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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서 ㅣ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28
마이클 바조하 지음, 최운권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4월
평점 :
이 책은 1980년에 발표된 스파이 소설입니다.
1980년이라면, 미소간의 냉전이 막판에 다다른 첨예한 시대라고 볼 수 있겠지요.
과연 이 소설은 KGB와 CIA의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치열한 첩보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인 브레즈네프가 현직 서기장으로 등장하고 브레즈네프의 뒤를 이었던 서기장 안드로포프가 현직 KGB 의장으로 실명 등장합니다. (반면 미국 대통령은 실명이 나오지 않더군요. 시기적으로 보면 카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이것도 약간 맘에 들지 않습니다. CIA의 국장으로 등장하는 프랭크 하디는 실명인지 아닌지 지식이 짧은 저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영미를 기원으로 하고 발달한 미스터리 소설. 그리고 그것의 한 분파가 된 스파이 소설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어느쪽의 손을 들어줄지는 기정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노골적인 스파이 소설은 약간 경외시 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헐리우드 영화의 "미국 만세"와 같은 이데올로기를 공유하고 있으니 거부감이 드는 것이지요.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것이 결국은 브루주아의 산물이긴 합니다만.
냉전시기의 KGB와 CIA, 그리고 서방측의 시각으로 풀어가는 양국의 첩보전. 현재의 관점으로 보면 좀 많이 느끼합니다. 물론 서방측을 절대선(善), 소련을 절대악(惡)으로 규정짓거나 하지는 않지만요. 고도의 첩보전에서 인간적이고 인도적인 측면을 바랄 수는 없는 것이기에.
헐리우드 영화에서 익히 볼 수 있는 스토리와 등장인물들의 구성도 이런 느끼함에 한 몫 합니다. 여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의 "러브 스토리"는 좀 많이 낯 간지럽습니다. 아, 그 판에 박힌 대사와 감정들이란! 모든 등장인물들은 그 역할에 해당하는 평면적인 캐릭터들입니다. 그들의 가슴아픈 과거사마저 다 어디선가 영화에서 본 듯한 내용들이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걸작의 풍모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습니다. 초반 부터 중반까지 내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여타 상황들의 개연성 부족, 의심가는 부분들이 결론에 이르러서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각 등장인물들의 과도한 전형성을 제외하고 치밀한 미.소간의 첩보전에 집중한다면 충분히 멋진 작품이라고 생각 되는군요. 결국은 이 모든 것이 영웅적인 주인공의 원맨쇼는 아니었기에.
이 소설을 "헐리우드 액션물의 세례를 받은 <추운나라에서 온 스파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과찬이 될까요? 약간 그런 느낌을 받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