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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예수님의 산상보훈 팔복중에서 이 두가지만 현재시제이다.
이것은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하늘나라는 이미 여기 와 있는 것이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성프란시스코처럼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재산을 나누어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매일 저녁 나의 능력과 특권과 재능과 학식을 가지고 약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라고 자문했는지 묻는 것이다. 이렇게 자문한는 자가 마음이 가난한 자인 것이다.

마지막 행복은 반드시 순교자로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 사람이 있는데 그들 중 가장 힘센 자가 가장 힘없는 자를 착취하려 할 때 나머지            한 사람이 ‘네가 나를 죽이지 않고서는 이 힘없는 자를 아프게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날  하늘나라는 이미 이 땅에 와 있음을 의미한다.

신앙을 모른다고 스스로 말하는 많은 이들이 사실은 힘없는 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그들의 타고난 성품으로 인해 하느님의 아들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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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궁전,

가끔 완벽한 고요가 그리울 적에 이 사진을 들여다 봅니다.

始原에의 그리움이 물밀 듯 밀려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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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4-10-13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한 번 가 서고싶다. 저 신화의 땅에
 


觀, 구도자의 여의봉

마음을 한 곳으로 집중할 수 있는 능력으로 그 능력이 자기 성찰이고 觀이다.
그렇다고 덮어 놓고 관한다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관을 하되 관이 잡혀 있어야 한다.            

곧, 구도자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마치 연극 무대위에 선 자신을 바라보듯

냉정하게 살펴볼 수 있는 경지를 말한다.             

그러면 부동심을 가지게 된다. 견성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자기성찰의 힘으로 생로병사의 윤회도 탈출할 수 있다.

자기성찰, 觀을 하면 하늘과 남을 원망하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자기가 자기 모습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기에게 닥쳐 온 모든 불행의 원인이 남이나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 속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므로 하늘과 조상을 결코 원망하지 않게 된다.

일체를 자기 탓으로 돌리기 때문에 마음이 늘 안정되고 평안하다.
일상생활에서 觀만 할 수 있다면 도인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철두 철미 객관적으로 보는 주체가 眞我이고,

자기 자신을 동정하거나 이기적인 관점에서 보는 주체는 假我이다.

암벽타기의 경우 초보자는 고소공포증 때문에 무서워한다.
그러나 바위를 자주 타면 바위와 친해지고 긴장하고 조심을 할 망정 겁내지 않는다.
자주 바위를 타면서 친해져서 오랫동안의 관찰과 경험으로 고소공포증을 느끼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 마음을 장기간 관찰한 사람은 마음을 잡게 되고,

인생의 큰 실수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지혜의 눈으로 생로병사가 허상이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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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산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수녀님의 눈을 나는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다.            

그 눈길과 마주쳤을 때 내 안에서는 전율 같은 것이 일어났다.

그것은 아득한 전생부터 길이 들어온 침묵의 눈이었다.

그 눈은 밖으로만 하는 현대 여성의 들뜬 눈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안으로 다스리는 맑고 고요한 수행자의 눈이었다.

진실한 수행자의 눈은 안으로 열려 있다.

내면의 길을 통해 사물과 현상 너머의 일까지도   멀리 내다볼 줄 안다.

그때의 그 눈길이 때때로 나 자신을 맑게 정화시켜 주고 있다.

영원한 여성이 우리를 이끌어 올린다는 말은 조금도 빈말이 아닐 것 같다.                       

오늘날 도시의 횡단보도나 버스 안에서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성스러운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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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는 이와 같으니 어린이와 같은 마음, 동심의 세계입니다.

피천득선생님은 우리에게 나이와 상관없이 순수한 동심을 보여주십니다.

지금은 이웃집 마실 가듯 가까운 곳이 되었지만

20여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 간 여자친구가 다시 한국에 일시 방문한 적이 있는데

저는 영어만 사용하는 미국인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친구에게

아름다운 우리말을 잊지말라고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을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친구도 선생님의 珠玉같은 수필에 감동을 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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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10-09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사진 왠지 슬프네요.

직접 찍으신 걸까요......?
퍼갈게요.

니르바나 2004-10-09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체셔고양이님
이 가을에는 더욱 주님의 은총이 충만하시길 빕니다.

혜덕화 2004-10-10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천득 선생님과 난영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선생님의 딸은 서영인데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인연을 읽고 나면 누구라도 서영이를 기억하고 있을 거예요.
난영이를 안고 계시는 모습, 정말 아름답네요.

니르바나 2004-10-10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인사드리네요. 혜덕화님
피천득 선생님이 따님을 위해 미국에서 사온 인형 이름을 '난영'이라고 하셨다죠.
따님의 친구로 잘 지내다가 미국유학을 가게 되어 집에 놓고 가셨다고 하지요.
따님사랑이 유별나시던 피 선생님이 외로우실까봐 배려하여 그리하신 듯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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