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클래식 레터북 Classic Letter Book 24
나쓰메 소세키 지음, 박순규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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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세키의 <도련님>을 읽을 때 인물이 참 정직하다 라는 생각을 했는데 <마음> 역시 같다. 이 도덕적인 인물들은 인간의 양면성이나 위선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그 결백성으로 인해 갈등한다.
 <마음>의 주된 줄거리는 과거 믿었던 숙부의 배신으로 '평상 시에는 선한 사람도 이익에 따라 악인이 될 수 있다'는 데 심한 혐오를 느낀 '선생님'이 후에 자신도, 하숙집 딸에 대한 친구의 연정을 경계하다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에 자살을 선택한다는 거다. 
 도덕에 대한 가치가 명료할수록 그에 반하는 자극에 예민하다. <마음>의 '선생님' 역시 인간성에 대한 신뢰가 강했기에 자신의 위선에 대한 절망을 조율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것이다. 
 이는 다자이 오사무가 <인간실격>에서 다룬, 인간에 대한 애정을 느끼면서도 그 이기와 잔혹성으로 회의하고 불신하는 '요조'라는 인물과도 닿아 있다. 
 <마음>이나 <인간실격>과 같은 작품들이 이제에도 꾸준히 읽혀지고 공감을 자아내는 것은 다소 유감이다. 어느 때라도 크게 변하지 않을 인간의 추악함에 대한 고발로 비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새삼스러웠던 문장은 '고통과 두려움으로 긴장되어 있던 마음이 슬픔으로 인해 편해졌다.'는 것이다. 슬픔은 여력餘力이고 따라서 때로는 비겁이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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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집
기시 유스케 지음 / 창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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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21일 개봉하는 <검은 집>에 관한 황정민의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영화의 원작이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내친 김에 빌려 새벽에 읽었다. 심장이 조마조마해서 원룸에 딸린 화장실도 못 가겠고 괜히 동생 얼굴만 보다 잠이 들었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공포는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력하다는데서 비롯하는 것 같다. 선천적인 유전 변이가 아니라 '열악한 환경과 유아기에 받은 정신적 상처'가 만들어낸 범죄일 뿐이라 해도 도덕과 감정의 결여는 '인간'이라는 동질감을 포기하게 만든다. '이해할 수 없다'는 불안, 더욱이 그 대상이 이쪽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때 이성을 장담할 수 있을까? 
 차라리 외압이든 내압이든 극도의 긴장이나 절망 상태에서 행해진 범죄라면 이해 가능성도 있지만 화이트칼라 범죄처럼 일상적인 평온을 가장해서 사랑이라든가 동정, 죄책감 같은 정서적 유대가 철저히 배제된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문제는 불특정 다수가 아무 연고없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거다. 사형제도 찬성론자들이 말하는 (오판이나 인권침해, 정치적 악용 가능성은 차후로 하고) '살인'에서 오는 심리적 동요만을 생각할 때 사회 전반에 퍼질 불신에 대한 조장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공포 역시 폭력이다. 그리고 폭력은, 자생력을 갖는다. 숙주를 바꾸든가 숙주를 자멸시키든가.
 책을 읽으면서 가장 소름끼친 경험은 내가 그 사이코패스의 죽음을 강하게 열망했다는 것이다. 격리 정도가 아니라 아예 존재 자체가 멸하여 지는 것. 하지만, 피해자에게 '범죄'가 아닌 '범죄자'를 보라는 요구는 납득할 만한 것일까. 그것은 요구라기보다 강요는 아닐까. 그럼, '용서했다'는 말은? 어떻게든 자신을 유지하고 살아가기 위해 종교적, 도덕적으로 승화한 방어기제? (하하 너무 부정적?;)
 아무튼, 공포스릴러는 인간의 잠재된 공격력과 욕망, 충동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그리고 그 가해나 피해의 주체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순응을 끌어내기 때문에 무서워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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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열림원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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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겁이 나." 그녀가 말했다.
 "왠지 요즘, 이따금씩 껍데기가 없는 달팽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도 겁나." 나는 말했다. 
 "왠지 이따금씩 물갈퀴가 없는 개구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는 이즈미도 하지메도 좋아하진 않지만 - 저 표현 역시 그렇지만 - 이즈미의 말에 보인 하지메의 반응은, 근사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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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컷
레이몬드 카버 지음, 안종설 옮김 / 집사재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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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숏컷을 통해 본 카버의 단편들은 결론이 없다. 그가 정작 중점을 두는 것은 사건의 구성이나 진위보다 상황 자체의 진술인 듯 하다. 일이 일어난 인과나 전망은 작가도, 독자도 개입할 수 없으며 어떤 뚜렷한 해석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불명확한 추측만 난무하다. 이는 현상만을 기술하는 카버의 독특한 문체에서 비롯하는데 이러한 전개는 작품이 보여주는 소통의 불완전성과 심리묘사에 정확히 부합한다. 현실에서 많은 일들이 우리의 의지가 아닌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것과 같이 그는 통제되지 않는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작품에 현실성을 구비하고 독자의 동의를 끌어내는 것이다. 
 그의 글을 이해하는 데 있어, 책의 마지막 단편 '심부름'은 작품에 대한 그의 생각을 독자에게 전하는 '심부름'이며 주인공 체홉은 그의 대변인이라 보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체홉에 대한 톨스토이의 평가 - 그는 체홉의 연극들이 지나치게 정적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 전망이 결여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등장 인물들이 자네를 어디로 데려다 주는가?" "소파에서 창고로 갔다가, 다시 소파로 돌아올 뿐이잖은가."- 나 체홉 자신이 그의 삶이나 작품 활동과 관련하여 "나에게는 정치적, 종교적, 철학적 세계관이 결여되어 있다네. 그런 것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바뀌기 마련이지. 따라서 내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 어떻게 사랑하고 결혼하며 태어나고 죽어가며 또한 말하는가 하는데 대한 묘사만으로 나 자신의 작업을 한정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네."라고 말하는 부분은 생존했던 인물인 체홉에게서 동질감을 느낀 카버가 그의 이야기를 자전적으로 재구성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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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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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권 출신인 이치로씨는 집단이 갖는 권력과 내분, 그 허위성에 회의를 품고 '개인 단위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만이 참된 행복과 자유를 얻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진득하고 고집스럽게 그것을 지켜내는 과격파. 안일하고 체제 순응적인 태도로 그를 회유하고 견제하는 자들에게 내치는 '추구하지 않는 자에게는 어떤 말도 의미가 없다.'는 문장이 허를 찌른다. 공중그네로 먼저 만났던 오쿠다 히데오, 이번 작품에서는 제도권 교육의 맹점과 시민 운동의 허구성, 자본주의 체제의 이기를 세 치 혀로 두드리고 운동권의 행방을 묻는 등 주제의 요지가 가볍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발랄함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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