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투를 빈다 (10주년 기념 리커버 에디션)
김어준 지음 / 푸른숲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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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 방송을 들으며 재미를 느끼고, 감탄하고, 공감하고... 많은 즐거움을 느끼지만 특히나 좋았던 지점이 있다. ‘자존감이 높으면 저렇게 하지 않는다면서 막말하는 정치인인지 편파적이고 폭력적인 전략을 구사하는 언론인지를 비판했던 장면. 대개 잘난 척하는 사람일수록 자존감이 낮고 인정욕구가 높다. 자신은 높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을수록 굳이 그것을 확인하려 든다. 그것을 개인 간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정치인이나 언론의 태도에서 읽어내더라.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욕심이 없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이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 것도 두렵지 않, 가히 카잔차키스적인 사람.

김어준이 그런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대개 정치에 입문하고 권력에 발 들이는 이들도 처음에는 내 욕심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려는 욕심에서 출발하곤 하니까). 그런데 아직까지는 그래 보인다. , 개인적으로는 욕심 없어서 멋져 보이는 야인이 되기보다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세속에 발 담그라 권하고 싶긴 하다만.

 

자기는 가진 것 하나 없지만 세상 이치 꿰뚫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동네 형.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크게 될 것만 같은 형. 이야기 나누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얘기 술술 하게 되는 마력을 지닌 형. 대충 살어, 인마, 그래도 괜찮아, 쨔사, 그놈이 나쁜 놈이네, 근데 넌, 네 마음은 어떠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봤냐? 뭐 이런 멘트를 날릴 것만 같은, 그리고 그 허랑한 대화 끝에 촌철살인 놓치지 말아야 할 인간다움, 나다움을 붙잡게 할 것 같은 그런 조언을 날리는 형 같다.

 

자신이 멋지지 않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서 멋질 수는 결코 없는 법이란 걸 깨닫는 거 저절로 안 온다.

 

김어준의 가장 큰 매력은 자기가 멋지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어준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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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갈의 아이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11
낸시 파머 지음, 백영미 옮김 / 비룡소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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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론과 인간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둘 사이에는 어떤 차이도 없기 때문이지. 클론이 열등하다는 건 추잡한 거짓말이다.

 

 

선생님, 저는 누굴까요?”

부모와의 갈등으로 고민하는 아이들, 부모를 부인하고 싶은 아이들은 저런 질문을 할 것이다. 너무 이른 나이에 부모가 된 엄마의 아들이 있었다. 이제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상처받았는지를 잊었지만 사실 너무 이른 연애와 출산에 떠밀려 결혼을 하고 곧 이혼을 한 부모 탓에 아버지 없이 자란 그 아이는 포근한 가정의 품을 제대로 맛보지 못하고 자라야 했다. 그리고 혼자 아들을 키운 엄마는 툭하면 아들을 붙잡고 신세타령을 한다.

 

상담 중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나의 부모도 꽤나 이른 나이에 나를 낳았다. 엄마가 스물하나, 아버지가 스물다섯에 나를 낳았으니까. 젊은 엄마는 맏딸인 나를 딸이 아니라 여동생쯤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아버지가 엄마 속을 썩일 때마다 엄마는 내게 힘든 속을 털어놓는다. 어렸을 때는 불쌍한 엄마를 내가 이해해야지, 맏이인 내가 집안 사정을 다 잘 알고 있어야지, 내가 어른스럽게 동생들을 챙겨야지, 자부심을 갖고 이렇게 생각했었지만 돌아보니 그게 나에게 커다란 무게였더라. 우여곡절 속에서도 부모 자리를 지켜주셨던 두 분 부모님께도 이런 원망이 드는데, 자기를 버리고 간 아버지, 어린 아이처럼 아들에게 징징거리고, 아들에게 투사된 남편의 모습에 감정을 이입하는 어머니가 못 견디게 싫은 아이라면 저는 도대체 누구인가요?”라고 묻고 싶어지지 않을까?

 

마트는 클론이다. 화학과 곤충학을 전공했다는 지은이 낸시 파머가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쓴 이 소설에서 우리가 흔히 품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이라는 자기 정체성 제 11에 대한 의문과 속박은 산산이 부서진다. 마트는 부모가 없지만 건강하게 자란다. 유전자는 악인에게 물려받았지만(아니, 마트는 엘 파트론의 클론이므로 물려받은 게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이라고 해야 맞을 테지만) 마트 자신은 건강하고 선량한 사람으로 자라난다. 생물학적 부모는 없고 심지어 암소의 자궁을 빌어 태어났지만 마트는 자신의 보모 셀리아를 엄마 삼아, 자신의 경호원 탬 린을 아버지 삼아 좋은 가치관과 바른 인생관을 습득할 수 있었다. 나는 이런 게 교육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유전의 힘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것을 너무 강조하면 교육의 가치를 설 자리를 잃는다. 학교는 왜 필요한가, 부모가 없는 아이들도 어떻게 훌륭하게 자랄 수 있는가, 부족한 부모가 있어도 좋은 사회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부모의 영향보다 더 큰, 스스로의 자존,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이 소설은 잘 알려준다.

 

선생님, 저는 누굴까요?”

꼭 부모 상처 때문이 아니더라도 사춘기의 영적 방황의 갈래길 앞에 놓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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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형, 그림의 심리학 - 원, 십자, 삼각형, 사각형, 나선, 만다라 / 나의 삶을 힐링하는 6가지 도형 이야기
잉그리트 리델 지음, 신지영 옮김 / 파피에(딱정벌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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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사람의 심리를 읽거나 만다라 같은 도형으로 안정을 취하는 방법은 상담에서 많이 사용하는 기법이다. 도형은 융이 말한 개인 혹은 집단의 무의식을 상징는 표상으로서도 의미가 있다. 가령 사각형은 자연에는 없지만 가장 인간 본성에 부합한다고 융은 말했다 한다(왜인지 궁금하긴 하다. 현실적으로는 불완전한 존재이나 완벽을 지향하기 때문인가 싶다). 4라는 숫자는 모계를 뜻한다 하고 강박증 있는 환자가 그림을 그릴 때 사각형을 반복해서 그린다는 것이 그런 완벽 지향의 의미를 대변하는 게 아닐까.

 

흔히 우리는 원형이야말로 완벽함을 뜻한다고 생각하는데 사각형이 속세의 완벽을 뜻한다면 원형은 아마도 영적 세계의 완벽을 상징할 것이다.

원의 변형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 나선은 융의 해석처럼 개인화 과정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융은 삶의 모든 과정이 자기가 되는 개인화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나선은 그렇게 자신의 삶으로 나아가는 명상의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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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지배자 두룬 1 - 연금술사의 탄생 초록도마뱀
김정란 지음, 김재훈 그림 / 웅진주니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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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내가 아프게 사랑했던 시인들이 있다.

최승자, 김선우, 김정란...

 

그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궁금하던 차에 돌아온 김정란 시인은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 <두룬>을 들고 왔다.

 

돗가비에서 비롯되었다는 도깨비. 불을 다루는 대장장이의 정령적 재해석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김정란이 드라마 <도깨비>의 김은숙보다 먼저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연의 일치라면 이 어수선한 세상에 도깨비의 존재에 기대고픈 마음을 품은 이가 여럿이었을지도 모르겠고.

 

이 책을 읽으면서 품은 의문이 있다.

김정란이 기댄 도깨비가 과연 한국적 영웅일까?

도깨비의 민중성을 담아내긴 했을까?

우리 역사 속에 연금술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을까? 등등

 

우리의 민담이나 전설의 파편성으로 소설로 완결시키고 싶었던 작가의 의욕이 읽히지만 (그리고 많은 전설들이 영웅전설이긴 하지만) 어차피 창작물인데 왜 민중성 없는 판타지에 다시 기댄 걸까 아쉬움이 남는다. 하다 못해 <해리포터> 속에도 어린 아이들의 차별에 대한 갈등, 부조리에 맞서는 의식이 있는데 두룬은 결국 사로국 왕의 충성스러운 신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은가?

1권만 읽고 이렇게 써서 좀 미안하긴 하다.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나의 의문들에 대한 답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래도 시인의 문체는 아름답다.

 

자만은 영혼의 독이다. 그 독이 영혼을 물들이는 순간, 너는 타락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뱀들의 세상이구나

멋대로 혀를 날름대며 진실을 농단하고

거짓을 참이라 칭하며

탐욕을 참된 가치라고 우기는구나

순결한 땅을 무기로 파헤치고

사람들의 가슴에 독초를 뿌리고

사방에 매캐한 독을 뿜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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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 관찰 보고서 - 지극히 사적인
정지은 지음 / 낮은산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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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17~18년을 가정에서 굳어 온 습성과 가치관을 국어 선생 따위가 바꾸리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이자 자만에 불과해 너무 큰 기대는 갖지 말아야 돼. 섣불리 인성 교육 따위를 넘보지 말아야 돼, 그냥 전공에만 신경 써.... 언젠가부터 이런 주문과 주술을 걸며 스스로를 다독여 왔다.

 

 

저런 생각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밖에서 보면 선생만큼 편한 직업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겪어보니 치열하기 짝이 없는 이 학교라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일 터이다. 다른 직장에서는 상사나 동료 때문에 정글이라면 학교는 학생들 때문에 정글이다. 그들을 만나는 일이 너무나 섬세하고 예민한 일이기 때문이다. 교사 자신이 학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높여놔야 한다는 강박이 작용하는 곳이 학교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다 할지라도 결과는 그다지 눈에 띄게 남지 않는 일이 바로 가르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곳에서 숨 막히지 않고 살아남으려고 많은 교사들이 저런 전략을 쓴다. 교사도 인간이야. 완벽할 수 없어. 당신이 학생들 모든 것을 가르치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만심을 버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학교에서 교사 스스로가 말라 죽을지 모른다.

자신을 완벽한 사람으로 착각할 필요는 없지만, 학생들이나 교사나 우리 모두 불완전한 존재라는 생각으로 좀 더 편안하고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필요는 있지만, 그게 설마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저자가 그런 의미로 저 말을 한 것은 아니리라 믿어본다.

 

학교는 치열하지만 그래도 정지은 선생의 시선은 재치가 있고 따뜻하다. 교사들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아이들 이야기도 재미있다. 교육과는 상관없지만 이 책을 계기로 <한비자>를 읽어보게 된 점도 개인적으로 고맙다. 한비자의 가치관을 내면화한 교사는 스스로가 인정하듯 아이들에게는 좀 냉철한 교사가 될 수 있다. 나의 노선과는 정반대이긴 하지만 그건 교사들 개개인의 방식과 전략으로써 인정. 한비자 철학의 교육관으로써 옳은가에 대한 논쟁은 <한비자> 서평에서 이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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