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반골적 기질때문일까.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를 보다 보면 유독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있다. '신분 사회', '제국', '왕조' 등이 바로 그것이다.
공화국에 태어나 평생 평등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치부하기엔 그동안의 우리나라의 사회적 상황이나 민주화의 진행정도가 그다지 큰 공감대를 불러오기 어려운 것 같다. 그렇다면 교과서에서 교조적으로 가르치던 평등과 자유의 사상을 고지식하게 받아들여 체화한 내가 순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연유가 되였든 간에 난 신분사회를 싫어하는 사해평등주의자이다. 신념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진 모르겠지만.
봉건 시대의 신분제야 어쩔 수 없는 역사의 과정이었고 지나간 과거의 사실이기에 어쩔 수 없지만, 봉건 사회는 아닐지라도 현재까지도 왕실이 유지되고 있는 나라들에 내가 살고 있지 않은 것이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왕실은 무슨 얼어 죽을, 잘난 것 하나 없는 놈들이.'라는게 다른 나라의 왕족들에 대한 나의 거짓없는 시각이다. 고려시대에 태어났으면 만적이 됐을려나. 만적 꼬붕 정도는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연유로 판타지나, 대체 역사물, SF등에 등장하는 제국, 왕국 등이 해당 책을 읽는데 내게 큰 장애물이다.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이 그러하였고(결국 읽다가 던져버렸다), 랜달 개릿의 다아시 경 시리즈가 그러하였다. 20세기, 혹은 먼 미래의 사회체제가 제국이라니, 이 무슨 디스토피아에 대한 묵시록적 이야기인가. 오웰의 <1984년>만 암울한 미래가 아니다. 루카스의 <스타워즈>도 마찬가지.(이건 옛날 옛적 은하계 이야기라서 그런건가)
아울러 또 하나 바라는 것은 가끔 언론에서 떠드는 '사회 지도층'이라는 단어의 용도 폐기다. 지들이 무슨 권리로 나를 지도하나. 댁들 보다 내가 훨씬 더 건전한 납세자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자인데. 나라의 기둥은 바로 나다. 섣불리 가르치려고 하지 마라. 지도층 같은 같잖은 단어를 쓰고 싶으면 차라리 욕망에 더 노골적인 '고위층, 권력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라. 공연히 내 혈압 오르게 하지 말고.
만민이 평등하게 잘 사는 나라는 영영 마르크스의 백일몽이 되버리고 말것 같지만,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자본주의 사회를 경제력에 좌우한 새로운 신분사회로 만들고 있는것이 너무 우울할 뿐이다.
다아시경, 당신이 평민이었다면 좋았을 뻔 했소. 어쩌다 귀족으로 태어나서 내 눈 밖에 났단 말이오. 미국인이었던 개릿은 유럽식 귀족 사회에 막연한 동경같은 것을 가지고 살았는지, 귀족 사회가 유지 될 경우 인류의 발전이 얼마나 모로가는지에 대해 설파하고 싶었던 것인지. 내가 조금만 덜 삐딱했어도 더 즐거웠을 뻔한 작품이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