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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 art 003 ㅣ 다빈치 art 18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신성림 옮김 / 다빈치 / 200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늘 나는 그게 궁금하다. 천재는 도덕적이지 않아도 되는건지 하는 문제가. 살바도르 달리, 피카소, 모짜르트 그리고 디에고 리베라..또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오만방자한 도덕불감증 환자인 천재들이 단지 하늘이 주신 재능 때문에 그들의 부덕에 대한 용서를 받는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나는 디에고가 누군지 잘 몰랐다. 아주 오래 전에 우연히 - 지금도 별로 많이 알려진 편은 아니지만 전엔 더욱 생소했던 - 칼로의 그림을 보고 참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후 그녀의 그림을 더 보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지만 자료를 구하기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이제서야 프리다 칼로의 그림과 생애를 대하게 되면서 '덤'으로 디에고를 알게 되었다. 덤이라지만 사실상 디에고야말로 세기적인, 세계적인 화가임을 책을 통해서 뿐 아니라 도판상의 그림으로라도 알 수 있었다. 그의 그림의 스케일이나 수준이나, 영향력 따위...
그에 비하면 칼로의 그림은 그녀의 이념이나 사회적 영향력 따위보다는 개인사에 교착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쁜 의미로 사용하는 '여성적인' 그림이라는 느낌이다. 물론 그녀의 그림 중에는 대지를 어머니로 형상화하고 우주와 생성을 노래한 것들도 있지만 특히 디에고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범위가 좁고 대신 깊은 느낌을 준다. 상처받은 영혼의 괴기스러운 아름다움, 죽음과 생성을 뛰어넘는 영적 세계, 외부와의 부조화, 지독한 외로움, 투쟁력... 나는 김정란의 시를 떠올렸다. 그런 뾰족하고 굴곡이 심한 파장의 예술세계가 묘하게 섬세하고 아름다운 것은 그림이거나 시이거나 그 영역을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원한 것은 프리다 칼로의 그림과 인생이었기에 그런지는 몰라도 이 책이 디에고의 업적을 중심축으로(다루는 이야기의 양은 프리다 칼로의 것이 많지만) 하다 보니 디에고는 도덕적 부실함에도 불구하고 천재성과 업적만으로도 참으로 위대할 뿐 아니라 프리다가 인고하면서도 간절한 사랑을 바칠 만큼 매력적인 인물인 듯이 서술하고 있다. 과연 디에고가 일반인이었다면 그의 문란과 방종이 이해받을 수 있었을까? 게다가 그는 공산주의자였다.
물론 공산주의든 사회주의든 그 어떤 진보적 이데올로기이든, 겉으로는 그것을 주장하고도 사회적 이념적 가치관과 개인적 사생활의 가치관이 전혀 따로 놀았던 '사이비'들이 한둘은 아니지만, 만약 디에고가 진정한 혁명적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이었다면 결코 그토록 방종하진 않았을 것이다. 프리다 칼로를 몹시 사랑한다고 하였지만 그녀가 자신에게 바치는 어머니 같은 사랑과 이해를 사랑했던 것은 아닌지... 그의 신체구조는 몹시도 특이해서 처제나 아내의 친구까지 범하지 않고는 견딜 수도, 예술을 할 수도 없었던 건지, 만약 그랬다 하더라도 그의 예술을 위해서 그 정도는 용서해 줄 수 있다는 건지...
도덕성이 담보되지 않는 천재에게 극찬을 보내지 말라고 주장하고 싶다. 좀 과격하게 말하면, 그 찬양은 위대한 예술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도 좋다는 이야기로 전도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