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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ㅣ 진경문고 5
정민 지음 / 보림 / 2003년 2월
평점 :
내 직업은 교사이다. 정말 좋은 수업은 내가 잘 알고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고 준비될 때 가능하다. 이 책은 정민 교수가 정말 가슴으로 읽은 한시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잘 알고, 진정 사랑하는 것을 아이들이 알아듣기 쉽게 쓴 책이다. 삐아제가 맞나, 아무리 어려운 내용도 잘 구성하면 대여섯 살 꼬마들에게도 가르칠 수 있다고 한 이가. 어려운 내용일수록 나이 어린, 혹은 그 분야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일단 흥미를 끌어내는 것도 어렵고 흥미를 지속시키는 것도 어렵다.
한시라니, 국문학을 전공한 나도 한시 관련 서적은 손에 잘 만져지지 않는데, 일부러 공부삼아 읽지 않으면 읽히지 않는데, 또 열심히 공부하다가도 책 덮어버리면 잊어버리기 일쑤인데, 아이들에게 한시라니..
한자와 한시의 구성과 글자의 뜻을 말하려 들면 참 무모한 시도였을 것이다. 물론 책을 다 읽은 지금도, 한시가 가지고 있는 글자마다의 뜻의 미묘한 차이(물론 어느 나라 어휘에나 그런 느낌이나 용처나 어감의 차이는 다 있게 마련이고 그 차이까지 느낄 수 있는 지경이 되어야 언어를 제대로 공부했다 할 수 있겠지)를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데에는 역시 한계가 있는 듯 싶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적어도, 한시가 말장난이나 풍류를 가장한 헛몸짓의 산물이 아니고, 그 안에 혼과 정을 실어냈던 문학작품으로서의 깊이를 지녔던 것이란 점, 그리고 그 안에 아주 재미난 이야기들이 담겨있음을 알게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매우 훌륭하다.
물론, 짧은( 5언 절구라 해도 다 해 봐야 20자밖에 안 되는 시들 아닌가) 시 안에서 종으로 횡으로 깊고 넓은 여러가지 정황들을 읽어내고, 아끼고 아끼고 다듬고 다듬어 짜낸 영혼의 피 한 방울같은 한 글자에 담긴 정신과 정서를 읽어내려니, 헤아린 사람의 마음이 앞질러 가기도 한다. 시를 지나치게 해석하려 들면 시인 스스로도 의도하지 않은 부분들이 평론가에게 읽히기도 하는 주객전도가 일어나기도 하지 않는가(수능문제에 대한 최근의 논란 - 한 시인이 나도 의도하지 않은 내 시의 의도를 문제로 냈다고 일갈했다던- 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그것이 문제를 만들기 위한 문제이거나 상업적인 의도로 과대포장되어 팔리게 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아니라면, 시는 쓴 사람 뿐 아니라 읽는 이의 것이기도 하다는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시인은 의도하지 않았으나 독자인 나의 경험과 감정선에 그 시가 닿아 일으키는 정서적 스파크라는 게 있다. 독자들 스스로도 잘 모르고 있던 자기 안에 숨겨진 시성, 혹은 시에 대한 이해의 샘물을 찾아 한시의 깊은 물줄기와 그것을 이어 아름다운 시적 감수성의 물꼬를 트게 하려는 진정하고도 따뜻한 노력을 정민교수가 한 것이다.
재미난 이야기가 많다. 정지상 귀신이 김부식의 시를 뛰어넘더란 이야기는 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수업시간에 한 번쯤 활용하고 싶은 일화이고 아비 그리울 때 보라던 임경업 필사본 이야기도 아이들과 박씨전같은 고전소설 가르칠 때 들려줄 만한 이야기이다. 책 뒤의 한시 원문과 시인들에 관한 정보도 매우 유용하다.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사주기 전에 부모가, 교사가 먼저 읽었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나라 어른들도 중고등학교 시절 한시나 우리 옛사람들의 문학에 대해 재미있게, 가슴으로 배울 기회는 없었지 않았는가 말이다. 아이들 핑계를 대고라도 우리들이 먼저 가슴과 머리를 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