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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일기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4
장 주네 지음, 박형섭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평점 :
읽고 싶어서라기보다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읽었다. 장 주네라는 이름에 대한 공부를 위하여...
대학생 때, 남편과 경복궁 뒤에 있던 프랑스 문화원에서 프랑스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한글 자막은 커녕 영어 자막도 없었던 것 같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화였는데 우리는 그냥 자막 탓인가 했지만 사실 대개의 프랑스 영화들이 그렇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된다. 하지만 나는 프랑스 영화가 좋다. 논리적이거나 인과응보적이기보다 이미지가 강하고 느낌을 중시하는 프랑스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에 혼자 앉아 있는 시간들도 좋아한다.
'도둑일기'는 프랑스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퐁네프의 연인'의 알렉스(드니 라방)이 연상되는 주인공은 온갖 악행과 일탈에 발을 푹 담그고 있지만 자신을 그렇게 만든 운명을 원망하거나 거기서 빠져나오고 싶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 하는 걸인, 도둑, 남창 들에게서 무한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감정이라는 게 있을 터이다. 쾌적한 잠자리와 멋진 옷,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 들에 대한 열망, 불안이나 공포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마음, 안정을 추구하는 마음.. 범죄자나 부랑인들이 그로부터 멀리멀리 떨어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어서'이지, 그것을 '원해서'는 아닐 것이다...라고 믿어왔다. 거기에도 미학이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포장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조폭영화가 때로 멋지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폭력을 아름답게 '포장'하기 때문이지 때리고 맞는 장면이 정말로 아름답기 때문은 아니지 않을까?
그런데 장 주네는 아닌가 보다. 그는 범죄자들의 잔인함과 폭력성에서 매력을 느끼고 도둑질과 도망질에서 쾌감을 느낀다.그가 위악을 떨었던 게 아니라면 정말 그는 더러움, 치졸함, 거칠고 불안함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소설은 더러더러 역겹다. 뒤틀린 도덕감은 심하게 거부감을 부른다. 그러나 장 주네가 악하고 뻔뻔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그의 슬픔 때문이었다. 한없이 허무한 사내가 유럽의 국경을 넘나든다. 역 주변을 떠돈다. 그날 만난 남자에게 사랑을 구걸한다. 더러워진, 훔친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아무 데나 휘적거리고 떠도는, 혹은 도망다니는 그의 옷자락은 늘 바람과 함께 한다. 그 슬픔이 그를 악하게도, 위악적이게도, 경멸스럽게도 만들지 않는다. 슬퍼하는 도둑, 허무해하는 마약밀매업자라니.. 홍콩 누아르나 한국 조폭 영화가 담아내려는 것도 그보다는 조야하지만 사내들의 허무였기에 그나마 미학적으로 보였는지도 모른다.
허무의 미학, 삶에 매달리지 아니하는, 삶 저 너머에 아무 것도 없다는, 인식, 인식할 것조차 없는 인식의 그 허랑함...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