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인간 - 인류에 관한 102가지 수수께끼
마빈 해리스 지음, 김찬호 옮김 / 민음사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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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장난 아니게 두껍지만, 두께에 질릴 필요는 전혀 없다. 그것이 원저작부터 그런 것인지, 우리나라 출판사에서 그리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제별로 3~4페이지를 넘기지 않게 작은 장으로 쪼개놓아 읽기에 부담도 없고(그 장들은 다음 장과 연결되어 있다. 이를테면 장의 끝부분에 그런데 일부일처제는 인간에게만 있는 걸일까? 이런 식으로 다음 장으로 이어질 질문을 남긴다.) 즉 한 장(章)씩 읽어도 무리가 없고 긴 호흡으로 읽어도 좋다는 말이다.

문화인류학이란 학문을 우리의 중등교육 체제의 어느 구석에서 배우고 가르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우리 민족을, 우리 사회를, 남들을, 문화를, 인간을 이해하는 데에 필수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학문으로서의 학문이 아니라 실생활에 꼭 필요한. 그러나 아마도 교과목 중 세계사나 사회 과목 등에서 교사에 따라 언급이 될지언정 전혀 가르쳐지고 있지 않는 학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의 어떤 부분은 그 자체로 중학생에게 읽혀도 무리가 없을 만큼 쉽고 재미있다. 차례를 펼쳐 보라. 동성애라든지 일부다처제와 같은 결혼제도나 식인풍습 따위는 참 흥미진진한 주제로 보이지만 그런 풍습과 현상을 구조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는 결코 단지 선정주의적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 쉽고 재미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문제들이 인간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전쟁, 주술, 경체, 권력 따위의 주제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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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저녁 - 개정판 민음의 시 56
유하 지음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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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라는 사람을 잘 모르지만, 시를 통해서 본 그 사람은 그야말로 내 스타일은 아님이 분명하다. 어쩌면 그는 재치만 창천한 사람일지도 모르겠고 쉽게 누군가를 사랑하고 자기 감정에 빠져 잘 허우적거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은 또 쉽게 식어버리고 잊어버리기도 하지 않는가. 그러나 사랑을 앓는 순간에 썼던 시를 거듭 읽으며 자기도취에도 쉽게 빠진다.

이것이 내가 유하의 시들을 몽땅 사들이면서 받은 그 사람에 대한 추측들이다. 번연히 내가 좋아할만한(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과 저자의 인격이 일치하지 않으면 읽지 않는다) 사람이 아닌 줄 알면서도 그의 시를 다 사모으는 일이, 마치 사랑할만한 가치가 없는 남자에 매혹되어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일과 비슷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가슴아플때 그의 '사랑의 지옥' 따위의 시들을 다시 한 번 수첩에 옮겨적어보곤 한다. '바람 한 톨, 잎새 하나에도 주술이 깃들고(너무 오랜 기다림)''세상의 모든 저녁' 따위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귀절이나 제목들은 그의 재치의 소산인지, 그가 다른 이들의 공감대를 읽어내고 말로 이르는 능력이 뛰어난 것인지, 아니, 나의 감정선이 매우 얄팍한 건지... 하여간 그의 시를 때론 사춘기때 불렀던 노래처럼 자주 읊어본다. 그래도 영화를 만드는 그는 배신을 때리고 돌아서는 연인의 뒷모습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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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 - 대중가요를 통해 바라본 우리 시대 이야기
이영미 지음 / 황금가지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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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씨는 글과 말이 거의 비슷한 사람이다. 라디오에서 그를 몇 번 들었다. 그의 조금 빠른 말투, 쉽고도 정곡을 콕 찌르는 말발과 시선이 글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대중문화는 아주 중요한 사회현상이다. 지금에야 우리 모두, 그렇지, 라고 동의하겠지만, 대중문화평론가가 명함에 찍혀 부끄럽지 않은 세상이 되었지만 한 10년 전쯤에야 어디 그랬나. 세상 모든 일이 한 번 하고 두 번, 세 번을 거듭하면 어떤 경향을 띄고 문화가 되는 것 아닌가. 하물며 노래야.

가령, (이영미 씨는 많이 폄하하였지만) 대학가요제에 나오는 노래 가사들은 떠나간 님만 말고 바다도 연극 무대도, 옛시도 노래하건만 그냥 가요, 특히 트로트들은 왜 울고짜는 이별과 버림받음만 노래할까, 그런 게 나 고등학생 때도 궁금했었다. 거기에 어떤 구조적인 이유나 음모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조용필이 좋지만, 그야말로 마음으로 귀로 '땡기는' 것 말고 조목조목 그에 대한 논리적인 분석과 설명을 듣고 싶었다. 특히나 우리가 20대 때 눈물을 흘리며 불렀던 노래들이 이제는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된 채로 그냥 사라져 버리지 않게 그 노래들의 뿌리를 찾아 누군가가 뭐라 말좀 해 주었으면 좋겠더라. 그 모든 이야기를 이영미가 했다.

아니, 사실은 다 한 것 같지는 않다. 좀더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 그의 거론 중에 내가 좋아하던 노래가 더 많이 나오면 좋겠지만 아니더라도 난 다 읽은 이 책에 나온 노래제목들을 리스트로 만들어 볼 생각이 있고 그토록 가사에 진정성이 있었음을 몰랐던 '전선야곡' 같은 노래들을 애창곡으로 연습하며 가슴에 새겨볼 의향도 있다. 21세기의 입장에서 80년대 민중가요를 이 책보다 조금만 더 깊게 다루어 준다면 기꺼이 사서 읽을 뜻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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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길벗어린이 작가앨범 4
이주홍 글, 김동성 그림 / 길벗어린이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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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가슴이 턱 막힌다. 저 푸름, 저걸 난 알고 있다. 세상엔 얼마나 많은 초록이 있나. 그 중 아련하고 슬픈 초록이 있다. 산은 때론 얼마나 비장한가. 이 책에 나오는 산은 근엄하진 않지만 아련하구나. 이야기는, 그래, 나도 그렇고 내 아이들도 공감할 이야기는 아니다. 그만큼 먼 오랜 이야기다. 다만 혼자 남겨진 돌이의 외로움은 두 페이지를 차지하는 산 그림자만큼이다. 그만큼 적막하다. 산등성이에 올라 한 낮에 산 저쪽을 바라보면 그 적요함이 단지 편화롭기만한 것이 아닌, 사람을 한없이 맑고도 허랑하게 하는 그 무엇이지 않은가. 그게 있다. 그림에 있다.

돌이가 누나의 때묻은 베개에 얼굴을 묻고 누나 냄새를 맡으면서 운다. 그 상실감을 어쩌랴. 이미 어머니도 잃었는데 돌이는 아직 어린데... 게다가 산 속인데...그래서 그런지 갓 태어난 송아지 얼굴은 더 고와보인다. 그래도 누나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갑자기 슬슬하던 집안이 복닥이는 느낌에 더 좋았을텐데. 누나, 시집가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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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1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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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노자 선생의 팬이다. 그가 매력적인 요소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언젠가 우연히 신문에서 그의 칼럼을 읽은 게 계기가 되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두 가지, 하나는 ARS로 수재의연금을 순식간에 억 단위로 모으는 한국인의 온정에 찬사를 보내며,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본인들은 왜 모르냐고 환기시켰던 글. 진정한 칭찬은 칭찬받는 사람을 오히려 겸손하게 만들면서 저 안 깊은 곳으로부터 고무시킨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 마력을 교육적으로 잘 쓰고 싶은 사람으로서 박노자 선생의 목소리가 나를 그렇게 고무시켰었다. 우리가 스스로를 깎아내리기 바쁜 세월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뜬구름 위에 올려놓는 칭찬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냉철하고 정확해서 피해갈 수 없는, 그래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시선은 또 영어공용화론에 대한 칼럼에서도 읽었다. 설왕설래는 많았어도 논지조차 잡히지 않았던, 그래서 반대를 할지라도 어설프기 그지없던 영어공용화론에 대한 명쾌한 정리가 기억에 남는다. 영어공용화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닌 그 논의 자체가 품고 있는 혐의를 간파한 넓은 시선, 그리고 무엇보다도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 일품이다. 정말 누구 말대로 그가 한국에서 나고 자라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기에 구사할 수 있는 명쾌한 문장이 아닌가 싶기까지 하다. 이런 말을 하기에는 부끄럽게도 나는 대한민국의 중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말이다.

그의 매력은그가 이방인, 그것도 서구나 북미 사람이 아니란 데에도 있다. 그런데도 그는 한국인이라는 것도, 그가 무척 젊다는 것도(젊은데도 그토록 정연하다니!), 그가 사회주의 국가에서 왔다는 것도, 그가 사랑하는 문화적 정신적 영역이 동양적이고 유교적이고 한국적(이라기보다 조선적)이라는 것도(사실은, 그가 사랑하는 정신적 세계는 어디에도 없고,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그의 논점은 날카롭지만 꼬이지 않았다는 것도, 그의 비수같은 문장에는 어딘가 슬픔이 묻어있다는 것도(연민같은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종교적인 냄새도 난다. 그의 이성을 보완하는 감성이랄지...), 다 매력이다. 그것들은 부수적인 것이라 말하고 싶은가? 그렇지 않다. 그 모든 것들이 박노자의 글을 이루고 말해준다. 글로써 만나지만 실제로도 한 번 만나 술 한 잔 하고 싶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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