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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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완에서 중국어판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가 출판되었을 때 타이완의 한 기자가 나에게 물었다. "『형제』와 이 책 두 권 모두 상당한 비판정신을 담고 있는 작품인데 어째서 전자는 중국에서 출판이 가능하고 후자는 불가능한 건가요?"

 나는 허구와 비허구의 차이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중 _

 

 위 일화만 가지고도 우리는 대략 이 책에 대한 몇가지 정보는 유추할 수 있다. 위화가 목소리를 내어 전하려는 바는, 중국에서 출판을 불허할만한 금기시된 내용이며, 이에 대한 그의 태도가 비판적이라는 점, 또한 중국은 언론의 자유가 제한적이므로 우리가 매스컴을 통해 접하는 중국의 실상은 현실이 왜곡, 과장,축소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사회는 문화대혁명(1966-1976)이라는 정치지상주의에서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을 목표로 한 개혁개방(1978-) 체제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배금주의에 따른 빈부격차, 당원과 관료들의 부패와 치부, 도덕성 상실, 민주화의 지체, 환경오염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1960년생인 위화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자신의 삶으로 고스란히 겪어오면서, 현 중국의 현실에 과거의 경험들이 어떻게 이어지고, 표피를 바꿔 반복되고 있는지, 그에 따라 어떤 결과들이 야기되었는지를 '인민', '차이', '혁명' 등  열 개의 단어를 통해 들려주고 있다. 그러나 그의 글에서 각 단어들은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언어학 또는 사회학, 또는 인류학적인 의미'를 지칭하지 않았다. 즉, '인민'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멀리서 반짝이던 수많은 등불이, 뜨거운 물결로, 거센 열기로 타올랐던'  구체적인 경험으로 이해될 수 있었는가를 톈안문 사건을 통해 들여주는 것이다.

 이밖에 명실상부 G2인 중국이 왜 짝풍 제조나 저작권 침해, 각종 사기 등 부정적인 이미지들을 청산하지 못하는지를 오늘날 중국어에서 무정부주의 정신을 가장 잘 반영하는 '산채'와  도덕성 결핍과 가치관의 혼란을 드러내는 '홀유'라는 단어 속에서 사례를 들어 분석하고 있다.

 책 속에서 위화가 지적하는 중국의 면면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과거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과 겹쳐지는 부분들이 적지 않다. 그 닮은꼴에 모골이 송연하기도 하고, 가슴이 철렁하게 안타깝기도 하다. 인간 군상의 욕망과 그 욕망이 만든 사회가 각기 배우지 못하고 같은 전철을 반복하고 있다는 듯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위화는 책의 말미에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 때, 나는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 고통만큼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쉽게 소통하도록 해주는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나는 중국의 고통을 쓰는 동시에 나 자신의 고통을 함께 썼다.'라고 적는다. 글로 쓴 그의 고통스런 목소리가 독자로 하여금 소통으로 치유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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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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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에도 몇번씩 내 자리, 내 직함이 타인의 것인양 헐거워서 시선을 놓치다가, 감정을 헝크리다가, 나를 놓았다가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나'라는 자리를 서성였었다. 더욱이, 조립된 기계 인간처럼 아무런 감동도 의미도 없이 푸석거리는 시간들이 못내 지루했다. 혀 끝을 맴도는 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그들 역시 허세에 부풀고 너무 격식을 차린 것 뿐, 내게 와서 등 토닥여 줄 소박함과 정겨움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장영희. 장영희라는 이름은 전에 화가 김점선의 책, 『점선뎐』을 읽다가 처음 알았다. 홍길동뎐, 춘향뎐처럼 김점선 본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자서전 형식으로 쓴『점선뎐』을 읽고, 나는 '김점선'이란 인물과 그녀의 삶에 상당한 흥미를 갖고 있었으므로 포털사이트의 연관 검색어처럼 장영희란 이름 역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11월, 도서관 열람대에 누군가 펴놓고 간 책의 프롤로그, '나, 비가 되고 싶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나비'와 '나, 비'. 쉼표 하나로 나뉘는 의미 차이가 나비처럼 팔랑, 나, 비처럼 춉춉 내 안의 호기심을 두드렸다.
 사실 나는, 지난 3월 김점선 화가에 이어 5월 장영희 교수도 암 투병 중 별세했다는 기사를 읽었으므로 이 책이 일종의 투병기인 줄로만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명을 저리 정하게 된 사연부터 사람을 크크, 거리게 만들더니 그녀는, 너무도 평범한 일상으로 무던한 언어로 사람을 어루고 다독이고 있었다. 
 그녀가 영작문을 가르칠 때 인용한다던, 미국의 유명한 수필가 E.B. 화이트의 글 잘 쓰는 비결에 관한 말-인류나 인간(Man)에 대해 쓰지 말고 한 사람(man)에 대해 쓰는 것-처럼 장영희의 글은 관념적인 인간(Man)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 그녀의 글은 그대로 장영희, 자신이었다. 서툴고, 게으르고, 잘 속고, 어리숙하지만 어떻게든 삶의 질척하고 무거운 엉덩이를 채근해서 자신의 방향으로 끌고가는 그녀의 걸음들.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무서워 살금살금' 걷는 그가 아니라 철커덩, 쩔룩이며 삶을 목발질하는 그녀가 보였다. 교수라는 직위가 주는 권위보다, 장애인이라는 타인의 시선보다, 암 투병이라는 삼키기 어려운 쓴물보다 그녀의 글은 죄다 더 다정하고 더 당당하고 더 달달하였다.
 사람을 움직이는 글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삶은 거창하고 위대한 것만이 아님을 알았다. 유명인을 따르는 '모방'보다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성실'이 결국엔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는 것도 알겠다. 내 주변을, 사람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내가 그간 놓쳤던 많은 것들이 어쩌면 새로운 의미로, 감동으로 다가올 지 모른다. 천천히 그리고 담담하게, 나를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렇다 - 의미는, 감동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61.
 그래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면 헛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늘 반반의 가능성으로 다가오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열심히 살아간다.

67.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루카 7장 47절)
 
120.
 내가 살아 보니 남들의 가치 기준에 따라 내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가치를 깎아 내리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 줄 알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결국 중요하지 않은 것을 위해 진짜 중요한 것을 희생하고, 내 인생을 잘게 조각내어 조금씩 도랑에 집어넣는 일이기 때문이다.

137.
 '너만이 너다' ― 이보다 더 의미 있고 풍요로운 말은 없다. (셰익스피어)

156.
 영작문을 가르칠 때 나는 미국의 유명한 수필가인 E.B. 화이트의 말을 인용한다.
 그는 글을 잘 쓰는 비결에 대해 '인류나 인간(Man)에 대해 쓰지 말고 한 사람(man)에 대해 쓰는 것'이라고 했다. 즉 거창하고 추상적인 이론이나 일반론은 설득력이 없고, 각 개인이 삶에서 겪는 드라마나 애환에 대해 쓸 때에만 독자들의 동감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181.
 '어린 시절 난 심술꾸러기였고, 내 청소년기는 힘들었는지 모르지만 이제 이렇게 사랑하는 당신이 거기에 서 있으니, 내가 과거에 그 무언가 좋은 일을 했음에 틀림없어요.'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 (그 무언가 좋은 일 Something Good)

197.
 토마스 머튼이라는 신학자는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의 참된 기쁨은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고 '자기'라는 감옥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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