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차는 후졌다. 차는 차대로 길도 잘 들여졌고, 힘도 좋았지만 그가 차를 다루는 방식을 놓고 볼 때면 차의 처우가 후졌다란 생각이 절로 떠오르게 된다. 일테면 '서재 결혼시키기'에서 궁정식 책사랑의 반대편에 있는 '책은 책이다'주의 정도? 차는 단순히 사람을 좀 더 편리하게 이동시키는 기계일 뿐이란 그의 생각에 따라 몇 년 전에 먹었음직한 아이스크림의 종이껍질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물컹거렸음에 분명한 괴이한 형태의 공산품으로 보이던 물건, 골동품집에서 봤음직한 뽀얀 먼지가 수북히 쌓인 차안 곳곳의 구석진 공간들. 그가 피우는 담배와 먼지 냄새가 섞여서 묘하게 텁텁하기만 했던 그의 차.

그의 차 안에서 난 시카고의 노래를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들었으며, 그 중에서 가장 좋았던 곡의 제목을 그와 열심히 찾아보기도 했고 연애 초기, 기어에 내 손을 얹은 후 그가 포개던 촉감이 좋아 떨렸었다며 나중에서야 조심스럽게 털어놓기도 했었다.

한밤중엔 미등을 조그맣게 밝혔고, 눈이 왔을 땐 썰매를 타듯이 운전을 했다. 그의 차로 밤새 달려 안면도에 가기도 했고, 소금이 기똥차다는 그 곳 아주머니의 말에 그의 차를 끌고선 소금을 사기도 하고, 회 한접시와 소주를 맛깔나게 마시고선 그에게 대리운전을 시키기도 했다.

헤어지기 너무 싫어 그의 차에 좀 더 오래 머물렀던적은 없었다. 그는 나이가 있는 사람이었고, '너무 싫어.'란 용법이 유치한건 겉멋 든 나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점점 거세지더니 겉잡을 수 없이 쏟아지던 날, 차를 가만히 세워두고 우린 빗소리를 들은적이 있었다. 가끔씩 그는 창문을 내리고 담배를 폈던가, 그럼 난 내 쪽 창문을 살짝 열었던가, 아니면 이건 그냥 막연한 기억일 따름일까.

비가 와서 차 밖으로 나가기 싫었는지, 여느 때처럼 그날도 싸워서 머리에서 김이 날 정도로 성이 나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가만히 그와 차에 앉아있을때면 괜히 맘이 저릿거렸다. 차와 그가 닮았다고 느껴져서였을까, 차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꽤 감성을 자극했기 때문이었을까, 혹은 아무말 없다가 가끔씩 나를 건들며 무슨 말이든 해보라고 장난치는 그가 애뜻해서였을까.

괜히 그래지는 순간, 차 지붕을 때리며 비가 오고 있었고, 오늘 오는 비는 문득 그렇게 여전히 가끔씩이나마 생생한 누군가를 떠오르게 한다.


가사를 찬찬히 곱씹어보면 '아니 어쩜 어쩜'스럽게 부끄럽고, 모든 노래에서 줄곧 청승맞은 심수봉이 그렇게 맘에 들진 않는다. 그렇지만 괜히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에 우연히 들어간 가사로 문득 그가 생각이 났고, 가끔은 좀 처량한 느낌이 나쁘지 않다.

게다가 어린 심수봉은, 너무 귀엽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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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9-04-21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아이 목소리 울림이 어쩜 저렇게 청승맞을까요?

Arch 2009-04-21 09:5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깐요. 막 뭔 말을 쓰려다 다 사족같단 느낌이

프레이야 2009-04-21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 2학년 때 이 노래를 기막히게 잘 부르던 반 친구가 있었어요.
장기자랑 시간에 앞으로 나와 이 노래를 목소리 꺾어가며 부르더군요.
그때부터 이 노래가 참 좋아졌어요.
비오는 날 차 안에서 빗소리 들으면 너무 좋지요.
님의 추억을 불러왔군요.

Arch 2009-04-21 22:54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전 비가 마룻바닥이나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소리를 좋아해요. 무엇보다 아주 근사하거든요.
게다가 비 맞으며 걷는건 최고의 사치이자 로망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