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애
김별아 지음 / 문학의문학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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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소설을 읽고 나서 가네코 후미코를 검색했다. 이미 서경식의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에서 그녀를 만났었기에 그 이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지만 인터넷에 떠있는 후미코에 대한 자료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박열의 무릎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사진이다. 소설 속에서는 수감 중 한 검사의 선처로 사진을 찍은 것으로 나오지만 사실 사진은 묘하게 기괴하고 묘하게 에로틱하다. 기대 앉았다기보다 거의 누웠다시피한 두 남녀의 눈빛이나 표정이 이 세상 사람들의 것 같지 않다. 이 사진을 왜 일본 우익에서 선전과 비방용으로 썼는지 알 것 같다. 어쩌면 김별아도 이 사진을 보면서 강렬한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사실은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에 갈 일이 있어 시간 때우기용으로 집어든 책이었다. 제목좀 봐라, 열애라잖니...게다가  김별아라면  연애소설이라도 허접하게 쓰진 않을 것이니까.. 하고 펼쳤는데 세상에! 처음부터 박열과 후미코의 이름이 나온다. 한겨레 신문에서 김별아의 칼럼을 읽을 때마다 세상의 아픈 구석을 문학의 시선으로 본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자주 느꼈는데 그럼 그렇지, 결국 김별아는 이런 소설을 쓰기에 이르렇군, 이런 느낌이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사랑으로 미화를 하거나 문학적으로 감칠맛을 입히기엔 박열과 후미코의 생애가 너무 거칠었다. 그들이 서로에게 열정적으로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시대와 역사와 변혁에의 열정이 함께 얽혀 상승작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설도 조금은 거칠다. 읽는 내내 이것은 단지 소설이 아니라 후미코의 자서전에 근거를 두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심지어는 책을 읽다 낮잠에 빠진 어느 날은 20세기를 일본의 번화가를 걷는 두 사람 꿈을 꾸기도 했다. 그들이 1990년대 어느 때쯤 20대를 보냈다면 그토록 아프진 않았겠지, 그들의 열정을 또다른 모습을 띄었겠지, 하고 상상했던 것이다. 

그들이 천황폭살의 음모를 꾸몄다는 죄명으로 감옥에 갇히고 재판을 받는 장면을 읽으면서 작가가 열에 달떠 미친듯이 이 장면을 써나가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소설을 이렇게 읽으면 안 되는데 자꾸 카메라를 당겼다 끌었다 하는 영화감독처럼 읽고 있는 스스로를 어쩔 수 없이 발견한다. 소설 속 인물에 동화되기엔 후미코가 너무 아프고 박열이 너무 전형적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실존인물들이기에 더 그랬을 것 같다.  

이 소설이 가네코 후미코를 위한 소설이기를 바란다. 연인의 죽음을 뒤로 하고 20여 년을 더 감옥에서 살고, 조국으로 돌아가 또 다른 행보를 보였던(박열 같은 사람이 왜 이승만을 지지하게 되었는지는 알고 싶지 않다. 소설에서 현실로 갑자기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박열...) 박열에 대한 소설이 아니라. 

이 소설이 어떻게든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다면 꼭 서경식의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같은 사람도 같은 시대도 조명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고 그 다양한 방법을 통해 보아야 잘 볼 수 있다. 서준식의 시각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게 된다. 김별아의 후미코가 아름답고 슬펐다면 서준식의 후미코는 보다 당당하고 문학적으로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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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 유쾌한 미학자 진중권의 7가지 상상력 프로젝트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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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오디세이를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던가.  그에 속아서 이러저러한 미학 입문서, 예술 관련 책들을 읽었지만 사실 미학이나 예술사학이나 예술 서설 들은 꼭 재미있지만은 않았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진중권만큼 미학을 대중적으로 잘 다룬 저술가가 드물다는 뜻이 될지도 모른다.  

TV에서 본 진중권의 독설에 질린 사람들에게 그의 저서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유시민과 그의 공통점은 글은 말만큼 독하지 않을 뿐더러 진정성과 노력의 흔적들로 가득하다는 것. 사실 그들의 독설은 안으로 가득한 무수한 상념(철학?)과 논리의 '분출'이 너무 거세서 그렇게(독설이라고)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은 너무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사실 여러가지 장난기가 가득한 놀이들에서 미학을 찾는 일이 그야말로 장난스러울 수도 있는데 그 안에서 인생의 철학과 풍자와 정치적 의견의 표출을 찾는 일은 절대 장난스럽지 않다. 가면으로 권력에 대항하고 풍자적 인형극으로 시대에게 한방을 먹이던 미학을 연상하면 된다. 애너그램, 왜상, 각종 놀이, 인형극과 광대, 수수께끼와 미로 등 기괴하고 허무한 장난질들을 모아 그것들의 역사와 공통점을 꿰는 솜씨가 대단하다. 재미와 의미,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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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일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4
장 주네 지음, 박형섭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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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어서라기보다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읽었다. 장 주네라는 이름에 대한 공부를 위하여... 

대학생 때, 남편과 경복궁 뒤에 있던 프랑스 문화원에서 프랑스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한글 자막은 커녕 영어 자막도 없었던 것 같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화였는데 우리는 그냥 자막 탓인가 했지만 사실 대개의 프랑스 영화들이 그렇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된다. 하지만 나는 프랑스 영화가 좋다. 논리적이거나 인과응보적이기보다 이미지가 강하고 느낌을 중시하는 프랑스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에 혼자 앉아 있는 시간들도 좋아한다. 

'도둑일기'는  프랑스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퐁네프의 연인'의 알렉스(드니 라방)이 연상되는 주인공은 온갖 악행과 일탈에 발을 푹 담그고 있지만 자신을 그렇게 만든 운명을 원망하거나 거기서 빠져나오고 싶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 하는 걸인, 도둑, 남창 들에게서 무한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감정이라는 게 있을 터이다. 쾌적한 잠자리와 멋진 옷,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 들에 대한 열망, 불안이나 공포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마음, 안정을 추구하는 마음.. 범죄자나 부랑인들이 그로부터 멀리멀리 떨어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어서'이지, 그것을 '원해서'는 아닐 것이다...라고 믿어왔다.  거기에도 미학이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포장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조폭영화가 때로 멋지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폭력을 아름답게 '포장'하기 때문이지 때리고 맞는 장면이 정말로 아름답기 때문은 아니지 않을까?  

그런데 장 주네는 아닌가 보다. 그는 범죄자들의 잔인함과 폭력성에서 매력을 느끼고 도둑질과 도망질에서 쾌감을 느낀다.그가 위악을 떨었던 게 아니라면 정말 그는 더러움, 치졸함, 거칠고 불안함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소설은 더러더러 역겹다. 뒤틀린 도덕감은 심하게 거부감을 부른다. 그러나 장 주네가 악하고 뻔뻔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그의 슬픔 때문이었다. 한없이 허무한 사내가 유럽의 국경을 넘나든다. 역 주변을 떠돈다. 그날 만난 남자에게 사랑을 구걸한다. 더러워진, 훔친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아무 데나 휘적거리고 떠도는, 혹은 도망다니는 그의 옷자락은 늘 바람과 함께 한다. 그 슬픔이 그를 악하게도, 위악적이게도, 경멸스럽게도 만들지 않는다. 슬퍼하는 도둑, 허무해하는 마약밀매업자라니.. 홍콩 누아르나 한국 조폭 영화가 담아내려는 것도 그보다는 조야하지만 사내들의 허무였기에 그나마 미학적으로 보였는지도 모른다.  

허무의 미학, 삶에 매달리지 아니하는, 삶 저 너머에 아무 것도 없다는, 인식, 인식할 것조차 없는 인식의 그 허랑함...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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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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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가 워낙 재미있어서, 작가의 이름만 보고 책을 골랐다. 더구나 왕따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니, 아이들에게 문학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딸에게 읽힐 생각이어서 집어든 몇 권의 청소년 소설들, 요즘 성장소설들은 왜 이리 재미있는 거냐. 하루에 한 권씩 읽어제끼게 된다. 이 책도 참 재미있어서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다.  

작년에, 아이들에게 왕따 예방교육을 하면서 일본 소설 '미안해 스이카'를 일부 읽혔다. 그 소설이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이지메를 다루고 있었다면, 그래서 오히려 우리 아이들에게 "저는 그렇게까지 괴롭히지는 않았어요."라는 변명을 하게 만든다면, '우아한 거짓말은' 많은 아이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지속적이고 악의적으로는 아닐지라도 대체로 그런 '우아한 거짓말'에 발을 담그고 살고 있다.  

아이들은 아니 그런가.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끔찍한 폭력이 아니라, 하루하루 숨통을 조이는 왕따와 괴롭힘이 만연해 있다. 학교에서도 이건 왕따인 건지 아닌 건지, 괴롭힌 건지 장난을 친 건지, 아이들이 잘못한 건지 괴롭힘 당한 아이가 원인 제공을 한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 애매한 괴롭힘이 매일 일어난다. 때론 심증은 있으되 물증은 없는 괴롭힘도 많이 일어난다. 사건이 일어난 후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에 대한 수많은 논의들이 있지만, 사실은 그런 일이 일어나게끔 하는 교묘하고 교활한 사회 분위기가 문제이고 아이들 전체를 향해 배려심과 역지사지할 수 있는 능력과 인간 존중에 대한 인성교육을 해야 극복될 문제이다.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았기에 더 우울하게 읽힌다. 결국 주인공 천지는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이 자기자신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털실뭉치를 그 사람에게 (누군지 밝히면 스포일러가 될 터이라 그가 누군지는 쓰지 않겠다.) 주고 갔는지도 모르겠다. 알면서 왜 그랬니, 천지야.. 하긴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이 괴로움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음을, 머리는 알아도 가슴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간들이 있다. 아무 이유 없이도 이 흐린 날 저녁이 미친 듯이 죽고 싶기도 하고, 아무 이유도 없는데, 내일이면 괜찮을 텐데, 지금 잠깐 누가 나타나면 금방 이 기분은 사라져버릴텐데, 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우울한 기분이 들 땐 무슨 좁고 기다란 통로로 한 없이 낮게낮게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데, 천지, 어린 그 소녀, 명백히 죽고 싶은 이유가, 오래 지속된 이유가, 세상 나 혼자 남겨진 외로움으로 견뎌내기 어렵던 이유가 있던 그 아이는 왜 아니 그랬겠는가... 조금만 버텼으면, 나 어린 날 왜 그리 사소한 일로 괴로웠을까, 하고 떠올렸을 수 있을 그 날들이, 그래서 더 허무하고 황당한 그 날들이... 

저자의 후기를 읽어보니, 저자는 청소년기에 천지와 비슷한 외로움과 공포를 분명 경험했다. 그래서 아이들의 그런 선택에 대해 매우 공감한다. 후기를 읽으면서 비로소 코끝이 찡했다. 견뎌내고, 이제 그 때의 빚을 이렇게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작가는 어린 날의 화연이, 어린 날의 천지를 용서하고 격려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경험만이 좋은 작품의 원천이 되는 것은 아니나 분명 진정성을 짊어지고 가는 면이 있다. 

다만, 천지를 잃고 나서도 여전히 입담이 좋은 천지 엄마는, 도저히 이해가 되는 캐릭터는 아니다. 그렇게 긍정적이고 밝고, 아이들과 말이 통하는 엄마였는데도 천지와는 그렇게 막혔던 것일까. 그랬다치더라도, 딸이 죽고 나서도 털털한 척하면 이겨내는 모습이 그렇게가 아니면 견딜 수 없어서라고 이해한다 해도 과장된 감이 있다. 내가 만난 사람들과 아주 다른 유형의 인물들도 세상에는 있기야 하겠다. 완득이에 나타난 인물들의 대책없는 털털함과 긍정성이 엄마에게도 나타난다. 저자의 또다른 얼굴일지도 모르겠다.  

내 딸은, 중간쯤 읽다고 그만 읽겠다고 했다. 무섭단다. 어두운 이야기를 싫어하는 아이다. 사실 무서운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같은 여자중학생으로서, 괴롭히는 아이와 괴롭힘 당하는 아이의 심리르 모두 잘 이해할 것이라고 본다. 무섭다는 딸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던 것은 이 아이가 화연과 천지 중간 어디쯤에라도 잠시 서 있어 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내가 천지 엄마나 화연엄마처럼 되지 않으려면 아이 가슴 깊이 숨겨 있는 그 어두운 방에 들어가 불을 밝혀줘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러고 보면 천지 엄마, 당신 왜 그렇게 둔했어? 하고 탓할 일만도 아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복잡한 자기자신을 잘 모르겠듯이 이 땅의 엄마들도 딸과 함께 어떻게 손 잡고 가야할지, 잘, 모르는 여리고 어리석은 슬픈 암컷어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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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도시락을 훔쳐 갔을까?
예안더 지음, 전수정 옮김 / 해와나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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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고3인 우리 아들이 일고여덟 살 때 즈음, 서점을 순례하고 그림책 비평서를 여러 권 읽으면서 좋은 그림책 목록을 주욱 뽑아 그림책 무더기를 사들이고 아이들과 읽었었다. 매일 밤, 꼬물거리는 작은 아이와 이제 글씨를 더듬더듬 읽기 시작한 큰 아이를 양 쪽에 끼고 그 책들을 하나씩 읽어가던 그 시절이 힘들었지만 가장 아름답던 시절이었을 것 같다. 

우리 집 아이들은 이제 다 커서 그 그림책들은 조카네 집으로 뿔뿔히 흩어져버렸지만 올해 중1 기초학습반 아이들을 만나면서 다시 그림책을 읽는다. 읽기 쓰기가 잘 안 되는 아이들이고 엄마 없이 큰 아이도 있어서 그림책이 맞춤이란 생각이 든다. 최근에 새로 나와서 내가 잘 모르는  그림책을 아이들 옆에서 같이 읽는다. 소리없이 다들 그림책을 읽고 가끔 낭독을 하기도 하고 퀴즈도 한다. 서로 다른 책 내용을 친구에게 들려주기도 하고 간단하게 글을 쓰기도 한다. 

그 중 이 '누가 내 도시락을 훔쳐 갔을까?'는 학교나 도시락이나 원숭이나 다 아이들이 좋아할 소재들인데다가  친구의 없어진 도시락을 찾아주는 아이들의 마음과, 도시락을 훔쳐먹은 원숭이를 이해하는 마음이 참 예쁘고 따뜻해서 더 재미있는 책이다. 왕따니 뭐니 하고, 친구가 곤란해져도 나 몰라라 하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인성교육을 겸해줄 수 있는 참 좋은 책이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한 20년 전쯤으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하지만 뒷산에 나타난 원숭이 이야기를 보면 얼핏 풍경이 비슷해 보여도 중국(대만) 이야기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살짝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지금 나와 공부를 하는 두 아이, T와 J는 친구들에게 괴롭힘도 많이 당하는 아이들이지만 서로 다른 책을 읽고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땐 자신감도 넘치고 의기양양해지기도 한다. 나는 나대로 다른 그림책에 빠져 책을 읽는 시간에는 내 아기들이 어렸을 때의 시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특히, 일찌감치 엄마가 도망가버려 없는 J, 그래서 그림책도 충분히 읽을 기회가 없었을 그 애에게 이 시간이 읽어버린 어린 날을 조금이나마 채워주는 시간이 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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