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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평점 :
국어교사가 되었지만 만약 문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면 공부해 보고 싶었던 학문이 건축학, 천문학, 그리고 미술이었다. 모두 재능이 부족했다. 가지 않은 길은 늘 아쉽고 그립고 신비로운 법이다. 책에서 위안을 얻지만 특히 미술 에세이, 과학 에세이, 건축 에세이를 좋아한다. 그 모두는 과학과 공학의 영역임과 동시에 문학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러니 심채경의 글이 나를 부를 수밖에. 한겨레 신문에 연재하는 그의 글을 읽으며 어머, 이 사람, 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맛있게, 황홀하게 읽고 난 후, 아쉬움과 그리움을 품고 있을 때, 그때 그의 책이 나왔다 하니 당연히 반길 수밖에.
우주를 향하는 그리움이 과학자의 것이든 문학을 하는 이의 것이든 같을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다. 어떤 이는 그걸 시로 썼을 것이고 어떤 이는 공식으로 풀려 애썼을지라도, 방식은 다를지언정 그런 일을 마음에 품고 시도를 한 시작은 같은 것이라는 의미이다.
심채경은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아주 짧아도 좋으니 직접 쓴 문장만으로 보고서를 완성하라고 요구한단다. 그러면서 ‘남의 업적을 내것인 양하는 태도는 국가나 가족에 대한 긍지를 느낄 때나 쓰는 것이요, 남의 글 베끼기는 타자 연습할 때나 하는 일이다. ’라 말한다.
최근에 나도 중2 학생들에게 설명문 쓰기를 두 달 정도에 걸쳐 천천히 가르치는 프로젝트 수업을 했다. 가장 기본적이고 객관적인 형식의 완성도 높은 설명문 한 편을 길게 써 보면서 글의 형식적 틀거리만이라도 제대로 공부했기를 기대한다. 열다섯 살 소년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다양한 형식의 글들을 써야 할 것인가. 그 고통의 문턱을 넘기 위한 수련의 시간을 최대한 고통스럽지 않게, 그러나 제대로 경험하게 하고 싶다. 설명문의 기본, 설명문다움, 문장의 기본 형식을 가르치는 일도 쉽지가 않다. 그러나 심채경의 말 대로 ‘학문할 때의 글은 형식도 갖추어야 한다. 다양한 공간과 시간을 넘어 그야말로 누구나 읽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학문적 글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해주는 글을 쓰는 일도 이렇게 힘겨웠다. 그 형식 하나를 숙지하는 데 두 달이 걸렸다. 하필 그 수행평가를 진행하는 동안 심채경의 글을 읽으면서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린 이런 걸 가르쳐야 해.... 물론 나는 궁극적으로 좋은 문학적 글을 쓸 수 있는 학생들을 기르고 싶다만, 민주시민교육으로서의 기본 국어교육이려면 실용적 글쓰기를 바탕으로 해야 하니까, 문학적 글쓰기는 아련한 영역으로 잠시 미뤄둘지라도 말이다.
수성 이야기를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와 연결할 수 있는 그의 지성을 축복한다. 그는 이렇게 썼다.
걷거나 의자를 옮기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해 지는 광경을 오래도록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수성이다. 그곳의 하루는 아주 길어서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88일이나 걸린다. 해가 지고 나면 다시 88일간의 긴 밤이 시작된다.
해 지는 걸 보러 가는 어린 왕자를 만난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장미 옆에서 가로등을 켜고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 왜 슬픈지 캐묻지 않고, 의자를 당겨 앉는 게 마흔세 번째인지 마흔네 번째인지 추궁하지도 않고, 1943년 프랑스 프랑의 환율도 물어보지 않는 어른이고 싶다. 그가 슬플 때 당장 해가 지도록 명령해줄 수는 없지만, 해 지는 것을 보려면 어느 쪽으로 걸어야 하는지 넌지시 알려주겠다.
얼마 전에 누리 호가 발사되었다. 책 속에는 달 연구가로서 우리나라 정부가 달 탐사를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해왔는지가 기록돼 있다. 2007년에 노무현 정부에서는 2020년 달 궤도선을 발사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는데 2011년 이명박 정부가 그것을 2023년으로 미뤘단다. 그리고 그 다음 대선 토론에서 박근혜가 2017년으로 당긴다는 공약을 발표했다가 어찌어찌하여 현재로는 2022년 여름 발사가 목표란다. 하지만 누리호 발사할 때 뉴스에 나온 전문가 말로는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과의 협의(허락?)라는 높은 산을 넘어야 한단다. 운전 중 마침 정차한 지점에서 누리 호 발사의 카운트 다운을 함께 목청 높여 외쳤던 나는,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는 뉴스에 옆 차에서 쳐다볼 정도로 격렬하게 박수를 쳤던 나는 잠시 달을 사랑하는 것과 달을 연구하는 것 사이의 엄청난 간극을 잊고 그 모든 관계자들과 동지가 된 기분을 맛보았다. 달님은 참 가까이 떠 계신 듯하다. 남편 손을 잡고 뛰쳐나가 본 월식의 동쪽 하늘도 가까웠다. 미국의 허락이 더 먼 시대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우리들의 별 목록에서 사라진, 그러나 마음에는 남아 있는 명왕성에 대한 저자의 글을 소개한다. 사뭇 자존감, 당당함, 의연함, 이런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명왕성, 그리고 그에 대한 심채경의 사유가 담긴 부분을.
고대의 인류도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것이다. 해가 이끄는 시간을 따라 생활하고, 별 사이를 천천히 가로지르는 달을 눈으로 좇고 혜성이 나타나면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때도 명왕성은 제 궤도를 묵묵히 돌고 있었다. 우리가 행성이라 부르든, 왜소행성이라 부르든, BTS가 명왕성의 번호 134340을 노래하든 말든 개의치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