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속에 담긴 긍정의 한 줄 긍정의 한 줄
양태석 지음 / 책이있는풍경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그의 우울감이 예술적 섬세함과 연관이 있다고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도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서, 긍정의 마음, 긍정의 주문, 긍정의 자기조절을 많이 강조했었다. 이 책도 아들 읽으라고 샀는데 대딩 첫해, 사람들 만나고 술마시고 고딩 때 못해본 '스스로 공부하기'(그래봐야 과제) 등 인생공부하기 바쁜지 도통 책 읽을 생각을 안 한다. 한쪽도 안 되는, 그것도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를 말이지, 지하철 안에서 읽으라고 손바닥만한 책을 사줬더니, 뭐? 지하철 안에서 책 읽는 남자를 보면 왠지 답답해 보인다?  

오히려 내가 지하철로 외출하는 날 들고 나갔다가 끝까지 읽어버렸다. 의외로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들이 많다. 일화의 힘이 있지 않은가. 진정성, 감동 그런 것들.. 특히 배려할 줄 모르고 참을 줄 모르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할 이야기가 많다. 아이들이 하도 나대길래 아침마다 틈틈이 명상을 하곤 하는데 특히 싸움이 잦은 무렵에는 남을 배려하는 이야기나 몇몇 의인들이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친 이야기들(전쟁을 막은 축구선수 이야기 등)을 들려준다. 이 책을 쓴(엮었다가 맞는 표현이려나?) 양태석 씨는 글을 쓰던 사람이라 그런지 부제나 덧붙이는 문장도 참 좋다. 학교 메신저에는 닉네임을 달 수 있는 기능이 있는데 한 문장 정도 적을 수 있는 그곳에 책에서 얻은 문구를 가끔 써넣기도 했다. 

다만, 중간중간에 매우 성실하여(운도 좋았겠지) 기업가로서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기업가로서의 성공, 돈을 많이 버는 일 등에 대해 가치의 방점을 찍는 듯하여 좀 거슬리긴 한다. 

월마트 창업자나 모건가 이야기처럼, 사회적으로 비판할 것이 많은 몇몇 기업 혹은 기업인의 성공담은 읽기 거북하기까지 하다. 자칫 독자들에게 그들을 미화하는 것으로 오인받을 수도 있다. 일화도 맥락 속에서 읽지 않으면 악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마 이런 측면 때문에 편집자의 책무와 권한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 - 한 시골교사의 희망을 읽어내는 불편한 진실
황주환 지음 / 생각의나무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황주환 선생은 '말'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사람 같다. 교사는, 특히 국어교사는 말로써 살아가는 사람이다. 때로는 말의 성찬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가르치는 아이들 앞에서, 내가 뱉은 교육적인 발언들, 그리고 문학적인 언사들이 과연 진실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나마 아이들 앞에서 하는 말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준비하는 만큼 거짓과 실수를 덜 수 있다. 꼭 해야 하는 말을 골라내는 노력의 과정에서 그것이 아이들의 빛나는 눈빛과 만날 때에는, 내가 '말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감사할 때도 있다. 

하지만 교무실에서 난무하는 쓸모없는 허사들과 독설들 앞에서는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교사이기도 하다. 누구나 그런 생각들을 잠깐잠깐 할 뿐이지만 황주환 선생은 그것을 깊이 고민하고, 고민을 넘어서 사유하고, 그것에서 그의 교육철학을 뽑아낸다. 

교사의 경력이 쌓여가면 아이들 앞에서 거짓언사를 자기도 모르게 지껄이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게 되기도 한다. 그것은 독설 뿐 아니다. 칭찬조차도 관용적으로 내뱉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면 그토록 비참할 수가 없다. 개그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교장의 훈시가 우스운 것은, 그 아름답기 짝이 없는 말들이 모두 거짓임을 우리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거룩한  언사 뒤에서 자기가 비웃음을 당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벌거숭이들! 그러나 문제는, 그 벌거숭이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들이 쥐고 있는 권력의 칼날은 교육을, 아이들을, 교사들의 영혼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 가장 무서운 것은 교사들이 그들과 동화되지 못해 슬퍼하며 한패가 되려 애쓴다는 것이다.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교장이 조회대에서 그럴 때, 고민하지 않고 함부로 말하는 교사는 교단에서 똑같이 아이들을 향해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그러나, 하지만, 그래도, 말에는 힘이 있다. 올바른 말에는 분명 힘이 있다. 그런 믿음이 없으면 아이들 앞에서 교사는 무엇으로 당당히 서겠는가. 정신 바른 교사들이 좌절하는 이 땅에서 교육에 희망은 없다. 교사들이 푸념을 하고 뒷담화를 하고 화를 낼 것이 아니다. 바른 말 뒤에 희망의 지지대를 굳건히 세울 일이다. 특히나 동료교사들을 경멸의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오십 보나 백 보나 그게 그거라도 남보고 뭐라 하지 말 일이다. 바른 말을 세워서 함께 가야 한다. 황주환 선생은 '사유'를 했고, 그의 책을 읽고 나는 그런 '다짐'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공한 리더는 유머로 말한다 -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촌철살인 유머 한 마디!
민현기.박재준.이상구 지음 / 미래지식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교사가 될까? (여기서 재미있는, 이란 웃기는, 이란 뜻이다. 수업 구성을 재미있게 하는, 이 아닌 웃기는 수업을 하는) 이것이 최근 나의 화두이다. 다양한 방식의 수업으로 아이들이 한 시간 국어 수업이 어찌 지났는지 모르게 재미있게 수업을 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아무래도 유머는 약하다 보니 그 부분을 채우고 싶어서 개콘도 열심히 보고 성대모사도 해보곤 하지만 아무래도 잘 안 된다. 그래서 유머 강의법이나 유머집 같은 것들을 한 묶음 사서 열심히 읽었다. 

읽는 동안 재미있긴 했다. 하지만 어른들이 모인 자리에서라면 모를까 수업에 써먹을 만한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요즘 아이들의 유머와는 좀 거리가 있다. 유머를 일부러 준비해 두었다가 수업이 지루할 때쯤(수업 맥락과 상관 없이) 그 유머를 써 먹는 것은 좀 촌스러운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제일 좋은 것은 수업 중 나누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생동하여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면 중간중간에 졸음을 깨게 하는 유머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언론학교에서 김연주 KBS 전 사장의 강연을 들었다. 화려한 달변도 유머로 청중을 끌어잡는 연설가도 아니었다. 오히려 약간 지루하다 싶은 방식으로 강연을 했다. 다만, 기자 출신답게 오로지 팩트만으로 자신의 주제(종편의 부당성과 문제점에 대해 설파하는 자리였다.)로 이끌고 가는 솜씨가 역시 전문가로구나, 전문가의 알짬은 겉으로만 달달한 강의의 스킬이나 말재간으론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로구나, 느끼게 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그다지 재미나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아서 그랬는지 중간에 유머를 한자락 한다. 손오공과 사오정 이야기다.  

"손오공과 사오정이 KBS에 입사 면접을 보러 왔답니다. 사오정이 좀 자신이 없는지 손오공에게 답 3개만 알려달라고 했어요. 먼저 면접 보러 들어간 손오공에게 나 김연주가 물었습니다. 첫째 질문, 산업혁명이 언제 어디서 일어났죠? 대답, 18세기 영국입니다! 오, 좋아 그럼 둘째 질문, 좋아하는축구선수는 누구입니까? 대답, 전엔 박지성이었는데 요즘은 차범근이요, 오, 그래요? 셋째 질문, 요즘 여자들이 성형수술 많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대답,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면접을 보고 나온 손오공과 엇갈려 지나가면서 사오정이 "빨리빨리! 답 세 개만, 세 개만~"  그래서 손오공이 "18세기 영국!, 전에는 박지성, 요즘은 차범근,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알려줬어요. 다시 김연주 앞에 앉은 사오정, 첫째 질문 들어갑니다. 언제 어디서 태어났습니까? 대답 18세기 영국! 뭐? 당신 이름이 뭐요? 대답, 전엔 박지성, 요즘은 차범근! 아니, 당신 이렇게 된 거 아니야?(손가락으로 머리를 빙빙 돌리며) 대답,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바탕 웃고 난 후로 강연은 반짝 깨어나 잘 마무리가 되었다. 숨겨둔 비상금 같은 유머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난 수업지도안을 쓰는 기분으로 몇 가지를 기록해 두었다. 연습도 해야지~! 유머는 타이밍이라고, 내용이 웃긴 것도 중요하지만 이야기할 때 몸짓이나 박자나 속도가 적절해야 별 거 아니라도 웃기게 들린다. 뭐 이 책이 중학생들에게 먹힐 유머로 가득차지 않은 것은 책의 잘못이 아니라 나의 선택의 문제이겠으나 어쨌든 읽으면서 웃었던 건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영복 - 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 서울대학교 관악초청강연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신영복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을 게 뭐 있을까 싶었다. 남편이  먼저 읽고 이번에 대학에 들어가는 아들에게, 네 또래 아이들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권했다. 나는 샘들 독서토론 책으로 추천했다. 3월에 바쁘니 좀 가볍게 읽자고. 그리고 아들보다 내가 먼저 외출할 때 들고 나가 읽었다. 처음엔 너무 빨리 책장이 넘어가서 (물론 만 원도 안 되는 책이지만) 뭐야, 그랬다. 단 한 번의 강의를 책으로 만들어내는 건 상술 아닌가, 대학에서 말야, 이러면서... 그런데 그렇지 않다. 

신영복 선생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사람이 한결같다는 것, 혹은 진흙밭에 굴러도 신의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게다가 강의 2부에 토론을 할 때, 사람들의 질문을 받고 그에 대답을 하는 장면을 읽을 땐 진정 공부해온 사람은 이렇게 대답하는구나, 싶었다. 중복되지 않으면서 일관되는 자기의 사상이 있다. 현학적이지 않으나 공부한 흔적이 있다. 

새삼, 존경할 만한 몇 안 되는 사람이란 생각에 마음이 뿌듯하다가 생각에 먹구름이 끼어든다. 몇 해 전 한 여자 시인이 독설적이 시집을 한 권 냈다. 그 중 '돼지의 변신'이라는 시가 있는데 거기 은유된 돼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20년쯤 감옥에서 썩다' 내려 온 그를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비'로 모신다는 둥, 학생과 청중을 감동시키려 위선적인 노력을 하는 모습을 비꼬는 그 시가 도대체 누굴 얘기하는 것인지 읽으면서 자꾸 선생이 연상되어서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만약 비유가 맞다면 무슨 이유로 그렇게 묘사했는지(우리가 책이나 강의로 만나는 명사의 모습이 다 진실이라고는 물론 생각하지 않는다), 선생을 비꼰 게 아니라면, 누가 봐도 그를 말하는 듯이 보이는 이런 시를 출간한 건 간접적인 명예훼손일 수도 있는 게 아닌지, 궁금했다. 마음이 불편하다.  

공감하는 부분들 이야기를 하자. 

목수의 집그림 이야기가 나온다. 실천적인 삶을 산 사람과 관념의 틀에 갇힌 사람(선생은 자기 반성 속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의 차이가 집 그림을 그릴  때 주춧돌부터 그리느냐, 지붕부터 그리느냐로 나타난단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도마 위에 생선을 놓고 먹으려고 다듬으면서 우린 이 아름다운 생선의 살았을 적 모습을 못 보는구나, 늘 죽어있는 옆모습만 본다, 고 생각했다. 꽁치를 들고 그의 정면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이 두 갠데, 우린 옆으로 누운 눈 하나의 생선만 그린다. 혹은 자반이 되어 반으로 쪼개진 모습만 본다.... 몇 년 전 내가 가르친 아이 중 발달장애와 자폐증을 가진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만든 '나만의 시집:( 중3 남자 아이들이 A4 종이 4장을 반으로 접어 자기가 고른 시와 직접 쓴 시를 손으로  베끼고 그림을 그려 시집을 만들다.)에는 정면의 얼굴을 한 비둘기가 그려져 있다. 보통 아이들이 못 보는 그 아이의 시선을 우리 모두 놀라워했다. 물론 신영복 선생이 말하는 목수의 그림은 '일하는 사람의 관념성 탈피'에 대한 이야기이고 자신과 같은 지식인의 관념성을 비판하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다르게 생각하기'가 되지 않으면 관념성을 탈피할 방도가 없다.  

변방과 마이너리티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에도 공감한다. 내 삶은, 어렵게 살아온 사람에 비하면야 비교적 순탄한 편이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부터는 늘 내가 비주류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대학 시절, 열심히 '투쟁'하지 못했던 나는 부끄러운 마음을 들고 야학에 가서 언니 오빠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시를 나누었다. 87년 6월 항쟁 때(지금이야 민주화운동이라고 그때 많은 시민들이 함께 했다고 논하지만)도 거리에서 만난 어른들은 학생들이 데모한다고 야단치고 조선일보 같은 신문에서 공부 안하고 데모나 하는 대학생들을 맹비난하는 기사를 싣는, 불심검문의 시대에 대학시절을 보내야 했다. 20세 이후 20여년 간 정치적으로 대부분 '지는 투표'를 해왔다. 또 내 삶의 거의 전부를 펼쳤던 '학교'라는 공간에서 나는 전교조 교사라는 이유로 늘 비난과 감시와 편견에 시달렸다. 학교의 중심이 아이들, 그리고 수업이었기에 망정이지 일반 회사같았다면 열심히 일하고도 평가에서 늘 뒷전인 채로 20년을 지내오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이너로 살아가다가 '변절'을 하기도 한다는 면에서 내 삶은 별 볼 일은 없었을지라도 부끄럽진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하련다. 바닥 끝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힘겹게 살아가는 어린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같은 아웃사이더로서!)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내가 분명히 믿는 것은,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뛰어난 능력과 권력을 지닌 자들인 듯 보여도 작고 찌질해보이는 것들의 순한 힘들이 세상을 망가지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뭉쳐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신영복 선생이 변방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창조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만 난 '착한 마이너'의 단결로 세상이 '소돔과 고모라'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굳게 믿는 것으로써 나만의 '변방론'을 정리해 보련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1-03-26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쩌다 보니 이 즈음에 경제 관련 책들을 읽고 있다. 경제학은 사회과학이니 인문학과 멀지는 않다. 신영복 선생도 경제학을 전공했다 하더라. 그렇기는 하지만 나같은 인문주의자가 경제서를 집중적으로 읽는 이 시대가 평화로운 시대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긴 하다. 

국어과 선생님들과 하는 독서토론에서 이 책을 읽었다. 감성적이고 보수적인 선생님도 있다. 이 책이 어떤 느낌으로 그에게 다가갈까 궁금했다. 그는 '내가 전혀 몰랐던 세상이 여기 있더라. 그 동안 속았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단순한 사람이 아니다. 유수한 대학을 나와 나이 서른 넘은 유능한 교사가, 평소에 책깨나 읽는 그가 마치 고등학교때 반공교육만 받다가 대학에 가서 처음 운동권 가요를 접한 80년대 학생같은 소리를 한다.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니다. 누구나 삶의 반경이란 게 있다. 그가 우리 학교 국어과 샘들의 독토모임에 함께 하지 않았다면 그는 그냥 고등학교 경제 시간에 배운 아담 스미스나 케인즈 같은 경제학자들의 이름밖에는 모른 채 경제에 관심을 두지 않고 평생 살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이것은 삶의 어떤 고리 혹은 계기의 문제일 수도 있고 장하준의 영향력일 수도 있고 어쩌면 정치적인 문제일지도 모른다.(정권이 엑스맨이라니까) 그 선생님뿐 아니라 다른 분들도 특별히 진보적이랄 것도 없는 분들이다. 내가 보기엔 평범하나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요즘 워낙 정상적인 사람들이 드물다 보니 그 선생님들이 이 세상을 견디는 게 힘들 때가 있다.  

책은, 일단 제목도 재미있고(원제에는 자본주의, 라는 단어가 언급되어 있다. 또한 부제에는 장하준이 '더 나은'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임도 명기되어 있다.이 책을 놓고 사회주의 운운하는 사람들은 책을 제대로 읽기나 한 것인지 묻고 싶다.) 둘째, 문장이 명료해서 좋았다. 영어로 쓰고 그걸 다시 우리말로 번역했다는데 아무래도 장하준 박사가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군더더기 없는 영어를 구사했을 것이라고 토론할 때 여러 샘들이 말한다. 나는 현란하게 쓰는 글과 직역으로 오히려 오역을 만드는 번역서들을 혐오한다. 정말 잘 아는 사람은 어렵게 쓰지 않는다. 또한 번역하는 이도 글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잘못된 번역으로 독자를 곤혹스럽게 만들지 않는다. 읽기 어려운 글은 (물론 독자가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 글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대개 저자 혹은 번역자의 오만을 탓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탁월하다. 너무 쉽게 쓰여져서 그런가, 어떤 40자 서평에 경제학자 맞냐고 심하게 평가절하한 것을 보았다. 어려운 걸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진짜 능력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장하준은 왜 마이너가 되었을까. 한국에서 활약하지도 않을 뿐더러 한국의 주류경제학자들이 대개 미국학파인데 비해 그가 영국에서 공부한 사람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경제가 미국과 일본을 모델로 해서 따라가기 급급할 때, 만약 우리에게 모델이 꼭 필요하다면 서유럽도 있고 북유럽도 있다고  말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쪽에서 공부했거나 이 엄혹한 보수적 한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꼭 이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고민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다. 그 탄압과 비난을 감수하고 사는 것은 정말 힘들다. 오죽하면 비교적 양식있는 알라딘에서도 장하준이 사회주의자니 함량미달이니 하는 감정 섞인 비난을 들어야 하는가(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반박을 하란 말이다.) . 

내용은, '자유시장경제'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영미에서 부르짖는 '자유주의'는 실체가 없다, 정작 자신들은 철저한 보호무역과 관세로 무장을 하고 경제를 발전시켜 왔고, 이제 자신들의 뒤를 따르려는 개발도상국들에게는 그런 보호무역이나 정부 관여를 억제하고 자유경쟁하자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미 충분히 맷집을 불려놓은 거대국가들이 작은 나라들을 상대로 하여 보호장치 없이 '자유롭게' 한판 붙자고 하는 이 논리의 헛점을 조목조목 짚어주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신자유주의 사상은 경제뿐 아니라 우리 사회 온갖 세부 항목에 다 적용되는 주류 사고방식이 되고 말았다. 고작 20년도 채 안 된 시간이다. 물론, 70,80년대에도 경쟁을 조장하는 개발중심의 경제와 정치 사상이 급속히 사회에 퍼져나갔지만 그래도 유교적 사고방식이나 농경주의적 정서가 성장과 경쟁의 이데올로기를 뒤에서 가만가만 '땡겨주기'라도 했다. 80년대의 학교도 치열한 입시경쟁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대놓고 경쟁이 최고다 일등이 최고다 공부 못하면 쓰레기다 라고 말하지는 않았다(많은 교장들이 그렇게 생각은 했어도 훈화를 할 땐 점잖게 인성을 말하고 협동을 논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학교 앞 플랭카드에 대놓고 경쟁하는 어린이 성공하는 학생을 칭찬하고, 잘난 아이 못난 아이를 갈라놓는 다양한 방식을 노골적으로 계발하는 시대가 왔다. 

이라크전이 터졌을 때, 교과 내용 중 '토론하기' 단원에서 이라크 전과 파병을 주제로 하여 아이들이 토론을 했던 적이 있었다. 전쟁 반대도 나왔고 파병 찬성도 나왔지만 당시 교장, 교감은 나를 반미주의 계기수업을 했다고  몰아쳤다. 그때 했던 대화 중, 

"안선생, 왜 반미수업 했소?" 

"반미 수업 한 적 없습니다. 반전에 대해서는 이야기했습니다. 전쟁은 옳지 않은 것 아닙니까? " 

"미국이 전쟁을 했는데 전쟁을 반대하면 미국을 반대한다는 얘기지!" 

"반미고 친미가 중요합니까? 교사가 아이들에게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못합니까?" 

"지금같은 시기에 반전은 곧 반미요, 우리가 반미를 하고 어떻게 살아납니까!" 

아, 이런 게 바로 친일파들의 논리였으리라. 속으로 일제시대였으면 친일파가 됐을 인간 같으니! 하고 욕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 우리에게 미국은 그런 존재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잘 사는 줄 아는 나라, 가고 싶고 따라 하고 싶은 나라. 그러나 최강부국 미국에는 가장 심한 빈부격차와 불안한 치안과 높은 범죄율이 그늘에 있다. 진정한 삶의 질, 진정한 효율을 고려하지 않는 경제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또한 경쟁과 성장으로 부자가 더욱 부자가 될 때 가난한 자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논리는 가난했던 나의 아버지마저 신봉했던 이상한 논리였다. 가난한 자에게 나누지 않으면 그들이 살아남을 수 없을 때(경제 논리로 보자면), 아니면 부자이나 인간으로서의 양심과 도덕에 의하여(인본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럴 때에만 부자들은 자신이 가진 걸 나눈다.(사실 전자가 더 설득력있다. 과학적이고) 뭐 대략 이렇게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이 혹은 그 추종자들 감추어 '어리석은 우중이 미처 깨닫지 못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야기를 장하준은 조목조목 까발려준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니 참 다행이다, 라는 말로 누군가 독서토론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대안은 없다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책에서는 유럽식 복지국가 모델에 대한 조심스러운 대안 제시가 있다. 구체적이지는 않으나 의미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논의가 잦아질 수록 사람들은 왜 꼭 미국식이어야만 하는가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세상은 하루 아침에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변화는 작은 데서 온다.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세상도 작은 균열에서 비롯된 충격으로 붕괴된다. 평범하고 합리적인 한 소시민이 난 이런 것 몰랐었다고, 새로운 세상을 본 것 같다고 놀라워한 그 충격에서 세상의 변화는 시작된다. 장하준은, 펜이 어떻게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주는 요즘 몇 안 되는 진정한 논객이다. 지식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