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제주도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이 책 시리즈 전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제주 편’은 구입하지 않았다. 요즘 너무 많은 책을 구입하여 스스로도 언제 저 책을 다 읽을까 싶은 상태다. 그것도 대부분 생각을 많이 하며 읽어야 할 책들이다. 그런 이유도 있고, 여지껏 유홍준 교수가 먼 친척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이 읽어온 그의 글 -물론 읽을 때마다 실망해본 적은 없으나-, 이제는 그의 생각을 알 만큼 많이 읽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마침 학교 도서관에 있기에,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집어들었다. 역시 그의 글은 앞으로 열 권이 더 나온대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제주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친구에게 찾아가고 싶고 고등학교 때 미술을 가르쳐 주셨던 강요배 선생님도 뵙고 싶어졌다. 그들을 만나고 난 후 발로 걸어 제주를 다니는 상상도 해본다.

 

문화유산이나 자연을 접하는 그 밝은 눈의 지적인 충족감은 여전히 새롭고 깊고 아름답다. 하지만 내가 새삼 감탄하는 점은 따로 있다.

얼마 전 대선 찬조 연설을 하기 위해 TV에 나온 유홍준 선생을 보았다. 그가 지지하는 후보의 인간적인 면모를 실제로 본 소소한 에피소드 중심으로 펼친다. ‘구라’ 소리까지 듣는 그가 카메라 앞에서 지나치게 ‘얌전’한 것에 약간 실망도 하고 강력한 언변을 구사하여 후보를 드높이지 않는 것도 좀 아쉬웠다. 하지만 역시,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나아가는 그의 시각은 남다르다는 생각도 했다. 본질을 보고 진정성을 보는 데 취약한 오늘 날의 사람들에게 저 방식이 먹혀들어갈지를 차치하고라도.

 

평범한 사람들을 귀히 여기는 시각

그런 선생의 시각은 이 책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p122의 소제목은 ‘만장굴 입구를 찾아낸 부종휴(초등학교 교사 이름)’다. 그 다음 책을 넘기면 ‘김녕사굴을 지킨 김군천 할아버지’라는 제목, 그 다음은 ‘당처물동굴과 김종식 김옥희 부부’다. 이 동굴 입구 문화재 안내판에는 “1995년 밭을 정리하던 중 지역주민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적혀 있다. 그 지역주민은 김종식 김옥희 부부인데, 왜 이름을 밝혀주지 않는 것이냐고 유홍준은 항변한다.

지난 번에 출간된 6편의 부제가 ‘인생도처유상수’였던 게 아주 인상 깊었었다. 유홍준 같은 고수가 숨은 ‘상수(上手)’들에게 진심으로 머리를 숙이는 모습을 보았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다르지 않다. 제주의 자연을 발견하고 보전하는 데 힘쓴 평범한 제주민들, 관에서는 그의 공을 기리지도 보상하지도 않지만 유홍준 선생은 자기 책에 그들의 이름을 남긴다. 아, TV 대선후보찬조연설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그 사람의 이름이 높고 낮음, 권력이 있고 없음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진정성에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고개를 낮춰 풀꽃들이 뿌리내린 땅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한결같다는 것, 얼마나 어렵고 귀한 일인가.

아침자습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다가 잠시 마음이 벅차 고개 숙여 책 읽는 아이들의 머리꼭지를 바라본다. 이런 날은 잠시라도 ‘행복하다’.

 

해녀 이야기

영조 때 의 조관빈이라는 제주도에 귀양 온 문신이 <회헌집>에 실은 글에 잠녀들의 고생을 담고 “해녀들의 신세를 생각하면 전복을 먹을 기분이 나지 않는다. 지금부터 나의 밥상에 전복을 올려놓지 말라고 하고 있다.” 하였다. 잘 모르는 분이지만 참, 따뜻하다.

해녀들은 대상군, 상군, 중군, 하군 등 계급이 있는데 이모 손에 이끌려 온 애기해녀를 가르칠 때 빈손으로 가게 되면 다들 하나씩 자기가 딴 걸 준다고 한다. 아까워서 작은 것 주는 해녀는 대상군이 못된단다. 대상군은 일기, 해녀들의 상태 등 모든 것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바다에 시체가 떠오를 때 그걸 찾는 데도 능력을 발휘한다.

진정한 능력자가 후배들이나 주변사람들에게 인정받아 자연스럽게 지도자가 되는 과정이 보인다. 특히 인정머리 없거나 이기적인 사람은 철저히 그 지도자로 인정받는 과정에서 배제된다는 것인데, 학교도 그렇고 지금 세상의 많은 조직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윗사람에게 잘보이려 드는 사람이 득세하는 세상이다. 어쩌면 해녀들 사이에도 그런 비리가 있었으려나?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라고 말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비관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 가장 타락한 시기이다, 언젠가 좋은 세상이 올 수도 있다, 비교적 정의로웠던 시절도 있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야 희망을 접지 않고 살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고려에 대한 또다른 평가 - 다른 각도로 보기

<한국미술사 강의 제 2권> 중 유홍준은 고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다른 시각을 보인다고 한다. 고려의 전란과 갈등은 당시 동아시아의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중국은 더했다. 송은 금과 싸우고 몽골에 망했고 거란의 요, 여진의 금, 몽골의 원은 100년 정도 지속하다 끝내 자기 문화를 지키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에 비하면 고려는 수많은 전란에도 근 500년을 지속한 저력 있고 건강한 나라였다.

 

또한 관덕정 돌하르방이 육지 돌장승보다 명작인 이유에 대해서는

“관이 민에게 강제하면 생명 없는 관제(官制) 작품이 되지만 민이 요구하는 것을 관이 받아들이면 명작이 나온다. ”라고 말한다. 대체로 관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던 내게 일종의 각성을 준다. 관제가 나쁜 것은 아니다. 아나티스트가 아닌 이상 관제를 부인만 할 수도 없다. 다만 하향적이냐 상향적이냐에 따라 관제의 역할은 달라지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다른 게 아니다.

 

유홍준 특유의 재미난 입담도 여지없이 펼쳐진다. 각 청장들이 얼마나 업무범위가 넓은지를 하소연하는 장면이나, 팔도의 아줌마들이 한라산 철쭉제를 와서 펼치는 입담은 참 맛깔스럽다. 듣고도 넘어갈 수 있는 대화의 편린들을 한묶음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 우리는 글 읽는 즐거움을 더욱 만끽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