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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 사이코 북스 18
그레이엄 뮤직 지음, 김숙진 옮김 / 이제이북스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아이콘북스의 사이코 시리즈를 읽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읽어서 무해한 것을 떠나 나무 낭비가 아닌지, 화를 버럭버럭 내면서 집어던질만한 책인지, 혹은 혹해버릴 책인지에 대한 그 어떤 소개도 없었다. 그래서 약간은 마루타가 된 심정으로 책을 샀다. 사이코 시리즈라 명명된 책자의 제목 자체가 쫄깃쫄깃하게 호기심을 잡아끌어서일 수도 있다. 나르시시즘, 공포증, 히스테리, 리비도, 성도착(오호), 환상, 에로스(오예), 불안(으흠), 노출증(끄응), 무의식, 초자아 등의 제목은 충분히 읽고 싶게 만들었고, 사려는 충동을 억제할 수 없게 했다. 게다가 반값 할인이라는데 불이 붙고야 말았다.
책의 소개에 따르면 '정신분석학의 개념들이 우리의 일상 생활과 어떠한 방식으로 얼마나 깊이 관련되는지를 보여주고 '정상적인'사람이 누구나 지닐 수 있는 '비정상적인'면들을 조명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과 타인에게 한발 더 다가서게 될 것이다'라고 되어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전문적인건 아니지만, 미친 사람으로 예외가 된 사람들뿐 아니라 '정상'이란 범주에 있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경계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소리다. 100여쪽에 달하는 분량으로는 소기의 목적에 도달하진 못했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발제와 예가 실려 있으며, 인간의 감정에 대한 앎의 시작에서 유의미한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건 안정적 애착에 관한 부분이다.
태어난 지 일 년 정도 지난 아기들에 대한 실험에서, 실험자는 엄마들에게 갑자기 방에서 나가 보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그에 대한 반응으로, 어떤 아기들은 울음을 터뜨리고 당황했지만, 다른 아기들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하던 일을 계속했다. 흔히 '회피적 애착 avoidantly attach'이 형성된 경우라고 일컬어지는 후자의 아기들은 엄마가 돌아와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안정적 애착 securely attach'이 형성된 아기들은 엄마의 모습을 보자 따스한 품을 찾아 엄마에게로 다가갔다.
하지만 두 집단의 맥박수와 아드레날린, 코티솔 등을 측정해 보았을 때, 두 집단의 아이들 모두 엄마가 사라졌을 때 비슷한 생리적 반응을 나타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런 사실은 일반적인 관찰을 통해서는 알 수 없는 것이며, 분명 회피적 집단의 아이들은 자신의 느낌들과 '접촉하지 touch'않는다. 이런 집단의 아이들에 대한 많은 연구가 수행된 결과, 흥미롭게도 이런 아이들은 자라서도 감정을 읽어 내는 능력이 부족하며, 자신의 느낌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리고,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신체적.감정적으로 긴밀한 유대를 잘 형성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입증되기 시작했다.
회피적 애착을 갖는 아이도 엄마와 떨어지면 마찬가지로 불안해하고 걱정하지만 표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위악을 떠는 사람, 혹은 시니컬한 사람, 감정을 표현하거나 느끼는데 서툰 성인의 맘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게다가 어린 아이가 엄마와 떨어진다는 사실로 인한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회피적 애착으로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는게 안타까웠다. 물론 책에서 인용한 도교 현인의 '좋은 말은 하루에 백 리를 달릴 수 있지만, 쥐를 잡는 데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경구와 마찬가지로 심리치료사의 '정상'이라는 관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인격 유형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 책은 전문 심리서적이라기보다는 에세이에 가깝고, 멋진 구절도 여럿 발견된다. '감정'을 읽으면서 프로이드의 책에 대해서도 좀 더 여유를 갖고 들춰볼 수 있는 힘이 생길 듯하다. 과연 지금까지의 심리학은 왜 행복해질 수 있는 것보다, 슬픔을 어떻게 치유하려 하는데 집중했는지, 네거티브 전략의 문제는 뭐가 있는지도 다뤄진다. 이 책은 감정에 대해 정리할 수 있다기보다는 어떤건가란 호기심을 충족하는데 의미가 있으며, 인간의 마음에 대해 알고 싶어지는 부가적인 기능도 충족하고 있다. 게다가 시리즈물의 저자가 각자 다르기 때문에 주제의 차이뿐 아니라 관점의 미묘한 차이에서 어긋하는 마찰음을 듣는 재미도 있다. 지금 '공포증'에 대해 읽고 있는데 저자는 프로이드를 화살을 쏜 후 과녁을 그리는 선무당쯤으로 취급하고 있다. 어떻게 그 둘이 화해를 할런지, 화해는 커녕 결말이 날런지 모르겠지만 무리없는 가격에 부담없는 무게라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