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히스토리아 1 - 불멸의 소년과 떠나는 역사 시간여행 피터 히스토리아
교육공동체 나다 지음, 송동근 그림 / 북인더갭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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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만화다. 역사인식이 훌륭하다는 말이다. 물론 더 치밀하고 정교한 '입장'은 학습만화의 특성상 다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태까지 '객관적'이라는 명목하에 강자의 기록을 역사라고 강변하거나 반성없이 되뇌이던 역사책들과는 정말 다르다.

 

무한반복, 불멸의 고통

말이 불멸의 소년이지, 가족을 잃고 터전을 잃고, 그 고통이 한 대에 끝나지 않고 시대를 반복해 살아가야 한다면 그런 불멸을 누가 누리고 싶을까. 하지만 단지 무한반복되는 비슷한 삶의 유형만은 아닌 것이, 피터의 몸은 소년이로되 의식은 자기가 살아온 수천 년의 세월만큼의 지혜로 채워진다. 그러면서 피터는 역사에 대해 '몸으로 체득한' 가치관을 갖는다. 가진 자들의 욕심과 그에 짓눌리는 대다수 민중의 삶은 고통이며, 그것을 감내해서는 안 되며 진정한 자유를 찾아 몸부림 치는 것이 참다운 '사람'의 삶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역사라는 것이다.

 

또 노예야!

하지만 그렇게 장면마다 사건마다 시대마다 지치지도 않고 건강하게 아픔들을 이겨내는 피터에게 안타까움을 느꼈던 한 마디가 있다. 2권에서,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의 아동수용소에 올리버와 함께 등장한 피터는 자기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 와 있는지 깨닫는 순간 절망에 휩싸여 외친다. "또 노예야!" 이 소년의 역사적 '사명이 그와 같은 소년, 소녀들이 자유롭게 살아야 하는 것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역사적 소명임을 일깨워주는 것이라 할지라도 참 잔인한 일 아닌가. 그런데 그런 '불쌍하다'는 생각 뒤에 어떤 깨달음이 온다. 고대의 노예, 전쟁의 패배자, 수용소의 소수민족 등 약자들의 20세기의 이름은 무엇일까. 고아들의 수용소에서 노예처럼 살아가는 삶이 아니더라도 피터가 21세기를 살아간다면 그의 이름은 '노동자'일 것이다.

 

21세기, 피터가 한국에 부활한다면

아마도 주인공이 소년이니까 아동노동을 다루지 않는 한 노동자로 묘사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필자들이 '자본주의' 사회에 갖는 입장에서 주춤거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피터가 여전히 지치지 않고 역사를 헤쳐나가는 불멸을 살고 있다면, 혹시 피터가 한국에 와서 성인으로 살아간다면 그는 공장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며 "아, 아직도 노예란 말인가" 라고 외치지나 않을까. 노예인지 아닌지의 경계는 자기 삶의 결정권, 즉 자유가 있는지 아닌지 여부이지 않은가. 아니, 모르겠다. 그가 영원히 소년의 삶을 살아야 하는 설정이라면 21세기 대한민국의 어느 학교 '야자'를 거부하고 뛰쳐나가면서 "난 자유로울 테야~!"라고 외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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