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2번 출구 앞에 있었다. 많이 봐온 뒷모습. 그는 가만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심한채 있는 사람의 모습은 얼마나 애틋한지. 누군가를 기다렸던 나와 나를 기다렸던 다른 사람의 막연한 기대와 실망, 기쁨에 대해, 뒷모습은 또한 얼마나 많은걸 설명하는지, 뒤태만 봐도 알아버릴 것만 같았다.

다가가 손을 툭 건드리자 그가 나를 바라본다. 왜 하필이면 그였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손때문이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얗고 부드러운 손. 그를 처음 봤을 때 그 손으로 내 몸을 만지는 상상을 했다. 그런 손이라면 심술궂은 장난을 치더라도 용서가 될 것 같았다. 오직 손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여서 괜찮은 경우가 더 많았지만.

손을 잡고 밤거리를 걸었다. 달이 밝았다. 손이 따뜻해서 잡은 손에 힘을 주자 그가 다시 나를 바라본다. 주절주절대며 달밤에 어울리지 않는 얘기들을 했을거다. 옆에서 그가 바스락거리며 웃고, 난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며 웃고. 한밤의 공원은 어린 친구들이 있어서 위험할거라길래, 으슥한 곳은 나 때문에 그에게 더 위험할지 모른단 얘기를 했던가.

무슨 말의 끝에 그가 조금 크게 웃자, 기분이 좋아졌다. 웃음이 헤프지 않고, 가끔씩 아껴뒀다가 나를 위해 웃어주는 사람. 멋있게 보이기가 컨셉이냐고 묻자, 본래 한 멋 한다고 농을 친다. 손을 다시 잡고 한 발짝씩. 달빛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호숫가로 달이 비추는 공원. 공원에서 달콤한 키스라도 하길 바란건 아니었다. 정말 순수한 의도였다고 아마 아주 오랜 뒤에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밤에 아무것도 안 하는건 정말, 직무유기였다. 조잘댄 탓에 까칠해진 입술을 보드라운 그의 입에 갖다 대었다. 젤리같이 말랑거리는 입술, 버석거리는 얼굴, 달빛 속에서 여전히 하얗게 빛나는 손. 차가운 손으로 하얀 손을 잡고 아주 오랫동안 마땅히 해야할 일을 열심히 했다.

하, 좋구나.

좋은건 이런 상상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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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04-19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니깐 좋죠-
여름이었어봐, 손 따뜻했으면 당장 놓고 달아나고 싶었을걸요 ㅋㅋㅋ

첫만남은 언제나 설레죠.
언제나 첫만남만 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중이에요. 진짜 미운정고운정눈물콧물 쏙빼도록 오래만나면서 아주 가끔씩 갖는 소중한 느낌을 생각하면 또 모르겠고.. 에고

Arch 2009-04-19 23:47   좋아요 0 | URL
상상이래도.

첫만남만 그러겠어요. 첫키스, 첫포옹, 처음으로 손을 잡던 것까지 다 설레죠. 으응, 오래 만나면서 아주 가끔씩 그랬지, 그랬어란 것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