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준비하는 시험이 있다. 시험 필기를 합격하고 실기 준비를 하는데 과정 중 하나가 케이블을 만드는거다. 잭의 암놈 수놈에 케이블을 연결한다. 이때 납땜을 하는데 이게 꽤 재미있다. 건강염려증이 있어 연기를 들이마시면 몸에 안 좋은거 아니냐, 중금속 오염 아니냐 떠들어대지만 할 때는 내가 봐도 꽤 열심히 잘 한다. 특히 같이 하는 분과 경쟁을 하면서 조금 더 이겨보려고 아등바등거리는건 꽤 짜릿하다. 전선의 피복을 벗겨서 끝부분에 납을 묻힌 후 잭과 연결한다. 인두에 납이 녹고 마술처럼 전선과 잭이 붙는다. 가끔 전선이나 잭의 앞쪽이 뜨거워지긴 하지만 이젠 제법 요령을 익혀서 손을 데지 않는다.
물건의 기원과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선을 꽂으니 전원이 들어왔다' 말고 얘는 어떻게 전기가 통하는지, 속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었다. 궁금증은 막연하기만 했다. 피복을 벗겨보고, 시계를 분해해보고, 컴퓨터를 뜯어볼 정도로 부지런한건 아니었다. 물건의 기원이 궁금한 것처럼 사람도 궁금했다. 그래서 서머싯 몸의 책을 읽는게 흥미진진하다. 요즘 읽는 불멸의 작가, 위대한 상상력은 그런 면에서 최고다.
* 즐거운게 고민이다. 요가를 배우다가 수련생으로 키우고 싶다며 -배가 나와서 못쓰겠다는 말은 빼고- 팔과 다리가 길어서 일단 신체적 조건은 좋다고 하는 선생님이 있는가하면 내 손을 만지고 싶다고 끈적하게 구는 밉지 않은 친구가 있고, 치과 갔다가 치료 안 하고 그냥 와서 너무 행복하고 좋다는 그래서 결론으로 나를 더 사랑하게 됐다는 옥찌가 있다.
전화기 뜨거울 때까지 수다를 떨며 아치 어쩌고 하다가, 그래도 아치니까 괜찮다고 하는 친구가 있는가하면 언니는 나만 믿고 하고 싶은거 다 하라고 하는 동생이 있다. 한낮에 갈증나면 맥주라도 훔쳐 줄 수 있다고 막말하다 '아, 아치는 막걸리지' 하는 A가 있는가 하면, 직접 맥주를 사와서 한상 차려주는 B도 있다. 괜히 카드를 갖고 와서 이거 영어로 아냐며 물어보고선 가만히 내 발음을 듣어보곤 합격 불합격이라고 말해주고, 시험 본거 합격했다니까 그건 이긴거냐고, 진거냐고 계속 물어보는 지민이가 있다. 같이 하고 싶은 공부를 정말 제대로 할 수 있게 한 공간이 있고, 운동장처럼 넓고 시원한 도서관이 지척에 있다.
중국 사람들은 너무 행복하면 하늘을 보고 찡그린다고 한다. 하늘이 자신의 행복을 질투하지 못하게 거짓 표정을 짓는다나. 정확히 그런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왠지 어두컴컴한 베란다에 나가서 달을 보고 좀 찡그려줘야겠다.
* 남들이 보면 검지를 곧게 세워 머리통 옆에 놓고 몇바퀴 돌리며 고개를 흔들만한 짓이겠지만 해보면 꽤 재미진 놀이가 있다. 공원 같은데서 소리 안 나는 이어폰을 끼고 약간 크게 노래 부르기, 횡단 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고무줄을 상상하며 고무줄 놀이 하기, 사각의 자동차 주차선 주위를 자전거로 돌기. 이때는 되도록 선 근처를 돌아서 코너링 기술을 익히도록 한다. 기어가 없는 자전거를 갖고 오르막길 오르기-한낮에 땀 뻘뻘 흘리며 해야 제 맛-, 또 뭐가 있을까.
* 결론부터 말하자면 뱃살은 호락호락한 녀석이 아니었다. 잠깐 주춤하며 몸무게가 준걸 가지고 동네방네 떠들며 복근을 만들겠다고 말하고 다녔으니, 배 그림자라도 올려야 마땅하겠으나 뱃살이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M에게 푸념을 했더니 나중에 만나면 배를 까본다고 했는데 이를 어쩌나. 근육 무늬라도 그려넣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