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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 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 ㅣ 서울대학교 관악초청강연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신영복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0년 12월
평점 :
읽을 게 뭐 있을까 싶었다. 남편이 먼저 읽고 이번에 대학에 들어가는 아들에게, 네 또래 아이들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권했다. 나는 샘들 독서토론 책으로 추천했다. 3월에 바쁘니 좀 가볍게 읽자고. 그리고 아들보다 내가 먼저 외출할 때 들고 나가 읽었다. 처음엔 너무 빨리 책장이 넘어가서 (물론 만 원도 안 되는 책이지만) 뭐야, 그랬다. 단 한 번의 강의를 책으로 만들어내는 건 상술 아닌가, 대학에서 말야, 이러면서... 그런데 그렇지 않다.
신영복 선생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사람이 한결같다는 것, 혹은 진흙밭에 굴러도 신의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게다가 강의 2부에 토론을 할 때, 사람들의 질문을 받고 그에 대답을 하는 장면을 읽을 땐 진정 공부해온 사람은 이렇게 대답하는구나, 싶었다. 중복되지 않으면서 일관되는 자기의 사상이 있다. 현학적이지 않으나 공부한 흔적이 있다.
새삼, 존경할 만한 몇 안 되는 사람이란 생각에 마음이 뿌듯하다가 생각에 먹구름이 끼어든다. 몇 해 전 한 여자 시인이 독설적이 시집을 한 권 냈다. 그 중 '돼지의 변신'이라는 시가 있는데 거기 은유된 돼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20년쯤 감옥에서 썩다' 내려 온 그를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비'로 모신다는 둥, 학생과 청중을 감동시키려 위선적인 노력을 하는 모습을 비꼬는 그 시가 도대체 누굴 얘기하는 것인지 읽으면서 자꾸 선생이 연상되어서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만약 비유가 맞다면 무슨 이유로 그렇게 묘사했는지(우리가 책이나 강의로 만나는 명사의 모습이 다 진실이라고는 물론 생각하지 않는다), 선생을 비꼰 게 아니라면, 누가 봐도 그를 말하는 듯이 보이는 이런 시를 출간한 건 간접적인 명예훼손일 수도 있는 게 아닌지, 궁금했다. 마음이 불편하다.
공감하는 부분들 이야기를 하자.
목수의 집그림 이야기가 나온다. 실천적인 삶을 산 사람과 관념의 틀에 갇힌 사람(선생은 자기 반성 속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의 차이가 집 그림을 그릴 때 주춧돌부터 그리느냐, 지붕부터 그리느냐로 나타난단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도마 위에 생선을 놓고 먹으려고 다듬으면서 우린 이 아름다운 생선의 살았을 적 모습을 못 보는구나, 늘 죽어있는 옆모습만 본다, 고 생각했다. 꽁치를 들고 그의 정면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이 두 갠데, 우린 옆으로 누운 눈 하나의 생선만 그린다. 혹은 자반이 되어 반으로 쪼개진 모습만 본다.... 몇 년 전 내가 가르친 아이 중 발달장애와 자폐증을 가진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만든 '나만의 시집:( 중3 남자 아이들이 A4 종이 4장을 반으로 접어 자기가 고른 시와 직접 쓴 시를 손으로 베끼고 그림을 그려 시집을 만들다.)에는 정면의 얼굴을 한 비둘기가 그려져 있다. 보통 아이들이 못 보는 그 아이의 시선을 우리 모두 놀라워했다. 물론 신영복 선생이 말하는 목수의 그림은 '일하는 사람의 관념성 탈피'에 대한 이야기이고 자신과 같은 지식인의 관념성을 비판하는 이야기지만 말이다. '다르게 생각하기'가 되지 않으면 관념성을 탈피할 방도가 없다.
변방과 마이너리티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에도 공감한다. 내 삶은, 어렵게 살아온 사람에 비하면야 비교적 순탄한 편이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부터는 늘 내가 비주류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대학 시절, 열심히 '투쟁'하지 못했던 나는 부끄러운 마음을 들고 야학에 가서 언니 오빠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시를 나누었다. 87년 6월 항쟁 때(지금이야 민주화운동이라고 그때 많은 시민들이 함께 했다고 논하지만)도 거리에서 만난 어른들은 학생들이 데모한다고 야단치고 조선일보 같은 신문에서 공부 안하고 데모나 하는 대학생들을 맹비난하는 기사를 싣는, 불심검문의 시대에 대학시절을 보내야 했다. 20세 이후 20여년 간 정치적으로 대부분 '지는 투표'를 해왔다. 또 내 삶의 거의 전부를 펼쳤던 '학교'라는 공간에서 나는 전교조 교사라는 이유로 늘 비난과 감시와 편견에 시달렸다. 학교의 중심이 아이들, 그리고 수업이었기에 망정이지 일반 회사같았다면 열심히 일하고도 평가에서 늘 뒷전인 채로 20년을 지내오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이너로 살아가다가 '변절'을 하기도 한다는 면에서 내 삶은 별 볼 일은 없었을지라도 부끄럽진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하련다. 바닥 끝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힘겹게 살아가는 어린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같은 아웃사이더로서!)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내가 분명히 믿는 것은,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뛰어난 능력과 권력을 지닌 자들인 듯 보여도 작고 찌질해보이는 것들의 순한 힘들이 세상을 망가지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뭉쳐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신영복 선생이 변방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창조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만 난 '착한 마이너'의 단결로 세상이 '소돔과 고모라'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굳게 믿는 것으로써 나만의 '변방론'을 정리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