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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뽑아줄티 소나무야 자라거라
밀양 할매 그림, 김영희 글 / 교육공동체벗 / 2019년 9월
평점 :
너무 아프면 돌아보기 싫다... 많은 집회에 나가 보았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외면하게 되는 모임이 있다. 나의 비겁함을 반영하는 마음이라는 것, 인정. 밀양 송전탑 싸움이 그랬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싸움이라는 생각이 드는 참혹한 싸움들에는 자꾼 눈을 돌려 버린다.
이 책이 나오기 전 펀드를 모은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이미 다 끝난 싸움 아니었던가? 이미 진 싸움 아니었던가?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영원히 끝나버린 싸움이 어디 있나.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친일부역자들과 싸워야 하지 않다. 특히나 졌든 이겼든 싸움이 끝난 직후, 상처를 치유하고 잘못된 행태를 돌아보고 갈등을 정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않으면 승리한 싸움, 잘 싸운 싸움조차, 아니 잔치조차 앙금이 남는 법인데.... 밀양처럼 아픈 싸움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아픔만 남는 것은 아니다. 할매들의 그림은 이상하게도 순진무구하니 어여쁘다. 요즘 들어 할매들의 그림이나 글이 각광을 받는 것은 그 간난신고를 겪고도 여전히 간직하는 따사로움, 지식을 넘어서는 삶의 지혜를 지니고도 여전히 겸손하고 순수한 마음이 주는 감동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피터지는 싸움을 딛고 상처투성이 몇 남지 않은 동지이자 이웃들만 남은 밀양할매들의 이야기와 그림은 더말할 나위 없다. 아프고 아름답고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