터리 대표작들 역시 국내에 소개된 시기가 좀 많이 늦었다. 적어도 내게는 초보 독자 시절 만날 기회가 없었으니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좀 더 순진한 독자였을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좋았을 것을, 하며 탄식하였다.
최근 미스터리, 스릴러 등 장르소설들이 예전과 비교하면 '물밀듯이'라 표현할 정도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본 미스터리와 유명작가들은 이제 고정팬을 확보한 출판계의 일정한 흐름이 되었고 영미의 현대 작품들도 꾸준히 소개되고 있다. 이런 출판 러시 속에 상대적으로 아직까지 국내에 출판되지 않고 있는 '고전'들은 점점 출판 기회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설혹 어렵게 전설의 명작들이 출판된다고 해도 과연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물론 책의 흥행여부는 상당부분 출판사의 마케팅과 홍보에 의존하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출판여부 자체는 역시 시장에서의 흥행성이 판단 근거가 되지 않겠는가.
현대물의 범람 속에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나 니키 에츠코, 코넬 울리치 등 고전 위주의 출판을 꾸준히 해주고 있는 출판사도 있지만, 현란한 현대 미스터리 스릴러 작품들과 시장에서 힘겨운 승부를 하고 있는것 같다. (그나마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는 손자 '김전일'의 덕을 좀 보고 있다지만) 국내 장르소설의 열성 독자들은 출판사의 수지 타산까지 걱정해 주는 갸륵한 마음을 갖고 있다. 잘 팔려야 또 다른 작품들을 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딕슨 카의 <유다의 창>이나 울리치의 <밤은 천개의 눈을 갖고있다> 등 고전 미스터리 거장들의 대표작만이라도 볼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더이상 순진한 독자가 아닌 내게 충격과 흥분을 줄 순 없을지라도, 그 시절 이 작품들이 차지했던 의미와 긴긴 세월 출판을 기다려 왔던 독자로서의 반가움을 되새김질하기엔 충분하지 않겠는가.
때론 고전만이 갖고 있는 향기가 그리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