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Arch > 눈 오는 날, 옛 친구를 찾다. -할매꽃 후기


 

 

 

 

 


 


김연수 -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란 생각에서 흔쾌히 승낙했다.

진행자 - 어떻게 봤나.

김연수 -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 봤다란 얘기를 하는게 걱정됨. 내가 계속 얘기를 하다가 딴소리를 하고 있지 않을까란 우려도 있음.(웃음) 다큐를 좋아한다. 감정이입이 잘 되고, 실존해 있는 사람들의 말이기 때문에 작가들의 상상의 여지가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스크린 밖의 일까지, 말하지 않는 것까지 상상하게 된다. 이야기와 개인사, 극히 일부분만 다뤄졌는데 영상으로만은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다. 화면 밖의 이야기들이 나를 끌어당긴다. 작은 할아버지의 경우, 단편적인 기억이 아닌, 일상, 하루가 백년 같다란 느낌을 상상한다면 영상으로는 온갖 일을 다 담을 수 없다. 말하지 못한 부분들을 생각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감독님이 힘들었을 것이다. 글로 쓰기도 어려운게 가족사는 객관적 위치가 확보되지 않아 자꾸 반신반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려되는건 한쪽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하진 않을까란 점이었는데 균형에 대해선 말할 수가 없다. 다만 열린 결말이었고, 지금 세대(자신과 감독을 쳐다보며, 우리 같은 세대죠란 눈빛을 보내는)가 접근하는 방식이란 점이 인상적이었다.

진행자 - 가족의 이야기라 고민을 계속했을 것이다. 객관화하거나 갈등을 도출시키는 부분, 연출 기준은 어떤거였는가.

문정현 - 만들고나서 든 생각은 만들기 쉬웠단, 다큐멘터리가 사람과의 관계를 다루기 때문에 전혀 낯선 사람이 아닌, 친하니까 말해달라고 부탁드리면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시작은 쉬웠지만 끝나고나서 생각해보니 좋은걸 만들긴 힘들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마 다신 안 만들 것 같다. 객관화하는 문제, 시선을 어디다 둬야할지, 내가 한쪽만 다루고 있고 한풀이지 않을까란 고민을 줄곧 해왔다. 결국은 솔직해지자란 결론을 내렸고, 내 감정에 충실하자란 기준을 정했다. 내 감정에 충실하되 지긋하게 눌러 객관적이고 솔직하게 바라보자란 생각을 했다.

진행자 - 김연수의 작품, 밤은 노래한다 중 작가의 말에 보면 극중 인물에 대해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연수 - 소설 마지막에 친구들이 이념 때문에 죽이는걸 다뤘다. 해결 안 되는 문제들인데 나같은 경우는 상식주의 안면주의(웃음)인지라 친분을 중시한다. 내 세계관(웃음) 아니, 가까운 사람에게 잘하는게 내 처세관인데 그 입장을 송두리째 박살내는 일이 현대사에서 많이 일어났다. 상상 안 된다고, 윤리적으로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룰 수 없다고, 분노나 배신감 등을 모른척할 수 없고, 그것을 어떻게 다뤄야할지 모르겠다. 삶에 대한 교훈이기도한데 모든게 적과 우리편으로 명쾌해지지 않는다. 찝찝한 상태를 견디는 것, 화해는 아니고, 어정쩡한 상태로 있는 것, 소설이고 나와 관계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해하려고한 것이지, 직접적인 사람에게 화해를 종용하는것 자체가 폭력적일 수 있다. 소설에선 죽여야할 사람을 안 죽인건 바라본다는 의미가 컸기 때문이다.

진행자 - VIP 시사 때 어머니 반응은 어땠는가.

문정현 - 그 전에 미리 보셨고, 박수 한번 받아보시라고 올라오라고 말씀을 드렸다. 처음에 어머니는 내가 다큐를 찍는걸 반대했다. 돈이 안 된다거나 불안정해서가 아니라 끼가 없어서 안 된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이번 영화를 준비한다고 하니까 '여봐라, 이 정도 가지고 얘기를 한다.'며 그럴줄 알았단 반응을 보이셨다.(웃음) 그래도 고생했다고 말씀해주셨고, 열광적이진 않았어도 은근히 좋아하셨다.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진행자 - 어머니가 끼가 굉장히 많으신 분이라고 알고 있는데.

문정현 - 어머니는 한국무용, 가야금도 배우시고, 득음을 한다고 돌아다니시기도 했다. 어렸을때는 날 끌고 탈춤을 배우기도 했다. 어머니가 당신께서 이 다큐를 연출했다면 워낭소리처럼 대박낼 수 있었겠구나라고 말씀을 하셨다.(웃음)


관객질문


승주나무 - 영화를 보면서 참 부럽다란 생각을 많이 했다. 고향이 제주도인데 제주도 역시 인구의 1/3이 죽임을 당했다. 외가쪽에도 사연이 있는데, 피해를 승화시키고 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현기영씨도 제주도에서 도망나와야 쓸 수 있다고 할 정도였는데. 현대사의 다큐가 심부까지 깊게 들어와 놀랐고, 준비하는데 어떤 과정이었는지 궁금했다. 불만이나 해소되지 않은 부분 중에 가족사로 녹여도 승화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어떤건지 궁금하다.

문정현 - 영화는 2003년에 시작했고, 영화에서처럼 일기장을 보면서 가족사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기획이 됐다. 이 작품만 매진할 수 없어서 2003년에서 2007년까지 준비를 했지만 할매꽃이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영화가 근현대사 이야기냐는 지점보다는 대화하고 알아가는 시간이라 좋았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나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할머니에게 보여주려고 만들려는 영화였기에 방향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만들어가면서 치유된게 많았다. 해소되지 않은 나만의 문제라면 다큐멘터리의 의미, 존재, 현장감을 드러내는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나의 경우는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고민을 던지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철학이라고 봐왔다. 내가 생각했던게 변해가며 영화, 가족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불만스럽지 않았다. 사실성을 기반으로 했다는, 객관적일거란 선입견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드라마타이징이란 방식으로 집착하며 과도한 열등감으로 만들어낸게 아닐까란, 이야기를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곡선들 만들어내려고 한건 아닌까란 고민은 했다.

관객 - 다큐를 많이 보는 사람이 아니다. 정확한 내용을 모르고 보기 시작했는데 주제가 영화가 진행되면서 절충되는 느낌이었다. 이념- 인간성- 경험, 그리고 겸허함에 이르는 것 같았는데 김연수 작가가 책으로 쓴다면, 처단은 어떻게 다뤘을지가 궁금하다.

진행자 - 교묘하게 틀어서 작가에게 질문을 한다.(웃음)

김연수 - 아마 좀 더 기승전결이 뚜렷해지겠으나 정말 다를 것이다. 작은 할아버지의 일기장을 미스테리적으로 도입부에서 가져가 이야기 끝에 해소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갖고 스토리를 만든 경우라면 소설의 허구에서 시작해 스토리를 갖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작업하는 분들은 사실 그대로 보여줘야된다는 강박들이 드라마타이징 형식을 도입하는 것에 부담을 갖게 하기 마련인데 어쨌든 다큐에는 흐름이 중요하다. 내 작업은 이념적이며 다른 것을 재배치하는 과정이다. 잘 모르겠으나 처단이나 단죄에는 관심이 없다. 큰 얘기를 하더라도 난 개인적인 문제로 돌아간다. 국가와 개인의 대립이란 것 안에서 처단, 단죄는 국가적인 관점일 따름이란 생각이다. 개인적인 관점으로 돌아가면, 영화에서 자살한 사람도 나오듯이 우리가 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개인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어머니, 가지 말라고, 만나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란 생각을 했는데 그냥 끝나서 안심했다. 내 결말도 다르지 않을 듯하다. 결말 자체가 오묘했고, 내 성향이랑 비슷하나, 다큐멘터리의 경우 그 후를 쫓아간다는 것에 비춰볼 때, 보는 입장에선 그런 결말의 의도가 무엇인지, 어떻게 됐는지가 궁금해진다.

문정현 - 어떻게 됐는지를 많이 궁금해한다. 커다란 의도는 없고, 솔직한 맘이었다.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배경에는 국가란 제도,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사람들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란 얘기를 하고 싶었다. 비정규직, MB악법으로 또 다른 곳에 희생자가 있다란. 반성이나 성찰이 없다면 할머니가 겪은 일들은 똑같이 반복되고 있고, 반복될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관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왜 우리 역사는 이랬을까, 우린 이런 시대가 있었고, 희생자였구나, 이런 질문 안에서 현재를 바라보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며 끝난 것은 과거를 바라볼 수 있는 바탕과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질문을 던지려는 의도였고, 한풀이나 값싼 구도가 될까 우려했던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관객 - 반성하지 않은 과거는 되풀이 될 것이란건 낙관적인 얘기라고 생각된다. (...)역사청산이 가능하냐란 질문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회색인간들이 흔들거리며 그들 각자의 모순에 부딪히며 흘러온게 역사인데 어떻게 청산이 될지도 의문이 든다. 그런 면에서 엄마에게 왜 그렇게 강요를 했는지 궁금했다.

문정현 - 다큐는 재현을 토대로 하지만 어디까지 가능한가에 대해선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철거촌에서 울고있는 아이를 찍을 수 있을까, 죽어가는 사람을 찍을 수 있을까. 윤리적으로 올바른가란 고민이 있을 수 있고, 단순히 적과 아를 구분하는 선에서 끝날 우려가 있기도 하다. 가해자를 징벌하잔 의도로 보였다면 내 실수이다. 그건 내 한계만은 아닌 솔직한 마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한테 그 당시의 가해자의 자식들을 만나길 강요하면서 -물론 아주 잔인했지만- 내 안의 실마리를 찾았다. 또 다른 폭력일 수 있다란 생각을 안 한건 아니다. 어머니가 가서 만나보시겠다고 했다가 점점 변모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란 생각도 들었고, 당사자들은 어렵겠지만 어머니 세대에서는 가능하지 않을까란 바람도 있었다. 그래서 잘못된 모습으로 강요한 부분이 있었다. 역사란건, 회색의 사람이 그려온 선이 아닌 민초, 작은 그룹인 역사가 합쳐진 거대한 집합체란 생각을 한다. 역사인식의 차이일 수 있다.

관객 - 바라보는 입장이 아닌, 어떻게보면 조금 잔인한 질문일 수 있겠지만, 너라면, 네가 경찰이라면 어떻게 하겠냐란 질문이 나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문정현 - 그런 질문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당신 같으면 이렇게 찍을 수 있었겠느냐, 되돌아보는 역사적 사건이 성찰의 바탕이 될 수 있겠는가란게 더 유의미하다고 본다.(...)

Arch - 영화, 정말 잘 봤다. 예고편을 보면서 역사 속에서 상처받은 인물들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 그런 위로나 치유의 방식이 유효할까란 의문을 갖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내 맘조차 위안을 받을 정도로 괜찮았단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너무 숱한 어려움에도 남에게 베풀기 좋아한 할머니와 항상 긍정적인데다 에너지 넘치는 어머니란 캐릭터- 캐릭터라 말하기는 어폐가 있으나-에 대해 정말이지 빠져들고 말았다. 내가 나중에 나이가 든다면 꼭 본받고 싶은 인물상일 정도로 인상 깊었다. 혹시라도 옆에서 지켜봤을 때 그들이 당신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긍정적이고 배려할 수 있는 지점들을 마련한 계기나 에너지가 있다면 뭘지 정말 궁금하다.

문정현 -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가족들이 일부러 숨겼다거나, 혹은 특별히 내게 말할 이유가 없었다. 체화된 삶의 이유가 있었고, 발화된 경우 아프긴 하지만 이 정도 역사 없는 집이 없을 것이란, 각자의 집마다 많은 사연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적용된 측면이 크다. 그렇다면 그런 아픔을 왜 끄집어냈냐란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시사회 후에 그런 질문을 준 사람이 있었는데 인상 깊었다. 재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에 대해선 아직 똑같은 폭력이 난무하며 이것에 대해 말해야할 책임감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가 현실을 바라보는 거울, 틀이 되길 바란 마음이었고, 가족들이 바라는 것도 그것이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보면 한나라당이 되면 다들 숨도 못쉬고 살아간다라고한-다큐가 만들어진 당시는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기 전이었음.- 할머니 말씀이 그냥 허투로 뱉어낸 말이 아니란 것도 지금 상황을 보면 짐작가기 마련이니까. 그분들은 그렇게 체화되었단 생각이다.

진행자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김연수 - 연재소설을 쓰고 있는 중이다. 창비에서 대단위 프로젝트, 올로케 3권짜리 소설인데 중간에 잘라라, 이래서 중단되는 연재를 하는 중이고(웃음), 연재가 끝나가고 있는 것도 하나 있다. 올해 하반기에 단편소설집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문정현 - 편집중인 영화가 있다. YMCA남성의 기만적인 이야기, 2편을 편집중이다. 남한 사회의 시민운동이 유효한지, 친자본, 기층 운동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고민 중이다. 또 다른건 개인사적인 다큐멘터리를 기획중이다. 91년도 분신 사건이 다큐를 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내가 광주 출신이라 광주 5.18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개인사와 시대의 모습, 이제는 더 이상 운동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제목은 '내가 문근영을 만나야 하는 이유'이다.

진행자 - 아주 선정적인 대한민국 좌익 감독의 얘기였다. (웃음)



 한글 문서로 10포인트인데도 4페이지가 넘어서는 분량을 적어나가면서 애초에 성실한 기록자이며 객관적인 내용을 전해주고자했던 의도와는 다르게 이건 단순한 사실 전달만이 아닌, 말이 발화되고 내가 적어가는 순간들의 감정과 중요도의 차이에 따라 조사 하나, 단어 하나에도 많은 고려가 있어야할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꼭 해야할 일도 아니기에 내가 하던식대로 감상을 남기는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란 생각을 안 한건 아니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고, 처음으로 '무려 김연수' - 웬디양님과 대화하다 내가 인용을 하자 그녀가 동의해준 무려 김연수란, 단순히 소설가나 김연수가 아닌 황송하지만 아주 많이 황송할 정도는 아닌 약간 놀랍고, 만나면 반가운 의미의 '무려'란 말이 나온 것이다. -를 본 소감에 대해서 할 말이 없었던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든 감독님과 감독님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드는 것의 시선에 대해서도 물론, 할 말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도 난 왜 이 긴 후기의 대부분을 작가, 감독, 관객과의 대화로 채웠을까. 내가 주효하게 바라보는 시선틀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은 욕구와 '좋았어요'로 끝내기엔 해주고 싶은 말이 참 많다란 욕심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욕심은 욕심대로 유효할지 모르겠으나, 메모한 내용을 보면서 그들과 관객들이 나눈 대화의 공백을 메꾸는게 얼마나 힘든건지 절감했다. 다큐멘터리나 뉴스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고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란게 어떤건지, 내가 녹음기가 있었다면 있는 그대로가 될런지, 의사사건처럼 내가 좀 더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 방점이 찍히진 않았을런지, 게다가 아, 난 너무나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있는건 아닌지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수면 위에서 투닥거리고 있었다. 새삼 '객관화된 사실'에 대해 쓴다는 것의 위력과 조심스러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부정확한 내용과 언어를 글로 기록하는 것에서 삐져나오는 적절치 못한 뉘앙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록했던 내용을 후기에 올린건 객관화되지 않은 얘기를 쏟아낸데에 대한 비난을 달게 받겠단 각오가 있어서라기보다는 Arch의 생각은 이렇지만 난 이렇게 읽었다란 코멘트나 다른 시각의 이야기들을 듣고 싶은, 역시 욕심 때문이다. 좀 더 여지를 두려는 의미에서 적어도 적절한 거리를 두고 전달할려고 노력했단, 나름의 변명을 다시 스크롤 압박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끼적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이런 글을 쓸 때 어느 정도의 준비와 각성이 필요할지 절실하게 느끼기도 했고.


 영화를 보고나서 잔상처럼 남은 장면은 할머니가 맨발로 자신의 옛 땅들을 돌아다녔던 모습이었다. 애니메이션으로 잠깐 소개되기도 했지만, 난 좀 더 생생하게 그 장면이 떠올랐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누구에게 말하지도 못하고 끙끙, 자기 안으로 삭이는 고통이 자꾸 발로, 죽음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할머니도 알았을텐데, 얼마나 암담했을까. 모두의 죽음 앞에서 그저 묵묵히 견디는 것만을 택했어야하는, 그게 자신만이 아닌 시대의 모든 사람이 겪는 일일거란 단순한 희망에 온 몸이 바스러지는 것도 모르며 베풀고, 인자하게 웃어주셨던 분. 늙고 노쇠한 몸으로 다가올 죽음에 몸을 맡기며 고생하셨다란 말에 나뭇잎처럼 몸을 바르르 떨던 분.

'나의 외할머니는 당신 장례식에 오시는 분들, 음식 많이 드려 따뜻하고 배부르게 대접하라고 유언처럼 말씀하셨다.'

 질문했던 것처럼 에너지나 긍정적인 것만으로는 부족한, 그 힘. 그렇게 견딜 수 있고 살아가게하는 힘 앞에서 맘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그들, 견디는 민초나 민중이 아니라 내가 다다를 수 없는 경지를 지닌 누군가, 닮아가고 싶고, 조금 덜 아프셨더라면 좋았을 할머니의 힘이었고, 할머니의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공포탄으로 정신이 이상해진 남편을 바라보며 백가지 맘을 먹었다가도 내 인생 하나만 희생하면 된다란 생각에 백년같은 하루를 지키고 견디어내었던 작은 외할머니. 할머니는 그런 남편이 죽기 전에 '자넨 어쩔랑가 소리 한마디 안 하니 서운했다'고 하셨다. 난 그 분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정말 모르겠다. 바보 같고, 순하신 이분들이 어떻게 그 삶을 견디고 어떻게 지내왔는지 정말 모르겠다. 체화된 삶이라고, 모두가 다 그러니까 자기가 겪는건 별거 아니란게 어떻게 가능한지, 무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 지점을 정말 잘 모르겠다.

 쉽게 복기 이모의 아버지를 총살한 사람의 자식을 만나겠다라고 허락했던 어머니가 한 발자국 물러서게 되면서 한 말, '옳고 그름을 어떻게 알겠니, 인간 자체가 모순이지'란 말에서 어쩌면 나 역시 실마리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역사적인 고통의 반복을 알아야하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하기 위해, 사람들이 좀 더 성찰할 수 있기를 바란 의미에서 감독은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난 비록 외할머니는 이 영화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남은 사람들에게 난 이 영화가 작은 목소리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다란 것을 느꼈다.

 모두가 겪는 일일지라도, 당신들, 그리고 앞으로의 우리들은 녹록치만은 않을거란걸. 직설적인 화법으로 감독은 할머니 얘기를 통해 들려줬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진정성의 힘이란 구태의연한 감상으로서가 아니라 맘으로 영화를 받아들일 것 같다란 생각이 들었다.

외할머니를 위해 만든 영화였지만, 우리 모두가 배우고 위로를 받게 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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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9-03-24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와. 아치님 질문도 했어요? 후훗 나 너무 좋은 사람에게 양도했어요 (아 그런데 뮤지컬은 디게 재미없었어요 -_- 흑흑) 이 글은 나중에 영화보고와서 읽을 거에요. 선리플 중관람 후감상 쯤 되나? ㅋ

Arch 2009-03-24 17:39   좋아요 0 | URL
네엡^^ 갑자기 튀어나와서 몇개의 댓글을 슝슝 보내준 웬디양님~ 뮤지컬도 재미없었다고하니, 할매꽃 후기 2탄- 김연수의 행동과 표정, 언어습관과 미소에 관한 심층적인 분석을 통한 웬디양 약올리기를 써볼까 궁리중임.
 

 정확히 말하자면 난 영어를 싫어한다.  

 영어 공부하기를 싫어하고, 영어로 말하는 것, 영어 단어가 나오는 것, 말을 하면서 영어 단어를 섞는 것, 영어를 배워야한다는 강박, 영어 몰입교육, 영어 공용화란 되먹지도 못한 주장, 영어 학원, 영어 유치원, 죄다 싫어한다. 내가 영어를 배우는 날이 있다면 떠밀리듯이 마지막 보루라는 심정으로 억지 춘향을 하거나, 오늘 '성'이 말한대로 비굴한 인생을 체득하는 비결쯤으로 생각하고 배울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성'과 얘기를 하다 정말 내게 영어는 뭘까란 생각을 다시 해볼 수 있었다. '성'은 요새 영어학원 기초반에서 회화를 배우고 있다. 자기 입에서 여태껏 입에 익은 한글이 아닌, 영어가 튀어나오고, 그게 썩 괜찮은 기분이란 것도 반가운데 오늘 본 예문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문에는 

 네 취미가 뭐냐란 단순한 질문에 대답 예문으로  

 My hobby is studying language.라고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이 예문이 틀린거라면 전적으로 몇번씩 입에 익게 발음을 했음에도 워낙에 짧고 가망없는 아치의 영어실력 탓이 되겠다.- 자신으로선 언어를 취미로 배운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는데 보란듯이 취미취미인 영어, 재미있는 영어, 내 입에서 다른 나라 말과 문화를 얘기할 수 있는 영어도 가능하단 생각이 들었단거다. 그러고보니 나의 영어반감 역시 공부해야한다는, 지리한 문법과 제대로 된 영어발음일까란 의문, 이 나이에 무슨 영어란 것의 범벅이었지, 새로운 문화에 능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언어, 좀 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도구로서의 언어인 영어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란 생각이 들었다. 유레카라고 외치기엔 경박하지만, 그럴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은 들었다. 

 그러면서 덧붙여지는 생각은 김어준이 어디에선가 했던 말처럼  

 영어 못해도 상관없다, 자기가 영어 할 필요 없을 정도로 멋진 사람이 돼서 통역을 붙이면 될 것 아니냐란 전혀 모르겠단 포즈의 말. 그 포즈와 비슷한 것으로 신해철이 고대 학생들한테 욕을 하며 젊으니 꿈을 갖아라, 자기계발서의 꿈을 품고 어쩌고 블라블라의 말들. 그런데 정말 꿈만으로 된다고 말하는 이들의 위치는 더 이상 꿈을 안 꿔도 되고, 꿈 접근치에 다달았으니 할 수 있는 말들 아닌가. 그들이 정말 평범한 삶을 견디는 일들에 알 수 있을까. 안다고 쳐도, 감히 욕까지 하며 누군가에게 말을 할 수 있을까? '성'과 얘기를 하다 꿈대로 산다는 사람들이 폄하하는 평범한 사람이 얼마나 되기 힘든지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았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의 비굴함과 고됨, 결혼이란 어마어마한 일로 직진할 수 있는 결단력, 혹은 미끄러지듯 들어서는 순간들. '성'의 경우는 직장과 집에 동시에 출근하는거라고 했지만, 난 여자라면 출근보다는 이중 노동의 부담에 숨이 턱 막힐 지경이라고 말했다. 끊임없이 노동력을 팔아 돈을 만들어내고, 누군가를 부양하고, 부양이 보장 안 되는 노후를 기다리고. 헉헉. 그래, 이건 너무 비관적인 전망이지.

 내가 흔히 안락한 가정 생활의 표본이라고 막연하게 상정하는 기준은 '홈 플러스'에서 주말에 같이 카트를 밀며 장을 보는 것이다. 누구는 백화점일 수 있고, 누구는 시장일 수 있고, 다른 누구는 드러누워 배를 긁으며 홈쇼핑으로 물건을 사는 것일 수도 있다. '홈플러스'에서는 강박적으로 happy송을 틀어주며 사람들을 환각상태로 몰아가고, 사람들은 자신들 풍요의 상징으로 누가 누가 카트를 많이 채우나를 경쟁한다. 봐, 이런식으로 걸러내고 홈플러스니 마트니하는 사람 북적이는 곳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내겐 상징적으로나마 행복을 가장한 공간에 대한 환상이 조금 있다. 행여 홈플러스에 들어선다면 이 많은 포장지를 어떻게 처리할거냐며, 시장이 훨씬 쌀거라며 투덜투덜, 이런 묶음 상품이니 자사 상품은 다른 영세업체를 쥐어짠거라는둥, 매장 직원들은 비정규직일거라는 둥, 그들의 처우에 관심 없는 업체의 상품을 이용하는건 문제라는 둥 심통난 아치처럼 불퉁댈게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이런 환상을 가끔 퐁퐁 띄우는 것처럼 꿈 역시 마찬가지겠구나, 

 이걸, 이렇게 오래 산 내가 어렴풋이 느낀다. 경제적인 문제뿐 아니라 늘 자신의 입장을 증명해야하고, 설명해야하며, 4차원으로 매도당하기 싫다면 배로 '일반 사람'처럼 굴어야한다. 꿈 나름의 층위상 하위권에 머문다면 왜 하위권인지, 상위권으로 가야지 않을까란, 상위권으로 가는게 꿈과 긴밀한 연관이 있는지 등등, 그럴때마다 한번씩 홈플러스를 머릿 속에 그려보고. 다시 나름의 합리화와 별거없다란 것으로 위안을 삼고.  

 그래, 영어 얘기였는데 이런 황당무계한 범벅은 뭔지.  

로쟈님 말이 맞다. 전에 신학기 대학생 추천도서를 소개하면서 말미에 이런 비슷한 말씀을 하셨던걸 기억한다. 

 물론, 이 책들을 읽기 전에 자신에 대한 이해는 기본이겠구요. 윽!

 자원이 없는 내게 날개일지, 겨드랑이 살일지 모를 아무튼 뭔가 다른걸 달아줄 것만 같은 꿈과 영어에 대한 이야기들은 좀 더 정리된 후 쓰는 날이 오긴할까? 그런데 정말 신기하지 않을까? 문법이나 단어가 아니라 나와 다른 나라의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건. 

 난 스무살처럼 조금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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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3-21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줄리엣 비노쉬와 아크람 칸의 무용 공연을 봤어요. 말 그대로 무용만 하는줄 알았는데 제길, 나래이션이 몇번이나 나오는거에요! 무용 보랴, 자막 보랴 신경질이 나서 결국자막을 포기하고 무용을 봤는데요, 그러면서 생각했어요. 이럴때 영어를 들을 수 있다면, 그랬다면 이 무용을 조금 더 잘 감상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죠. 실제로 영어를 할 줄 알게 되면 할 수 있는 것도 더 많아지죠! 게다가 원서, 원서를 읽을 수 있잖아요! 원서를 읽는 것은 제게는 꿈같은 일인데 말예요. 그래서 오늘 저도 그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영어를 공부해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어요. 그러나 저는 공부를 싫어하기 때문에, 노력하는 건 더더욱 싫어하기 때문에, 또 그냥 생각에만 머무르겠죠.

그러니까 Arch님은 영어를 공부하겠다는 거죠? 다른 나라의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건 꽤 근사한 일일거에요. Arch님, 공부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한번 해봐요. 전 공부하는 사람들이 좋아요.(저는 안하면서!!) 응원을 보내요!

Arch 2009-03-21 23:38   좋아요 0 | URL
이렇게 성실하고, 성실함만으로는 표현이 안 되는 댓글을 달아주는 다락방님을 제가 어떻게 오르골처럼만 좋아하겠어요. 나도 노력형 인간은 아니에요. 다만, 내가 뭔가를 배우는데 가로막고 있는 편견이나 방해물을 의욕적으로 제쳐두고 싶다란 생각이 든거죠.

다락방님이 공부하는 사람이 좋다고 하니까, 전에 왜 남자가 멋있어 보일 때처럼 막 수학문제 푸는 남자한테 호감을 느끼는건 아닐까란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런데 그건 비린게 아니잖아란 생각도 들고. 난 그래도 미간에 주름 잡아가며 문제푸는 남자 좋더라. 히.

오오, 무용 공연, 제가 아는 줄리엣 비노쉬가 연극을 하는건가요? 아니면 동명이인인가? 멋지다, 전 이렇게 공연보러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다락방님이 보는 공연이 참 좋다란 생각이 듭니다.

다락방 2009-03-21 23:50   좋아요 0 | URL
그 영화배우 줄리엣 비노쉬 맞아요. 마흔이 넘어서 글쎄, 무용도 한다잖아요! 각 나라마다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고 있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줄리엣 비노쉬가 그린 그림도 전시한다더군요. 배우도, 무용가도, 화가도, 엄마도, 으윽 멋져요. 그런데 저는 공연보다 좀 졸았어요 ( '')


아, 그리고 전 맷 데이먼이 굿윌헌팅에서 그랬던 것처럼 천재적으로 문제를 풀어내는 사람들에게 섹시함을 느껴요. 물론, 웃통벗고 노가다 뛰는 근육질의 남성들에게서도 섹시함을 느끼고요.
 

새로 온 친구는 에디오피아에서 왔다고 했다. 에디오피아가 어딜까란 물음이 '왔다'란 말을 들은 세명의 머릿 속에 떠올랐다. 잘 모르는 나라는 무조건 아프리카라고 우기고보는 밥 잘해먹는 '가'의 말에, 늙어서 나온 배라고, 운동 안 해서도, 많이 먹어서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종'이 수긍했고, 오늘, 무려 세번이나 예쁘단 소리를 들은 '예'가 의문을 품었다. 

 어디서 왔을까, 미국이나 유럽이면, 일본이나 중국이면 모르겠는데 아프리카면 어떻게 왔을지 모르겠다라고 멍청한 표정으로 '예'가 궁금해하자 '종'은 비행기 타고 왔지라며 썰렁한 유머를 했고, '가'는 '예'는 다른 것도 문제지만 뭐든 그렇게 심각하다며 타박을 했다. 어디서든 누군가 왔고, '예'는 한번도 생각지 못한 아프리카를 떠올려봤다. 아프리카란 말도 생각이 났고, 자신은 나중에 아이들을 사자랑 놀 수 있는 아프리카에서 키우는게 꿈이라던 언니의 말도 떠올랐고, 언젠가 비행기를 탈일이 있으면 한번쯤, 아, 고통없이 대면할 수 있다면 그곳에 가보고 싶다란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에디오피아에서 온 그녀와 '하이'란 인사를 주고받고, 그녀가 핫핫하며 먹는 김치와 밥을 보고 기껏 'Are you spicy'정도만 생각하는 미천한 영어실력을 떠올리다 그만, 웃고 말았다. 멍청아. 그건 너는 매콤하냔 말이잖아. 그 음식이 맵니? 혹은 그렇게 매운데 괜찮아라고 물어야하는거잖아. 머리를 땋고, 얼굴이 까만, '예'보다 점이 많은 그녀가 한밤중에 주방에 앉아 밥을 먹고 있다. 인도하면 카레, 일본하면 스시 정도는 알겠는데 에디오피아면 뭔지 몰라, 알아도 그걸 준비할 수 있는 부지런함도 맘도 없는 '예'는 가만히 다시 작별 인사인 '바이'만 건네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미천한 영어 실력으로 다시 뭔가를 묻거나 혹은 입 안에서 웅얼대는 말들을 붙잡아두고선 혼자 웃어버리겠지. 그런데 그저 새로운 사람 하나에도 갑자기 에디오피아가 궁금해지고, 그녀와 조금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드는건 왜일까. 그녀가 풍기는 외국인의 낯선 냄새 탓일까. 낯설고 설익지만 물컹하게 코 앞에 맡아지는 냄새와 생경한 이미지, 그녀가 들려줄 조금 빠르고 적절하게 들쑥날쑥할 말들,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직접적이고 또렷한 시선에 대한 궁금증?  

 이러니저러니해도 하이와 바이밖에 모르는데 뭐, 궁금증 오만톤이래도 뭐, 몸으로 밖에 얘기다 더 되겠어. 영어 잘하는 총각이 있다는데 '종'이랑 같이 솰라솰라라도 배워야겠다. 아, 누가 말했던가. 언어를 배우는건 그 나라를 온몸으로 느끼는거라고. 에디오피아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날이 오길. 그 날이 온다면 아마 처음 건네는 말은 아마도 

'what's your name?' 그러게 한번 말이라도 걸어볼걸. 그렇게 매울땐 마요네즈랑 같이 먹으면 좋아요, 당신이 매워하는 모습이 은근히 귀여운거 알아요? 나는 매운걸 좋아하는데 당신 나라는 어떤가요.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 '예'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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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9-03-19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인사도 못하고 ;;; 저도 일행 쫓아댕기느라;; ^^;;

Arch 2009-03-21 00:39   좋아요 0 | URL
^^ 얼굴 뵌것만으로 영광인걸요. 무려 주미힌님인걸요. 하하(호탕한척 웃지만 혼자 계단으로 올라가며 흑흑댔다.)
 


눈에 띄는 외모다. 가슴이 굉장히 큰데다 보글보글 파마. 목걸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길이의 금붙이를 팔목에 주렁주렁 걸고 있는 여인. 황토방에 들어오자마자 한숨을 푹 쉬며 누구 내 얘기 들어줄 사람 없냐는 눈짓으로 두리번거리던 여인.

인생 얘기 풀세트엔 관심이 없는데다 하고 다니는 모양새로 보아하니 자랑일색일거란 생각에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머리에 수건을 둘러쓴 말끔한 총각이 꼼짝없이 걸려들었구나 싶어 안쓰러웠으나 말끔한 총각에게도 '글세 복부인스러운 분을 찜질방에서 만났지 뭐야'싶은 얘깃거리가 나쁘진 않을 것 같아 내버려뒀다. 물론 별다른 수도 없었지만.

일요일의 찜질방.

서프라이즈에선 신장 도난 사건 얘기가 나오면서 '네 신장도 조심하라.'란 결론을 내려줘 볼록한 내 배를 쓰다듬게 만들었다.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고 사람들을 보자, 각양각색의 커플들이 수를 놓은 듯이 찜질방 곳곳에 포진해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 코 앞에선 염색 커플이 드르렁 코를 곯아대며 늘어지게 '퍼'자고 있었다. 저쪽에선 여자 아이가 애인의 무릎을 베고 TV를 보다가 남자 아이의 겨드랑이털을 뽑는 시늉을 하고, 남자는 화난척 여자아이를 간지럼 태우는 눈꼴이 삐뚤어질만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남자애를 무릎에 눕혀놓고 얼굴을 매만지는 여자 아인 '넌 눈썹만 잘 생겼어.'란 소릴하는데 그걸 본 내가 가만히 있을 수야 없지 싶어 '정말 눈썹만?'이란 생각에 남자애를 유심히 보다가 '정말, 눈썹만이네, 용한 아가씨야.'싶고. 토요일은 π데이인데(나만 그렇다고 우길셈임) 수학적이라기보다는 화이트데이스러운 달콤함이 찜질방 곳곳에서 팡팡 터지고 있었다. 아냐, 이 얘기를 하려던게 아냐, 아주 중요하고 매끄럽고, 살랑거리긴 하지만 이 얘기는 아냐.

눈꼴시려워 피한건 아니고, 찜질을 해야한단 강력한 당위가 떠오른 난, 다시 황토방에 들어갔다. 아줌마의 얘기는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총각 -아 총각이란 말은 어찌나 총각김치처럼 침이 고이는 단어인지.- 은 고개를 푹 수그린채 묵묵히 웃으며 아예, 아예, 예예 구절을 3/4박자로 반복하고 있었다.

얼추 엿들은바로는 딸아이가 서른이 다 돼가는데, 서른이라 하지만 실은 1월생이라 엄밀히 말하면 29, 뭘로 하면 28. 아무튼 밑지는 인물이 아니라 소리였다. 그래서 든 생각은 딸이 맘에 안 드는 사람을 데려왔나보다 정도였는데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었다. 총각은 여인의 말에 상냥하게 답하려 애썼고, 서슴없이 물어대는 질문에도 또박또박 잘 얘기했다. 참한 총각이로군. 여인도 그 총각이 맘에 들어 자꾸 얘기를 하는걸까? 여차하면 '나는 안 되겠니'란 뉘앙스를 물씬 풍기려 애만 쓰며 드러누운 자세로, 그것도 어필이랍시고 그들 대화에 끼어들었다.

딸이 애인이 없는데 결혼할 나이라 물색 중이란, 비교적 별거 아닌 고민(심심하셨군)과 기름값으로 한달에 50만원을 준다란(딸이 무슨 화물차 운전해?) 것과 남편이 무슨 공단의 알아주는 사람이며 자기도 어쩌고 저쩌고. 그러니까 아주 대단한 우리 집에 걸맞는 딸의 결혼 상대가 없어 속상하단 말씀. 여인의 이야기가 도돌이표로 시작되려는 것을 더 이상 못견디겠는지 참한 총각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나갔다. 내게 눈길 한번 줄만도 하지만, 참한 총각은 참하기만한지라 감히 눈길 찍고 한바퀴 돌 여유가 없었나보다. 실은 '관심 밖, 즐'이겠지만. 여튼 총각 대타로 여인의 말을 듣다, 목구멍에서 자꾸 자식이 물건이냐, 그렇게 잘 나가는데 호텔 사우나가지 왜 여기 왔느냐, 그 팔찌 목걸이 아니냐, 딸도 당신이 지금 이러고 있는거 아냐 등등이 튀어나오려고 간질거렸다. 그렇지만 이렇게 우아하게 생겼어도(서재 각인 효과용 믿지마 발언임) 아치인지라 번번히 헛기침을 하는 것으로 고비를 넘겼다.

참한 총각도 괜찮지 않냐니깐 어림도 없단 소리를 하며, 자기 딸의 엘레트 코스를 얘기하는데, 발음이 부정확했는지, 언어사용이 부정확했는지 내게는 그저 알라까나또깔라니 별의 방언처럼 들렸다.

만약 이 여인이 우리 엄마라면 어떨까.

그랬다면 난 자진해서 정신병원에 들어가던가, 금고에서 현금과 장물애비에게 넘길만한 물품 위주로 돈을 훔쳐 집을 뜰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그늘에서 기생하는 삶의 손바닥만한 안정을 손금처럼 즐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로의 사정이 직장인 월급명세서처럼 뻔한 나와 부모 사이에선 될법하지 않는 경제적 의존관계가 일상이 되는 일이라...... 능력없는 자식이나 자식 못지 않은 부모나 서로에게 한톨만한 '능력'이 생기길 아직까지 꿈구는 미련이나, 실은 미련 자체가 이뤄지지 않을거란 전제로 가능하단 뻔한 소리나 도찐 개찐 막상막하일 것이다. 한때는 손바닥만한 지원사격 없는 부모를 장시간 원망하기도 했고, 체념하기도 했고, 위악을 부려대며 그들 맘을 아프게 하기도 했다. 물론 부모님도 한 성격 하지만.

지금, 모든 것을 다 아우를 수는 없지만, 내 부모들도 나처럼, 나보다 더 퍽퍽한 20대를 보냈을거란걸 알아가면서 위안을 받는다. 그들의 최선이 성공이 아닌게 유감스럽다기보다는 그들이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 버리고, 잊어야했던 꿈들이 손을 뻗으면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효사상 아치로 재탄생하는건 아니겠지만, 부모님의 또렷하고 일관된 좋은 결혼이란 입장과 나를 염려하는 것의 편협함에서 좀 더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여인이 부러운건 맞다. 사실, 여인보다는 존재 자체가 희미한 여인의 딸이 부럽기도 하다. 오피스텔에 산다는 것도, 화물차인지, 택시인진 모르겠으나 매달 용돈을 받는, 다 큰 관계에서 이뤄지는 지원도 부럽다. 하지만 여인과 딸은 아마 평생을 살아도 찜질방 바닥에 들러붙어 질문하던 아치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상상도 못할 것이며, 들어도 알지 못할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는건 부럽다는 것보다 더한 결핍일거라고, 그렇게라도 자위하자며 내 맘대로 결론을 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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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3-17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고로 말하면 아무데서나 나한테 찍어붙일 녀석을 찾는 엄마때문에 휘모리는 요즘 미치기 30초전이라는 겁니다 쩝쩝

Forgettable. 2009-03-17 09:47   좋아요 0 | URL
그런 점에서는 애봐주기 싫다고 결혼하지 말란 엄마가 더 나은 것 같아요 ㅋㅋ

그런데 도찌니개찌니 이말은 어디말인가요? 이거 엄마한테 듣고 무지 웃었었는데, 여기서 또 듣네요 ㅋㅋ

Arch 2009-03-17 10:29   좋아요 0 | URL
ㅋㅋ 그럼 아무렇게나 만나서 엄마가 모르는 휘모리님의 진면모를 보여주세요. 엄마에게 휘모리님 환상이 있는거 아닐까요? 저도 일생에 딱 한번인 선을 본 이후로 다시는 엉뚱한 녀석들 안 갖다 붙이던데요. 물론 어떤 질문을 하느냐, 그 데미지를 감당할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휘모리님 안에 있겠지만.

forgettable님, 훌륭한 어머니세요. 도찐개찐, 이렇게 쓰는 말인데 저도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기억이... 비슷비슷하다란 뜻이에요. 네이모 창에 검색해보면 나오지 않을까란 생각.

2009-03-18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19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0 0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1 0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일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 약속 장소에 먼저 나갔다. 조용하고 아늑한 장소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빌딩 숲 사이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해를 보고 말았다. 햇살은 강경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 이런 날씨에 어디에 박혀있는건 범죄야!
아무렴.

 걸었다. 3가에서 1가까지, 1가와 2가 어디쯤에 있는 낙원상가까지. 낙원상가 옆으로 나있는 순대국밥집과 인사동길을. 

 걸은지 얼마 안 돼 인사동 초입에 있는 가게에서 꿀타래 아저씨가 꿀로 몇천가닥의 타래를 만들어내는걸 보고 금세 신이 났다. 누군가를 기다리는게 아니라 의욕적으로 맞아들이는 느낌이 떠올랐다. 가게에서 봉투따개며 책갈피, 비녀까지 되는 마법같은 물건을 사고, 나무 속에 심을 콕 박아넣은 연필을 구경했다. 한지로 만든 수첩이 참 예뻐서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아저씨가 다가오셨다. 때 탄다고 퉁을 줄거라 생각했는데 이왕 살거면 괜찮은애를 가져가라며 같이 물건을 골라주신다. 목걸이도 구경하고, 홍차도 구경하고, 닥나무 종이로 만든 옷도 구경하고, 구경하다 다리 아프면 벤치에 앉아 잠시 쉬기도 하고. 참 괜찮은 토요일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햇살이 쏟아지는 모습마저 참 따스해보일 정도로.

 토요일의 종로는 북적대는데도 아름다웠다. 풍경만큼이나 작은 선의가 넘쳐났으니. 선의와 기분 좋은 순간의 절정은 찻집이었지만 서두가 너무 길어 정작 하고 싶은 말을 못꺼냈으니 이건 간직해뒀다 나중에 써야겠다.

 약속시간 7분 전,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부리나케 나간다고 말하고선 달려나갔다. 그녀는 반갑게 인사를 하며 젊은 분이라 놀랐다는 첫인사를 건넨다. 그럼요, 아치가 좀 젊죠. (응?) 그러면서 서재 이미지와 다르게 예쁘단 소리를 자연스럽게 하는데, 아주 오랜만에 듣는 소리라 그런지 쑥쓰러움이 발끝까지 전해져 몸둘바를 모르겠더라. 그런데 머릿 속으로는 아치의 예쁜 면모를 보여줄만한 페이퍼로 만남 후기를 쓸 생각에 혼자 흐뭇해져선. 앗흥! 그런데 어쩌나. 모든 페이퍼를 다 갈아엎어도 뱃살이 감춰질리 만무하며 잘 안 씻는다는 사실 역시 변함이 없는걸. 또 다른 곳으로 샜군.  

 

  우린 으슥한 을지로 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가 자꾸 날 챙긴다.

- 전 괜찮은데, 편하게 가셔도 돼요.

- 난 낯선 곳에 가면 경계되고 그래서

 그 말에 난 낯선 곳이 좋다고 했는지, 아치니까 괜찮다고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나도 두렵거나 낯선 경험을 통해 남을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날 데리고간 고깃집이 썩 내키진 않았다.(잘 집어먹고 이런다.) 내가 좋아하는 곳은 '이래뵈도 나, 오래된 고깃집이야'할만한 더께가 껴있는, 불판이 왔다 갔다하고, 가끔 아저씨들이 싸우기도 하고, 냄새는 잘 안 빠져 고기 먹고 돌아가는 길에 온 몸으로 ‘난 오늘 저녁에 삼겹살을 먹고 왔단 말야.’를 뿜어내는 곳이었다. 하지만 고기보다 난 그녀를 만나러 왔으니까, 계란 노른자에 비벼먹는 파채 맛은 상큼했으니까, 그녀가 재미있었으니까 그따위 고깃집이야 어디래도 상관없었다. 실은 고기 굽는 냄새만 맡으며 이야기를 하라고 해도 괜찮았을 것이다. 물론 배가 고파 얼굴은 시시각각 초췌해지고, 허기로 손은 떨릴 것이며, 눈은 비루먹은 개처럼 충혈되겠지만.  


 우려되긴 했다. 남녀 사이도 아니고, 성적인 긴장감도 없이 처음 만난 사이에서 무슨 얘기를 하며, 할말 없으면 고기판만 뒤집다 오는거 아니냐는 친구의 말에 솔깃했던 것도 사실이다. 차라리 떼로 모이자고 할까란 생각도 들었고, 말바꿔서 다른 선물은 어떻겠냐고 찔러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우려는 우려대로 우려먹는 맛만 있을 뿐이었다.  

 

 기가 막히게 재미있거나, 미치도록 몸을 틀어대며 웃긴건 아니었다. 눈을 반짝이게 하고, 들어간 배가 쏙 들어갈 정도로 긴장되었던 것도 아니었다. 시종일관 편했다. 내가 어디서 이렇게 떠들어봤나 싶을 정도로 말도 술술 잘 나왔고, 그녀의 말 역시 내 맘에 쏙쏙 들어왔다. 그녀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동의하고, 웃어주고, 자신의 얘기를 하고, 난 그녀에게 금세 배운대로 웃고, 다시 웃었다.

 그리고 이제부턴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야겠다. 앞서 했던 소리도 서두란 얘기다. 미안, 나도 당신도 재미없는데다 길기까지한 글을 싫어한다는걸 알고 있으나, 어때! 내 서재인데. 아무렴.(그녀가 이런 소심한 뉘앙스는 안 풍겨도 된다고 했건만, 괜히 찔려선)

 난 어디 가서든 성적인 얘기, 야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꺼내는데 있어서 늘 선두를 뺏기지 않았다. 분위기든 상대든 상관없이, 어렸을땐 흥미로, 지금은 탐구 정신으로 자꾸 물어대고 찔러보고, 말하곤 했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론 그녀를 만나기 전에도 같은 식으로 얘기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첫경험이니, 너에게 섹스는 뭐니 이런 뻔한거 말고, 좀 더 농밀하고, 야릇하고 충격적인 질문들, 질문에 걸맞는 답변들을 떠올리며 혼자 얼굴이 벌개져선 어쩔줄 몰라하는 얘기들을 하고 싶었다. 

 고기가 몇 점 익기도 전에 무슨 말의 끝엔가 그녀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런’ 얘기를 들려줬다. 갑자기 내 눈이 반짝여져 숨길 생각도 못한채 실은 나도 그런 생각을 했노라고 고했다. 그녀는 그런건 문제될게 없다는듯 그녀의 비린 남자론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하악하악. 

 내가 만났고, 호감을 갖게 되는 남자들이 갑자기 팬시하고 말랑말랑한 사람들로 느껴지는게 무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확고했고, 진실로 비린 맛을 원했으며, 그건 보통 사람들이 규정할 수 있는 비림의 성질과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마초니, 위버 섹슈얼이니, 토이남이니 여성만큼이나 남성을 가로짓는 규정들 속에서 그녀만의 독특한 비린 남자론은 어찌나 생기가 넘치던지. 오랜만의 음주로 뱃속이 요동을 쳤지만, 늦은 밤, 남몰래 짚어든 빨간책을 야금야금 읽어내려갈때처럼 극도로 흥분이 돼 ‘자 어서 계속 말해봐.’ 눈빛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꾸 보챘는데 자리를 옮겨서도, 맥주를 먹으면서도 그녀는 말을 아꼈다.  

 

 그녀가 부러 감질나게 하는거라고 생각했다. 비린 남자의 구체적인 사항과 살떨리는 경험에 대해 말을 안 해줘 내가 애가 타는걸 보고 싶어하는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비린 남자를 좋아하는 그녀는 달랐다.
- 언젠가 나만 추억할 수 있는 비밀이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어요. 
 당연히 내 조급증 전의는 사그러지고 말았다. 응, 당신이라면 그럴 수 있을거야.  

 맥주를 먹으며 눈알이 핑핑 굴러가는걸 느꼈다. 나쁘지 않았어. 가사 얘기도, 서로의 입장도, 그녀가 날 보고 달리 할 말이 없는 듯 ‘우직한 사람 같다’고 했던 것도. 생생한게 좋지 않냐고 그녀를 자꾸 꼬셨지만 그녀는 나보다 더 우직하게 ‘우직’을 고집했다. 실은 생생보다 내가 더 탐났던건, 그녀의 직관 어린 인물평 중에 그저 ‘좋아요’에 해당되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좋아요’란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정말 좋은건, 따로 여러 말을 하지 않아도 느껴지니까.  

 요즘 들어 다른 분들의 서재에 엎드려 그들을 쭉쭉 그려나가다보면 아, 이 사람은 이런 면이 있구나, 이건 정말 나도 해보고 싶은 말이다란 생각이 들곤 한다. 그래서 그녀와의 만남을 쓴 이 글의 마지막을 그분에게서 빌리기로 했다. 
 ‘좋아요’란 분의 서재에 있는 말을 인용하자면,
그녀와의 만남이 나에게는 오르골 같단 생각이 들었다. 테엽을 돌리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리를 들려주지만 테엽이 멈추면 그 자리에 오르골이 없었던 듯 공간 안엔 소리의 여운만 미세하게 감지된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일정하게 뱃전에 부딪히는 파도처럼 그녀는 그렇게 철썩 내게로 부딪힌 후, 소리없이 사라졌다. 
  

여전히 서재의 그녀는 우물에서 건져올린 우아한 목소리를 들려주곤 한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명랑하고, 재치있으며 더할나위없이 친절하다. 그래, 그거면 됐어.

 얼마 전에 노정태씨를 누군가 인터뷰한 글을 읽다가 내가 다른 누군가를 편협한 잣대로 재단하고 있는건 아닌가란 생각을 한적이 있다. 무슨 모임에서 어떤 누구씨, 무슨 역할의 누구누구, 웃기는 사람이면 누구.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특성을 MC의 역량에 의해 정해버리는 쇼프로처럼. 그래서 모임 후기는 지양하려 했고, 맘씨 고운 알라디너라 내가 한 말이 별로여도 별다른 말씀을 안 하는걸 알지만, 아치 버릇 남 못준다고, 또 쓰고야 말았다. 혹여, 난 그런 사람이 아닌데란 생각이 들거나 재미없으니까 그만 썼으면 좋겠단 생각을 지닌 분들이 있다면 심심한 배꼽인사를 올린다. 하지만 난 아마도 좀 더 쓰게 될 것 같다. 내가 보는 면이 그 사람의 티끌만한 점에 불과하다는걸, 양파처럼 벗겨도 벗겨도 알 수 없는게 사람 맘이라는 것을 읽는 분들이 더 잘 알것이라 추측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고도의 자기합리화 인가?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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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4 0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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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4 10: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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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6 17: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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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4 12: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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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5 21: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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