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 - 소희와 JB 사람을 만나다 - 터키편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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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로 떠나는 나의 짐은 무겁지 않다. 간단한 생필품조차 챙기지 않고도 불안하지 않은 이 여정은, 슬쩍 접어둔 페이지마다 바람이 달겨든다. 이스탄불을 시작으로 시계 방향으로 돌아, 사프란볼루, 카파도키아, 에이르디르, 안탈랴, 올림포스, 파타라, 다시 올림포스, 이스탄불로 되돌아오기까지- 그렇다, 내가 접어둔 것은 진정 바람일테다.
 1.5인, '그래도 떠나고 싶었다'는 소희와 세상에 난 지 36개월 된 중빈. 1의 독립과 0.5의 의존이 아니다. 0.5의 베이비스텝은 "Mommy, I had a fun day today!"라고 말할 수 있는, 주관을 가진 독립적인 여행자였다. 과거를 조급히 재현하고자 그에 묶여 있는 시선을, 흰 들꽃과 길고양이, 개미, 지렁이에게도 똑같이 머물게 한다. 자세를 낮춰 오래 들여다보아야 하고 움직일 수 있는 이제의 삶을 말이다. 
 이 둘의 여행을 따라가는 것이 나는 참 따듯하였다. '더 이상 내가 나를 낮추고 있지 않아, 그 직립이 피로'하여 시작되었다는 이 여정이, 무엇을 담고 있었기에 몇 번이나 숨을 멈추고 페이지를 아끼게 했을까. 눈에 띠게 도드라진 단서는 되돌아온 올림포스였다. 여행조차도 돌아본 지명의 가짓 수에 연연했던 것, 과정 중에 의미있는 만남을 찾지 못하고 목적지에 이르러서야 안도하며 내려다보듯 휙- 둘러보려 했던 나의 태도는 이미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는 그들의 행로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나아가지 않고 되돌아간다.' 그것은, 자기행복의 지점을 분명히 알고 있는 자, 그래서 멈춰 설 수 있는 자에게만 가능한 일일 테니까 말이다.
 여행은 아마도, 길 위에서 혹은 그에 속한 타인을 통해 결국 본연의 자기를 읽는 일이 아닌가 싶다.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 사람을 대하는 태도, 경로를 선택하는 것 등 여행은 부단히 선택하게 하고 자신을 드러나게 하니 말이다. 사람들이 '타인을 알고 싶으면 함께 여행을 가보라' 조언하는 것도 여행에 있어서는 그가 가진 지위나 배경 등 자기 외의 조건이 제로에서 시작하므로 그 자신을 보다 잘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리라. 더불어 여행은, '깨달음' 자체가 아니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행위인 듯도 싶다. 소희와 중빈이 에이르디르 호숫가에서 만난, 말없는 노인과 파란 눈의 아이에게서 한 인간의 내적 깊이을 느꼈듯 말이다.
 아시아와 유럽을 두루 겪은 터키로 내달리고 싶었다. 지중해의 코발트 블루를 보고, 잠시나마 그네들의 삶을 마주하고 싶었다. 소희와 중빈을 통하였으므로 고생은 쉬이 넘기고 달큰한 것들만 취하였기 때문이었을까? 글로만 따르는 이 여정이 못내 아쉬워 책을 쓸어내릴 때마다 바람이 당겨온다. 소희와 중빈은, 자신을 데리고 다니던 바람을 이 책에 접어왔는가 보다. 내가 갈 수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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