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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ㅣ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완득이가 워낙 재미있어서, 작가의 이름만 보고 책을 골랐다. 더구나 왕따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니, 아이들에게 문학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딸에게 읽힐 생각이어서 집어든 몇 권의 청소년 소설들, 요즘 성장소설들은 왜 이리 재미있는 거냐. 하루에 한 권씩 읽어제끼게 된다. 이 책도 참 재미있어서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다.
작년에, 아이들에게 왕따 예방교육을 하면서 일본 소설 '미안해 스이카'를 일부 읽혔다. 그 소설이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이지메를 다루고 있었다면, 그래서 오히려 우리 아이들에게 "저는 그렇게까지 괴롭히지는 않았어요."라는 변명을 하게 만든다면, '우아한 거짓말은' 많은 아이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지속적이고 악의적으로는 아닐지라도 대체로 그런 '우아한 거짓말'에 발을 담그고 살고 있다.
아이들은 아니 그런가.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끔찍한 폭력이 아니라, 하루하루 숨통을 조이는 왕따와 괴롭힘이 만연해 있다. 학교에서도 이건 왕따인 건지 아닌 건지, 괴롭힌 건지 장난을 친 건지, 아이들이 잘못한 건지 괴롭힘 당한 아이가 원인 제공을 한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 애매한 괴롭힘이 매일 일어난다. 때론 심증은 있으되 물증은 없는 괴롭힘도 많이 일어난다. 사건이 일어난 후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에 대한 수많은 논의들이 있지만, 사실은 그런 일이 일어나게끔 하는 교묘하고 교활한 사회 분위기가 문제이고 아이들 전체를 향해 배려심과 역지사지할 수 있는 능력과 인간 존중에 대한 인성교육을 해야 극복될 문제이다.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았기에 더 우울하게 읽힌다. 결국 주인공 천지는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이 자기자신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털실뭉치를 그 사람에게 (누군지 밝히면 스포일러가 될 터이라 그가 누군지는 쓰지 않겠다.) 주고 갔는지도 모르겠다. 알면서 왜 그랬니, 천지야.. 하긴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이 괴로움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음을, 머리는 알아도 가슴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간들이 있다. 아무 이유 없이도 이 흐린 날 저녁이 미친 듯이 죽고 싶기도 하고, 아무 이유도 없는데, 내일이면 괜찮을 텐데, 지금 잠깐 누가 나타나면 금방 이 기분은 사라져버릴텐데, 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우울한 기분이 들 땐 무슨 좁고 기다란 통로로 한 없이 낮게낮게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데, 천지, 어린 그 소녀, 명백히 죽고 싶은 이유가, 오래 지속된 이유가, 세상 나 혼자 남겨진 외로움으로 견뎌내기 어렵던 이유가 있던 그 아이는 왜 아니 그랬겠는가... 조금만 버텼으면, 나 어린 날 왜 그리 사소한 일로 괴로웠을까, 하고 떠올렸을 수 있을 그 날들이, 그래서 더 허무하고 황당한 그 날들이...
저자의 후기를 읽어보니, 저자는 청소년기에 천지와 비슷한 외로움과 공포를 분명 경험했다. 그래서 아이들의 그런 선택에 대해 매우 공감한다. 후기를 읽으면서 비로소 코끝이 찡했다. 견뎌내고, 이제 그 때의 빚을 이렇게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작가는 어린 날의 화연이, 어린 날의 천지를 용서하고 격려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경험만이 좋은 작품의 원천이 되는 것은 아니나 분명 진정성을 짊어지고 가는 면이 있다.
다만, 천지를 잃고 나서도 여전히 입담이 좋은 천지 엄마는, 도저히 이해가 되는 캐릭터는 아니다. 그렇게 긍정적이고 밝고, 아이들과 말이 통하는 엄마였는데도 천지와는 그렇게 막혔던 것일까. 그랬다치더라도, 딸이 죽고 나서도 털털한 척하면 이겨내는 모습이 그렇게가 아니면 견딜 수 없어서라고 이해한다 해도 과장된 감이 있다. 내가 만난 사람들과 아주 다른 유형의 인물들도 세상에는 있기야 하겠다. 완득이에 나타난 인물들의 대책없는 털털함과 긍정성이 엄마에게도 나타난다. 저자의 또다른 얼굴일지도 모르겠다.
내 딸은, 중간쯤 읽다고 그만 읽겠다고 했다. 무섭단다. 어두운 이야기를 싫어하는 아이다. 사실 무서운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같은 여자중학생으로서, 괴롭히는 아이와 괴롭힘 당하는 아이의 심리르 모두 잘 이해할 것이라고 본다. 무섭다는 딸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던 것은 이 아이가 화연과 천지 중간 어디쯤에라도 잠시 서 있어 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내가 천지 엄마나 화연엄마처럼 되지 않으려면 아이 가슴 깊이 숨겨 있는 그 어두운 방에 들어가 불을 밝혀줘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러고 보면 천지 엄마, 당신 왜 그렇게 둔했어? 하고 탓할 일만도 아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복잡한 자기자신을 잘 모르겠듯이 이 땅의 엄마들도 딸과 함께 어떻게 손 잡고 가야할지, 잘, 모르는 여리고 어리석은 슬픈 암컷어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