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집
기시 유스케 지음 / 창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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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21일 개봉하는 <검은 집>에 관한 황정민의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영화의 원작이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내친 김에 빌려 새벽에 읽었다. 심장이 조마조마해서 원룸에 딸린 화장실도 못 가겠고 괜히 동생 얼굴만 보다 잠이 들었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공포는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력하다는데서 비롯하는 것 같다. 선천적인 유전 변이가 아니라 '열악한 환경과 유아기에 받은 정신적 상처'가 만들어낸 범죄일 뿐이라 해도 도덕과 감정의 결여는 '인간'이라는 동질감을 포기하게 만든다. '이해할 수 없다'는 불안, 더욱이 그 대상이 이쪽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때 이성을 장담할 수 있을까? 
 차라리 외압이든 내압이든 극도의 긴장이나 절망 상태에서 행해진 범죄라면 이해 가능성도 있지만 화이트칼라 범죄처럼 일상적인 평온을 가장해서 사랑이라든가 동정, 죄책감 같은 정서적 유대가 철저히 배제된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문제는 불특정 다수가 아무 연고없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거다. 사형제도 찬성론자들이 말하는 (오판이나 인권침해, 정치적 악용 가능성은 차후로 하고) '살인'에서 오는 심리적 동요만을 생각할 때 사회 전반에 퍼질 불신에 대한 조장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공포 역시 폭력이다. 그리고 폭력은, 자생력을 갖는다. 숙주를 바꾸든가 숙주를 자멸시키든가.
 책을 읽으면서 가장 소름끼친 경험은 내가 그 사이코패스의 죽음을 강하게 열망했다는 것이다. 격리 정도가 아니라 아예 존재 자체가 멸하여 지는 것. 하지만, 피해자에게 '범죄'가 아닌 '범죄자'를 보라는 요구는 납득할 만한 것일까. 그것은 요구라기보다 강요는 아닐까. 그럼, '용서했다'는 말은? 어떻게든 자신을 유지하고 살아가기 위해 종교적, 도덕적으로 승화한 방어기제? (하하 너무 부정적?;)
 아무튼, 공포스릴러는 인간의 잠재된 공격력과 욕망, 충동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그리고 그 가해나 피해의 주체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순응을 끌어내기 때문에 무서워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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