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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여왕 - 안데르센 동화 2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 지음, 이브 스팡 올센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한길사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어렸을 때, 아마도 크리스마스 즈음에 '눈의 여왕'을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따위로 본 기억이 있었던 듯하다. 줄거리는 생각나지 않지만 무섭고 신비롭고 아름다운 눈의 여왕과 눈의 세계가,그 이미지가 뇌리가 강하게 박혔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읽거나 본 것들의 향수는 지독할 정도로 강하지 않은가. 책 목록을 훑어보다가 '눈의 여왕'이란 제목을 읽자마자 그 이미지가 선연히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저없이 샀다. 아, 물론 그 이전부터 안데르센의 알려지지 않은 동화들을 읽고 싶은 욕구가 있었지만.
아이에게 읽어주면서 악마가 만든 비뚤어진 거울이 산산조각나서 세상에 흩어지는 이야기도 20여년 전 쯤 본 기억이 난다. 카이와 게르다의 이야기는 어렴풋하지만... 나는 또 게르다가 카이를 찾아헤매는 이야기들 중간중간 눈시울을 적셨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 책을 읽고 눈물날 때가 더 많구나- 특히 게르다가 꽃을 많이 키우는 할머니의 정원에서 꽃들의 이야기를 듣는 장면, 카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해서 꽃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만 꽃들은 저마다 자기 이야기를 하기에 바쁘다.
게르다는, 꽃들의 이야기 마다마다에서 카이를 본다. 메꽃이 '그분은 오시지 않는 걸까요?'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엉뚱하게 '그 분이란 게 카이야?' 라고 동문서답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쿡, 하고 웃다가 그만 가슴이 뭉클했다. 사랑에 빠지면,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세상 모든 이야기가 그 사람 이야기로 들린다. 그렇지 않은가?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그 이야기 중 어딘가에서 그 사람 냄새를 맡고 싶기 때문이다...
게르다가 카이를 찾아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이야기는 모험담에 가까운 듯 보이지만 동화 속 인물들이나 이야기의 전형성보다는 소설과 같은 극적 구성이 더 돋보인다. 더구나 북유럽의 분위기. 아무리 안데르센이 유명하다고 해도 서구유럽과 북미적 정서를 어쩔 수 없이 더 많이 접해온 우리로서는 그의 동화 중에서도 그런 정서에 걸맞는 것들을 더 많이 만났나 보다.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으면서 박노자의 노르웨이문화비평서를 읽으면서 우리가 별 관심 갖지 않았던 또 다른 미지의 땅이 궁금해진다.
어른들에게도 청소년들에게도 자꾸 동화를 권하고 싶다. 유치하다고? 동화이기 때문에 속도를 빨리 해도 좋고 좀 유치한 듯 보여도 무방한 가운데 더 깊고 더 상징적인, 그러면서 더 순수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게 동화인 것 같다. 요즘 읽은 어떤 소설보다 짧고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