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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61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소년은 무엇을 응시하고 있는 걸까.

 그를 감싸안은 손은 결코 얼굴 보이지 않을, 그만의 『침묵의 시간』. 
 
 나는 그 침묵이 기리는 얼굴과 표정이 궁금하다.

 게다가 이는 하인리히 뵐, 귄터 그라스 등과 함께 전후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독일어 시간』으로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지크프리트 렌츠가 여든에 쓴 연애소설이란다. 

 이미 오래 시간을 견딘 듯한 흑백과 모래알 같은 글자가 '사랑은 따스함을 머금은 물결'이라 말하며 크리스티안을 부른다. 그 부름에 내가 답한다. 그렇다, 크리스티안은 또 다른 나의 이름이다.

 소설 속에서 스텔라는 부재하며, 나의(크리스티안의) 스텔라만이 존재한다. 막 사랑을 앓는 순수, 그러나 그 대상이 자신의 선생님이라는 데에서 오는 주저와 동경. 쉽게 드러낼 수도, 감출 수도 없는 감정은 함께 찍은 사진 속에서만 내내 은밀하고, 엽서에 담긴 물결이 그 온기를 전할 즈음엔 이미 온기의 주인이 없다.      

 슈텔라의 장례식, 그녀의 유골과 추모객들의 꽃이 바다에 뿌려질 때에 크리스티안은 명백한 상실을 경험하며 깨닫는다. '저기 떠가는 꽃들이 내 젊음의 영원한 비극으로 기억되는 동시에, 상실의 아픔을 보듬는 크나큰 위안이 되리라는 것을.' 또한 그는 의심치 않는다, 꽃들은 분명 물새섬으로 흘러들어갈 것임을.

 나는 강요한다. 나는 왜곡한다. 노작가는, '물새섬으로 흘러든 꽃들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고. 늙은 전투기 무전병이 깜짝 놀랄 정도로 멀리 던져버린, 추모객들이 다발째 혹은, 한 송이씩 뱃전 옆의 바다에 떨어뜨렸던 꽃들. 살랑이는 물살에 실려, 물새섬으로 흘러들어갈 꽃,들.

 물새섬에서 꽃들은 지지 않고, 썩지도 않고  비밀을 간직한 새지기 영감의 오두막에 걸릴 것이다. 그리고 결코 잊혀지지 않을 영원으로 남아 그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나의, 물새섬에 관해 생각한다. 그곳에 흘러들어온 꽃들에 관해 추억한다. 어느 봄날, 붉게 익은 동백이 비에 씻기던 기억과 흩날리던 매화의 꽃잎. 봄이라 부르면 너무 짧아 '보옴'이라 부르던 그 때, 그 계절의 터질듯한 꽃들에 관하여. 나의 물새섬으로 흘러든, 당신에 관하여. 

 대상의 부재에도 사랑은 꽃처럼 물새섬에 남는다. 이는 오로지 당신과 나만 아는 새지기 영감의 오두막에 걸려 침묵의 시간을 묵묵히 지지할 것이다.   

 사진 속 소년은 나(당신)에게 이렇게 묻는 듯 하다.

 "사람들이 우릴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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