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륜동 행복한 상담실
선안남 지음 / 한빛비즈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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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다양한 상담 사례가 나오지만 나는 특히 저자가 부모상처에 주목하며 상담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금의 상처는 대개 뿌리 깊은 근원을 가진 경우가 많고 대개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 부분을 헤아려야 진정한 상담이 이루어질 터이다. 나는 이 책을 올 가을 우리 학교 학부모 상담연수 자료로 활용하였다. <아들심리학 교실>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는 학부모 대상 연수의 첫 번째 주제는 나의 양육태도 돌아보기였는데, 책 속에서 저자가 분류해 놓은 부모 유형을 적절히 활용하여 학부모 활동지를 만들어 보았다

 

 

활동2-나는 어떤 부모인가 <명륜동 행복한 상담실> 참조

나는 어떤 부모인가

나의

양육유형()

나의 변명

내 배우자의

양육유형()

그의 변명

내 부모의 양육유형()

내 부모의 변명

1. 나르시스트

 

 

 

 

 

 

2. 학대자 형

 

 

 

 

 

 

3. 부부 갈등형

 

 

 

 

 

 

4. 경직된 부모

 

 

 

 

 

 

5. 방치자

 

 

 

 

 

 

6. 감정형

 

 

 

 

 

 

7. 무일관성

 

 

 

 

 

 

8. 하인형

 

 

 

 

 

 

9. 매니저형

 

 

 

 

 

 

10. 친구형

 

 

 

 

 

 

 

자신의 것뿐 아니라 배우자(남편)의 양육유형, 그리고 자기 부모의 양육유형도 함께 체크해 본다. 만약 자녀가 여럿이면 아이들마다 따로 해보라고 권하기도 하였다. 자녀마다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다를 수도 있는데 그 원인이나 부작용을 살펴볼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아래 유형 점검은 이 책을 많이 참조하였고 강의 중에도 저자인 선안남 씨의 상담사례도 같이 인용하였다.

 

1. 나르시스트 부모 어떤 부모는 자기애가 너무 강한 나머지 자녀를 자신을 확장하는 도구로 봅니다. 자기중심적인 방식으로 삶을 살기에 주변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희생당하거나 착취당하기 쉽지요. 이런 부모를 나르시스트 부모라고 칭하겠습니다. ... 나르시스트 부모의 중요한 특성은 무시착취입니다. 자신을 앞세우느라 자신이 너무 소중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을 존중해주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면 우리는 주눅이 들기도 하고 자주 마음이 상합니다. 더군다나 부모의 나르시스트 성향이 지나친 경우 자녀들은 부모를 빛나게 해주고 기쁘게 해줄 도구로 전락하기도 하지요... 이런 부모는 다 너를 위해서라는 착각 속에서 자녀를 존중해주지 않고 상처를 입히는 일이 많습니다.”

 

 

아들러도 이 나르시스트형 부모에 대해 <아들러 심리학>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유명인의 자녀가 때로 부모나 사회에 대해 낙담하는 사람이 되는 이유는 부모를 추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신의 성공을 가정에서 자랑삼아 보이면 아이의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특별하게 잘 자란 아이가 주목받으면 다른 아이들에게는 적대감을 심어줄 수 있다. 열등감을 느끼는 아이들은 우월해지고자 하는 노력(학업이나 이런 긍정적인 의미가 아님. 아들러는 일탈행동을 하거나 울거나 범죄를 저지르거나 하는 모든 행동이 자신 상대방보다 우월해지려고 하는 행동이라고 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노력이 현실적이지 못하고 사회에 유익하지 않은 방향으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부부갈등이 많은 부모 에 대해서도 <명륜동...>에서는 어떤 젊은 아기 엄마의 사례를 보여준다. 아기가 이유 없이 새벽마다 울자 이유를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한다. 우울증이 너무 심해서 상담을 받아보았는데 사실은 어렸을 때 부모가 서로를 비난하면서 자식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했는데 자라면서 느꼈던 불안이 깊은 곳에 치유 받지 못한 채 자리 잡았던 것. 그게 좋은 배우자 만나서 잊혀진 줄 알았는데 새로 태어난 아이를 키우면서 터져 나온 거란다. ‘나는 불행하게 컸는데 넌 좋은 부모 만나서 행복하잖아, 그런데 왜 우냐’, 이러면서. 아이들 보는 데서나 듣는 데서 배우자를 흉보고 아이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면 안 된다. 아이가 내성적이면 우유부단한 성격이 되고 착한아이 콤플렉스를 느낄 것이고, 외향적인 아이라면 자기 잘못을 부모 탓으로 돌릴 것이다.

 

4. 경직된 부모

지나치게 원칙적이고 보수적인 부모가 여기 해당된다.

<아들러 심리학> 에도 재판관, 경관, 간수의 가정에서 범죄자가 나온다고 한다. 교사의 자녀들이 반항적인 경우도 많다는 것, 비행청소년 중 목사의 자녀들이 많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지나치게 경직된 원칙은 아이들로 하여금 불안과 적개심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는 의미이다. 야뇨증의 원인이 지나치게 엄격한 배뇨 훈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있으며 병적인 결벽증 역시 부모가 배변훈련을 혹독하게 해서 그럴 수 있다 한다. 아들러는 야뇨증은 나는 엄마가 생각한 만큼 성장하지 않았다, 보살핌을 더 받고 싶다는 표현이다.’라고 말한다.

 

5. 방치하는 부모

부모님은 항상 그랬어요. 나가서 맞고 오든, 선생님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든, 저를 보호해주고 제 편이 되어주지 않았지요. 진짜 아빠 맞나 싶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부모의 특성이나 힘든 사정 때문 등으로 자녀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 부모가 있다. 실제로 학교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부모들을 많이 만난다. <명륜동>의 저자는 물론 아무리 열심히 보호하고 보살펴도 부모의 울타리에는 허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울타리를 되도록 튼튼하게 해주려고 했던 부모의 마음이 자녀에게 전해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전해지지 않은 마음은 위안이 되지 못합니다.” 라고 말한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떠올렸다.

 

이 소설을 읽고 나는 '엄마'에 대해 생각했다. 윤정은 강간을 당했기 때문에 상처받은 게 아니라 엄마에게 버림받았기 때문에, 위무 받지 못했기 때문에 상처를 입었다. 윤수 또한 그러했다. 네 살 아이를 때려죽인 열 살 난 여자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온 그 엄마의 태연함은 아이의 영혼을 유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엄마라는 존재는 참 힘들고 무겁다. 소설적 설정으로 필요했기에 그토록 그악하게 그려졌지만 윤정의 엄마는 딸을 사랑하지 않은 거였을까, 과연? 집안의 체면과 허영 때문에 딸의 상처를 덮어버릴 수 있는 엄마로 그려졌지만 꼭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많은 엄마들이 잘못된 방법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거나 상처를 준다.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아이들이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켰을 때 학교에 오는 엄마들에게는 '많은 문제들'이 있다. 이기적이기도 하고 무지하기도 하고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특수한 경우 잘못된 운명 속에서 아이들을 돌보기보다 자기자신 하나 건사할 수 없는 삶의 질곡에 놓여 있기도 하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엄마는 없다. 아니 거의 없다. 다만, 잘못된 사랑이 너무 많아서, 아이들은 잘못된다. (풀꽃 서평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학부모 연수 <아들심리학 교실>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

 

한 번 돌아봅시다, 나의 부모에 대하여... 연민과 애정을 다 빼고, 객관적으로 내 부모가 이런 부모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바람은 없었는지요? 이런 부모를 만났더라면 내가 달리 성장하고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원망은 없었는지요? 어쩌면 지금 나의 아이들도 내게 그런 바람과 원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늙어가고 내 자녀가 자라 성인이 되어 가면 상하관계가 아니라 서로 인간적으로 다가가는 지점이 옵니다. 부모자식 간으로서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자식이 훌륭함을 인정하고 좋아한다고 고백할 수 있는 그런 부모 자식 간이 될 수 있겠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아들을 아들이 아니더라도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는가요? 당신의 아들은 당신을 엄마가 아니어도 참 좋은 사람, 열심히 사는 사람, 멋진 사람이라고 불러줄 것 같은가요? 자녀는 나를 보고, 친근감을 느끼면서도 사는 모습을 존경한다고 말할 수 있는, 닮고 싶은 사람으로 평가할 것인가요?’ 그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고 그래도 나는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다. 내가 저희들을 위해서 밥하고 빨래하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라고 항변한다고 해서 자식들은 부모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아이들만 성장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준비가 다 되어서 부모가 된 사람은 없겠지만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그 실수와 오류들을 극복하고 부모로서 우리도 성장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노력과 스스로를 성장시키려는 성찰이 필요합니다....“”

 

성찰하고 노력하고 성장하는 부모가 되기 위한 노력의 첫 단계를 뗄 때 도움을 준 이 책의 저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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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97
오스카 와일드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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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보고 싶었던 소설인데 다 읽고 나니 뮤지컬을 한다고 한다. 매혹적인 소재이고 글인 만큼뮤지컬도 보고 싶어진다. 도대체 누가 그 아름(답다는)다운 도리언을 연기할까. 나는 김준수/박은태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그는 과연 도리언의 악마적 아름다움을 잘 표현할까 궁금하다.

 

오스카 와일드가 쓴 서문에는 그의 예술관이 잘 나타나 있다. 유미주의라니. 아름다움만을 위한 아름다움이라니. 만약 정말 그렇기만 하다면 나같은 이는 이 소설을 읽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단지아름답기만 하지는 않다. 내 딸의 표현을 빌자면 장황하기 그지없는 18세기 영국 상류층의 유미적 취향에 대한 묘사나 그들의 유희들이 불편하거나 역겨울 수도 있다. 이 소설을 근거로 유추해보자면 유럽의 예술은 귀족이나 상류층들이 하도 할 일이 없어서 추구하고 추구하며 발달해온 것처럼 보인다. 물론 다행히도 역사 속에서 예술적으로 아름다운 족적을 남긴 이들은 대개가 가난했기에 그런 오해를 하지 않을 수 있지만 말이다(그 가난한 예술가들이 유럽 상류층들의 물적 지원을 받아 성장했다는 측면은 물론 간과하지 말아야 하지만).

 

도리언 그레이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남아도는 시간과 돈을 유미적 탐닉에 쏟는다. 그가 한때 유럽에 내로라하는 자수 작품에 관심을 가졌다는 대목에서 나는 실소를 금하지 못했다. 이건 작가가 상류층 한량들의 예술적이랍시고 두는관심사에 대한 비판인 건지, 아니면 본인이 표방했던 대로 정말 당시 귀족들은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본래 유미주의란 게 의미가 없어도 아름답기만 하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믿을 만한 것 아닌가? 아마도 오스카 와일드는 그런 가치관에 스스로 발목을 잡힌 부분이 있을 것이다. 진정 아름다움만을 추구한 삶이 건강하지 않았음을 자기 삶으로 입증했으며, 바로 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그런 삶의 한계를 스스로 두려워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도리언의 멘토인 헨리 경의 말 자기 인생의 구경꾼이 되는 것이 인생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지요.” 대로 도덕과 윤리가 우리를 옭죄어서도 안 되겠지만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이 결코 아름다울 수만은 없음도 보여주지 않았는가?

 

오스카 와일드가 했던 말, “바질 홀워드는 제가 생각하는 저의 모습이고 헨리 경은 세상이 바라보는 저의 모습이며 도리언은 제가 되고 싶어하는 저의 모습입니다.” 은 이 책을 쓰기 전에 한 말일까, 나중에 한 말일까? 무슨 불길한 예언처럼 도리언만큼 비참하게는 아니지만 오스카 와일드의 삶도 망가지며 끝났다. 어떤 잉에게는 그 비극적 결말조차 일종의 아름다움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오스카 와일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질질 끌려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름답고 슬픈 길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간 것일까?

삶의 보수성을 지닌 나같은 사람은 그나마 이 책의 가치를 세상에 덮어버릴 수 있는 악은 없다라는 교훈을 주는 것으로, 모든 부와 명예와 인기와 자족을 누리던 인간류에게 당신 영혼의 뒷면을 보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결론으로 책을 덮는다. 안타까운 것은 현실의 도리언들은 결코 그런 서늘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하고 평생 부와 명예를 누리다가 죽거나,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여도 끝까지 자신이 잘못한 게 없다고 발뺌을 한다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들에게도 비밀의 방에 그들 영혼을 반영하는 초상이 하나씩 있었으면 좋겠다. ‘천진악의 대명사인 박모 씨를 포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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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슬로베니아 - 사랑의 나라에서 보낸 한때
김이듬 지음 / 로고폴리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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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우의 <쿠바, 춤추는 악어>를 읽으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김이듬으로 인해 새삼 확인하게 된 것, 시인과 여행기는 참 잘 어울린다. 여행이란 게 다 낭만적이지만은 않겠지만, 시라는 게 다 낭만적이지만은 않겠지만 여행이 가져야 할 많은 속성 중에 가장 정점에는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시심(詩心)이 있을 것이고 시가 가진 가장 진솔한 속성에는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 대한꿈이 있을 터이다. 물론 어떤 이는 정보가 가득한 여행기를 선호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의미를 찾아 나서는 여행기를 좋아하기도 할 테니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선호와 취향일 수도 있다.

 

돌아보니 최근 나는 연이어 유럽여행기를 읽고 있다. 한꺼번에 6,7권의 영역이 다른 책을 동시진행으로 읽는 독서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 책 중에는 꼭 힐링용책들이 들어있다. 즐기려고 읽는 책들. 때로는 <모지스 할머니><따뜻하고 사랑스럽고 그래><개를 그리다> 같은 그림이나 사진책, <엄마에게> 같은 그림책, 때로는 <무민 손뜨개>같은 자수나 뜨개질 책, <2천만원으로 시골집 한 채 샀습니다> 같은 집 이야기책, 때로는 <나미야 잡화점> 같은 소설 혹은 여행기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최근 나는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당신에게 파리><사람 풍경> 같은 유럽 여행기들을 연이어 읽고 있다. 평소에는 움직임의 에너지가 많지 않아서 집에 혼자 있는 걸 제일 좋아하는 사람인데도 멀리 가는 여행을 좋아하고 꿈꾸는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유럽만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만 먼먼 세상을 꿈꾸는 건 맞는 것 같다. 죽기 전에 한 번쯤, 김이듬처럼 한 달 이상 혼자 여행가는 일을 꿈꿔본다. 김이듬은 장 그르니에를 인용해서 혼자 여행의 매력을 말한다.

 

장 그르니에 <> 나는 혼자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나는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주 오래 전에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을 본 적이 있다. 그 영화 속 폴란드는 공산주의 국가 시절의 동유럽이다. 지금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으리라. 덜 어둡고 더 자본주의화 되었겠지. ‘비까번쩍하지는 않지만 서유럽의 분위기도 남아있으리라. 그러면서도 덜 세속화된 아름다움과 동쪽 나라 특유의 조금은 음산한 분위기가 있겠지. 이게 내가 상상하는 동유럽이다. 내 리스트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들이다. 내 상상이 맞는지 곧 확인해 보고 싶다.

 

이 책에서 가장 부러웠던 장면은 슬로베니아의 대표 시인 프란체 프레셰렌(19세기 초)의 사망일 28일을 문화기념일로 삼아 아예 국경일로 정해놓고 전 국민이 일터를 벗어나 시를 읽을 수 있도록 온종일 나라 전역에서 시낭송회, 콘서트, 연극 공연 등이 열린다는 내용이었다. 천민자본주의와 상업주의가 고상하고 고결하고좋은 것인 줄 아는 대한민국에서는 언제쯤 돈 냄새가 나지 않는 진정으로 고상한 시와 문화의 가치를 누릴 수 있을까.

 

류블랴나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무대이기도 하단다. 그 책을 읽을 때야 그런 나라가 있는 줄도 잘 몰랐던 것 같다. 베로니카가 내려다보고 상념에 잠겼던 도시를 나도 내려다 보고 싶다.

그리고 트로모스토비에 다리로부터 15분 걸으면 국립도서관(류블랴나 대학 도서관)이 있단다. 쿠바 여행할 때 벤쿠버를 스쳐 지나가면서 원형극장을 흉내 낸 건물을 하나 본 적이 있다. 우리보다 한 달 뒤 3개월 어학연수로 벤쿠버에 가서 생활하게 된 아들 말에 따르면 그 원형극장은 공공도서관이란다. 아들은 랭귀지 스쿨 수업이 끝나면 그 도서관에 가서 저녁 무렵까지 공부를 하다가 어스름 어디쯤에서 햄버거 하나를 사 먹고 공원에 가서 산책을 좀 하다가 숙소로 돌아오곤 했단다.

아들이 보내준 사진 속의 도서관, 그리고 그런 녀석의 시간표는 나의 로망이었다. 도서관에서 실컷 공부하고 돌아오는 삶이 부럽다. 벤쿠버처럼 공기 좋고 아름다운 곳에서라면 더욱 좋겠지. 물론 잠시 머무는 삶이라서 부러운 것일 터. 그곳이 생계의 터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세상은 여행자에게나 아련하고 아름다운 법이다. 일상은 붙박이의 안정과 따스함을 줄지언정 아름답지는 않으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부표처럼 들떠 있는 잠시의 경험이어도 좋으니 한 두세 달, 도서관과 서점, 포근한 저녁거리를 배회하는 고독하고 편안한 삶을 살아보고 싶다. 지난 여름방학 딱 하루, 아니 딱 한나절, 동네 가까운 개포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도 온 적이 있다. 에어컨도 안 틀어주는 낡아빠진 도서관에서의 한나절이 어찌나 달콤하든지. 대학을 졸업한 이후 처음 가 본 도서관에서의 한나절이 이토록 사치스럽게 여겨질 정도로 나는 바쁘게 살고 있는가 싶다. 올 겨울방학에는 자주 갈 거다. 지겨울 때까지 도서관에서, 숨막힐 때까지 서점에서 놀다 올 거다.

 

여행기에서 남겨준 정보가 언제 유용할지 알지도 못하면서 기록은 남긴다. 류블랴냐 시에서 3번 버스 타고 티볼리 공원에 가보라는 정보, 27번 버스 타면 복합상가 건물로 갈 수 있다는 정보는 언제 써먹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김이듬이 소개한 스테파오누스키의 <루마니아 랩소디 1>과 스레치코 코소벨의 시로 만든 노래라는 <비브라토 티시네(침묵의 비브라토)>는 지금이라도 찾아 들어보련다.

 

김이듬은 류블랴냐 성에 갔을 때의 경험을 적막한 고성 벽에 기대어 태고의 새가 자신의 내면에서 푸드득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은 더없이 향기롭다.’라고 전한다. 누가 시인 아니랄까봐서... 나도 돌담의 습기와 거기 서린 남의 역사의 신비를 조금은 맡아볼 수 있을까? 내가 그곳을 여행한 날은 비가 온 다음 날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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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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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재미있기만 한 소설을 읽고 싶을 때가 가끔 있긴 하다. 가치 있는 좋은 소설은 대개가 불편하다. 현실은 불편한데, 어디 도망갈 아름다운 다른 세계가 있긴 한 걸까. 고통 없고 의미 없는 그런 아름다운 세계는... 그런 뜻에서 <눈 먼 자들의 도시>는 마음 편하게 볼 수 없는, ‘좋은소설이다.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게 될 때, 사람들은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나중에는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별 것은 아니지만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일, 문을 열고 닫을 때 다음 사람을 위해 손잡이를 잡아주는 일 들이 과거에는 당연했으나 지금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오히려 낯설어 보인다. 칭찬이나 감사를 듣기보다 오히려 낯선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럴 때의 외로움은 그나마 사소한 일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이 소설 속 의사의 아내가 느꼈을 외로움에 비할까. 소설이 현실의 극단적 비유라고 본다면 우리 삶의 곳곳에 이런 황당함과 외로움이 그렇게 비유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은희경 소설이었던가, 이모와 외할머니 손에 길러진 소설 속 주인공이, 자기와 별로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이모와 외손녀인 자신을 사이에 두고, 외할머니의 사랑이 딸인 이모에게 더 깊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의 쓸쓸함에 젖어 주인공은 만약 극단적인 상황이 생겨 둘 중 하나만 살려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이란 상상을 하면서 외할머니가 자신이 아닌 이모를 선택하리라는, 그래도 당연할 거라는 생각에 우울해 한다. 그리고 내리는 결론은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었다. 소설에 대한 나의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하는 소설 속 기원에 참으로 격렬하게 공감했었다. 극단적이고 비극적인 상상들 속에 그저 그런 일이 내게 닥치지 말기를... 주제 사라마구는 아마도 그런, ‘일어나지 말기를 기원해야 하는가장 극단적인 상상을 소설로 옮긴 게 아닐까 싶다.

가령, 노안이 와서 점점 흐려지는 눈은 이러다가 정말로 눈이 멀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상상으로 이어졌을 것이다(나도 그런 상상을 해 보았다. 글 읽고 쓰는 것을 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눈을 잃는다는 게 세상 가장 큰 고통일 수도 있다). 나 하나가 아니라 세상 모두가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라는 상상으로까지 뻗어나갔을 때, 궁극적으로 인류가 맞이할 것은 멸망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심해어처럼, 어둠(백색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인류가 살아남아 대를 이어가지 않을까).

 

그래서 아마 사라마구는 멸망으로 가는 길이 아닌 단 하나의 희망을 남겨놓기 위해 의사의 아내를 설정했나 보다. 무슨, 예수도 아니고, 그 어깨에 짊어질 무게를 어찌 감당하라는 건지. 그녀는 인간적 고뇌를 품고도 지혜로운 대안들을 충실히 찾아나간다. 때로는 살인과 같은 희생(그녀에게 살인은 자신의 영혼을 희생하는 일이었을 것이다.)도 감수하면서. 그리고 그녀의 힘은 결국 사람들이 인간성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인간에게는 더 좋은 사람이 될 가능성더 나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모두 있다고 할 때, 어떤 지도자, 어떤 멘토, 어떤 동반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어떤 가능성이 발현되는지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본다. 물론 그런 변수에 상관없이 흔들리지 않고 올곧게 좋은 사람으로만 살 수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그야말로 지도자일 것이다. 염세주의자들은 세상에 그런 인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역사나 기록은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말해준다. 빅터 플랭클이 그랬고 유태인 수용소의 에티 힐레줌도, 1949년 헝가리에서 체포되어 영국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감금되어 독방에 갇혔지만 어떻게든 정신의 붕괴를 스스로 막아낼 수 있었던 이디스 본같은 사람들도... 의사의 아내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구절이 그녀의 눈멂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고 싶다. 열린 해석이 이 소설의 매력이지만 도시는 아직도 거기 있었다는 말을 희망적으로 해석하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인류는 아름다운 지도자의 희생이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저속하고 추악한 존재라는 것을 예수 이래, 수많은 혁명가 이래 다시 확인해야 하는 셈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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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 공부 2 - 기적같이 공부 습관이 달라지는 작은 말의 힘 엄마의 말 공부 2
이임숙 지음 / 카시오페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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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이 읽으면 참 좋을 것 같다. 나는 상담실 교사용 책으로 이 책을 구입했는데, 중학생, 특히 남학생 대상으로는 해당되지 않는 내용도 좀 있긴 하다. 그래도 학부모 대상 상담연수 용으로 필요한 정보들을 얻었다.

일단,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엄마나 교사가 아이들에게 공감의 언어를 날려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 책에서 마법의 ~구나라고 표현한 말투가 있다. “속상하구나” “힘들구나와 같은 말들. 아이들이 보내는 사인에 대해 공감하는 말이다. 일종의 반영적 경청이다. 물론 그에 앞서 엄마들은 왜 자꾸 아이들 앞에서 짜증부터 내는지,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엄마들이 왜 나만 이렇게 참고 노력해야 하지?’하는 원망 때문에 그런 공감의 언어를 구사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래서 학부모 연수에서 자녀들에 대한 올바른 대화법을 논의할 때 일단 학부모(어머니들) 자신의 상태, 남편이나 자기 부모, 시집 식구들에 대한 원망과 양육 스트레스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이를 야단치거나 바라는 바를 말할 때도 평가하거나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보다 다음과 같이 말하라고 한다. 일단 아이 마음을 먼저 읽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 힘들었지, 힘들었겠다. 많이 힘들었을 거야.”

네가 엄마한테 그렇게 말하는 건 이유가 있어서일 거야.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야. 엄마한테 말해줄래?”

그래서 그랬구나. 화가 난 이유가 있었구나. 그래서 그런 말을 했어?”

아이가 실수했을 때에도,

도와주려고 그랬구나.”

잘 되기를 바랐던 거구나.”

잘하고 싶었구나.”

힘들어도 참으려고 했구나.”

기쁘게 해주고 싶었구나.”

잘되길 바랐구나.”

도와주려고 그랬구나.”

오빠랑 재미있게 놀고 싶었는데 져서 속상했구나.” 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이번에 꼭 골을 넣고 싶었던 거구나처럼 아이 스스로 말하지 못한 욕구를 헤아려 알아줄 필요가 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동생하고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구나.’ ‘방 청소를 잘했으면 좋겠구나와 같은, 하고 싶은 말을 해도 늦지 않다.

 

,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와 요즘 대화가 뜸하다는 학부모가 있으면 다음과 같은 대화의 재료들을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

집에 가야 하는데 교통비가 없다. 걸어가기엔 너무 먼데.. 어떻게 할까?

로또 10억 당첨된다면 어떻게 쓸까?

엄마아빠가 아파서 수술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요즘 내내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이때 드는 생각은?

언젠가 아빠와 둘이서만 꼭 가보고 싶은 곳은?

아빠가 나에게 해준 말 중 가장 좋았던 말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 점수를 매긴다면?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세 가지만 말한다면?

아빠가 도와주기를 바라는 점은?

친구가 함께 학교를 땡땡이치자고 말한다면?

 

요즘 부모들은 자기 자녀의 인성이나 습관보다 학업적 부족함에 예민한 경향이 잇다. 좋은 학업습관을 들여주는 일이 물론 중요하지만 우선순위를 잘 매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야단치고 평가하고 지적하는 일로는 나쁜 습관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저자는 숙제가 오래 걸리는 아이에게는 숙제하는 데 어려운 점은 뭐니? 어떻게 하면 숙제를 쉽게 할 수 있을까? 엄마가 뭘 도와주면 좋을까? 숙제 끝난 후에 하고 싶은 일은 뭐니?”라고 물으라고 한다. 공감 다음으로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같이 분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엄마의 다정한 말 한 마디를 뒤집으면, 정신적으로 아이들을 학대하지 말아야 할 의무와도 연결된다. 아동학대를 규명하는 아동복지법 규정을 넣은 저자의 심정을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 부모 자신이 살기 팍팍해서 자녀에 대한 돌봄에 게으른 집도 문제지만, 요즘은 살만한 집에서 지나친 학업 스트레스를 주면서 자녀를 학대하는 집도 많다. 자신들이 저지르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학부모들과 꼭 한 번 같이 읽고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의미에서 책에 언급된 아동복지법을 여기서 살펴보고자 한다. 아동복지법 2조에서는 아동을 ‘18세 미만으로 규정하고 있다. 3조에서는 정서학대언어폭력, 잠 안 재우기 벌거벗겨 내쫓는 행위, 삭발 강제 머리 자르기, 차별 편애 비교, 가족 내 왕따, 가정폭력을 목격하도록 하는 행위, 시설 등에 버리겠다고 반복적으로 위협하거나 짐을 싸 내보내는 행위, 미성년자 출금 업소에 지속적으로 데리고 다니는 행위, 돈 벌어오라고 하거나 나이에 맞지 않는 과도한 일을 시키는 것, 보호자의 종교 강요, 다른 아동을 학대하도록 강요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동 학대에서 방임도 단지 물리적 방임뿐 아니라 교육적 방임(학교에 안 보내거나 준비물 등 안 챙기는 것,) 의료적 방임을 포함하고 있어. 자칫 지나친 무관심은 위법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모들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법을 어기는 것이 무엇 무서운가. 아이 마음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부모인 내가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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