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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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읽고 있는 책 중 바로 이 책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절반 못 되게 읽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이 책이 무자비한 살육의 주인공인 아이히만의 지극한 평범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읽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최근에 읽은 이 장면에 나는 주목한다.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소개, 혹은 이주시키는 것을 주업무로 하여 그 방안을 고심했다고 하다.(심지어는 폴란드의 유대인들을 마다가스카르에 이주시키려 했단다.) 하지만 결국 히틀러가 그들의 ‘이주’가 아닌 ‘학살’을 결정하고 아랫것들에게 명령을 전하는 과정에서 아이히만은 충격을 받는다. 뭐, 비인간적인 행위를 해야만 하는 고통 따위라기보다 그 앞에 구축했던 자신의 계획들이나 방안들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에 대한 허무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치가 사용하는 표현 중에 ‘언어규칙’이란 게 있었단다. 우리가 일상어로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을 그들은 ‘언어규칙’이라고 불렀단다. 대표단이 추가로 방문하기를 원한 베르겐벨젠 수용소에 발생하지도 않은 전염병 티푸스가 발생했다는 식의 거짓말.... 아이히만이 구사하는 언어에는 구호와 관용구가 많았다고 하는데 바로 나치의 ‘언어규칙’에 참으로 적합한, 이상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가령 ‘최종해결책’이란 말은 유태인에 대한 학살을 의미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현재 딱 여기까지 읽었다.) 나는 지난 5년간,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실종되고 언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 일에 대해 동료랑 이야기를 나누었던 게 생각난다. 동료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을 두고 ‘망국적 포퓰리즘’이라 표현하는 것을 두고 이 땅에서 말이라는 것이 이렇게 고생하고 있다면서 개탄했다. 나는 한 2년 전쯤인가, 예산안 날치기 통과에 성공한 한나라당의 김무성 의원이 그 날치기를 두고 ‘이것이 정의다!’라고 할 때, ‘말’이 가지는 신성성과 주술성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몸으로 느꼈던, 몸이 아팠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둥  어록을 남긴 MB를 비롯하여 많은 아류들이 말을 유린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학교에서 가장 거짓말 잘하고 사람들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사람이 ‘순수하고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말이란 게 선점한다고 자기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가끔, 저들이 전략적으로 저런 표현을 선점하는 것을 넘어서서,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말, 자기는 도덕적으로 완벽하다고 그는 믿고 있는 것이리라, 정말, 그는 다른 교사들이 자기처럼 순수하게 살아야 한다고 믿는 게 분명하다.

 

  아아, 어쩌다 말은 이렇게 되었는가. 말이란 것은 늘 옳지, 거짓임을 스스로 알아도 그걸 감추려고 노력할 뿐이고 사람들은 거짓말하는 사람을 알아보긴 하되 그의 권력이 무서워서 표내지 못할 뿐인 거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혼탁한 세상은 말이 혼탁하여 바닥까지 진심으로 거짓을 진실이라 믿고 말한다. 또한 그렇게 도와주는 강력한 나팔수가 있다. 스스로에게 먼저 ‘이 거짓은 진실이다, 이 거짓은 진실이다. 그러므로 거짓이 진실이다.’라고 울부짖어 각인시키고 다시 태어나 해맑은 얼굴로 ‘저는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살아왔습니다.’라고 가슴 벅차게 외치는 것이다.

  ‘언어규칙’, 이 거짓 ‘말’의 시대가 이제 비로소 끝나기는커녕, 이제 비로소 본격화되기 시작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함이 자꾸 나의 입을 닫게 만든다. 입을 닫고 절필, 묵언해야 하는 것일까? 벗들은, 아니다, 우리 그러면 안 된다고 분명 입을 모으실 것을 알지만 나는 자꾸 눈을 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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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1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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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장, 세 번의 기도

레미제라블을 두 번 보면서 여전히 눈물을 줄줄 흘리는 나를 보고, 옆의 선생님이 묻는다. “샘, 두 번 보신다면서 여전히 눈물이 나요?(처음 보는 그녀는 마음이 짠했다면서)”

그런데, 뭐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엉엉 울다시피 하긴 했지만 특히나 유난히 눈물이 나는 대목은 처음 보았을 때나 두 번째 보았을 때나 같은 장면이었다.

장발장은 세 번 홀로 기도한다. 주교로부터 은식기 선물을 받고 나서 자신을 참회할 때, 장발장이라 오해받은 사내가 나타났다는 자베르의 말을 듣고 어쩌면 그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고 이제는 양지바른 삶을 살지, 아니면 양심의 소리를 들을지를 고뇌할 때,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코제트를 이제 그녀의 남자에게 보냄으로써 자기 생의 유일한 기쁨을 놓아야 하는 건지를 고뇌할 때...

이 모두는 선택의 기도였다. 나쁜 삶과 바른 삶 사이에서, 자기의 이익과 올바름 혹은 타인의 이익 앞에서, 불의와 정의 사이에서의 기도... 기도는 곧 독백이고 고뇌이다. 생각과 사색과 성찰의 과정 없이도 쉽게 판단을 내리는 많은 사람이 있다. 그 시간이 짧은 사람은 세간에서는 강인한 사람이라 하고 결단력이 있다고 칭송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 시간이 긴 사람일수록 염치를 알고 두려움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고뇌 끝에 어떤 결론을 내리는가, 이겠지만.

 

장발장은 그 세 번의 고뇌에서 피눈물을 흘리는데 모두가 아팠겠지만 특히 가짜 장발장이 나타났을 때 그 앞에 서서 내가 진짜 장발장이요, 하고 자신을 드러내기까지의 시간이 가장 힘들었을 것 같다. 영화에서야 순식간에 그 장면이 지나가지만 소설 속에서 장발장은 그 시간을 너무나 고통스럽게 보내야 했다. 하룻밤 사이에 그의 머리는 하얗게 세어 버렸고 법정에 증언하러 가는 멀고도 먼 길에 마차가 고장났을 때, 하늘이 그의 길을 가로막아주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코제트를 떠나보내기로 결심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그의 연장선상이기도 하지만 혁명 전야에 코제트가 사랑하는 마리우스가 잠든 모습을 보면서 장발장이 부른 ‘Bring him home'은 진정한 부성(父性)의 노래이다. 정치가 어찌 되었든 혁명이 어찌되었든, 저 젊은 것들이 아프지 말게, 죽지 말게 신이시여, 도와주소서, 기도로 그것이 가능하다면 어떻게든 그런 기도를 하고 싶었으리라...

 

유다의 독백, 예수의 기도

내가 처음 뮤지컬을 접한 건 중2 때였다. 80년대 초반,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갔다. 뮤지컬도 아닌 ‘록 오페라’라는 이름이 붙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젊은 시절 작품이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교회 전단지를 주워 읽고 머리에 번개를 맞은 듯이 교회에 제발로 걸어가 1년을 다닌 전력이 있는 어린 영혼이었다. 엄마가 절에 다니셔서 기독교를 극구 반대했음에도 겨울방학 새벽 5시에 민병철영어 카세트 껍데기에 손바닥 반만한 신약성서를 숨겨 새벽예배를 다녔던 아이가 나였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교회에 걸어들어갔다가 걸어나온 과정도 자발적이긴 했지만 어쨌든, 영적인 존재에 대한 고민은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동시에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런 내게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충격이었다.

나중에야 그것이 기독교에서 아주 싫어하는 작품이란 것, 최근 들어서야 그것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을 원전으로 하여 유럽을 일대 충격에 빠뜨린 작품이란 것을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저 기독교적인 내용이라고만 생각했다. 내가 한 때 사랑했던 주님, 내 공포를 기도로 위무할 수 있게 해주었던 나의 예수님, 그러나 그 사랑이 정말 ‘보편적’인가에 대한 고민 때문에 떠나왔던 그 교회의 주인... 그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에 가슴이 떨렸다. 그리고 그 이후 나는 그 뮤지컬을 이화여대 무용과 학생들이 공연하는 무용과 외국에서 들어온 작품, 영화를 포함해서 열 번도 더 본다. 여기서 가장 마음이 아픈 대목은 두 군데. 예수를 고발하기 전 유다의 마지막 독백, 그리고 예수가 끌려가기 전 게쎄마네에서 올리는 기도이다. 물론 창작자의 의도도 거기에 집중이 되어 있다.

 

이 작품이 반기독교적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히 지옥에서 살아야 할 유다에게 ‘고뇌의 면죄부’를 주었다는 점, 그리고 한 점 고민 없이 완벽한 ‘신의 아들’ 예수를 인간의 육신을 지고 고뇌하는 ‘사람의 아들’로 표현했다는 점일 것이다.

예수가 게쎄마네에서 올린 기도의 핵심은, 자기가 배신당하리란 것, 죽으리란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것임을 그가 예측하고 잠시 망설였다는 것,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김동인도 카잔차키스도 앤드류 로이드 웨버(아니, 가사를 팀 라이스가 썼으니까 그의 이름을 불러야 맞겠다) 지어낸 내용이 아니다. 그 창작자들이 성서를 읽으면서도 어느 부분에 대해 고민하면서 읽었을까가 핵심일 것이다. 그가 정말 신의 아들이라면 그는 왜 자기 죽음 앞에서 약해졌을까, 라는 고민을, 성서를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종교적 논쟁은 차치하고, 나는 어렸을 때나 나이가 들어 다른 버전의 이 작품을 볼 때나, 언제나 두 사람의 독백에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 기도란 저런 것이다. 가장 첨예한 기로에 섰을 때 나오는 것, 내가 어쩔 수 없는 운명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할 때 나오는 것이다.

 

나에게 그런 절박한 순간이 없었다는 것은 오히려 감사할 일인지도 모른다. 다만 나에게도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순간이 있긴 했다. 나의 기도는 그 어린 날 금방 멈추어 버렸지만 그 이후로도 가끔 영혼이 가장 나약하게 벌거벗은 날갯죽지 위로 온통 가을비를 온몸으로 다 맞아야 할 때가 되면 다시, 내게 기도할 신이 있었더라면, 하고 간구하게 된다.

 

2001년이었던 것 같다. 남편과 유럽여행을 갔다. 유럽에서 현지인보다 샌들에 선글라스 차림을 한 한국 젊은이를 더 많이 만나는, 유명한 관광지를 섭렵하고 사진을 찍고 돌아다니는... 뭐 그런. 여행이었다. 바티칸 시국에 가 세상에서 제일 큰 교회라는 베드로 성당에 들어갔다. 성지가 아니라 박물관보다 더 많은 관광객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이었다. 유명한 피에타 상을 지나 대다수가 반바지 차림인 관광객들을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가다 보니 관광객들은 들어갈 수 없다는 곳이 나온다. 기도소란다. 여긴 신도들만 들어가는 곳이란다. 경호원인지 경비인지, 잘생긴 이태리 남자들이 검은 옷을 입고 입구를 막아서고 있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가 막으면 돌아섰을 것었다. 물론 나는 모자도 쓰지 않았고 반바지도 입지 않았지만 조그만 동양여자가 현지의 신도들과 구분이 안 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경비는 나를 막지 않았다.

관광객이 북적이는 밖과는 달리 무서울 정도로 조용한 기도소에 들어간 나는 길고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기도를 시작했다. “먼 길을 걸어서 아주 오랜 시간을 지나 주님 앞에 다시 앉았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기도는 나의 어머니와 나의 딸 이야기로 오래 계속 되었다. 나에게 만약에 어딘가에 가서 약발이 잘 듣는 기도를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장 강렬하게 기도드리고 싶은 존재가 바로 그 때 다섯 살 된 딸아이였다. 그 아이를 위한 기복을 올리려다 엄마 생각이 났다. 이기적인 모성은 제 딸 걱정이나 하지 그 딸과, 나 자신의 원천인 엄마 걱정 따위는 한 적도 없었던 게다. 그리하여 딸과 엄마를 함께 기도의 말풍선 안에 넣긴 했지만 나는 감히 그 누구를 ‘위해서’도 기도하지 못했다. 그런 나의 얄팍한 이기심 따위나 챙기려고 지구 반대편에 와서 무릎을 꿇고 있는 내가 참으로 하찮게 여겨졌을 뿐이다. 그런 참회만으로도 나는 오래오래 눈물의 기도를 올렸다. 결국 아무 것도 ‘기복’하지도 바라지도 못하고 ‘반성’만 하다가 나왔다. 그러나 나는 그 시간이 자주 생각난다. 너무나 바빠서 혼자 가만히 생각에 잠기는 시간조차 거의 없이 살아온 지난 삶이었다. 가장 치밀하게 혼자가 되는 그런 시간을 나는 그리워하는 건지도 모른다.

 

벌레처럼 자기 집 안에서 몸을 또르르 말고 아무 생각 없이 평안하게 살다 가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인지라 지닐 수 밖에 없는 ‘영혼’은 각박한 세상에서 ‘옳게 삶’과 ‘편하게 삶’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고민도 없이 바로 선택의 길로 가는 사람들, 고민을 하되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바른 길로 가기 위해 끊임없이 고뇌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아픔 속에 순정하게 빛나는 영혼들 중에 나도 작은 빛 하나이고 싶다. 물론 그런 기도 끝에 내린 결론은 ‘옳은 길’이어야 한다. 자꾸만 편한 길, 불의는 못 본 걸로 하려는 길, (그 동안 한 게 뭐 있다고) 잠시 쉬어가겠노라는 길로만 가려는 나약한 요즘의 나는 아마 그래서 나 대신 처절하게 흘리는 저들의 눈물에 기대어 덩달아 회한의 눈물을 흘리나 보다. 정작 내가 흘려야 할 피눈물은 덮어둔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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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 사색 - 시골교사 이계삼의 교실과 세상이야기
이계삼 지음 / 꾸리에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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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이계삼을 일컬어 잠수함의 토끼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이 사람의 예민한 촉수가 세상만사에 닿아 있는 게 너무나 놀라웠다. 고뇌하는 교사였다가, 지금은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에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정말 이 사람은 세상 모든 일을 ‘고뇌’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냥 ‘사색’을 하는 게 아니라 ‘고뇌’하는 게 보인다. 아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보인다. 어린 날, 넘어져서 까진 무르팍, 살껍질 벗겨진 채로 날바람을 맞을 때의 쓰라림을 기억한다. 이 사람의 촉수는 그냥 더듬더듬하는 게 아니라 고통을 그대로 자기 것으로 맞이한다. ‘소위 밀양 사건’의 가해자 중 하나인 제자에게 보내는 편지는 그답지 않게 문장이 허방지방하는데, 아이에 대해서 보듬다가 야단치다가 안타까워하다가 허탈해 하다가,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게 꼭 아이 부모 같은 자세다. 제자의 잘못, 세상의 비난에 그를 감싸지도 돌이키지도 못해 하는 그는 절대 쿨하지 못한 사람이다. 이제는 많은 ‘교사’들이 자기 학생들이 겪는 고통이나 저지른 잘못에 대해 얼마나 ‘이성적으로’ 대하는가. 가슴으로 화내고 아파하고 해결하려 애쓰는 교사들이 점점 줄어드는 요즘 세상에 이 사람은 너무 예민하다.

 

그리고 그 많은 사안들. 우리가 살아가려면 버려야 할 것들이 많은데 그건 즐기고 누릴 것들에 대한 포기도 포함하지만 아파하고 고민해야 할 것에 대해서도 선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의 크기, 머리의 크기, 발의 크기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신문에서 쏟아지는 그 많은 이슈들에 다 분노하다가는 마음이 지쳐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런 부당한 일들에 대해 욕을 하고는 돌아서서 잊어버린다. 사람들이 너무 빨리 잊는다고 욕하지만 사람들이 다 마음에 담고 고민하기에 너무 많은 기막힌 일들이 일어나는 게 맞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모르겠다, 요즘 사람들 몸의 크기는 다를 바 없으나 마음이 자꾸 작아지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고, 이계삼 같은 이는 인간이 본래 가져야 할 마음의 크기를 아직도 안고 있어 이 세상 짐을 다 짊어져야 하는 건지도 ....

 

윤동주의 순수가 오히려 저항이 되었다고, 나도 국어시간에 가르치곤 했지만 실감을 하지 못했었다. 예민하고 순수한 것이 힘이 되는가? 너무 맑아서 강하다고 나도 힘주어 말했지만 윤동주는 내게 너무 먼 별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변방의 사색을 읽으면서 윤동주의 힘은 바로 이런 것이겠구나, 무릎을 쳤다. 이계삼이 날카로운 글을 쓰니까 무슨 ‘논객’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의 글을 많이 읽어 보지 않고 이 나이도 젊은 사람을 무슨 일종의 문화권력처럼(어쨌거나 고민깨나 한다는 교사들 사이에서 그는 명망가이니까) 여기면서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는 수줍고 맑은 사람이다. 아니, 나도 개인적으로는 그를 모른다. 연수 때 먼 발치에서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모습을 보았을 뿐이다. 그때 받은 인상은 글과 사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는 지성과 감성을 문필에 담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지만 화려한 능력으로써가 아니라 자기 아픔 때문에 사람들 마음을 울려 이름을 얻은 사람이다.

 

이계삼은 불편하다. 세상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계삼의 글을 읽으면 '동지를 만났구나'라고 마음이 흐믓해지는 게 아니라, '어쩌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욱 심각하구나, 그리고 저토록 처절하게 고민하는 그에 비해 나의 고민은 참으로 얕구나...'하는 반성이 든다. 그의 글은 온통 이 땅의 교육(특히 학교교육)은 이제 더이상은 '불가능'하다고 선언하고 있다. 아마도 '사망선고'까지는 아니겠으나 절망의 상처를 대충 덮고 어설픈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기망이라고, 차라리 이만큼이나 잘못되었고 이만큼이나 비참하다고 다 까발리고 인정하고, 거기서 다시 시작하자고 그는 외친다.

 

마치 경주마가 안대를 하고 달리듯이 좁은 눈으로 내가 있는 학교 내가 아이들을 만나는 교실만을 보고 그래도 학교는 따뜻한 곳이고 교사 한 사람 한사람이 최선을 다하면 희망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나는 참으로 부끄럽다. 그렇다고 내가 말하는 희망을 놓을 수도 없다. 내가 수십 년 동안 믿어오고 기대하던 것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그로 인해 보아야 하는데, 그에게 당신이 틀렸다고, 당신은 너무 비관적이라고 외치고 싶은데, 그러기에 그의 논리는 너무나 정연하고 그의 고민은 너무나 진실되기에 아니라고 부정할 수가 없다. 마치 공부도 잘하는 아이가 인간성마저 좋으면 그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면서 미워할 수도 없는데 미운 것 같은 마음이랄까. 장발장 앞에 영혼의 무릎을 꿇은 자베르의 심정이 이와 조금은 비슷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자베르가 아니다. 나는 교육에 대해 잘못된 신념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옳은 방향의 고민을 하던 사람이었다. 아픔을 느끼는 정도에 있어 이계삼만큼 깊지 못했을지도 모르고 그가 보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 그와 이야기를 나눌 차례다. 내가 몰랐던 것은 무엇이고 그가 과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그리하여 함께 이 교육불가능을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에 대해 모색할 차례다. 아니, 누가 그랬던가, 모색만 하지 말고 행동을 하라고. 그는 이미 하고 있는 '행동', 나는 망설이고 있는 그 '행동', 양상은 다양할지라도 이제 그 '행동'을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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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제주도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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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 시리즈 전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제주 편’은 구입하지 않았다. 요즘 너무 많은 책을 구입하여 스스로도 언제 저 책을 다 읽을까 싶은 상태다. 그것도 대부분 생각을 많이 하며 읽어야 할 책들이다. 그런 이유도 있고, 여지껏 유홍준 교수가 먼 친척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이 읽어온 그의 글 -물론 읽을 때마다 실망해본 적은 없으나-, 이제는 그의 생각을 알 만큼 많이 읽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마침 학교 도서관에 있기에,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집어들었다. 역시 그의 글은 앞으로 열 권이 더 나온대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제주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친구에게 찾아가고 싶고 고등학교 때 미술을 가르쳐 주셨던 강요배 선생님도 뵙고 싶어졌다. 그들을 만나고 난 후 발로 걸어 제주를 다니는 상상도 해본다.

 

문화유산이나 자연을 접하는 그 밝은 눈의 지적인 충족감은 여전히 새롭고 깊고 아름답다. 하지만 내가 새삼 감탄하는 점은 따로 있다.

얼마 전 대선 찬조 연설을 하기 위해 TV에 나온 유홍준 선생을 보았다. 그가 지지하는 후보의 인간적인 면모를 실제로 본 소소한 에피소드 중심으로 펼친다. ‘구라’ 소리까지 듣는 그가 카메라 앞에서 지나치게 ‘얌전’한 것에 약간 실망도 하고 강력한 언변을 구사하여 후보를 드높이지 않는 것도 좀 아쉬웠다. 하지만 역시,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나아가는 그의 시각은 남다르다는 생각도 했다. 본질을 보고 진정성을 보는 데 취약한 오늘 날의 사람들에게 저 방식이 먹혀들어갈지를 차치하고라도.

 

평범한 사람들을 귀히 여기는 시각

그런 선생의 시각은 이 책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p122의 소제목은 ‘만장굴 입구를 찾아낸 부종휴(초등학교 교사 이름)’다. 그 다음 책을 넘기면 ‘김녕사굴을 지킨 김군천 할아버지’라는 제목, 그 다음은 ‘당처물동굴과 김종식 김옥희 부부’다. 이 동굴 입구 문화재 안내판에는 “1995년 밭을 정리하던 중 지역주민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적혀 있다. 그 지역주민은 김종식 김옥희 부부인데, 왜 이름을 밝혀주지 않는 것이냐고 유홍준은 항변한다.

지난 번에 출간된 6편의 부제가 ‘인생도처유상수’였던 게 아주 인상 깊었었다. 유홍준 같은 고수가 숨은 ‘상수(上手)’들에게 진심으로 머리를 숙이는 모습을 보았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다르지 않다. 제주의 자연을 발견하고 보전하는 데 힘쓴 평범한 제주민들, 관에서는 그의 공을 기리지도 보상하지도 않지만 유홍준 선생은 자기 책에 그들의 이름을 남긴다. 아, TV 대선후보찬조연설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그 사람의 이름이 높고 낮음, 권력이 있고 없음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진정성에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고개를 낮춰 풀꽃들이 뿌리내린 땅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한결같다는 것, 얼마나 어렵고 귀한 일인가.

아침자습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다가 잠시 마음이 벅차 고개 숙여 책 읽는 아이들의 머리꼭지를 바라본다. 이런 날은 잠시라도 ‘행복하다’.

 

해녀 이야기

영조 때 의 조관빈이라는 제주도에 귀양 온 문신이 <회헌집>에 실은 글에 잠녀들의 고생을 담고 “해녀들의 신세를 생각하면 전복을 먹을 기분이 나지 않는다. 지금부터 나의 밥상에 전복을 올려놓지 말라고 하고 있다.” 하였다. 잘 모르는 분이지만 참, 따뜻하다.

해녀들은 대상군, 상군, 중군, 하군 등 계급이 있는데 이모 손에 이끌려 온 애기해녀를 가르칠 때 빈손으로 가게 되면 다들 하나씩 자기가 딴 걸 준다고 한다. 아까워서 작은 것 주는 해녀는 대상군이 못된단다. 대상군은 일기, 해녀들의 상태 등 모든 것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바다에 시체가 떠오를 때 그걸 찾는 데도 능력을 발휘한다.

진정한 능력자가 후배들이나 주변사람들에게 인정받아 자연스럽게 지도자가 되는 과정이 보인다. 특히 인정머리 없거나 이기적인 사람은 철저히 그 지도자로 인정받는 과정에서 배제된다는 것인데, 학교도 그렇고 지금 세상의 많은 조직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윗사람에게 잘보이려 드는 사람이 득세하는 세상이다. 어쩌면 해녀들 사이에도 그런 비리가 있었으려나?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라고 말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비관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 가장 타락한 시기이다, 언젠가 좋은 세상이 올 수도 있다, 비교적 정의로웠던 시절도 있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야 희망을 접지 않고 살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고려에 대한 또다른 평가 - 다른 각도로 보기

<한국미술사 강의 제 2권> 중 유홍준은 고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다른 시각을 보인다고 한다. 고려의 전란과 갈등은 당시 동아시아의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중국은 더했다. 송은 금과 싸우고 몽골에 망했고 거란의 요, 여진의 금, 몽골의 원은 100년 정도 지속하다 끝내 자기 문화를 지키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에 비하면 고려는 수많은 전란에도 근 500년을 지속한 저력 있고 건강한 나라였다.

 

또한 관덕정 돌하르방이 육지 돌장승보다 명작인 이유에 대해서는

“관이 민에게 강제하면 생명 없는 관제(官制) 작품이 되지만 민이 요구하는 것을 관이 받아들이면 명작이 나온다. ”라고 말한다. 대체로 관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던 내게 일종의 각성을 준다. 관제가 나쁜 것은 아니다. 아나티스트가 아닌 이상 관제를 부인만 할 수도 없다. 다만 하향적이냐 상향적이냐에 따라 관제의 역할은 달라지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다른 게 아니다.

 

유홍준 특유의 재미난 입담도 여지없이 펼쳐진다. 각 청장들이 얼마나 업무범위가 넓은지를 하소연하는 장면이나, 팔도의 아줌마들이 한라산 철쭉제를 와서 펼치는 입담은 참 맛깔스럽다. 듣고도 넘어갈 수 있는 대화의 편린들을 한묶음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 우리는 글 읽는 즐거움을 더욱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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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히스토리아 1 - 불멸의 소년과 떠나는 역사 시간여행 피터 히스토리아
교육공동체 나다 지음, 송동근 그림 / 북인더갭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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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만화다. 역사인식이 훌륭하다는 말이다. 물론 더 치밀하고 정교한 '입장'은 학습만화의 특성상 다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태까지 '객관적'이라는 명목하에 강자의 기록을 역사라고 강변하거나 반성없이 되뇌이던 역사책들과는 정말 다르다.

 

무한반복, 불멸의 고통

말이 불멸의 소년이지, 가족을 잃고 터전을 잃고, 그 고통이 한 대에 끝나지 않고 시대를 반복해 살아가야 한다면 그런 불멸을 누가 누리고 싶을까. 하지만 단지 무한반복되는 비슷한 삶의 유형만은 아닌 것이, 피터의 몸은 소년이로되 의식은 자기가 살아온 수천 년의 세월만큼의 지혜로 채워진다. 그러면서 피터는 역사에 대해 '몸으로 체득한' 가치관을 갖는다. 가진 자들의 욕심과 그에 짓눌리는 대다수 민중의 삶은 고통이며, 그것을 감내해서는 안 되며 진정한 자유를 찾아 몸부림 치는 것이 참다운 '사람'의 삶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역사라는 것이다.

 

또 노예야!

하지만 그렇게 장면마다 사건마다 시대마다 지치지도 않고 건강하게 아픔들을 이겨내는 피터에게 안타까움을 느꼈던 한 마디가 있다. 2권에서,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의 아동수용소에 올리버와 함께 등장한 피터는 자기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 와 있는지 깨닫는 순간 절망에 휩싸여 외친다. "또 노예야!" 이 소년의 역사적 '사명이 그와 같은 소년, 소녀들이 자유롭게 살아야 하는 것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역사적 소명임을 일깨워주는 것이라 할지라도 참 잔인한 일 아닌가. 그런데 그런 '불쌍하다'는 생각 뒤에 어떤 깨달음이 온다. 고대의 노예, 전쟁의 패배자, 수용소의 소수민족 등 약자들의 20세기의 이름은 무엇일까. 고아들의 수용소에서 노예처럼 살아가는 삶이 아니더라도 피터가 21세기를 살아간다면 그의 이름은 '노동자'일 것이다.

 

21세기, 피터가 한국에 부활한다면

아마도 주인공이 소년이니까 아동노동을 다루지 않는 한 노동자로 묘사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필자들이 '자본주의' 사회에 갖는 입장에서 주춤거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피터가 여전히 지치지 않고 역사를 헤쳐나가는 불멸을 살고 있다면, 혹시 피터가 한국에 와서 성인으로 살아간다면 그는 공장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며 "아, 아직도 노예란 말인가" 라고 외치지나 않을까. 노예인지 아닌지의 경계는 자기 삶의 결정권, 즉 자유가 있는지 아닌지 여부이지 않은가. 아니, 모르겠다. 그가 영원히 소년의 삶을 살아야 하는 설정이라면 21세기 대한민국의 어느 학교 '야자'를 거부하고 뛰쳐나가면서 "난 자유로울 테야~!"라고 외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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