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 시절의 만화

② 클로버 문고와 사라진 낡은집

추억이 상품화 되는 시대다. 60~80년 대의 생활상을 나타내 주는 물건들이 경매 사이트에서 골동품처럼 거래되고, 어릴적 먹던 불량식품들이 제법 비싼 가격으로 인터넷에서 팔려나간다. 30대, 40대 성인들이 자신의 어릴적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이러한 상품들의 구매자가 되고 있다. 10 여년 전 인사동에 처음 문을 연 근현대사 물품 전문 취급점인 <토토의 오래된 물건>같은 이색 골동품점은 이제 유명한 곳이 되었다.

이런 물결의 중심에 '클로버 문고'가 있다. 클로버 문고는 1972년 발행을 시작해서 1983년까지 총 429권을 출간한 당대 단행본 만화 문고의 대명사였다. 어깨동무, 새소년, 소년 중앙 등 어린이 교양지에 연재되었던 인기 만화는 클로버 문고의 단행본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꼭 연재물이 아니었더라도 단행본으로 바로 나온 작품들, 만화가 아닌 소설, 논픽션, 교양 도서까지 장르를 망라한 집대성이 바로 클로버 문고였다. <유리의 성>, <바벨 2세>, <신판 보물섬>, <불타는 그라운드>, <소년 007>,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 등 이름만 들어도 기억이 선한 목록들이다.

어릴적 생일 선물 혹은 뭔가 칭찬 받을 만한 일을 했을 때면 받고 싶은 선물 0 순위는 클로버 문고였다. 만화에 큰 거부반응은 없으셨던 부모님 덕에 30권 정도의 클로버 문고를 소장할 수 있었다. 결국 집수리, 이사 등을 거치며 모두 없어져 버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현재 클로버 문고는 수집가들의 '1급 품목'이다. 초판 커버와 보관 상태가 좋다면 최하 10만원 정도의 가격대가 형성돼 있다고 한다. 경매에서 1권에 최고 50만원 낙찰가를 기록하기도 했단다. 인터넷 카페(http://cafe.naver.com/clovercomic.cafe)도 결성되었고, 복간 운동도 활발히 추진중이다. 30대 중반 ~ 40대 초반 연령대에게 클로버 문고는 최고의 추억상품임에 틀림없다. 한 권만 갖고 있었어도 좋았을 것을..


클로버 문고 중 한 편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한다.
방학기의 <사라진 낡은 집>이라는 작품이다. 단행본 1권 분량의 짧은 이야기다. 지금은 만화계의 원로가 되었고, <바람의 파이터>등 성인 만화의 걸작들을 대표작으로 갖고 있는 방학기의 1973년 데뷔작이다.

초등학교 3학년 경 클로버 문고로 구입하여 보게 된 <사라진 낡은 집>.
조선 인조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시대만화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작품은 미스터리 만화다. 유산 상속을 둘러싸고 깊은 산골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이야기. 주인공 일행이 하룻밤 자고 일어났더니 숙소 앞에 있던 낡은 집 한채가 통째로 감쪽같이 사라지고 만 불가사의한 사건. 셜록 홈즈를 접하고 추리 소설에 막 입문했던 어린 시절, 이 흥미진진한 미스터리는 나의 뇌리에 깊숙히 각인되었다.

그런데 이 만화의 줄거리, 어디서 많이 들어 본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 바로 엘러리 퀸의 중편 <신의 등불>이다. 까마득히 20년 이상을 <사라진 낡은 집>이 오리지널 스토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는 5년 전 <신의 등불>을 읽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사라진 낡은 집>은 <신의 등불>을 번안, 각색한 만화였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 <신의 등불> 초입에 나오는 장광설도 아주 훌륭하게 표현해 내고 있다. 이 만화의 뒤에 부록인 셈 붙어 있는 아주 짤막한 단편 <나그네>는 포의 <어셔가의 몰락>을 각색한 작품이다. <나그네>에는 각색 사실을 밝히고 있었지만 <사라진 낡은 집>에는 그러한 언급이 없었다. 당시 <신의 등불>이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한 사실 외에 다른 이유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약간 아쉬운 부분이다. 어찌 되었든 <사라진 낡은 집>은 미스터리 소설 애호가이자(그것도 엘러리 퀸의 팬으로서!) 만화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유실된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사라진 낡은 집>도 재미있었지만 <나그네>의 공포는 대단했다. 어린 마음에 이 만화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비오는 날 오후 아무도 없는 건넌방에 있는 이 책을 들고 오려고 벌벌 떨며 기다시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방학기 선생은 한국적인 공포를 가장 잘 표현해 낼수 있는 적합한 그림 스타일을 갖고 있는 작가가 아닐까. 애드거 앨런 포의 괴기 단편들을 몇편 더 각색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아래 링크는 <사라진 낡은 집>과 그 이외 클로버 문고들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블로그이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번 들어가 보시기를.

http://blog.naver.com/songsool?Redirect=Log&logNo=6001317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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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5-04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바벨2세를 아시다니! 로프로스와 포세이돈, 그리고 로뎀도 아시겠네요.? ㅋㅋ

oldhand 2006-05-04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미도 잊을 수 없는 캐릭터지요!
바벨2세는 비록 클로버문고는 아니지만 일본원작의 해적판으로 소장하고 있습니다. ㅎㅎㅎ

로드무비 2006-05-05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가봤어요.ㅎㅎ
전 오래 전부터 박수동의 만화가 그렇게 땡기고 좋더군요.
꾸불텅한 그림과 글씨.
별똥별탐험대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마태우스 2006-05-05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 그거 참 재밌었죠. 근데 그 이원복이 지금 이원복이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마태우스 2006-05-05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전 엘러리 퀸엔 정이 안가더라구요...

oldhand 2006-05-07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 님 / 극화 작가들이 모두 일본 만화의 영향을 크게 받던 시절이지만, 명랑만화만큼은 우리 작가분들이 독창적인 작가 세계를 구축하던 시절이죠. 박수동 화백의 만화는 그중에서도 독창성에서는 최고라 생각합니다.
마태우스 님 / 그 시절에는 '이상권'이라는 다른 필명도 갖고 있었답니다. 불타는 그라운드라는 축구만화도 그렸었지요.
엘러리 퀸도 호오가 많이 갈리는 편이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