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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평점 :
누군가 ‘당신의 인생 책은?’이라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꼽으리라. 나에게는 아직도 1982년에 출판된 1600원짜리 세로쓰기 <데미안>이 있다. 이 책을 산 것이 고1 때였던 것 같다.
부모가 싫어 기숙사를 택한 소년
28년 전쯤, 교단에 선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함께 이 책을 읽은 소년 이야기를 먼저 하련다. 내가 그에게 이 책을 주었는지, 아니면 그 아이가 고등학교에 가서 혼자 책을 읽고 내게 보낸 편지에 책 이야기를 쓴 건지도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소년은 왜 졸업한 후 내게 보낸 편지에 <데미안> 이야기만 썼을까? 늘 전교 1등에, 결국 나중에 서울대를 들어간 수재였지만 어딘가 우울해 보였던 그 아이, 나중에 생각해 보니 ‘모범생 콤플렉스’ 때문이 아니었던가 싶다. 아이는 내성적이고 말이 없었다. 머리가 좋았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아이였지만 사실은 공부 잘하기를 강요(강조?)하는 부모님과 멀리 떨어지고 싶어서 강원도의 수재들만 들어간다는 고등학교로 진학해 기숙사로 들어갔다. 그렇게 혼자가 된 아이는 <데미안>을 읽으면서 진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던 것이다. 편지는 중학교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진정한 나는 누구일까’ 하는 고민에 시달리던 에밀, 그리고 신비로운 소년 데미안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책을 제법 많이 읽는 중2 소년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다른 사정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늘 우울 모드이면서도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는 밝고 명랑한 또 다른 자아를 드러내는 그 소년은 며칠 만에 거뜬히 책을 읽고 와서 조잘조잘 책 이야기를 떠들다 갔다.
1980년대를 살았던 열일곱 살의 나, 또 다른 1990년대의 열일곱 살 강원도 소년, 그리고 21세기에 만난 경희중학교의 열다섯 살 그 소년. 우리 셋의 공통점은 무얼까.
<데미안>은 ‘자기를 찾아가려는 부단한 노력’을 주제로 하여, 에밀이라는 서술자(이자 주인공)이 방황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에밀 곁에는 그보다 두 살 많은 친구, 정신적 멘토인 데미안이라는 지혜로운 소년이 있다. 데미안은 에밀이 방황할 때마다, 곤경에 처할 때마다 비뚤어질 때마다 늘 곁에서 그를 지켜봐 준다. 데미안은 매우 ‘시크 앤드 쿨’한 친구다. 따뜻한 위로를 건네거나 유용한 조언과 충고를 던지는 게 아니라 ‘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꽤 뜬금없어 보이는 알 듯 말 듯한 말들로 에밀을 ‘생각의 늪’ 빠트린다. 그런데 에밀 이 녀석도 생각이 많은 녀석이라 데미안의 그런 화두를 붙잡고 또 열심히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내면의 소리를 탐구한다. 하지만 그렇게 에밀 인생에 길잡이 노릇을 해주던 데미안은 1차 세계대전 참전 중 그만 사망하고 만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처음 이 책을 읽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저 데미안의 죽음이 충격적이었지만(이제 에밀은 어떻게 살지? 하고 걱정했던 기억이..) 나이가 들면서 다시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새삼 느낀다. 아, 그래, 데미안은 에밀 자신이었어! 데미안은 에밀의 또 다른 자아야! 사람에게는 여러 개의 자아가 있다. 다중인격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무의식의 세계, 본능의 세계, 스스로가 인식할 수 있는 자아, 이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스스로를 통제하려는 초자아... 그 모두가 자기 자신인 것인데, 칼 구스타브 융이라는 심리학자는 그 모든 모습을 자기 자신으로 인정하면서 가장 자기다운 모습을 찾아가는 길이 인생의 목표라고 말했다.
<데미안>의 저자 헤르만 헤세는 한때 융의 분석심리학 이론에 기초한 정신의학의 힘을 빌어 심리치료를 받았다 한다. 그 이론에 의하면 에밀은 현실의 방황을 안고 사는 존재이지만 그 안에는 데미안처럼 지혜롭고 안정적이고 이상적인 ‘또 다른 자기’가 있다는 것이다. 친구가 죽자 에밀은 슬픔에 빠지지만 이제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게 되었을 때 오히려 그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네가 깨고 나와야 할 그 슬픈 세계는 무엇인가
너는(나는) 지금(그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널(날) 영원히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으리라. <데미안>과 함께 한 십대를 보낸 것은 너의(나의) 긴 인생에서 행운일 수 있으리라. 알을 깨고 훨훨 날아간 너는 멋진 어른이 될 것이지만 혹시 가끔 날아온 길을 뒤돌아보아야 하는 어느 저녁이 오면 슬펐던 너의 중학교 시절이 잠시 기억날 것이다. 괜찮다. 그러면서 크는 거다. 너는(나는) 남들보다 좀 더 아프면서 크고 있는(큰) 것뿐이다. 이제는 네(내)가 누군가의 <데미안>이 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