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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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단수]
By 무라카미 하루키

한 작가의 작품들을 꾸준히 읽어오다 보면, 그 특유의 정서나 문체에 질리기 마련인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은 희한하게도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 법이 없다. 기본적으로 원어가 따로 있고, 번역이 된 책들은 아무래도 번역가의 영향이 크게 미칠 수 밖에 없는데, (그래서 번역가가 그 맛을 잘 못살리면 더 빨리 질려버리는 듯 하다) 하루키의 경우는 좀 특이한게 원어인 일본어에서도 특유의 번역투가 느껴진다고 하니 비교적 그런 류의 괴리감은 적은 편일 듯 하다. 나 자체도 약간 번역투를 쓰는데다, 자유롭고 종종 종잡을 수 없는 그의 사고의 흐름 자체가 유독 편하고 신선하게 느껴지는 탓이다. 이 책은 묘한 틈새를 파고드는 맛이 있는데, 하루키는 에세이를 많이 쓰는 작가이다 보니, 본인이 일인칭 주인공인 이 소설에서는 그 실제와 허구의 경계를 완벽히 갈라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더더욱 묘한 매력과 약간의 흥미로운 판타지를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이 세상에, 어떤 가치가 있는 것치고 간단히 얻을 수 있는 게 하나라도 있는가...그래도 말이야, 시간을 쏟고 공을 들여 그 간단치 않은일을 이루어내고 나면,그것이 고스란히 인생의 크림이 되거든...크림 중의 크림, 그게 ‘크렘 드라 크렘’이야.알겠나? 나머지는 죄다 하찮고 시시할 뿐이지.”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 안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

“나는 실로 방대한, 거의 천문학적 횟수의 ‘지는 경기’를 지켜봐왔다. 다시 말해 ‘오늘도 또 졌네’라는 것이 세상의 이치로 여겨지도록 내 몸에 서서히 길들여갔다는 소리다. 잠수부가 오랫동안 주의깊게, 수압에 몸을 길들이듯이. 그렇다. 인생은 이기는 때보다 지는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하는 데서 나온다.”

“물론 지는 것보다야 이기는 쪽이 훨씬 좋다.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경기의 승패에 따라 시간의 가치나 무게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시간은 어디까지나 똑같은 시간이다. 일 분은 일 분이고, 한 시간은 한 시간이다. 우리는 누가 뭐라 하든 그것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시간과 잘 타협해서, 최대한 멋진 기억을 뒤에 남기는 것-그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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