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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1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장발장, 세 번의 기도
레미제라블을 두 번 보면서 여전히 눈물을 줄줄 흘리는 나를 보고, 옆의 선생님이 묻는다. “샘, 두 번 보신다면서 여전히 눈물이 나요?(처음 보는 그녀는 마음이 짠했다면서)”
그런데, 뭐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엉엉 울다시피 하긴 했지만 특히나 유난히 눈물이 나는 대목은 처음 보았을 때나 두 번째 보았을 때나 같은 장면이었다.
장발장은 세 번 홀로 기도한다. 주교로부터 은식기 선물을 받고 나서 자신을 참회할 때, 장발장이라 오해받은 사내가 나타났다는 자베르의 말을 듣고 어쩌면 그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고 이제는 양지바른 삶을 살지, 아니면 양심의 소리를 들을지를 고뇌할 때,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코제트를 이제 그녀의 남자에게 보냄으로써 자기 생의 유일한 기쁨을 놓아야 하는 건지를 고뇌할 때...
이 모두는 선택의 기도였다. 나쁜 삶과 바른 삶 사이에서, 자기의 이익과 올바름 혹은 타인의 이익 앞에서, 불의와 정의 사이에서의 기도... 기도는 곧 독백이고 고뇌이다. 생각과 사색과 성찰의 과정 없이도 쉽게 판단을 내리는 많은 사람이 있다. 그 시간이 짧은 사람은 세간에서는 강인한 사람이라 하고 결단력이 있다고 칭송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 시간이 긴 사람일수록 염치를 알고 두려움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고뇌 끝에 어떤 결론을 내리는가, 이겠지만.
장발장은 그 세 번의 고뇌에서 피눈물을 흘리는데 모두가 아팠겠지만 특히 가짜 장발장이 나타났을 때 그 앞에 서서 내가 진짜 장발장이요, 하고 자신을 드러내기까지의 시간이 가장 힘들었을 것 같다. 영화에서야 순식간에 그 장면이 지나가지만 소설 속에서 장발장은 그 시간을 너무나 고통스럽게 보내야 했다. 하룻밤 사이에 그의 머리는 하얗게 세어 버렸고 법정에 증언하러 가는 멀고도 먼 길에 마차가 고장났을 때, 하늘이 그의 길을 가로막아주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코제트를 떠나보내기로 결심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그의 연장선상이기도 하지만 혁명 전야에 코제트가 사랑하는 마리우스가 잠든 모습을 보면서 장발장이 부른 ‘Bring him home'은 진정한 부성(父性)의 노래이다. 정치가 어찌 되었든 혁명이 어찌되었든, 저 젊은 것들이 아프지 말게, 죽지 말게 신이시여, 도와주소서, 기도로 그것이 가능하다면 어떻게든 그런 기도를 하고 싶었으리라...
유다의 독백, 예수의 기도
내가 처음 뮤지컬을 접한 건 중2 때였다. 80년대 초반,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갔다. 뮤지컬도 아닌 ‘록 오페라’라는 이름이 붙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젊은 시절 작품이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교회 전단지를 주워 읽고 머리에 번개를 맞은 듯이 교회에 제발로 걸어가 1년을 다닌 전력이 있는 어린 영혼이었다. 엄마가 절에 다니셔서 기독교를 극구 반대했음에도 겨울방학 새벽 5시에 민병철영어 카세트 껍데기에 손바닥 반만한 신약성서를 숨겨 새벽예배를 다녔던 아이가 나였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교회에 걸어들어갔다가 걸어나온 과정도 자발적이긴 했지만 어쨌든, 영적인 존재에 대한 고민은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동시에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런 내게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충격이었다.
나중에야 그것이 기독교에서 아주 싫어하는 작품이란 것, 최근 들어서야 그것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을 원전으로 하여 유럽을 일대 충격에 빠뜨린 작품이란 것을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저 기독교적인 내용이라고만 생각했다. 내가 한 때 사랑했던 주님, 내 공포를 기도로 위무할 수 있게 해주었던 나의 예수님, 그러나 그 사랑이 정말 ‘보편적’인가에 대한 고민 때문에 떠나왔던 그 교회의 주인... 그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에 가슴이 떨렸다. 그리고 그 이후 나는 그 뮤지컬을 이화여대 무용과 학생들이 공연하는 무용과 외국에서 들어온 작품, 영화를 포함해서 열 번도 더 본다. 여기서 가장 마음이 아픈 대목은 두 군데. 예수를 고발하기 전 유다의 마지막 독백, 그리고 예수가 끌려가기 전 게쎄마네에서 올리는 기도이다. 물론 창작자의 의도도 거기에 집중이 되어 있다.
이 작품이 반기독교적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히 지옥에서 살아야 할 유다에게 ‘고뇌의 면죄부’를 주었다는 점, 그리고 한 점 고민 없이 완벽한 ‘신의 아들’ 예수를 인간의 육신을 지고 고뇌하는 ‘사람의 아들’로 표현했다는 점일 것이다.
예수가 게쎄마네에서 올린 기도의 핵심은, 자기가 배신당하리란 것, 죽으리란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것임을 그가 예측하고 잠시 망설였다는 것,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김동인도 카잔차키스도 앤드류 로이드 웨버(아니, 가사를 팀 라이스가 썼으니까 그의 이름을 불러야 맞겠다) 지어낸 내용이 아니다. 그 창작자들이 성서를 읽으면서도 어느 부분에 대해 고민하면서 읽었을까가 핵심일 것이다. 그가 정말 신의 아들이라면 그는 왜 자기 죽음 앞에서 약해졌을까, 라는 고민을, 성서를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종교적 논쟁은 차치하고, 나는 어렸을 때나 나이가 들어 다른 버전의 이 작품을 볼 때나, 언제나 두 사람의 독백에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 기도란 저런 것이다. 가장 첨예한 기로에 섰을 때 나오는 것, 내가 어쩔 수 없는 운명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할 때 나오는 것이다.
나에게 그런 절박한 순간이 없었다는 것은 오히려 감사할 일인지도 모른다. 다만 나에게도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순간이 있긴 했다. 나의 기도는 그 어린 날 금방 멈추어 버렸지만 그 이후로도 가끔 영혼이 가장 나약하게 벌거벗은 날갯죽지 위로 온통 가을비를 온몸으로 다 맞아야 할 때가 되면 다시, 내게 기도할 신이 있었더라면, 하고 간구하게 된다.
2001년이었던 것 같다. 남편과 유럽여행을 갔다. 유럽에서 현지인보다 샌들에 선글라스 차림을 한 한국 젊은이를 더 많이 만나는, 유명한 관광지를 섭렵하고 사진을 찍고 돌아다니는... 뭐 그런. 여행이었다. 바티칸 시국에 가 세상에서 제일 큰 교회라는 베드로 성당에 들어갔다. 성지가 아니라 박물관보다 더 많은 관광객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이었다. 유명한 피에타 상을 지나 대다수가 반바지 차림인 관광객들을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가다 보니 관광객들은 들어갈 수 없다는 곳이 나온다. 기도소란다. 여긴 신도들만 들어가는 곳이란다. 경호원인지 경비인지, 잘생긴 이태리 남자들이 검은 옷을 입고 입구를 막아서고 있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가 막으면 돌아섰을 것었다. 물론 나는 모자도 쓰지 않았고 반바지도 입지 않았지만 조그만 동양여자가 현지의 신도들과 구분이 안 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경비는 나를 막지 않았다.
관광객이 북적이는 밖과는 달리 무서울 정도로 조용한 기도소에 들어간 나는 길고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기도를 시작했다. “먼 길을 걸어서 아주 오랜 시간을 지나 주님 앞에 다시 앉았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기도는 나의 어머니와 나의 딸 이야기로 오래 계속 되었다. 나에게 만약에 어딘가에 가서 약발이 잘 듣는 기도를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장 강렬하게 기도드리고 싶은 존재가 바로 그 때 다섯 살 된 딸아이였다. 그 아이를 위한 기복을 올리려다 엄마 생각이 났다. 이기적인 모성은 제 딸 걱정이나 하지 그 딸과, 나 자신의 원천인 엄마 걱정 따위는 한 적도 없었던 게다. 그리하여 딸과 엄마를 함께 기도의 말풍선 안에 넣긴 했지만 나는 감히 그 누구를 ‘위해서’도 기도하지 못했다. 그런 나의 얄팍한 이기심 따위나 챙기려고 지구 반대편에 와서 무릎을 꿇고 있는 내가 참으로 하찮게 여겨졌을 뿐이다. 그런 참회만으로도 나는 오래오래 눈물의 기도를 올렸다. 결국 아무 것도 ‘기복’하지도 바라지도 못하고 ‘반성’만 하다가 나왔다. 그러나 나는 그 시간이 자주 생각난다. 너무나 바빠서 혼자 가만히 생각에 잠기는 시간조차 거의 없이 살아온 지난 삶이었다. 가장 치밀하게 혼자가 되는 그런 시간을 나는 그리워하는 건지도 모른다.
벌레처럼 자기 집 안에서 몸을 또르르 말고 아무 생각 없이 평안하게 살다 가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인지라 지닐 수 밖에 없는 ‘영혼’은 각박한 세상에서 ‘옳게 삶’과 ‘편하게 삶’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고민도 없이 바로 선택의 길로 가는 사람들, 고민을 하되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바른 길로 가기 위해 끊임없이 고뇌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아픔 속에 순정하게 빛나는 영혼들 중에 나도 작은 빛 하나이고 싶다. 물론 그런 기도 끝에 내린 결론은 ‘옳은 길’이어야 한다. 자꾸만 편한 길, 불의는 못 본 걸로 하려는 길, (그 동안 한 게 뭐 있다고) 잠시 쉬어가겠노라는 길로만 가려는 나약한 요즘의 나는 아마 그래서 나 대신 처절하게 흘리는 저들의 눈물에 기대어 덩달아 회한의 눈물을 흘리나 보다. 정작 내가 흘려야 할 피눈물은 덮어둔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