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말하는 보르헤스 ㅣ 보르헤스 논픽션 전집 3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8년 3월
평점 :
이 책은 보르헤스의 강연을 모아놓은 책이다. 어떤 작가에 열광하면 그의 강연이나 소소한 행적에도 관심을 갖게 되겠지만 문학성이 높은 작품의 저자일수록 강연은 실망스러울 수 있다. 문체가 아름다웠던 작가가 말은 평범한 경우도 있고(물론 말이 평범하든 어눌하든, 거장이 실시간으로 내놓는 말을 듣는 그 현장성만으로 가치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걸 글로 옮겨놓으면 실망스러운 경우가 있다는 뜻이다) 순수한 문학적 정신이 화려한 언변이나 현실적인 표현으로 훼손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어쩌다 이 책으로 먼저 보르헤스를 접하게 되었는데, 난해하다는 보르헤스의 장벽을 좀 쉽게 넘어보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아마도 보르헤스는 말과 글이 일치하는 사람인가 보다. 번역서이긴 하지만, 만약 이런 식으로 강연을 한다면 현장에서 듣는 이들에게는 그 음성 자체가 시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스페인어를 사용합니다. 스페인어권에서 죽은 사람 중 얼마나 많은 이가 내 안에서 살고 있습니까?...(나는) 개인의 불멸은 믿지 않지만 우주적 차원의 불멸은 믿습니다.
이런 말은 내가 사춘기 때 했던 생각과 닿아 있는데, 영성에 관한 언설이기도 하지만 문학의 본질을 건드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현재는 항상 극히 작은 과거와 미래의 미립자를 지니고 있습니다. ... 우리는 변하는 존재이자 변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신비한 존재입니다, .. 가변성 안에 영속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는 ‘독서처럼 강연도 합작품’이라고 말한다. 강연이 청중과의 호흡으로 합작품이 될 수는 있겠지만 독서는 내밀한 작업이 아니던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이 말에 충분히 공감한다. 책을 읽는 순간 저자와 만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어느 날은 막 사랑에 빠지기 시작한 연인처럼 느껴지고 어떤 날은 돌봐야 하는 늙은 부모같이 애틋하면서 지긋지긋해지기도 한다. 책과 내가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고 세상에 대한 염오를 극복하기도 한다.
나는 ‘나는 항상 천국은 도서관과 같은 것으로 상상했습니다.’ 보르헤스의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나의 책장을 바라보며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을 보고 흐믓해 하다가, 죽기 전에 저 책들을 다 읽을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든 적 있다. 오래 전에 나온 좋은 책 중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거기다가 매달 새롭고 재미난 책들은 얼마나 많이 쏟아져 나오는가. 죽음의 시간이 다가옴을 알고 맞이해야 한다면 가장 아쉬운 것이 바로 읽지 못하고 떠나는 책들이지 싶다. 하지만 보르헤스의 말대로 하늘나라에서 도서관을 만날 수 있다면 죽음도 나쁘지 않으리라. 물론 나는 내세도 다음 생도 별로 믿지 않는 편이지만 그 문학적 표현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서둘러 책을 읽어야겠다는 강박도 덜어준다. 지금 못 읽으면 죽어서 천천히, 오래오래, 영원히 읽자, 지금처럼 그냥 아무거나 읽고 싶은 것 먼저. 어디에 써먹어야 하므로 읽을 필요도 없고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 읽을 필요도 없고, 부지런히 읽어야 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도 없이, 오직 즐거움만을 위한 독서.
에머슨은 도서관을 가리켜 마법에 걸린 수많은 책들이 있는 마법의 방이라고 말함.
그들은 우리가 부를 때에만 잠에서 깨어난다. 우리가 책을 열지 않으면 그 책은 글자 그 자체, 그리고 기하학적인 종이 더미일 뿐.
시에 대한 언급에도 격하게 공감한 부분이 있다. 그는 시란 이미 존재하지만 숨겨져 있던 것이라면서 시인으로서의 내 임무는 바로 그것들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훌륭한 시를 읽을 때, 어쩌면 나도 그것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라고 말한다. 나 역시 내 마음을 그대로 시로 쓴 것 같은 작품들을 만날 때, 이래서 내가 굳이 시인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나에게 시인의 재능이 없어도 아쉽지 않다는, 시인이라는 존재들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는 충만한 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