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산문집 - 짧은 여행의 기록
기형도 지음 / 살림 / 199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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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가 놓고 간 이 세상의 시들이 갖고 있는 '완벽한 아름다움'에 비해 치졸하기 짝이 없는 산문들 - 조금 머리 큰 고등학생이 실존이니 죽음이니 헤겔이니 푸롬이니 하듯이 - 이 짜증나서 덮어두고는 너무 오래 동안 꽂아만 두었다. 어느 날, 미련하게 돌고돌아 2호선, 1호선을 타고 귀가하는 전철에서 그만 왕창 읽어 버렸다.

세상에서 그래, 꼭 그림같은 사람, 언어가 필요없는 사람, 꽃같고 바람같은 이, 산같은 사람... 들이 많지만 그야말로 그 이는 '시(詩)'인 사람이 있다. 장 꼭도가 '나는 시다' 라고 외쳤지만 기형도야말로 '시'다. 아니 그 인간은 내가 만나본 적도 없으므로 그 '인간'을 시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시, 그 안에 녹아 있는 그의 모든 것, 너무나 기형도다운 그 무엇, 그게 시다.

기형도의 시를 읽으면서, 이 세상에 단 하나요 더 이상 그 아무리 갖고 싶어 몸부림쳐도 더는 나올 수 없는 그의 시가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자꾸 산문도, 그에 대한 추억담도 찾아 읽었지만 역시 기형도는 그의 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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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 -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 개정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백낙청 외 옮김 / 창비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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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런 것은 '지적 허영심'이라고 지적했다. 나는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또한 비록 내가 교단에서 아이들에게 국어 또는 문학, 또는 예술을 가르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당장 이 책에 나오는 지식이 소요되는 것도 아니다. 쉽게 말하면 꼭 내가 이런 '아카데믹한'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이 책을(이런 비슷한 책들을) 읽는 목적도 지식을 축적해 언젠가 써 먹으리라는 실용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 왜? 답은 재미있어서, 이다.

정말 재미있게 이 책을 읽었다. 물론 지루한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책도 정확히는 '서양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라야 제목이 맞을 듯 싶게 어린 시절 명작깨나 읽었다 하는 나도 접해 본 적 없는 작품들을 다루고 있어 특히 중세 유럽의 문학사조에 대한 부분은 재미없기도 했다. 그런 몇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늘 그렇듯이 종과 횡으로 함께 책을 읽어나가는 재미가 만만치 않았다.

바로끄나 로꼬꼬, 낭만주의니 고전주의 등 무슨 계보를 형성해야 할 것만 같은 개념들을 지나갈 때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다시 뒤지고 괴테가 나오면 파우스트를 다시 읽고, 이런 식이었다. 그렇게 여러 날을 바쳐 읽고 밑줄 친 부분이 늘어나도 잘 정리가 되지 않아 나중에 '앗 그거 읽었던 부분인데 왜 생각이 나지 않지?' 그러면 황당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이렇게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위안한다. '어쨌든 참 재미있는 책이었어'

백낙청 씨가 역자 서문에 해박한 지식, 높은 안목, 그리고 일관된 관점을 이 저서의 미덕으로 꼽아 놓았다. 거기에 파란 밑줄을 박박 그으며 감탄했던 이유는 그 세가지 미덕은 교사가 갖추어야 할 요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또한 읽는 나는 지적 허영에 빠져 공부도 아니 하며 헤헤거리고 읽었을지라도 이 글을 쓴 아르놀트 하우저는 방대한 지적 소산을 쉽고도 명료한 문체로 무엇보다 대체로 편견없는 안목으로 풀어나갔다. 우리 나라의 숱한 지적 저작자들이 자기 자신도 모를 말을 어렵사리 풀어나가면서 지식 장사를 하는 것에 비하면, 이야말로 지식인이, 연구하는 학자가 갖춰야 할 자세를 보여주는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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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일기
목수 김씨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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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너무 '아무 것도 아닌 척'하는 작가의 글이 거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이 책을 열심히 읽은 것은, 그의 울퉁불퉁한 나무 작품들이 나의 취향과 너무 잘 맞고, 그가 살고 있는 곳이 내 좋아하는 양수리 부근인 듯, 비슷한 물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의 글이 감성적이냐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가 제목을 ~일기라고 붙여 놓은 의도도 아마 그런 것일 거다.

그가 스스로를 무슨 평론가도 아니요 예술가도 아닌 목수 김씨라고 끝까지 부르고자 함도 예술을 빙자한 무수한 사이비에 대한 에누리 없는 고집이다. 너무 고집스러워 오만해 보일 정도로 그는 자기가 만든 것은 '물건'일 뿐 절대로 '작품'이 아니라고 우겨댄다. 그래도 여전히 삶 그 자체가 예술일 수 있다고 믿는 나에게 그런 '우김'은 독선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가끔 '김씨'처럼 1인 시위를 벌이는 사람도 필요하다는 생각은 한다.

그가 아무리 우겨도 그가 만든 나무 '물건'들은 가까이 하여 자연의 냄새를 맡게 해 줄 것만 같아 가져보고 싶은 것들이다. 다리가 너무 빼쪽하여 디땅거릴 것만 같은 의자들을 보면 쓸만한 물건만 만들 것처럼 말하는 그의 말이 조금 의심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자연주의자? 이름을 붙이면 이미 그것이 아니라고 누가 말했던가. 이름 붙임을 거부하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그래도 너무 우기지는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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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비룡소의 그림동화 5
존 버닝햄 지음, 박상희 옮김 / 비룡소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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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그림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림이 너무 아름다워서이다. 그림책의 그림들이 아름다운 거야 당연하겠지만 대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과 색채를 가지다 보니, 말하자면 스케일이 오밀조밀하달까 하는 단점이 있는데 여기의 그림들은 그 자체를 작품이라 해도 아쉽지 않을 것들이 많다.

특히 기차를 타고 저녁해가 지는 들녘을 지나는 장면, 하얀 눈 덮인 곳으로 달려가는 기차의 얼굴, 다리 위를 지나가는 기차를 멀리서 잡은 그림들은 너무 아름다워서 아이들이 이 책을 읽어달라고 하지 않을 때에도 가끔씩 혼자 들여다 보곤 한다.

아주 작아 절대로 탈 수는 없는 장난감 기차를 탈 수 있는 아이의 상상력, 인간의 시야에는 들어올 수 없는 화면을 스케치북 안에 담아내는 화가의 눈길 - 그것은 마치 하느님이나 거인이 저 작은 아이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 도대체 이 세상 물체들의 크고 작음은 무엇이 진실인가.

나는 저 들녘을 달리는 기차 속에 타고 있어도 행복할 것 같다. 혹은 고즈넉이 수평선에 누워 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작고 작은 기차를 바라보는 거인이어도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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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친구하자 내 친구는 그림책
쓰쓰이요리코 / 한림출판사 / 199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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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내가 살던 집 뒤에 야산이 있었는데 거기에도 제비꽃이 많이 피었었다. 작은 요구르트 병에 가득 제비꽃을 꺾어 담아 마음 깊이 좋아하던 남자아이의 집에 찾아갔었다. 이사 온 아이와 사귀고 싶은 마음을 민들레와 제비꽃으로 수줍게 전하는 아이들의 조금 수줍고 호기심과 열망에 가득한 까만 눈동자는 내 딸의 것과 똑같다. 나도 그런 눈동자를 가졌을 것이다.

그림 속의 풍경은 이웃 나라의 것이지만 어쩐지 내가 어렸을 때 가 보았던 어느 읍의 모습 같기도 하다. 아파트나 높은 건물은 없다. 작은 규모의 이런저런 가게들이 한 줄로 이어진 중앙통에 늘어서 있고 멀리 산이 보인다. 그런 동네에서 살고 싶다. 저녁 무렵, 나의 다섯 살 난 딸 아이 손을 잡고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리며 찬거리를 사고 아이가 갖고 싶은 작은 소꿉 셋트를 사고 놀이터에서 조금 놀다 오고 싶다. 그림책을 읽어서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산을 향해 난 창문을 열고 혼자 술을 마시고 싶다...

아이의 그림책을 보면서 주제넘게 나의 공상에 빠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진심으로 아이들의 그림책을 좋아하고 거기에 푹 빠져서 읽는다. 그것도 여러 번을. 이제는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찾아보기 어려운 책 속의 마을 풍경을 거꾸로 내 아이들은 마음 속에 담아 두었다가 어른이 되어 그런 세상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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