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기파랑가(讚耆波郞歌)
열치매
나타난 달이
흰 구름 좇아 떠 가는 것 아닌가
새파란 냇물 속에
기파랑의 모습이 있어라
이로 냇물의 조약돌이
낭(郎)이 지니신
마음의 끝을 쫓과저
아으 잣가지 드높아
서리 모르올 화랑이여
'신라를 담은 미술사학자의 사진수상'이란 부제를 단 이 책과의 만남이 늦은 이유는
단지 부담스러운 책의 가격 뿐이 아니었다.
이전에 구입해 두었던 강우방의 책들도 제대로 읽지 못해 서재 안쪽에 들어앉히고 있는마당에
또다시 책더미에 쟁여놓고 가끔 책껍데기만 쓰다듬기가 남사스러웠기 때문이다.
강석경의 책을 끊어 읽으면서도 내내 진한 유혹을 받았지만 용케 이겨낸 셈이었다.
하기는 '능으로 가는길' 속에는 이것 말고도 십수권의 책들이 소개되어 있었으니
그 중에 유난히 기억나는 것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였다.
두 책의 경우 잘 읽혀지지 않는 이유를 나름을 다해 따져보니
중고등학교 시절 원전은 읽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인용되고, 발췌되고, 짜집기 되던 시험문제의 예시문들로 하여금
읽지는 않았을 망정 책의 내용을 모두 알고 있다는 망상들이 모여
학생 신분의 심신을 피곤케 했던 까닭이 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이 된다.
졸업이후, 시백 서정주의 그 많은 시의 원천으로 거론되고
연극연출가 이윤택의 '내 인생의 책'으로 추천되는 글을 읽고서야
삼국유사, 삼국사기를 만나게 되었다.
지난 주간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강우방의 '영겁 그리고 찰나'를 보니(읽으면서가 아님)
국립경주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와 한 겨울 찬바람을 뚫고 걸어서 멀리보이는 황룡사 터와
분황사를 그야말로 답사하느라 내딛던 운동화 밑으로 밟혀지던 볏단길의 감촉이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올올히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 한가지.
내가 오체투지로 흙바닥에 세번 절하던 석굴암의 본존 석가여래좌상의 후벽 감실 안에는
중생이 아파서 함께 병이 들었다는 유마거사상이 문수보살상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고로 모르면 눈뜨고도 장님인 셈이다.
혹시 이 사실을 모르는 분들은 석굴암에 가시거든 한 번 확인해 보시라는 말씀.