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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 속을 걷다 - 이일훈의 건축 이야기
이일훈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남편이 이 책을 읽으며 감탄한다. 저자의 따뜻한 시선에 말이다.
여고 시절, 한때 내가 되고 싶었던 건축가의 모습은 아마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집을 짓는 사람 말이다. 그런 미련 때문에 살아 생전 아마 절대 써먹을 일도 없을 건축에 관한 글들을 자꾸 찾아 읽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건축은, 집은 가진 자의 것이다. 그냥 '집'도 그러한데 '멋진' 집이라면 더더욱, 돈이 없이는 가질 수 없는 것일 것이다. 예술의 전당을 지나면서(물론 예술의 전당은 진정으로 아름다운 건축물은 아니지만) 사회주의 세상에서 저런 건축물이 가능할 것인가, 저것은 자본의 산물인가 아닌가, 하는 상념에 젖어본 적이 있다. 모두다 평등해져서 모두가 가난해진 사회, 아름다움이 뭔지도 모르게 살아가야 하는 사회는 아무리 평등사회라 해도 디스토피아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부의 집적물을 몇몇이 독식하지 않고 아름다운 집도 함께 나누고 예술도 함께 나누는 진정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저자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는 은근히 많다. 따뜻한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 그런데 세상은 왜 바뀌지 않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큰 욕심도 부리지 않고 모여서 무언가를 도모하지 않는다. 작고 낮고 느리게... 그렇게 살아서일까. 세상이 진정 따뜻한 곳이 되려면 착한 사람들은 조금 더 똑똑하고 강해져야 한다.
버리기 아까운 모형을 두고 상념을 모아 적었다고 한다. 나는 건축 미니어처를 참 좋아한다. 어렸을 때 만들었던 집, 방 모형, 그 안에 작은 사람과 세상들의 꿈을 담아 보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건축모형들을 볼 때마다 그런 꿈들을 다시 꾼다. 나같은 이도 그러니 직접 모형을 만들고 집을 지은 사람은 오죽하랴.
그런데, 아쉽다. 흑백 모형 사진은 흐릿하고 이것이 집이 되었을 때 어떻게 살아날 지 상상이 되지 않을 만큼 애매한 것들이 많다. 어떤 집이 되었는지 보고 싶어진다. 또, 읽다 보면 구상은 했으되 집이 되지 못했노라, 는 것들이 많았다. 아쉬운 일이다. 마당, 구석, 골목, 틈새,.. 그의 '채나눔'이 추구하는 건축 정신은 그것들과 한 맥락이다. 21세기에 18세기식 한옥(엄밀히 말하면 기와집) 그 양식에 집착하기보다 지금 현재 살아가는 사람들의 혼이 담긴 집을 생각하라고, 그것이 진정한 전통이라고 일갈하는 지은이는 집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집이란 사람이 담기는 그릇이고 말없지만 영혼을 가진 유기체이기도 하다. 따뜻한 집 많이 지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