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뽑아줄티 소나무야 자라거라
밀양 할매 그림, 김영희 글 / 교육공동체벗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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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프면 돌아보기 싫다... 많은 집회에 나가 보았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외면하게 되는 모임이 있다. 나의 비겁함을 반영하는 마음이라는 것, 인정. 밀양 송전탑 싸움이 그랬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싸움이라는 생각이 드는 참혹한 싸움들에는 자꾼 눈을 돌려 버린다.

 

이 책이 나오기 전 펀드를 모은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이미 다 끝난 싸움 아니었던가? 이미 진 싸움 아니었던가?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영원히 끝나버린 싸움이 어디 있나.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친일부역자들과 싸워야 하지 않다. 특히나 졌든 이겼든 싸움이 끝난 직후, 상처를 치유하고 잘못된 행태를 돌아보고 갈등을 정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않으면 승리한 싸움, 잘 싸운 싸움조차, 아니 잔치조차 앙금이 남는 법인데.... 밀양처럼 아픈 싸움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아픔만 남는 것은 아니다. 할매들의 그림은 이상하게도 순진무구하니 어여쁘다. 요즘 들어 할매들의 그림이나 글이 각광을 받는 것은 그 간난신고를 겪고도 여전히 간직하는 따사로움, 지식을 넘어서는 삶의 지혜를 지니고도 여전히 겸손하고 순수한 마음이 주는 감동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피터지는 싸움을 딛고 상처투성이 몇 남지 않은 동지이자 이웃들만 남은 밀양할매들의 이야기와 그림은 더말할 나위 없다. 아프고 아름답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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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 이야기 세트 - 전4권
김은성 지음 / 애니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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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만화도 아이들이 좋아할까 궁금하다. 먹과 붓으로 그린 것 같은 필체에 온통 알아듣기도 힘든 함경도 사투리, 그리고 지긋지긋한 그 6.25 이야기, 명절날 늘어진 테이프처럼 듣고 또 듣는 할머니 이야기 같은... 이 만화가 좋았던 나는 내가 낡은 감수성을 지녀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북 사투리래 봐야 백석의 시 같은 데서나 봤던 나에게도 왠지 모를 향수 같은 걸 불러오는 만화지만 아이들은 글쎄?

 

교과서도 시류를 탄다. 남북한이 평화의 분위기를 타던 10여 년 전 교과서에는 남북한의 언어 차이를 공부하는 단원이 실렸다. 그리고 시중에는 <평양 프로젝트>라는 만화책이 나와 있었다. 우리는 그 만화책을 가지고 북한에서 많이 쓰는 말들을 공부했다. ‘장마당이니 꽃제비평양제일중학교같은 말들로 퀴즈도 풀고 그랬다. 그리고 1966년에 있었던 월드컵 축구 영상도 봤다. 30년 내내 하는 말이긴 했지만 남북이 더 이상 싸우지 않아서 여러분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5년쯤 후에 군대에 가야 하는 소년들에게 말하곤 했다.

 

군대 가지 않아도 될 그 날이 오길

내 큰 아버지가 일제에 징용을 갔다 왔고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했다. 나는 1987년 대학교 3학년 때 6.10항쟁을 온몸으로 겪었다. 여러분이 겪어야 할 역사는 무엇일까? 아마도 좋든 나쁘든 통일의 기운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여러분 중 어떤 사람은 북한과 교역을 할지도 모르고 북한 여자와 사귀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남북관계는 여러분이 가장 활동적으로 살아갈 무렵에 여러분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언어를 탐구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할 거다.”

물론 내게 그런 이야기를 듣던 소년들이 30대가 된 지금도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소년들은 점점 통일에 관심이 없어진다. 나 역시 통일이 되긴 할까 싶다. 통일까지는 아니어도 전쟁 걱정 없이 살았으면 싶을 뿐이다.

 

다시 남북은 화해의 분위기를 탄다. 아니다, 아직은 담장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다리를 한 짝 걸치고 있다. 그래도 좋다. 나의 열다섯 살 소년들과 함께 징병제로 갈까, 모병제로 갈까, 군대 문제를 토론해본다. 아직 군대 생각을 하기엔 너무 어린 15세 소년들의 눈빛은 불안하게 흔들린다. 통일 따위 개나 줘버렸으면 싶다는 냉소적인 아이들에게도 어쨌든 징집은 현실이니까.

선생님, 통일이 되긴 할까요? 북한 사람들은 어떤 이들일까요? 누군가 저런 질문을 한다면 이 만화를 건네 보련다. 가장 평범한 이들이 겪은 소소한 역사가 살아 있을 뿐 아니라 낯선 듯 재미있는 이북사투리도 만날 수 있다. 이 만화 속 함경도 사투리를 흉내 내어 큰 소리로 읽어보아도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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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하늘말나리야 - 아동용,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책읽는 가족 1
이금이 글, 송진헌 그림 / 푸른책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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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에서 나온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머릿속을 뒤집어 본다, 뭐 그런 뜻이다) 맨 마지막(엔딩 크레디트 끝나고 나서 나온다)에 사춘기 남학생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나온다. ‘스포가 될까봐 구체적으로 말은 안 해준다. 직접 보시라. 간단히 말하면 그들은 별 생각이 없다. 아무 생각이 없고 격렬하게 아무 생각도 않는다.” 쯤 된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이맘때 남학생들은 다 그런가? 오랜 동안 남학생을 가르친 입장에서 남학생들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라고 편들어 주고 싶지만.... 미안한 얘기지만 수업 시간에 우리 학생들은 말귀를 참 못 알아먹는다. 멍 때릴 때도 진짜 많다. 말이 짧다. 그러니까 저런 만화가 나오는 거다. 물론 모든 학생이 그런 건 아니지만.

하지만 그러다가도 쉬는 시간만 되면 갑자기 뇌가 활성화되는지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고 나가면서 갑자기 어려운 단어들을 마구 쏟아낸다. ”그러니까 너는 지금 자아탐구가 필요한 시기라고.” “됐어, 어디서 묵비권을 행사하고 그래?” ~ 1인데 그런 언어를 구사한단 말이지? 돌아보면 머릿속에 축구와 게임밖에 없을 것 같은 아주 귀엽고 아주아주 개구쟁이처럼 생긴 친구가 그런 말을 한다. 남자 중학생은 단순하다, 소년들은 어휘력이 짧다, 남자애들은 생각이 없다, 이건 모두 편견이다!

 

<너도 하늘말나리야>4시간에 걸쳐 읽었다. 조용히 각자의 새 책을 두 손 고이 받잡고 읽기 시작할 때의 그 순정함은 거의 흰 장갑 끼고 규장각에서 조선왕조실록을 꺼내드는 유생들이다.

여러분, 두 손을 들어 보세요. 바지에 쓱쓱, 손바닥의 땀을 닦고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 봅시다. 내년에 후배들에게도 읽혀야 하니까요.” 하란다고 다 따라한다. 짐짓 자기들도 조심스러운지 선생님, 책 겉에 있는 띠지는 어떻게 해요?” “버리세요.” “? 진짜요?” “선생님, 쟤 책 접어요. , 그거 새 책이야아~.” 경건하다가 못해 난리부르스다.

소설에는 세 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소희, 미르, 바우. 바우는 엄마가 돌아가신 충격 때문에 선택적 함구증을 앓고 있다. 소설 시작하자마자 이런 내용이 나오는데 당연히 궁금할 수밖에,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용어가. 조용히 분위기 잡기 시작할 무렵에 누군가 속삭이듯, 누군가에게 묻는 건지 모를 말을 중얼거린다. ‘선택적 함구증이 뭐지?’

나 들으란 건가? 가서 설명해 줘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누군가 또 속삭이듯 설명해 준다. ‘,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한테만 말하는 거야.’ 그러자 여기저기서, 저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또 속삭이듯 말해주는 아이들. ‘말 못하는 거야, 그거, 충격 받아서.’ ‘근데 가족이나 친한 사람한테는 말할 수 있어.’ 얘들아, 다 들리거든?

보통 수업 시간 같으면 20분 간격으로 활동을 바꿔야 집중하는 중1 소년들이 30분 넘게 책에 몰두한다. 물론 이 재미난 책을 읽으면서도 죽어라 진도 안 나가고 옆 친구가 어디 읽고 있나 힐끗거리는 아이들이 있긴 하다. 책은 한 페이지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안드로메다로 영혼을 우주여행 시키는 친구들도 아주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 몰입도면 책이 꽤 재미있다는 뜻이다.

 

동화라고 해야 할 만큼 소설은 쉽고 재미있지만 문장도 구성도 단순하지만은 않다. 특히 소희의 마음이 자꾸 지핀다. 이야기는 미르 사건 중심으로 가지만 요즘 흔히 간과하는 청소년들의 정신적 성장부분을 소희를 통해 보여주는 것 같다.

바우와 소희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깊은 신뢰감이다. 청소년기에 이런 정신적 교감은 매우 중요하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고 있을 것 같은 신뢰감. 말하지 않아도 읽히는 마음......

미르 엄마와 바우 아빠의 교감도 눈에 띈다. 아이들 눈으로 볼 때 어른들의 우정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두 어른이 혹시 서로를 좋아하는 건 아닐까 하는 오해가 있었지만 미르나 바우가 정신적으로 성장하면서 어른들에 대한 이해도 확장된다. 두 어른은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과 낮고 겸손한 삶의 철학으로 친구가 된다. 신영복 선생이 말했던가, 입장의 동일함이 소중하다고. 동지란 그런 것이다. 동지는, 연인이나 친구와는 다른, 매우 깊고 진한 관계의 이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좋은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인 것 같다. 성장소설이 빠지기 쉬운 위악(거짓으로 , 못된 척 하는 것)’을 부리지 않으면서도 재미있고 훈계를 하려 들지 않지만 지향을 보여주는, 좋은 성장소설이다.

 

45분 수업 3시간 동안 책을 읽는데 매 시간 10분 정도 남기고 간략히 그날 읽은 내용을 정리하는 시간을 두었다. 내가 기대한 모습은 열심히 책을 읽은 만큼 조용히 글을 쓰는 모습이었지만 이때다 싶게 아이들은 토론을 벌인다. ‘(소곤대며) , 너 몇 쪽까지 읽었어?’ ‘126’‘, 진짜? 100쪽도 못 읽었는데?’ ‘근데 말이야, 소희는 바우한테 왜 그렇게 말했을까?’ ‘, 아냐, 그건 둘 사이에 오해가 생긴 거구, 장미꽃은 말이야......’ 그러니까 말하자면 우리 학생들은 그날 읽은 만큼 자연스럽게 독서하고 대화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 궁금하니까~.

책이 재미있으면 억지로가 아니어도 아이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독후감도 그렇지 않을까? 이야기를 간직하고 싶어서, 이 감동 어딘가에 나누고 싶어서, 즉 자기 안에서 넘치는 이야기를 주체할 수 없어서 일기장에 적는다면 그게 최고의 독후감이겠지. 그나마 다행인 건 독후감에는 진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공감이 많이 됐다.’ ‘바우, 소희, 미르의 우정이 부러웠다는 내용이 많았다. 그리고 수행평가 평가기준을 말해줄 때 내가 아이들이 쓴 독후감에 대한 독후감(나의 감상)’을 들려주면서 여러분, 진짜 재밌게 읽었다는 글이 많네요.” 했더니 많은 아이들이 입을 모아 ~짜 재미있었어요. <어린왕자>는 좀 어려웠는데 이 책은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한다. ~, 이금이 선생님,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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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눈물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5
전상국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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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갖고 있는 허상이 있(). 과거형일 수도 있고 현재형일 수도 있어서 ()이라 써 보았다. 지금은 학교나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개탄하지만 (어쩌면 진정한 좋은 학교와 교사의 모습을 갖추어 가기 위한 진통의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한때 학교는 학생에게 무소불위의 존재였던 때가 있었다. <우상의 눈물>은 바로 옆 경희고등학교에 국어교사로도 근무했던 전상국 선생의 작품으로, 자신이 직접 현장에서 경험한 이야기가 녹아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우리 학생들이 이 소설을 읽는다면 바로 저런 시대에 학교에 다니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기표라는 아이만큼은 아니지만 학교생활을 위협하는 주먹깨나 쓰는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씁쓸해 할까. 이 소설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더불어 오랜 세월이 흘러도 양상만 달라질 뿐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 학교폭력의 민낯을 보게 해 우리 학생들로 하여금 학교폭력에 대해 성찰하거나 고백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영웅...>은 정치와 역사와 시대의 우화로 쓰여진 훌륭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지식인을 상징한 저항자 한병태를 비겁하고 지질하게 그리는 잘못를 범해 결국 그놈이나 그놈이나 다 나쁜 놈이라는 회의에 빠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우상의 눈물>은 그보다 더 치밀하게 폭력의 실체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어려운 말로 좀 더 실존적이라고나 할까.

 

학교폭력을 다루는 오래된 소설들

처음엔 아이들을 함부로 때리고 돌아가는 기표가 나쁜 놈 같았다. 하지만 정의의 사도처럼 보이는 모범생 반장 형우가 기표를 능멸하는 장면에서는 누가 진정한 나쁜 놈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사실은 형우를 이용해 기표를 불쌍하기 짝이 없는 아이로 만들어버린 담임선생이야 말로 선을 가장한 악임을 알게 한다는 면에서 세상사가 그렇게 단순한 선-악 구도로 돌아가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짧은 소설인데 읽고 나면 나는 세 꼭지점 중 어디쯤에 놓인 걸까, 실존적인 고민을 하게 한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토론을 부른다. 좀 오래 전, 2013년 무렵인가, 경희중학교 학생들이 지금보다 훨씬 짧은 까까머리 두발을 하던 시절에 이 소설을 읽고 토론을 한 적이 있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을 읽고 당시에 나온 드라마 <2013 학교>의 한 장면을 보았다.

 

1960년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엄석대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우상의 눈물>기표’, 그리고 21세기 드라마 <학교>(지금은 투병 중인 김우빈이 눈빛연기와 더불어 막 살았으니까.....’라는 명대사를 남겨서 유명했던)에 등장하는 오정호’...... 모두 시대를 넘나드는 학교의 무서운 엉아들이다. 양아치라고도 부르고 날라리, 혹은 일진이라고도 하고 짱이라고도 불리는 아이들. 다들 그렇게 망가질 수밖에 없는 아픈 가정사와 사연들이 있다. 물론 최근에는 가정적으로 불우하지 않아도, 오히려 경제적으로나 부모의 학벌로나 아쉬울 것 없음에도 인성 쓰레기인 겉으로 멀쩡해 보이나 진정 근본까지 구제불능인 악인캐릭터들이 드라마나 영화에 많이 등장하긴 하지만 여기선 생략.

 

그러고 보면 학교폭력이나 주먹으로 학교생활을 연명하는 무서운 엉아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어디에나 있었나 보다. 우리 나라뿐이랴, 일본애들, 미국애들도 학교짱들은 얼마나 무서운데....

물론 위 소설이나 드라마들의 주제는 다 다르다. 나는 특히 학생 개인의 폭력성보다 그들을 폭력적으로 만드는 이 사회와 빈부격차를 비판한 드라마 <2013 학교>가 참 좋았다. 하지만 문학작품으로 접해야 한다면 역시 <우상의 눈물>을 권한다. 기표라는 깡패보다 더 무서운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 학교와 담임, 그리고 반장. 1980년대 시대 분위기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작품이나 근본은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이길래폭력을 행사하는지 묻지만 특히 <우상의 눈물>은 평범해 보이고 신사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더 악한 존재일 수 있다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기에 자기가 스스로 난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자부하는 대다수의 보통사람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 <우상의 눈물>을 읽었다면 다음 질문에 답해 보자.

- 학교폭력, 개인의 문제로 볼 것인가, 사회의 문제로 볼 것인가?

- 기표는 소위 말하는 결손가정의 학생이다. 결손가정이 부적응아를 만드는가?

- 만약 그렇다면 결손가정이 만들어진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 <우상의 눈물>에서 진짜 나쁜 놈은 누구인가?

- <우상의 눈물>의 서술자 유대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 여러분이 학교 선생님이라면 기표 같은 아이를 어떻게 대했을까?

- 여러분은 학교 선생님이나 어른들로부터 나쁜 놈이라는 오해를 받은 적이 없는가?

- 기표처럼 잘못이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절대로 구제받을 수 없는 걸까?

- 범죄는 개인의 문제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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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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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당신의 인생 책은?’이라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꼽으리라. 나에게는 아직도 1982년에 출판된 1600원짜리 세로쓰기 <데미안>이 있다. 이 책을 산 것이 고1 때였던 것 같다.

 

부모가 싫어 기숙사를 택한 소년

28년 전쯤, 교단에 선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함께 이 책을 읽은 소년 이야기를 먼저 하련다. 내가 그에게 이 책을 주었는지, 아니면 그 아이가 고등학교에 가서 혼자 책을 읽고 내게 보낸 편지에 책 이야기를 쓴 건지도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소년은 왜 졸업한 후 내게 보낸 편지에 <데미안> 이야기만 썼을까? 늘 전교 1등에, 결국 나중에 서울대를 들어간 수재였지만 어딘가 우울해 보였던 그 아이, 나중에 생각해 보니 모범생 콤플렉스때문이 아니었던가 싶다. 아이는 내성적이고 말이 없었다. 머리가 좋았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아이였지만 사실은 공부 잘하기를 강요(강조?)하는 부모님과 멀리 떨어지고 싶어서 강원도의 수재들만 들어간다는 고등학교로 진학해 기숙사로 들어갔다. 그렇게 혼자가 된 아이는 <데미안>을 읽으면서 진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던 것이다. 편지는 중학교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진정한 나는 누구일까하는 고민에 시달리던 에밀, 그리고 신비로운 소년 데미안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책을 제법 많이 읽는 중2 소년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다른 사정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늘 우울 모드이면서도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는 밝고 명랑한 또 다른 자아를 드러내는 그 소년은 며칠 만에 거뜬히 책을 읽고 와서 조잘조잘 책 이야기를 떠들다 갔다.

 

1980년대를 살았던 열일곱 살의 나, 또 다른 1990년대의 열일곱 살 강원도 소년, 그리고 21세기에 만난 경희중학교의 열다섯 살 그 소년. 우리 셋의 공통점은 무얼까.

<데미안>자기를 찾아가려는 부단한 노력을 주제로 하여, 에밀이라는 서술자(이자 주인공)이 방황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에밀 곁에는 그보다 두 살 많은 친구, 정신적 멘토인 데미안이라는 지혜로운 소년이 있다. 데미안은 에밀이 방황할 때마다, 곤경에 처할 때마다 비뚤어질 때마다 늘 곁에서 그를 지켜봐 준다. 데미안은 매우 시크 앤드 쿨한 친구다. 따뜻한 위로를 건네거나 유용한 조언과 충고를 던지는 게 아니라 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꽤 뜬금없어 보이는 알 듯 말 듯한 말들로 에밀을 생각의 늪빠트린다. 그런데 에밀 이 녀석도 생각이 많은 녀석이라 데미안의 그런 화두를 붙잡고 또 열심히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내면의 소리를 탐구한다. 하지만 그렇게 에밀 인생에 길잡이 노릇을 해주던 데미안은 1차 세계대전 참전 중 그만 사망하고 만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처음 이 책을 읽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저 데미안의 죽음이 충격적이었지만(이제 에밀은 어떻게 살지? 하고 걱정했던 기억이..) 나이가 들면서 다시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새삼 느낀다. , 그래, 데미안은 에밀 자신이었어! 데미안은 에밀의 또 다른 자아야! 사람에게는 여러 개의 자아가 있다. 다중인격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무의식의 세계, 본능의 세계, 스스로가 인식할 수 있는 자아, 이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스스로를 통제하려는 초자아... 그 모두가 자기 자신인 것인데, 칼 구스타브 융이라는 심리학자는 그 모든 모습을 자기 자신으로 인정하면서 가장 자기다운 모습을 찾아가는 길이 인생의 목표라고 말했다.

<데미안>의 저자 헤르만 헤세는 한때 융의 분석심리학 이론에 기초한 정신의학의 힘을 빌어 심리치료를 받았다 한다. 그 이론에 의하면 에밀은 현실의 방황을 안고 사는 존재이지만 그 안에는 데미안처럼 지혜롭고 안정적이고 이상적인 또 다른 자기가 있다는 것이다. 친구가 죽자 에밀은 슬픔에 빠지지만 이제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게 되었을 때 오히려 그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네가 깨고 나와야 할 그 슬픈 세계는 무엇인가

너는(나는) 지금(그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널() 영원히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으리라. <데미안>과 함께 한 십대를 보낸 것은 너의(나의) 긴 인생에서 행운일 수 있으리라. 알을 깨고 훨훨 날아간 너는 멋진 어른이 될 것이지만 혹시 가끔 날아온 길을 뒤돌아보아야 하는 어느 저녁이 오면 슬펐던 너의 중학교 시절이 잠시 기억날 것이다. 괜찮다. 그러면서 크는 거다. 너는(나는) 남들보다 좀 더 아프면서 크고 있는() 것뿐이다. 이제는 네()가 누군가의 <데미안>이 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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