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 사이코 북스 18
그레이엄 뮤직 지음, 김숙진 옮김 / 이제이북스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아이콘북스의 사이코 시리즈를 읽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읽어서 무해한 것을 떠나 나무 낭비가 아닌지, 화를 버럭버럭 내면서 집어던질만한 책인지, 혹은 혹해버릴 책인지에 대한 그 어떤 소개도 없었다. 그래서 약간은 마루타가 된 심정으로 책을 샀다. 사이코 시리즈라 명명된 책자의 제목 자체가 쫄깃쫄깃하게 호기심을 잡아끌어서일 수도 있다. 나르시시즘, 공포증, 히스테리, 리비도, 성도착(오호), 환상, 에로스(오예), 불안(으흠), 노출증(끄응), 무의식, 초자아 등의 제목은 충분히 읽고 싶게 만들었고, 사려는 충동을 억제할 수 없게 했다. 게다가 반값 할인이라는데 불이 붙고야 말았다. 

 책의 소개에 따르면 '정신분석학의 개념들이 우리의 일상 생활과 어떠한 방식으로 얼마나 깊이 관련되는지를 보여주고 '정상적인'사람이 누구나 지닐 수 있는 '비정상적인'면들을 조명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과 타인에게 한발 더 다가서게 될 것이다'라고 되어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전문적인건 아니지만, 미친 사람으로 예외가 된 사람들뿐 아니라 '정상'이란 범주에 있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경계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소리다. 100여쪽에 달하는 분량으로는 소기의 목적에 도달하진 못했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발제와 예가 실려 있으며, 인간의 감정에 대한 앎의 시작에서 유의미한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건 안정적 애착에 관한 부분이다. 

 태어난 지 일 년 정도 지난 아기들에 대한 실험에서, 실험자는 엄마들에게 갑자기 방에서 나가 보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그에 대한 반응으로, 어떤 아기들은 울음을 터뜨리고 당황했지만, 다른 아기들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하던 일을 계속했다. 흔히 '회피적 애착 avoidantly attach'이 형성된 경우라고 일컬어지는 후자의 아기들은 엄마가 돌아와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안정적 애착 securely attach'이 형성된 아기들은 엄마의 모습을 보자 따스한 품을 찾아 엄마에게로 다가갔다. 

 하지만 두 집단의 맥박수와 아드레날린, 코티솔 등을 측정해 보았을 때, 두 집단의 아이들 모두 엄마가 사라졌을 때 비슷한 생리적 반응을 나타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런 사실은 일반적인 관찰을 통해서는 알 수 없는 것이며, 분명 회피적 집단의 아이들은 자신의 느낌들과 '접촉하지 touch'않는다. 이런 집단의 아이들에 대한 많은 연구가 수행된 결과, 흥미롭게도 이런 아이들은 자라서도 감정을 읽어 내는 능력이 부족하며, 자신의 느낌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리고,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신체적.감정적으로 긴밀한 유대를 잘 형성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입증되기 시작했다.  

 회피적 애착을 갖는 아이도 엄마와 떨어지면 마찬가지로 불안해하고 걱정하지만 표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위악을 떠는 사람, 혹은 시니컬한 사람, 감정을 표현하거나 느끼는데 서툰 성인의 맘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게다가 어린 아이가 엄마와 떨어진다는 사실로 인한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회피적 애착으로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는게 안타까웠다. 물론 책에서 인용한 도교 현인의 '좋은 말은 하루에 백 리를 달릴 수 있지만, 쥐를 잡는 데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경구와 마찬가지로 심리치료사의 '정상'이라는 관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인격 유형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 책은 전문 심리서적이라기보다는 에세이에 가깝고, 멋진 구절도 여럿 발견된다. '감정'을 읽으면서 프로이드의 책에 대해서도 좀 더 여유를 갖고 들춰볼 수 있는 힘이 생길 듯하다. 과연 지금까지의 심리학은 왜 행복해질 수 있는 것보다, 슬픔을 어떻게 치유하려 하는데 집중했는지, 네거티브 전략의 문제는 뭐가 있는지도 다뤄진다. 이 책은 감정에 대해 정리할 수 있다기보다는 어떤건가란 호기심을 충족하는데 의미가 있으며, 인간의 마음에 대해 알고 싶어지는 부가적인 기능도 충족하고 있다. 게다가 시리즈물의 저자가 각자 다르기 때문에 주제의 차이뿐 아니라 관점의 미묘한 차이에서 어긋하는 마찰음을 듣는 재미도 있다. 지금 '공포증'에 대해 읽고 있는데 저자는 프로이드를 화살을 쏜 후 과녁을 그리는 선무당쯤으로 취급하고 있다. 어떻게 그 둘이 화해를 할런지, 화해는 커녕 결말이 날런지 모르겠지만 무리없는 가격에 부담없는 무게라 나쁘지 않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9-05-06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웃기웃하다가 얼굴을 들이미는 것이(끄응) 예의일 것 같아서 댓글을 남깁니다. 아참 이 책에 관한 땡스 투 하나는 접니다.

Arch 2009-05-06 22:04   좋아요 0 | URL
쥬드님^^
이게 아마 두번째 댓글일거예요. 아주 오래 전에 제가 무작정 쥬드님께 뭔가를 물어본 이후로.
땡스 투도 감사하고, (드디어 어른책으로도 땡스 투를 받다니!)댓글도 감사해요.
어딜 기웃기웃 하셨는지(끄응)
 

 15분 단위로 알람이 울리도록 핸드폰을 맞춰놨다.  

 15분은 영어 문법 한 챕터를 마칠 수 있는 시간, 적당히 읽을만한 글을 10페이지 정도, 조금 어려운 글은 5페이지 정도 읽을만한 시간, 인물 두상 뼈대를 두개 정도 그릴 시간, 옥찌에게 쓰는 편지의 반절 정도를 채우는 시간이다. 15분은 간편한 식사를 차릴 시간이며, 설겆이를 해놓고 차를 마실 수 있는 시간이고, 책 속의 좋아하는 구절을 다이어리 두페이지 정도에 써넣을 수 있는 시간이다. 

  다시 15분은 머리를 감고, 빠진 머리카락을 테이프로 모을 시간이며, 방안에 널린 빨래를 개우는 시간이고, 빨래를 하기에는 좀 빠듯한 시간이다. 15분은 비빔국수를 뚝딱 만들어낼 시간이고, 출근하기 전에 준비하기에 알맞는 시간이며, 맥주 반잔을 마실 정도의 시간이며, 누군가의 통화를 계속할지 끊을지를 결정하는 분기점이 되기도 한다. 15분은 얼음을 가득 채운 물에서 녹차가 몸을 바싹 조였다가 풀어질만한 시간이며, 영화를 볼 때 계속 볼지 말지를 결정하게 되는 영화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15분은 소주 한잔을 비워내기에 적당한 시간이고, 방 안에 있는 식물들의 물갈이와 물주기 말을 건네기에 안성맞춤인 시간이며, 옥찌들과 통화를 한 후 한참동안 여운을 즐기기에 알맞는 시간이다. 15분은 좋아하는 사람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고서도 전혀 피곤함을 안 느끼게될 최대치의 시간이며, 그 눈을 돌려 다른 것을 바라볼 때 서로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게 만드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이기도 하다.

 15분에 해당되는 이야기가 모든 경우에 다 들어맞는건 아니다. 맥주 한병을 몇시간이고 붙들고 있을 때도 있고, 옥찌가 기분만 좋다면 15분 넘게 통화할 수도 있으며, 한없이 늘어지게 음식을 준비할 수도 있으니까. 편지를 쓰다가, 그림을 그리다가 멍하니 손을 놓고 있을 때도 있으니까. 누군가와의 통화는 시간과 관계없이 영원처럼 오랫동안 계속되었으면 하고 바라니까. 어느 날의 빨래는 오늘 다 끝마칠 수 있을까 싶게 버겁기도 하고, 가끔씩 녹차 티백마저 앙탈을 부려 쉽게 우러나지 않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굳이 15분이었던건 15분이 30분이나 1시간처럼 늘어지지 않고 10분처럼 촉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의 책 소개를 읽고선 막연한 예감으로 15분을 정해서 일과를 구성해봤다. 처음 두시간은 마치 이 시간들이 점점히 박히듯 촉박하거나 느슨했다. 그러다 점점 느슨해지다 다시 전처럼 무한정의 시간을 갖은 사람인양 굴어댔다. 15분에 맞춰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해나가다보니 좀 더 알차졌고, 전처럼 무계획을 모토로 시간낭비를 하는 느낌이 줄어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생각보다 내가 생각하는 시간 계획과 실재로 시간을 소모하는 일의 차이도 알게 되었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는 차라리 류비셰프의 시간 계획표와 그의 짧은 글들을 편집하는게 좋았겠다 싶을 정도로 조합한 사람의 사족이 재미없게 늘어지는 경향이 있었지만 치밀하게 조직된 시간 관리와 통계에 허를 휘두를 정도였다. 내가 15분 어쩌고 한건 그야말로 사족의 사족이었다. 자신의 시간을 계획하고, 그대로 실행하며, 계획과 실행 사이의 오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 월말, 년말 단위와 몇년마다의 결산과 연구 성과들의 정리. 가능성의 최대치란 말을 무리없이 인정하게 만드는 그의 삶을 보고 있자니 새삼 나에게 시간은 어떤건가란 생각이 떠올랐다. 

 오랜 시간 노동할 일도 없고, 어떻게 보면 바라마지 않은 짧은 노동 시간과 그에 걸맞는 생계비를 계획하고 마음대로 유용할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있음에도 난 터무니없이 낙관하거나 날 방치하는 쪽으로 내버려둔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성과가 있는 일을 한다거나 여행, 생각이 커가는 과정, 누군가와의 관계 변화, 지출입의 기입, 하루하루 하는 일은 매일 기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록은 분절되어 있고, 어렴풋하게나마 그래서 과연 내가 뭘 했던가에 대해선 아무런 답도 내주지 않았다. 하루하루 발전한다거나 몇분 단위로 나를 기획해야한다는 생각따위는 너무 터무니없지만, 적어도 나를 위한 시간을 허무맹랑하게 스친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류비셰프처럼 세심하게 시간을 조직할 수는 없겠지만, 좀 더 타이트하게 하루의 계획과 한달의 계획, 계획과 실행의 간극을 메우려는 노력을 해봐야겠다.  

 오늘도 처음 두시간은 정말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을 정도로 잘해냈는데, 

 알라딘에 접속한 순간 알람이 계속 우는 것에도 아랑곳 안 하고 계속 남의 서재를 돌아다니고 글을 쓴다고 15분력은 까마득하게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놈의 서재, 

뭐뭐! 좋다고. 쓱쓱

 예시사항: 

누구누구의 서재에서 머문 시간, 머물면서 뭘 했는지, 페이퍼 작성에 든 시간, 리뷰 작성에 든 시간, 서지검색에 든 시간. 아아, 시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Forgettable. 2009-04-21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오늘 [living on borrowed time]이란 음악을 들으면서 시간에 대해서 잠깐 생각했는데,
이런걸 해보셨군하- 저는 아마 절대못할거에요 ㅠ 빌려온 시간에 사는 주제에 엄청 낭비에 사치 ㅋㅋㅋ
그나저나 4월이 다 가는군요...

Arch 2009-04-22 00:25   좋아요 0 | URL
히히, 그냥 알람만 맞추면 멋대로 시작이 돼요. '절대로'는 절대로 없어요.

그나저나 말입니다. 봄꽃은 다 지고, 막걸리는커녕 스치듯 얼굴 한번 못뵈었으니.
 


그의 차는 후졌다. 차는 차대로 길도 잘 들여졌고, 힘도 좋았지만 그가 차를 다루는 방식을 놓고 볼 때면 차의 처우가 후졌다란 생각이 절로 떠오르게 된다. 일테면 '서재 결혼시키기'에서 궁정식 책사랑의 반대편에 있는 '책은 책이다'주의 정도? 차는 단순히 사람을 좀 더 편리하게 이동시키는 기계일 뿐이란 그의 생각에 따라 몇 년 전에 먹었음직한 아이스크림의 종이껍질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물컹거렸음에 분명한 괴이한 형태의 공산품으로 보이던 물건, 골동품집에서 봤음직한 뽀얀 먼지가 수북히 쌓인 차안 곳곳의 구석진 공간들. 그가 피우는 담배와 먼지 냄새가 섞여서 묘하게 텁텁하기만 했던 그의 차.

그의 차 안에서 난 시카고의 노래를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들었으며, 그 중에서 가장 좋았던 곡의 제목을 그와 열심히 찾아보기도 했고 연애 초기, 기어에 내 손을 얹은 후 그가 포개던 촉감이 좋아 떨렸었다며 나중에서야 조심스럽게 털어놓기도 했었다.

한밤중엔 미등을 조그맣게 밝혔고, 눈이 왔을 땐 썰매를 타듯이 운전을 했다. 그의 차로 밤새 달려 안면도에 가기도 했고, 소금이 기똥차다는 그 곳 아주머니의 말에 그의 차를 끌고선 소금을 사기도 하고, 회 한접시와 소주를 맛깔나게 마시고선 그에게 대리운전을 시키기도 했다.

헤어지기 너무 싫어 그의 차에 좀 더 오래 머물렀던적은 없었다. 그는 나이가 있는 사람이었고, '너무 싫어.'란 용법이 유치한건 겉멋 든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점점 거세지더니 겉잡을 수 없이 쏟아지던 날, 차를 가만히 세워두고 우린 빗소리를 들은적이 있었다. 가끔씩 그는 창문을 내리고 담배를 폈던가, 그럼 난 내 쪽 창문을 살짝 열었던가, 아니면 이건 그냥 막연한 기억일 따름일까.

비가 와서 차 밖으로 나가기 싫었는지, 여느 때처럼 그날도 싸워서 머리에서 김이 날 정도로 성이 나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가만히 그와 차에 앉아있을때면 괜히 맘이 저릿거렸다. 차와 그가 닮았다고 느껴져서였을까, 차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꽤 감성을 자극했기 때문이었을까, 혹은 아무말 없다가 가끔씩 나를 건들며 무슨 말이든 해보라고 장난치는 그가 애뜻해서였을까.

괜히 그래지는 순간, 차 지붕을 때리며 비가 오고 있었고, 오늘 오는 비는 문득 그렇게 여전히 가끔씩이나마 생생한 누군가를 떠오르게 한다.


가사를 찬찬히 곱씹어보면 '아니 어쩜 어쩜'스럽게 부끄럽고, 모든 노래에서 줄곧 청승맞은 심수봉이 그렇게 맘에 들진 않는다. 그렇지만 괜히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에 우연히 들어간 가사로 문득 그가 생각이 났고, 가끔은 좀 처량한 느낌이 나쁘지 않다.

게다가 어린 심수봉은, 너무 귀엽잖아.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뷰리풀말미잘 2009-04-21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아이 목소리 울림이 어쩜 저렇게 청승맞을까요?

Arch 2009-04-21 09:5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깐요. 막 뭔 말을 쓰려다 다 사족같단 느낌이

프레이야 2009-04-21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 2학년 때 이 노래를 기막히게 잘 부르던 반 친구가 있었어요.
장기자랑 시간에 앞으로 나와 이 노래를 목소리 꺾어가며 부르더군요.
그때부터 이 노래가 참 좋아졌어요.
비오는 날 차 안에서 빗소리 들으면 너무 좋지요.
님의 추억을 불러왔군요.

Arch 2009-04-21 22:54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전 비가 마룻바닥이나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소리를 좋아해요. 무엇보다 아주 근사하거든요.
게다가 비 맞으며 걷는건 최고의 사치이자 로망이에요.
 

  그 분을 만났다. 

 언제 집에 와서 따뜻한 밥을 먹이고 싶다란 댓글을 남겨준 분. 짧은 글이지만 맘을 선선하게 해주는 분. 댓글로 페이퍼만한 생각들을 잘 털어놓던 분.  

 처음에 밥을 먹자고 했을 때, 아마 난 '내가 그런 말을 놓칠리 없다는 것을 간과했던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예의상 한말이라 그냥 놓쳤음 했을지도 모를일이니까. 그래서 다시 조심스럽게 여쭸더니 그분은 정말이라며 선뜻 손을 잡아줬다. 아마 깜빡했다고 실토했다면 상당히 무안했을 상황이었다. 그녀 혹은 그. 언니 혹은 오빠, 동생으로 부를 수 있지만 난 그저 그분이라고 부르려고 한다. 왜 굳이 그분이라고 하는지는 글 말미에 밝혀질 것 같다. 이런식으로 끝까지 읽으라고 협박하는 치사한 아치! 

  마루야마 겐지는 '소설가의 각오'에서 자신은 CD로 녹음된 음악이 더 좋다란 얘기를 하며 콘서트의 번잡스러움과 변수들, 생방송의 혼잡이 '생생함'으로 상쇄되는게 별로라고 덧붙였다. 적절할지 모르겠으나 나에게 서재는 어쩌면 CD에 녹음된 '그 사람의 얘기' 같다란 생각이 들었다. 알라디너는 완결된 카테고리에 차곡차곡 채워지는 자신과 책, 음악, 영화, 그 밖의 이야기들을 씨줄과 날줄로 포개서 서재를 꾸민다. 누군가가 맘만 먹으면 어느 한 사람을 세심하고 사려깊게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이다. 서재를 가진 사람은 적어도 몇분간은 글을 쓴다며 골몰하고, 쓴 글을 다시 읽어보고, 기존의 방식과 다른지, 지금과는 어울리지 않는 인격이 발현되고 있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완성도를 향한 경미한 강박증이 있고, 글을 보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니까. 그렇기 때무에 굳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이미지를 나누지 않더라도 보여주고 싶은 것과 봐버리는 것, 행간의 의미와 눈빛이 마주칠 때 갖게되는 사람에 대한 판단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나로 말하자면 직접 콘서트장에 가기보다는 CD로 음악을 듣거나 콘서트 실황중계를 더 좋아한다. 현장의 미세한 숨소리와 연주자의 표정, 공간 안에서 내가 느낄 수 있는 질감도 좋다. 하지만 그것보다 좀 더 집중해서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비싼 값을 주고 듣는다는 부담을 과잉 감동으로 포장하는데 거부감이 더 컸던 것 같다. 마찬가지로 정말 좋은 서재를 만나면 그 서재의 글들을 차근차근 읽어보거나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란 생각을 떠올리는게 내편에선 직접 대면하는 것보다 산뜻할 때가 많다. 막상 보면 어색함과 어긋남으로 대화는 브레이크가 걸리거나 엔진 과열로 유야무야되는 경우가 많이 있으니까. 게다가 페이퍼로 서로 알아버리는 것과 다시 알아가는 사이에서 헤매다 결국은 '그거 페이퍼에 쓴건데.'란 맥빠지는 소리만 해대기 일쑤고, 막연한 기대감이나 상상보다 적확하게 떨어지는 어떤 인물로 규정짓는 순간 서재마저 정이 떨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어왔다. 물론 그 사람을 만나서 사람 자체의 좋음으로 서재마저 좋아진 경우도 있었으며 이젠 행간의 의미를 상상하는 것에서 나아가 므흣하게 짐작할 수 있다란 점이 좋을 때도 있다. 이렇게 써놓고보니 꽤나 누군가를 잘 만나고 다녔던 것 같지만 독서 모임과 '그녀'와의 만남 이외에는 별일 없었다. 괜히 비 온다고 부러 부러 거창해지는게 조짐이 안 좋다. 조짐은 종종 조증에서 울증, 울증에서 조증으로 넘어갈때의 미묘함이 적확했음을 확인됐을 때처럼 적확할때가 많지만. 

 요즘들어 누군가를 꾸준히 만났다. 누구를 만나든간에 했던 얘기를 울궈먹다가 자신의 논리나 감성에 충실하지 않은채 나뒹구는 말들을 막 주워삼키는 패악을 저지르고 있는 중이었다. 반백수라 시간이 많을거라며 자신들이 어렵게 낸 시간에 날 보려는 성은을 내가 거절한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하는 인간들이 많았으며 어렵게 낸 시간을 서로가 그다지 충실하게 보내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우리들이 의기투합해서 재미있는 일을 도모할 유형의 인간들도 아니었다. 느느니 뱃살이요, 쉬어지니 한숨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일 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술을 먹고, 얘기를 하고, 다시 했던 얘기로 돌아와 물고 늘어지기를 반복, 재탕, 섞어서 섞어찌개를 만들던 중에 

 덜컥, 그분과도 약속을 하게 되었다. 

 적당히 재미있는 얘기를 하다가 돌아와야지. 다른 때라면 뭘 선물할까, 무슨 얘기를 할까, 정말 내가 상상한 이미지가 맞을까라며 온갖 설레발을 쳤을텐데 만남 자체가 흔해지고 먹고 사는게 고단해지다보니 평소보다 허술했고 소홀했다.  

 그분이다. 1번 출구에서 나를 씩씩하게 맞아주는 사람. 이런 저런 인사치레 없이 우린 곧장 그 분이 이끄는 곳으로 이동했고, 그곳보다는 다른 곳이 좋지 않겠냐는 내 제안에 다시 방향을 틀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 틈을 비집고 걸었다. 내 눈앞에서 그 분의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쓱쓱 사람들을 헤치며 유영하듯 움직이는 모습. 사람들이 각자 떠들며 동네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것에 아랑곳없이 앞으로 나가는 그 분을 보니 걸음이 빨라진건 둘째치고 다시금 오늘 우린 왜 만났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이 사람이 다시 보고 싶었을까? 아니. 심심했나? 아니. 보자고 했으니 본거야? 글쎄. 정말 글쎄. 우린 왜 만났을까. 의문은 의문대로 사람들이 자아내는 소음 속으로 사라지고 난 그분의 빠른 걸음을 좇느라 정신이 없었다. 

  매운 연기를 맡으며 갈매기살을 먹고선 자리를 옮겨 냉동 감자 튀김에 맥주를 마셨다. 검은 눈동자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곧장 내게 꽂힌다. 빤히 쳐다보는 눈길에 대해 그 분에게 얘기를 해보았다. 그분은 조금 이상할 수 있지만 버릇이란 얘기를 했다. 이상한 것도 불편한 것도 아닌데 그분의 눈이 내게 꽂히는 순간, 난 서툴게 무슨 이야기를 하던가 그에게서 어떤 이야기를 받아내려고 애를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부담스러운게 아니라고 했지만 좀 부담스러웠다. 부담스러움의 여러 갈래 중에 눈길이 들어가 있을 뿐이었고 그 나머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건 도대체 이분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없다란데 있었다. 

 논쟁적인 이야기가 종종 나왔고, 내가 가끔 불을 지르려는 수작을 펴기도 했지만 이 분은 쉽게 동조하지 않았다. 그래서 날씨 얘기 비슷한 소재를 꺼내면 날씨 얘기에 이런 분야가 있나 싶게 깊은 소견이 나오기도 했다. 모든 이야기를 가감없이 털어놓는 것을 보고 솔직한 사람인가 싶다가도 어느 한 지점에서는 아무리 흔들어도 아무런 이야기도 안 들려줄 것처럼 고집을 부리고, 자신은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짓는 것을 보고 그런 것 같다고 동조하는 순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변하고, 돌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카멜레온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다시금 일관됐던 과거의 경험을 털어놓고. 따로 규정주의자 노릇을 자임한 것도 아닌데 갈수록 첩첩산중이었다. 게다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한차례의 오차없이 순순히 나를 거친 이야기들을 그분은 그대로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긴장됐다. 

 그분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부터가 긴장됐는데, 그러면서도 절대로 날 다 안다는식으로 나오지도 않는 지점의 틈에서부터 결국은 그 눈을 바라보면서 속수무책으로 해체된 기분이 드는건. 어떤 남자 앞에서도 느끼지 못한 귀속감이었으며, 어떤 여자에게서도 받아본적 없는 공감이었다.  

 누군가를 알 수 있다거나 확신한다라는게 얼마나 큰 과오였는지, 내가 배척했거나 마찬가지의 이유로 내가 배척을 당했을 때 억울함을 듣거나 억울함을 호소했을 때 나에겐 어떤 확신이 있었던가. 지금에서야 돌이켜보건데 확신보다는 억울함의 중량, 51과 49 사이, 가까스로 1을 넘은 맘의 비중이 있을 따름이었다. 내가 그 분을 잘 모르겠다라고 선언하듯이 말을 한 것도 경계에서 좌충우돌하지만 결국은 내게는 51인 사람으로 그 분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며 그 분이 말미에 다시 볼 수 있잖아란 말의 정서적인 측면에 공감을 표하기 때문일 것이다.  

 뛸듯이 그 사람이 좋고 맘에 흡족할만치 맘에 드는게 아니다. 그렇다고 믿어왔던 맘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그 사람은 내가 사람을 보는 안목에 있어서의 편협함과 유아적인(아닌 사람은 있고?) 도취를 간파할 수 있게 해줬다. 그런 얘기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우리 둘 사이에선 나오지 않을 얘기겠지만 왠지 난 그 사람에 대해서보다 내가 사람을 봐왔던 시선에 대해 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앞서의 CD와 콘서트장의 비유처럼 난 근근히 그분의 서재에서 생각의 조각들을 접해왔다. 아마 우리가 만나지 않았다면 이상화까지는 아니어도 그저 내가 볼 수 있는 선 안에서만 우린 꽤 적절한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다. 콘서트장의 불편한 자리와 비싼 입장료, 기대만큼 충족되지 않음이 자아내는 불편한 서사와 갑자기 장이라도 탈날 경우 등등의 사건들을 여전히 잘 알고 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만났을 경우 나타나게될 다양한 이야기거리들이 자칫 불협화음으로 그칠 수 있다란 우려도 있었다. 우리의 만남과 헤어짐을 쭉 떠올려보니 서재에서 느꼈던 이미지를 내 안에 쌓아두기만 한 것과 실제로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그분을 보고나서 홍수에 물이 뒤집히듯이 생각들이 뒤엉키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주 좋았다가 아니라 만나지 않았으면 후회했을게 분명했겠다란, 호불호보다는 더 강하고 깊게 원망했을지도 모르겠다란 느낌.  

 그분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게 다시금 얼마나 근사한 일일 수 있는지를 알게 됐으니까. 만남이 흔하다고 징징댔지만, 어쩌면 그건 역으로 좀 더 만남다운게 없음으로인한 징징거림이었을테니까. 나로 인한 상대방들의 징징거림을 포함해서. 그래서 호칭이나 누구누구님보다 그분이란, 네이버에 의하면 3인칭 극존칭을 쓰게 된거다. 

 네, 다시 또 봐요. 계절별로 봐도 좋고, 술 생각나거나 좀 건조하게 만나도 좋아요.


댓글(7)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9-04-20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20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9-04-21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잇, 나랑은 언제 볼 거유?

Arch 2009-04-21 09:56   좋아요 0 | URL
저는 조선인님 만나는 것도 굉장히 끌리지만, 옥찌들과 마로랑 해람이를 같이 볼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생각이. 그러자면 네 어린이의 스케줄과 적당한 거리와, 아아, 그 전에 연락처 하나 남겨주셔요.

2009-04-21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9-04-23 11:05   좋아요 0 | URL
네 어린이가 같이 만난다는 건 굉장히 매력적이지만 정말 가능할까요? 후후

Arch 2009-04-23 19:02   좋아요 0 | URL
히히. 매력적인 일은 추진하고 봐야는게 아닐까란.^^ 일이 좀 어마어마해지네요. 우선은 조선인님과 제가 기밀하게 만나서 말이죠...
 

 

그 사람이 2번 출구 앞에 있었다. 많이 봐온 뒷모습. 그는 가만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심한채 있는 사람의 모습은 얼마나 애틋한지. 누군가를 기다렸던 나와 나를 기다렸던 다른 사람의 막연한 기대와 실망, 기쁨에 대해, 뒷모습은 또한 얼마나 많은걸 설명하는지, 뒤태만 봐도 알아버릴 것만 같았다.

다가가 손을 툭 건드리자 그가 나를 바라본다. 왜 하필이면 그였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손때문이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얗고 부드러운 손. 그를 처음 봤을 때 그 손으로 내 몸을 만지는 상상을 했다. 그런 손이라면 심술궂은 장난을 치더라도 용서가 될 것 같았다. 오직 손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여서 괜찮은 경우가 더 많았지만.

손을 잡고 밤거리를 걸었다. 달이 밝았다. 손이 따뜻해서 잡은 손에 힘을 주자 그가 다시 나를 바라본다. 주절주절대며 달밤에 어울리지 않는 얘기들을 했을거다. 옆에서 그가 바스락거리며 웃고, 난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며 웃고. 한밤의 공원은 어린 친구들이 있어서 위험할거라길래, 으슥한 곳은 나 때문에 그에게 더 위험할지 모른단 얘기를 했던가.

무슨 말의 끝에 그가 조금 크게 웃자, 기분이 좋아졌다. 웃음이 헤프지 않고, 가끔씩 아껴뒀다가 나를 위해 웃어주는 사람. 멋있게 보이기가 컨셉이냐고 묻자, 본래 한 멋 한다고 농을 친다. 손을 다시 잡고 한 발짝씩. 달빛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호숫가로 달이 비추는 공원. 공원에서 달콤한 키스라도 하길 바란건 아니었다. 정말 순수한 의도였다고 아마 아주 오랜 뒤에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밤에 아무것도 안 하는건 정말, 직무유기였다. 조잘댄 탓에 까칠해진 입술을 보드라운 그의 입에 갖다 대었다. 젤리같이 말랑거리는 입술, 버석거리는 얼굴, 달빛 속에서 여전히 하얗게 빛나는 손. 차가운 손으로 하얀 손을 잡고 아주 오랫동안 마땅히 해야할 일을 열심히 했다.

하, 좋구나.

좋은건 이런 상상만으로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Forgettable. 2009-04-19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니깐 좋죠-
여름이었어봐, 손 따뜻했으면 당장 놓고 달아나고 싶었을걸요 ㅋㅋㅋ

첫만남은 언제나 설레죠.
언제나 첫만남만 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중이에요. 진짜 미운정고운정눈물콧물 쏙빼도록 오래만나면서 아주 가끔씩 갖는 소중한 느낌을 생각하면 또 모르겠고.. 에고

Arch 2009-04-19 23:47   좋아요 0 | URL
상상이래도.

첫만남만 그러겠어요. 첫키스, 첫포옹, 처음으로 손을 잡던 것까지 다 설레죠. 으응, 오래 만나면서 아주 가끔씩 그랬지, 그랬어란 것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